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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design forum] 글로컬(Global+Local) 시대의 디자인 협회와 디자인 연구 세상과 멀어지는 디자인
디자인에 관한 한 요즘 같은 호시절이 또 있었을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정치가들은 다가올 지식 경제 시대의 열쇠는 창조 산업(creative industry)이 쥐고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열리고 있는 디자인 이벤트만도 한 달에 수건씩이나 된다. 방콕(태국), 싱가포르, 광주(한국), 광저우(중국), 몬테레이(멕시코), 에인트호벤(네덜란드), 안트베르펜(벨기에), 팔레르모(이탈리아) 등 과거에 ‘디자인’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도시들이 갑자기 디자인 지도를 점점 장식하고 있다.

요란한 정치적 후원 덕분에 전에 없이 많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지역들이 디자인 무대에 명함을 내놓고 있다. 이제 뉴 테크놀로지의 도움만 있으면 창조적 아이디어와 다양한 접근 방법이 폭발하는 시대가 조만간 실현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어째 현실은 그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해 보인다. 실상인즉, 디자인은 오히려 하강 국면을 치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가 출발한 후로 디자인계에는 그 어떤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이나 접근법도 탄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과거가 재탕되고 있다. 정치적인 후원, 다양한 디자인계 참여자, 신기술의 기여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그로 인한 결과는 별달리 눈에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 혁신의 잠재력은 제도 속의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연기처럼 사라진다.

제 역할을 못하는 디자인 단체들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대형 디자인 콘퍼런스 ‘커넥팅 07(Connecting 07)’을 참관했던 프로그 디자인의 마케팅 디렉터 팀 레베렉트가 이 행사를 둘러보고 한 논평은 어찌 심상치 않다 “이 콘퍼런스에서는 산업 디자인을 구식으로 이해하는 구시대적 분위기로 가득했다. 과거를 보존하면서 지금 바로 우리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발전을 애써 피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가 하면… 오프닝 행사는 두 디자인 단체를 둘러싼 장황한 자화자찬으로 흘렀다.” 비즈니스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HP와 테슬라 모터스(역자 주: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소비자용 전기 자동차 생산업체) 두 회사를 제외하고 총회 프로그램에서 기업들의 프레젠테이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마디로 이 콘퍼런스는 “일관된 의제나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지도 않았다. 행사 전체를 종합할 주제도 도출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해답의 단서는 디자인 조직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결성한 세계 최초의 디자인 단체는 1897년에 탄생한 미술공예협회(Society of Arts and Crafts)였다. 이 단체는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출범했고 당시 시대가 당면하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여 시대에 걸맞은 분명한 디자인 패러다임을 제시해주었다.*[각주 1] 1907년에 건축가 겸 독일 산업 제품 품질 평론가였던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가 창설한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이 일찍이 관심을 가지고 주력했던 분야는 바로 ‘산업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industry)’이었다. 독일공작연맹의 패러다임은 당시 기업들에게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해서, 당대 독일의 대규모 백화점 체인이었던 카우프호프(Kaufhof)는 판매 슬로건을 “아름다움과 품질(beauty and quality)”이라고 내걸 정도였다. 또 이 시대는 독일 최초로 ‘산업을 위한 디자인’을 시작하여 그 유명한 아에게(AEG)사의 브랜딩, 건축, 제품 디자인을 두루 책임졌던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를 탄생시킨 때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일이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아마도 디자인 단체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눈에 띄는 조직일 것이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모형은 유럽, 아시아, 호주의 디자인 단체들의 기초 모형을 제시했을 정도다. 1944년에 영국 정부의 주도로 창설된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목표는 ‘모든 실용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영국 산업계의 제품 디자인을 개선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그 같은 야심 찬 출발을 알리면서 생산업체에 디자인 고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디자인 전시회를 조직했다. 또 지금으로 치자면 국가적 차원의 미학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대중 상대의 디자인 교육을 실시해서, 일반 소비자들이 무엇이 ‘굿 디자인’ 제품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지각력을 키워주려고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의 디자인>을 쓴 디자인 역사가 조너선 우드햄의 표현에서 미루어볼 수 있듯이,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스스로가 성공적인 조직체임을 만방에 알리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자기 선전적(self-propagandist)인 단체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 들어 팝 아트 미학이 새로운 미학이자 상업적 움직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새로운 시대적 추세를 두 팔 벌려 포용하기보다는 이 조직체가 본래 결성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성립했던 고루한 ‘굿 디자인’ 콘셉트를 고집하다가 결국 점점 현실과 괴리된 무기력한 단체로 비쳐지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1990년대 초에 스스로를 ‘디자인 공동체로부터 멀리 격리되어 산업계와 접촉을 상실한’ 조직체가 됐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94년 정부 부처장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영국 정부는 런던디자인센터와 영국 내 여러 지방 디자인 카운슬 사무실을 모조리 폐쇄한 후 그에 대한 즉속 후신으로 혁신주의자 앤드루 서머스의 지휘하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디자인 카운슬을 재조직했다. 그러나 서머스가 영국 디자인 카운슬을 떠난 2003년 이후 영국 디자인 카운슬은 가장 중대한 디자인 정책을 폐기하고 수뇌진을 교체하는 등 조직 개편을 거쳤는데, 그 결과 디자인 디렉터였던 힐러리 커탬이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면서도 2005년에 디자인 뮤지엄 주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디자인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오늘날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핵심 경영진 가운데 실무 디자인 경험을 지닌 사람은 없다.
20세기 초에 탄생했던 모든 디자인 단체들은 설립 당시의 시대적 지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패러다임과 비전을 갖추고 실무에 몸담고 있던 디자이너들로 구성됐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의 디자인 단체들은 경제 재건의 목표에 기여하기 위하여 정부 주도로 결성됐다. 단체들마다 성패 결과는 달랐지만 대체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조직 설립 초기의 사명감과 활동력이 둔화되어 점차 관료적 관리 조직으로 변질되어 갔다.

디자인 단체들의 역사와 그들이 지녔던 문제점은 오늘날 디자인 단체들이 변화하는 세계와 보조를 맞추는 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관료적 조직체란 혁신과 창조를 조직 내로 소화시키는 데 미숙하다. 디자인 단체도 마찬가지다. 일반 관료적 조직체와 디자인 조직체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디자인 조직체가 혁신과 창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간 그 어떤 다른 조직체보다도 더 큰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점이다.
디자인 조직체의 결정적인 존재 목적이 혁신과 창조의 발전을 장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20여 년 동안 여러 나라에 있는 디자인 조직들은 마치 작은 면사무소처럼 경제의 언저리에만 산재했다. 산업과 비즈니스는 그들만의 역동에 발맞추어 자발적으로 디자인을 활용하면서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따라서 지난 십수 년 동안 마케팅과 신제품 개발 분야와 손잡고 디자인을 경영해온 최근의 여러 방법론은 비즈니스 경영이 이룩한 실적이었지 디자인 단체들의 기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디자인 단체들이 신진 경제 개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화가 극대화된 지난 몇 년 동안이었다. 중국, 인도, 남미, 남아공 등 신진 경제 세력이 세계 경제 무대에 진출하면서 초국가적 디자인 단체들에게도 새로운 시장이 됐다. 신경제 국가들에게 디자인 콘퍼런스와 디자인 행사 추천권을 내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무 경험이 없는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악순환
이제 디자인은 산업계를 넘어서 지역 전체에 경제의 잠재력을 뜻하게 됐다. 창조 분야는 지식 경제 시대로 이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믿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분야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비즈니스 경영자가 아니라 품질과 리스크 평가 관리를 할 수 있는 디자인 경영 전문 도구를 갖추지 못한 공무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디자인계에 새로 첫발을 디디기 시작한 경험이 적은 신진 지역의 경우 더 그러하다. 그러니 이 지역 실무자들이 자신의 미숙한 경험으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불확실성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 생긴 지 오래된 기존 디자인 단체에 손을 뻗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능히 이해할 만하다.
아뿔싸! 그러나 바로 그 도움 요청으로 초대받아 온 초국가적 국제 디자인 단체들은 관료 조직이라는 커다란 짐가방까지 함께 끌고 들어온다. 디자인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다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물론 참신하고 기발한 디자인 아이디어는 무성하다. 그러나 그들은 디자인 관료 조직이라는 주류의 문턱으로부터 입장 금지 상태이다. 오늘날 디자인 혁신은 사립 재단, 디자인 공동체, 임시적인 이해 단체, 개별 선발된 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이 주체적으로 모여 여러 분야와 각종 기술을 넘나드는 창조적 실험을 하고 있다.

새로운 조직 정렬로 재정비해야 할 곳은 디자인 조직뿐만이 아니다. 디자인 교육 기관들도 자기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에 속속 등장하게 될 신진 창조 산업계는 다가올 보다 복잡다단하고 고된 미래 세계에서 일하게 될 학생들을 적절하게 훈련시켜야 할 교육 기관에 의존해야 한다. 디자인 교육 기관에 주어진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연구이다. 연구와 이론은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다. 여러 유명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도 이론가를 겸했다. 이미 1946년에 영국의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디자인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사회학적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에서는 연구와 정보 제공을 통해 실제 창조에 도움을 주기보다 저 홀로 동떨어진 실행 불능한 독자 분야로 자기 고립화시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 같은 현상의 원인은 간단하다. 제도적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학계는 과학적인 실적을 격려받고 있으며 교수들은 실무 디자인과의 연계성보다 학구적 출판 실적으로 포상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제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학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미래의 교수들은 실무 디자인에서 직접 경험을 쌓아야 할 동기도 의무도 없어졌다. 당연히 그들의 연구는 이론의 탁상공론으로 치우치게 되어 있다. 요즘 디자인 학교의 젊은 디자인 학자들이 교육 기관에 몸담는 1차적 목적은 직업적인 학자가 되는 것이다.

디자인 교육 기관은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실제 세상 속의 디자인이라는 목적지로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젊은 디자인 학자들은 실제로 디자인의 세계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실제 세상 속의 디자인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경제와 사회를 위한 진정한 실용성을 지닌 디자인 결과를 생산해야 한다는 제도적인 동기 유발도 없고 또 그에 대한 이해도 없는 연구라! 그 같은 연구는 종종 연구 논문 쓰기라는 목적으로 쓰여진 연구 논문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필자가 한 디자인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디자인 이론가들과 학생들이 노인 복지 회관의 노인 회원들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관찰하게 됐다. 학생들은 재정 관리를 위한 서비스 시스템을 디자인하기 위하여 정보처리 흐름도(flowchart)를 구성했는데, 그 결과는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한 뒤엉킨 도표로 끝났다.
서비스 디자인에서 표준적으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재정 기획 방법론에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비즈니스 경영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과목을 한 번도 강의 들은 적 없는 학생들은 당연히 방황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실제 세계의 시스템을 적용해보려던 그 같은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은 혼동의 구름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이 혼미의 상황을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하여 필자는 이 시스템 디자인의 타깃, 즉 사용자들, 노인 회관의 노인 회원들과 디자인을 맡은 학생들 사이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그제야 학생들은 그들의 시스템 디자인이 노인들의 실제 사용 패턴, 태도, 지각을 무시한 뜬구름 잡기 연습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같은 경우를 가리켜서 이미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렇게 경고했다. “실무 없이 이론과 깊이 사랑에 빠진 자는 키와 나침반 없이 배를 타러 가는 자와 같다. 그러한 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디자인 실무가 강해지는 대안
디자인 단체와 디자인 연구계가 실무 디자인과 동떨어지게 된 것은 한 가지 공통된 원인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직체로서의 적합성 부족이다. 비즈니스 경영 학자인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는 “혁신적인 조직이란 모든 작업 조정을 표준화하는 데 의존하는 관료 체제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독일의 체제 이론가 디르크 베커(Dirk Baecker)는 “관료적 조직은 인간 개인을 중추적인 행위자로 이해하지 않고 추상화한다’고 지적했다. 필 글랜필드(Phil Glanfield) 영국국립보건서비스 직무 개발팀 디렉터는 조직적 불능을 야기하는 요소로 나약한 리더십, 고립, 과정 실패, 무능한 의사소통력을 꼽았다. 그 결과 조직은 비전이 없고, 공통의 목표 의식을 창출할 능력이 부족하며, 여러 빨간 불 경고 신호를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덤벼들어 해결하지 못하는 의지 상실과 무능에 허우적댄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비즈니스 경영 과학은 제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된 개인들로 구성된 임시 프로젝트 팀을 제안한다. 혁신적인 조직은 다양성을 지향하고, 즉흥적인 변동을 받아들일 줄 알며, 고정관념을 벗어나 사고할 줄 아는 조직을 뜻한다. 이는 흔히 자체 선별한 열정적이고 첨병적인 이른바 ‘멋진 팀(hot teams)’인 경우가 많다.

디자인은 비즈니스를 필요로 하고 비즈니스는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아직 디자이너들에게 기초 비즈니스 경영학을 가르치는 디자인 대학을 여간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 유럽에서는 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기업체의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실제 상황의 디자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산학 디자인 교육 과정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산학 디자인 협동은 자칫 비행기 조종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사람에게 비행기를 날려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형세가 된다. 마찬가지로 기초 비즈니스 과정이 결여된 디자인 과정은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 회사 업무와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 디자인 결과물을 내라 하는 것과 같다. 흔히 디자이너와 사업가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둘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오해가 빚어지곤 한다. 디자이너들이 지금처럼 비즈니스 기초에 대한 이해 없이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는 한 이러한 상황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디자인 방법론의 발전은 디자인 단체와 상아탑에서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교류와 협동의 결과로 성취된 것이다. 다음 목록은 디자인에 기여한 여러 분야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들을 꼽아본 것이다.

첫째, 캐드(CAD)와 디자인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과학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협력한 결과.
둘째, 래피드 프로토타이핑과 버추얼 프로토타이핑은 기계공학과 컴퓨터 과학이 협력한 결과
셋째, 디자인 경영과 디자인 전략은 비즈니스 경영학과 전략이 협력한 결과
넷째, 창조력 극대화에 관한 새로운 통찰은 심리학과 경영학이 협력한 결과
다섯째, 사용자 연구와 고급 사용자 테스팅 기법은 마케팅이 협력한 결과

이 외에도 디자인의 발전을 이끌 또 다른 미래의 방법론으로 인간 지각력에 기초하여 디자인 최적화를 시도하는 데 기여할 신경과학과 두뇌 연구 분야가 주목할만한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을 무엇인가? 기업의 디자인 후원의 현실인즉, 기업들은 흔히 근시안주의에 젖어서 기업 광고와 홍보용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디자인 단체를 후원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적 차원의 후원 또한 올바른 수혜자 선별과 효과 달성을 측정하기가 어렵다. 자선 단체와 회원 후원 조직들은 자칫 조직 내부적인 신념에 눈이 멀어 더 대국적인 관점을 놓치기 십상이다.
필자가 상상하는 미래의 디자인 단체들은 날쌔고 구성원의 내.외부적인 유대가 강하며 고도의 역량을 갖춘 장기적 비전과 의무감이 뚜렷한 독립적인 공사 공동 경영체(independent public-private partnerships)이다. 디자인은 역량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위원 모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이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 재무의 측면에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디자인과 혁신을 발생시켰다는 실제적인 공헌도로 평가받아야 한다.
디자인 단체와 디자인 교육 기관은 무턱대고 뭉칫돈을 재정 후원할 것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 기여하는 디자인 창조에 공헌했을 때 포상해야 한다. 디자인 업계와 비즈니스계는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주주들이 제공하는 냉철한 사실과 의견에 기반을 둔 실질적인 디자인 공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학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연구가 디자인과 신개발에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여 실제 세상 속의 디자인 응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산학 협동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교훈
유럽의 중세 시대에는 화가는 장인의 한 부류로 여겨져 돌을 갈아 물감을 만들던 약방의 약제사와 같은 직종으로 분류되었고, 조각가는 돌을 깎아 나르는 석공(石工)과 금속 세공 장인과 같은 축에 끼었다.
과학과 미술, 이론과 실무를 결합시켜서 중세 시대의 그 같은 시점을 근본적으로 뒤엎은 여러 뛰어난 인물들이 등장했다. 16세기 중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그가 살던 시대를 일컬어서 이탈리아어로 리나시멘토(rinascimento), 즉 ‘르네상스’라는 어휘를 처음 조합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 시대의 끝을 고하고 근대의 시작을 고하는 역사적인 이륙의 순간이었다. 바사리는 “디세뇨(disegno)*[각주2]라는 개념은 창조를 향한 의도, 개념화 그리고 그들에 대한 형식적 구성을 담고 있다.”라고 했다. 이처럼 메디치 가문의 비전과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지모 데 메디치는 미술 이론가만이 아니라 화가 겸 건축가였던 바사리를 임명했다. 오늘날로 치자면 개인 미술 컬렉터를 위한 총미술지휘자로 비유할 수 있을까. 유럽 역사 최초로 당대 문화 캠페인 지휘자 바사리는 세계 최초의 공공 미술 갤러리 우피치(Uffizi)의 건축 설계를 했다. 그는 그가 살던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브랜딩’했다. 그리고 당대에 내노라하는 건축가, 화가, 조각가들의 전기와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했다. 바사리는 또 교육의 중요성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유럽 최초로 아카데미아 델라르테 델 디세뇨(Accademia dell’Arte del Disegno)라는 미술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을 길러냈다. 당시 그가 착상했던 예술 아카데미는 중세의 성당 학교와 수도원이 지녔던 닫힌 시스템과는 전격적으로 다른 교육 기관이었다. 당대 최고로 재능 있는 미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과학과 미술, 이론과 실제를 조화된 열린 토론과 정보 전달의 장이었다.
피렌체가 지성사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리더십, 혁신을 향한 의지, 여러 분야 경계를 넘나드는 우수한 정신들의 만남,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에 기초한 경영의 조화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의 잠재력을 글로벌적 규모로 긍정적인 변화를시키려 한다면 바로 그와 똑같은 비전과 역량이 필요하다.

* 각주 1 미술공예협회의 비전과 목표는 다음과 같다. “이 협회는 공예의 모든 분야에 걸친 예술 작품을 장려하기 위하여 설립했다.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서로 유익한 관계를 구축하고 저마다 고유한 디자인을 실행하기를 기대한다. 협회는 장인들이 우수한 디자인이 지닌 존엄성과 가치의 진가를 터득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 대중적으로 만연해 있는 규칙과 형태에 대한 조급함(역자 주: 19세기 유럽에서 장식, 형태 등과 관련하여 역사주의 건축 원칙이 강요했던 여러 규율)과 과잉 장식과 가식적인 창의에 대항한다. 협회는 진지함과 절제 또는 정돈된 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사물의 형태와 유용성 사이의 관계와 사물에 부여된 장식 사이의 조화와 적절함을 배려한다.” - 찰스 엘리엇 노튼(Charles Eliot Norton)

* 각주 2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디세뇨 개념은 이미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에서 기대하는 대부분의 요소와 역량을 담고 있었다. 당대 유럽에서 영향력 있는 화가였던 페데리코 추카로(Federico Zuccaro)는 내부적 디자인과 외부적 디자인을 구분했는데, 전자는 흔히 우리가 오늘날 콘셉트(concept)라고 부르는 내적 착상(inner idea)를 뜻하고 후자는 착상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것(material expression) 즉, 형태(form)를 뜻한다. 같은 때에 또 다른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꽃피우고 있던 베네치아에서는 파올로 피노(Paolo Pino)라는 화가가 디세뇨란 판단력, 작품 본질의 윤곽이 담긴 초기 착상, 아름다운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 실무와 기법을 이행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한 지식, 의미가 담겨 있는 최종 구도를 구성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마리오 갈리아르디

(Mario Gagliardi)마리오 갈리아르디는 디자이너, 비즈니스 전략가, 디자인 이론가이다. 현재 전략 회사인 mg 전략연구소(mgstrategy.com)를 운영하고 있다. 빈 응용미술대학에서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리처드 섀퍼의 지도로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디자인 매니지먼트로 MBA 학위를 받았다. 필립스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처음 일을 시작했으며, 전 세계 수많은 대학 및 디자인 비즈니스 관련 총회에서 강연. 연설. 기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 왕립예술협회의 회원이다. mariogagliardi.com

● 이 글은 마리오 갈리아르디가 덴마크 디자인 계간지 <인폼 라운지 에디션(Inform Lounge Edition)> 2007년 겨울호에 실었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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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