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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여성 디자이너] 디자인 역사 속의 여성 디자이너 6인
20세기 디자인 역사책을 보면 90% 이상 남성 디자이너만 존재한다. 기록된 여성 디자이너는 대다수 남성 디자이너의 아내 혹은 제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세계 디자인사의 변방에 머무는 주변인이었을까? 누군가의 아내 혹은 제자였지만 때로는 남성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영향력을 발휘했던, 꼭 기억해두어야만 하는 여성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20세기 이들의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21세기 홀로서기에 성공한 여성 디자이너가 가능했을 것이다.

1878- 1976 아방가드르한 독단자, 아일린 그레이


20세기 초에 여성으로 회화, 디자인, 건축을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단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예외다. 아일랜드 태생의 그레이는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태피스트리와 칠기 작업부터 가구 디자인, 건축까지 폭넓은 활동을 보였다. 그레이의 첫 번째 주택 건축물 ‘E.1027’은 그녀의 역량이 집결된 결과물이다. 1929년에 완공된 이 주택에 필요한 러그, 의자, 테이블, 수납장을 모두 디자인했다. 이 주택 자체가 모더니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됐다. 르코르뷔지에가 이 집의 실내에 제멋대로 벽화를 그리는 등 도발적인 행동을 한 사건은 여성 건축에 대한 공격으로 회자되곤 했다.(그는 1965년 이 집 앞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사망했다.) 2009년 소더비 경매에서 아르데코풍의 가죽 의자 ‘세르펜트 암체어(Serpent Armchair)’가 280만 달러에 판매되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1885- 1947 
바르셀로나 의자의 숨은 공로자, 릴리 라이히

한동안 릴리 라이히(Lilly Reich)는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라는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1920년대 후반에 반데어로에와 손잡고 일하기 전까지 라이히는 건축가이자 의류, 가구, 전시 디자이너로서 이미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1920년에 독일 공작연맹의 첫 여성 이사회 임원이 되었으며 바우하우스의 실내 설계 주임 교수를 맡았다. 1929년 반데어로에와 함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준비하면서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의자는 20세기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바우하우스 폐교 이후 반데어로에가 형의 여권을 빌려 비밀리에 독일을 탈출하면서 이들의 협력 관계는 끝났다. 한편 라이히는 히틀러 집권 내내 독일에 남았다. 망명의 기회가 있었지만 끝까지 나치 정권에서 디자인을 한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9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릴리 라이히>전은 20세기 전반의 가장 중요한 전시와 설치에서 그녀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었다.


1893- 1983 
직물이 아닌 금속을 선택한 여성, 마리안 브란트


현재 생산 중인 바우하우스 금속공방의 대표적인 디자인 중에서 마리안 브란트(Marianne Brandt) 의 디자인이 단연 압권이다. 브란트는 여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직물이 아닌 남성의 영역인 금속 가공 분야에서 그녀가 인정받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맡겼는지 털어놓은 바 있다. 브란트는 1923년 바우하우스에 입학해 금속 공방의 책임 교수로 갓 부임한 나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의 눈에 띄었고, 그가 바우하우스를 떠난 뒤 금속 공방을 맡기도 했다. 스티븐 베일리(Stephen Bayley)는 “브란트의 작업은 모두 공예품이고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자질도 부족했지만, 그녀가 만든 금속 제품은 기하학적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 미학을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대량 생산에 적합한 제품 디자인을 했고, 그중에서 칸뎀(Kandem) 스탠드가 오늘날 탁상용 조명의 효시가 된 사실을 생각하면 베일리의 평가는 인색해 보인다.


1903- 1999 
1세대 여성 건축가, 샬로트 페리앙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한 가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다. 1925년 국제장식미술박람회에 목재 가구를 출품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르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이후 강철관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세즈 라운지(Chaise Lounge)’,‘ 그랑 콩포트(Grand Confort)’ 같은 걸작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37년까지 르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실내 디자인과 가구를 책임졌고, 그 후에는 임대주택 단지 유니테 다비타숑(Unite d’Habitation)의 부엌을 비롯한 뛰어난 프로젝트를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초청을 받아 활동하기도 했는데, 야나기 소리가 당시에 일본 사무소 조수로 일한 적이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협력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다.


1912- 1988 
전방위로 활동한 여성 디자이너, 레이 임스


캘리포니아 출신의 레이 임스(Ray Eames)는 1933년 뉴욕으로 이주해 미술 학교를 다녔다. 한때 화가를 꿈꾸던 레이는 새로운 창작 세계를 찾아 크랜브룩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이때 찰스 임스(Charles Eames)를 만났고, 뉴욕현대미술관의 유기적 형태 가구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건축을 전공한 찰스와 영화, 과학, 수학에 박식한 레이가 서로 역할 분담을 하면서 DCW, LCW, 알루미늄 의자 시리즈 같은 걸작을 만들어냈다. <아트 & 아키텍처Art & Architecture>지 편집, <파워 오브 텐Power of Ten> 같은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늘 ‘찰스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당당한 파트너로서 전방위적인 역량을 발휘한 임스는 훗날 그림을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유명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한 번도 그림을 그만둔 적이 없다. 단지 팔레트만 바꿨을 뿐이다.”


1948- 
펜타그램 최초의 여성 파트너, 폴라 셰어


‘윈도 8’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폴라 셰어(Paula Scher)의 디자인을 만난 것이다. 윈도8의 아이덴티티를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가 바로 그녀다. 강렬한 그래픽 디자인을 구사해온 폴라 셰어는 1972년에 CBS 레코드에 입사한 이래 광고와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독립한 뒤에는 러시아 구성주의에 기반을 둔 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1년 셰어는 여성 최초로 펜타그램(Pentagram)의 파트너가 되었고, 퍼블릭시어터의 디자인을 맡으면서 ‘소음을 불러내라, 펑크를 불러내라(Bring in ‘da Noise, Bring in ‘da Funk)’ 포스터 같은 영향력 있는 결과물을 남겼다. 이런 놀라운 경력에도 여성 디자이너로 분류되기를 거부하고, 이를 반영하듯 거침없는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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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상규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