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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엮걸이


1990년대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할 때 ‘한국적’이란 모호한 말을 설명할 적절한 이미지로 달걀 꾸러미를 얘기하곤 했다. 수수하고 생태학적인 데다 오래된 포장 문화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으나 이미 일본 디자인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진 후였다. 어느 나라가 먼저랄 것 없는, 농경문화라면 자연스레 탄생할 법한 문제 해결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이어령은 <우리문화박물지>에서 한국의 달걀 꾸러미가 일본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짚으로 달걀 전체를 둘러싼 일본의 달걀 꾸러미와 달리 한국은 반만 감싸 깨지기 쉽다는 메시지와 함께 달걀의 신선도나 크기에 대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달걀 꾸러미를 ‘형태와 구조를 노출시킨 아름다움, 깨지지 않게 내용물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기능성, 그리고 포장 내용을 남에게 알려주는 정보성, 이 세 가지 특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포장 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모형’으로 평가했다. 시간이 흘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짚은 더 이상 흔한 재료가 아니다. 짚으로 무얼 만들 능력도, 그럴 만한 여유도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달걀은 기계가 된 수많은 닭의 몸에서 매일 쏟아져 나와 종이 케이스에 알알이 담겨 판매된다. 그래서 한때 달걀을 짚으로 엮은 자랑스러운 선조의 지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엮걸이는 여전히 굴비, 양미리 같은 생선을 포장하는 특별한 매듭법으로 남아 있다. 샛노란 비닐 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나 전통 두름 또는 엮걸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짚의 쓰임새를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요즘도 가을이면 법성포 사람들은 엮걸이에 적합한 짚을 미리 구해둔다. 재료뿐 아니라 엮는 방법 자체만으로 일종의 풍토적 디자인이다. 생산 방식은 완전히 가내수공업이지만 방에서 인형 눈 붙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엮걸이는 일 년에 고작 겨울철 두 달만 할 수 있으니 한 철 장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랜 경력자들로 구성된 엮걸이 팀 멤버들은 평소 요가를 하며 몸 관리를 할 만큼 고난도 기술이자 강도 높은 노동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다. 물 세척과 건조 과정에서 풀리지 않게 단단히 매듭짓는다.

게다가 굴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적절한 힘으로 조여서 엮어야 한다. 여성으로 구성된 작업 팀은 굴비 작업장을 순회하며 실력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재료와 기술력, 시스템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진공포장 같은 세련된 방법이 즐비하지만 굴비를 포장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엮걸이를 당할 것이 없다. 허공에 매달아 바닷바람에 말리려면 하나씩 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각 요소로 치자면 그저 누런 선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 없는 굴비를 상상하기 어렵다. 더구나 염장한 뒤부터 최종 소비자의 손에 닿기까지 풀리지 않는 엮걸이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포장법이다. 이어령의 논리로 말하자면 절반이 아니라 옆구리 한 줄만 가린 것이니 아름다움과 기능성, 정보성의 ‘세 가지 특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포장 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모형’으로 꼽은 달걀 꾸러미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엮걸이는 깍쟁이 같은 의도도 숨어 있다. 스무 마리를 엮어놓은 이상 덤으로 한두 마리를 더 요구하기 어렵다. 원 플러스 원이 아닌 다음에야 한 두름을 사는 사람이 뭘 더 달라고 할 수 없다. 자린고비의 굴비까지 생각해보면 엮걸이는 경제성까지 갖췄다고 해야겠다.

*엮걸이에 대한 주요 내용은 오랫동안 법성포를 비롯한 어촌 지역을 연구해온 편성철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의 자문을 받았다. 귀한 사진 자료까지 제공해준 편 연구원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김상규
퍼시스의 디자이너, 디자인 미술관 큐레이터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교수다. 최근 <어바웃 디자인>을 출간했다. 디자인하면서 글도 쓰고 디자인 전시도 기획하는 한국에 흔치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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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상규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