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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한국을 매료시킨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2 토닉,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젊은 감각을 인정받는 스튜디오
토닉(Thonik)은 본래 1993년에 토마스 비데르스호벤(Thomas Widdershoven)과 니키 호니센(Nikki Gonnissen)이 ‘스튜디오 호니센 엔 비데르스호벤(Studio Gonnissen en Widdershoven)’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그후 2000년에 ‘토마스’와 ‘니키’를 합쳐 ‘토닉’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재는 디자이너 9명을 포함해 1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인 2

1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종합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토탈 아이덴티티
2 네덜란드 디자인에 자유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곳 스튜디오 둠바르
3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젊은 감각을 인정받는 스튜디오 토닉
4 세계 처음으로 그래픽 디자인만을 상설 전시하는 박물관 그래픽디자인뮤지엄




암스테르담 예술학교(Amsterdam Hogeschool voor de Kunsten, 이하 AHK)의 아이덴티티 및 각종 포스터 2007. 포스터의 경우엔 원, 팔각형, 별 모양 등이 모여 조형을 이룬다. 이 도형들은 다른 도형들과 조금씩 중첩되곤 하는데, 이는 초록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의 동그라미 위에 검은 동그라미를 겹쳐놓은 AHK의 아이덴티티와도 관련성이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토탈 아이덴티티나 스튜디오 둠바르 등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사실 토닉은 요즘 젊은 네덜란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상하이미술관에서 토닉의 전시회가 열린 바 있다. 지금의 토닉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의 스튜디오 둠바르를 떠올리게 한다. 본래는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나 포스터 등 문화 영역에서 주로 작업을 했지만, 요 몇 년 사이 암스테르담 시의회 아이덴티티나 사회당(Socialist Party, SP) 아이덴티티 디자인 등을 맡으면서 공공 부문으로 자신의 디자인 영역을 확장해나간 점이 그렇다. 또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많은 인원을 거느리며 스튜디오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특히 사회당을 위한 캠페인은 2006년 ‘네덜란드 디자인 상(Dutch Design Prize)’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네덜란드 CI 상(Dutch Corporate Identity Prize)’ ‘판 스페익 공공 상(the van Speijk Public Award)’을 수상했고 ‘로테르담 디자인 어워드(Rotterdam Design Award)’에도 후보작으로 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토닉이 다른 디자이너가 개발한 방법을 차용하곤 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소수 문화계 인사뿐만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도 선호되게끔 다듬고 설득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엘리트적이기보다는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토닉의 전략은 충분히 ‘영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들이 남긴 업적의 중요성 또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토닉은 네덜란드 시각 예술·디자인·건축 협회(Fonds BKVB), 몬드리안스티칭(Mondiaanstichting), 보에이만스 & 뵈닝헌 미술관, 드룩 디자인(Droog Design) 등 여러 클라이언트를 두고 있으며, 설립자인 니키와 토마스는 대학에서 강의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독일 마르타 헤르포트 미술관(Marta Herford Museum) 포스터 2004. 마르타 헤르포트 미술관의 로고타이프는 단순히 세리프가 있는 서체여서, 그 자체로는 강렬한 아이덴티티로 부각되기에 부족하다. 토닉이 내놓은 해결책은 마젠타, 회색, 파란색의 세 가지 색깔로 된 그래픽 패턴과 글씨를 고안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변적인’ 아이덴티티는 여러 내용을 번갈아가며 전시해야 하는 미술관이란 기관의 특성에도 적합하다. 왜냐하면 어떤 내용의 사진이나 그림이건, 또 그 위에 쓰여 있는 문구의 내용이 무엇이건 이 세 가지 색과 고유의 글꼴을 쓰는 것만으로도 대중에게 ‘이 전시는 마르타 헤르포트 미술관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인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발상은 보에이만스 & 뵈닝헌 미술관 아이덴티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닉이 2006년에 리뉴얼한 보에이만스 & 뵈닝헌 미술관 아이덴티티는 얼핏 보기엔 메비스 & 반 되르선이 디자인한 이전 아이덴티티(3월호 132p 참조)와 비슷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메비스 & 반 되르선이 개념적인 측면에 집중해 ‘글꼴’에 무게중심을 두었던 반면, 토닉은 대중과의 소통 기능에 집중해 ‘이미지’란 측면으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두 스튜디오 간의 접근법적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로테르담 센트럴 뮤지움(Centraal Museum) 포스터 1996. 이 경우에는 굵고 현대적인 느낌의 C란 글씨를 네 귀퉁이와 가운데에 배치하는 것이 아이덴티티가 된다. 때때로 C자는 미피처럼 토끼 귀를 달기도 하며 다양하게 변신한다.


1, 2 암스테르담 도시 아이덴티티 2002. 네덜란드는 ‘온갖 로고가 넘실대는 나라’였고 암스테르담 시의회의 수많은 산하 기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2년에 토닉은 에덴 디자인(Eden Design)과 공동으로 제각각이던 암스테르담 시의회 소속 기관들의 아이덴티티와 컬러 시스템을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XXX’라는 로고는 중세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암스테르담의 상징이다. 지금도 암스테르담 시내의 관광 기념품점에선 이 표식이 들어간 머그잔 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토닉은 이 유서 깊은 표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듬고, 그 아래에 각 기관의 식별 심벌을 붙이도록 했다.
3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 이하 Oba) 출입 카드
굵고 명쾌한 느낌의 헬베티카 글꼴과 밝고 경쾌한 느낌의 배색을 보면, 토닉이 지향하는 ‘해피 모더니즘(happy modernism)’이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사회당(Socialist Party, 이하 SP) 아이덴티티 및 각종 홍보 캠페인 2005. 이전부터 사회당의 심벌이었던 토마토 그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뉴얼하면서 꼭지 부분에 별 모양을 은근슬쩍 집어 넣은 것이 눈에 띈다. 별은 과거 공산주의자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미슐랭(Michelin) 가이드>나 호텔 등급 표시에서처럼 ‘품질 보증’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이 캠페인에서 토닉은 단순히 로고만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역할을 맡았다. 로고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용기에 토마토 수프를 담아 나눠주기도 하고, 온라인 홍보 영상도 만들었다. 수신된 메일에 첨부된 주소로 접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삽입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토닉과 함께 한 광고 캠페인을 등에 업고, 사회당은 네덜란드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한 영향력 있는 정당이 되었다.


<흑백(Zwart Wit)> 2009. 생년월일 순으로 전 세계의 유명 지도자 65명을 나열해 흑백으로 인쇄한 책이다.
각 지도자의 모습은 자신의 앞과 뒤에 태어난 두 사람의 얼굴을 작게 조합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뒷면에는 각 지도자가 남긴 말이 쓰여 있다.


Oba 내부의 사인 디자인 2006. 굵고 명쾌한 산세리프 글꼴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암스테르담 시립 아카이브(Gemeentearchief Amseterdam) 아이덴티티와 포스터 벽돌과 돌을 번갈아 쌓아 만든 시립 아카이브의 외관은 장중한 느낌을 주며, 이러한 벽돌과 돌의 교차가 빗살 무늬처럼 보인다. 이에 착안해 빗살 무늬같은 패턴으로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

토마스 비데르스호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THOMAS WIDDERSHOVEN

“우리는 해피 모더니즘을 지향한다”

토닉의 역사와 발전 과정에 대해 소개해달라. 토닉은 15년 전에 시작되었다. 니키는 위트레흐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학교를 졸업했다. 우리는 1993년에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문화 방면의 일을 시작했고, 쉼 없이 일해 3년 뒤인 1996년에 센트럴 뮤지엄 프로젝트를 했다. 초기에는 현대적이고 개념적인 작업을 하다가 그다음에는 좀 더 그래픽에 치중한 작업을 했고, 다시 문화 관련 작업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과 접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갔다.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가 큰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하면 자기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잃기 쉽다. 하지만 토닉의 경우는 커다란 프로젝트도 맡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보다 다 함께 일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점일 것이다. 또 우리는 건축, 예술,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 그들과 협업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가령 이전의 우리 사무실은 MVRDV가 디자인한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주황색 건물이었지만, 5년 후에 연두색으로 색을 바꾸었다. 비록 지금은 이사를 와서 다른 빌딩에 입주해 있지만. 실험적인 건축을 많이 하는 또 다른 건축가인 욘 코르멜링(John Kormeling)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내 생각엔 우리가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는 큰 프로젝트들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행한 몇 개의 큰 프로젝트들은 클라이언트에게 신뢰를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건 디자이너건 대중과 많이 접해야 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대중은 좋은 디자인을 좋아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마저 있다. 또 어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이 지적이어야 하고, 심벌이 풍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심벌과 랭귀지를 사용해 대중과 소통하고 또한 재미를 느끼게끔 디자인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가령 사회당 캠페인을 할 때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사진을 넣을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NU SP’라는 4개의 글자만 사용했다. 심플하고 볼드한 이러한 표현은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재 사회당은 네덜란드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되었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나? 우리는 그래픽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단순히 클라이언트가 처음에 제기한 문제를 넘어 본질적인 요구 사항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또 결과물이 어떤 매체로 노출될 것인가도 중요하다. 같은 형태라도 종이에 인쇄될 때와 입체물로 만들어 세워질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매체에 따라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될 수 있고 다른 디자인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다. 우리는 디자인의 기본형은 누구든 놀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든다. 대신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응용형은 자유분방하고 풍부해질 수 있게끔 디자인한다.

네덜란드 디자인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갈 수 있고,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를 좌지우지하지 않는 힘은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협업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요즘 그래픽 디자인의 트렌드는? 장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러 글꼴을 우스꽝스럽게 조합한다. 어떤 잡지는 20개 이상의 글꼴을 쓰기도 한다. 기존의 모더니즘은 순수성과 기능성에 치우쳐 있었다. 정확한 비례와 미니멀리즘이 모더니즘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추한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엄격한 윤리성을 폐기 처분해버렸고, ‘예술을 위한 예술’처럼 느껴지거나 아이러니를 강조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것은 ‘해피 모더니즘’이다. 이는 모더니즘의 조형적 언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조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단순화된 디자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장식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쓰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우리의 해피 모더니즘은 상당한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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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정영호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