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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패션 직업의 세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당신은 패션 디자이너 이외에 패션과 관련된 직업을 몇 개나 더 열거할 수 있는가? 앞으로 연재하게 될 칼럼에서는 매 시즌 전 세계인의 욕망을 쥐락펴락하는 ‘트렌드’를 창출하는 세계 패션의 메카 뉴욕, 파리, 밀라노 그곳에 존재하는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업종들을 살펴보고, 그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를 이전 칼럼인 ‘패션 광고 & 포토그래퍼’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직종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시작해볼까 한다.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이 패션 디자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도전해볼 수 있는 다양한 직업을 인지하고 꿈을 키우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그 로이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미소니 광고.

누군가 그랬다. 패션 디자이너가 패션의 ‘꽃’이라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열매’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업계에서 갖은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꽃 같은 존재가 패션 디자이너라면, 그 꽃이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숨은 공로자가 바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에. 물론 패션뿐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책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패션계, 그중에서도 최근 의상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만큼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은 패션 광고를 제작, 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패션 디자인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에는 패션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경우도 있으며, 광고 기획 쪽에서 경력을 쌓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양성 기관’이나 ‘크리에이티브학과’ 같은 교육 기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진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적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구찌, 입생로랑, 미소니, 질 샌더, 오스카 드 라 렌타 등 쟁쟁한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을 도맡아 하는 뉴욕 패션 광고 회사인 로이드 앤 코(Lloyd & Co.) 대표 더그 로이드(Doug Lloyd)는 크리에티브 디렉터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직업에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는 게 아니니,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단 쉽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함을 얻을 수도 있겠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어찌어찌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단 되고 난 후가 본격적으로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

(왼쪽) 더그 로이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에스티 로더 바이 톰 포드(Estee Lauder by Tom Ford) 화장품.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독일 패션 브랜드 질 샌더를 부활시켰던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본래 질 샌더는 미니멀한 패션으로 유명했지만, 라프 시몬스와 만나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따라서 더그 로이드는 질 샌더의 광고 캠페인을 위해선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라프 시몬스의 성향과 기존 질 샌더의 절제된 라인과 컬러 사이의 접점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라프 시몬스가 다재다능한 디자이너임은 분명하지만, 새롭게 론칭하는 광고 캠페인도 라프 시몬스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느낌으로만 제작하면 질 샌더라는 브랜드가 지닌 기존의 느낌과 어긋나게 된다. 그렇다고 미니멀한 느낌에만 치우치면, 이번에는 이전의 질 샌더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더그 로이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것은 위험한 줄타기 같았죠. 잘하면 아슬아슬 줄 위를 건너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테지만, 잘못하면 그대로 떨어지는 일밖에 없었어요”라며 아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후 그의 작업은 줄타기에 비유하면 ‘줄 밑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 위에서 재주 넘기’를 했다고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었다. 대개 광고 에이전시는 하나의 회사와 길어야 2년 정도 캠페인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그 로이드는 지금까지 5년 이상 질 샌더의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한편 배런 & 배런(Baron & Baron)의 대표 패비언 배런(Fabien Baron)은 프랑스어 발음이 섞인 특유의 말투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재능과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험, 그것도 다양하고 수많은 경험이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들죠”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지 와 바니스 뉴욕(Barney New York) 백화점을 거쳐, <보그> 이탈리아판과 <하퍼스 바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경험을 쌓았다. 결국 패비언 배런 또한 ‘다양한 경험을 하되, 목표는 분명하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경력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1 패비언 배런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하퍼스 바자>. 
2 패비언 배런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보그> 파리판. 
3 마티아스 브리엔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구찌 광고.


지금은 포토그래퍼로서의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마티아스 브리엔스도 한때 잘나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그에게 물었다. 다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느냐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야말로 매력적인 직업이죠. 패션 광고에선 마치 대통령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휘해야 하듯,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시 많은 사람을 통솔해야 해요. 하지만 전 이제는 혼자 노는 게 좋아졌거든요.” 이렇듯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다양한 사람을 지휘하는 ‘수장’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창조성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단력과 판단력, 그리고 팀원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야말로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이제는 때때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일을 진행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며, 때로는 잘라내고 때로는 덧붙이는 작업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바로 이것이 패비언 배런이 말한 다양하고 수많은 경험이 필요한 이유이자, 마티아스 브리엔스가 말한 부담스러운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절대로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에 더욱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혹시나 독자 중에도 한국을 벗어나 유행의 최전선인 뉴욕이나 파리로 진출하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은 언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 그 자체에 능수능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 사람도 혀를 내두를 만큼 문화 전반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간다면, 뉴욕에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꿈만 같은 이야기는 아닐 테다. 


1 더그 로이드. 
2 패비언 배런. 
3 마티아스 브리엔스.


조 벡 Joel Kimbeck
글쓴이 조 벡은 패비언 배런의 광고 기획사 ‘배런&배런’에서 미디어 플래너로 캘빈 클라인, 버버리, 프라다 등 다수의 광고 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마크 도프만 컴퍼니(Mark Dorfman Co.)에서 톰 포드, 라프 시몬스, 시거슨 모리슨 등의 광고 기획에 관여하고 있다. 패션 산업에는 패션 디자이너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며, ‘조 벡의 패션 직업’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패션 관련 직업의 세계를 소개하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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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정영호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