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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브랜드로 진화하는 재래시장
이랑주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은 재래시장 상인을 위해 일하는 디자이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래시장에 뛰어든 그는 자신을 ‘상품 가치 연출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지난 7년 동안 전통 시장과 지하 상가, 노점상을 누비며 앞만 보고 달리던 그가 돌연 전 세계 유명 전통 시장을 돌아보겠다며 떠났다. 1년간의 탐방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성공한 상인들의 장사 비법과 철학을 소개하며 자신의 디자인 내공도 다졌다. 40여 개국 약 150개의 전통 시장을 돌아보고 온 이랑주 대표에게 전통 시장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1년간 40여 개국 약 150개의 전통 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백화점에서 VMD로 일하다 2005년부터 전통 시장 전문 VMD로 활동을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전통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나를 비롯해 시장 기획 전문가, 상인들 모두 열정을 쏟았지만 안 되는 걸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 시장의 미래는 없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국내와 아시아의 유명 재래시장의 대부분을 보고 나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시장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해져 2012년 3월 1년 간의 시장 여행을 시작했다.

세계 전통 시장을 둘러보고 국내와 비교해보니 어떤 점이 가장 비교되던가?

세계 전통 시장 탐방에 나설 때만 해도 나의 관심은 외형적인 디자인이나 마케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국내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보면 아케이드, 바닥 공사, 고객 쉼터, 홍보 등 겉모습을 꾸미는 데 집중했고 나 역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여행 7개월쯤 접어들자 외형이 아닌 내면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시장의 본질이다. 시장의 본질은 제품이다. 우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잊은 채 상품 포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내가 작업해 매출을 올렸다는 상점도 돌이켜보니 그 가게의 제품 품질이 좋았다. 본질이 충실한 가게이니 조금만 정리해도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세계 전통 시장 탐방기를 담은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출간했다. 1년 만에 책이 나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세계 전통 시장에서 보고 배운 것을 국내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답을 찾다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1년 동안 국내 전통 시장을 돌아보며 내용을 좀 더 숙성시킨 뒤 해외와 국내 사례를 비교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이러한 오랜 고민 끝에 펜을 드니 350쪽 되는 분량의 책을 한 달 만에 마쳤다.

세계 유명 전통 시장의 장점 중 국내에 적용할 만한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

시장의 본질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너무 바쁘고 빠르게만 살았고 형태를 바꾸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러한 국민성은 전통 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많은 것이 실패했다. 앞으로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은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산 고사리는 3000원이고 국산은 1만 원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핏 보고 저렴한 중국산을 산다. 소비자가 원하니 상인들은 중국산을 시장에 더 갖다 놓을 수밖에 없다. 즉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정직한 제품을 제값 주고 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 뮌헨 비크투알리엔 마르크트(Viktualien Markt)는 이익보다 전통을 남기는 시장이다. 50년 동안 올리브를 판매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게가 비었다. 하지만 자리가 비더라도 아무나 받지 않는다. 오직 올리브 가게만 들어올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20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익을 남기기보다 문화와 전통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시장이다.

사람들이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재래시장 물건을 믿고구입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산물을 예로 들면 농부의 손을 거쳐 시장까지 도착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기획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면 국내산 농산품이 중국산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값을 지불할 것이다. 얼마 전 채널 it에서 방영하는 <빅데이터, 세상을 바꾸다>에 패널로 참가해 침체된 전통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빅데이터 분석 결과 다섯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첫 번째 문제로 지적된 것이 원산지 표기가 안 된 믿을 수 없는 먹거리였다. 하지만 정작 시장 관계자들은 낙후된 시설, 지저분한 주변 환경 때문에 시장이 침체됐다고 생각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길모어 파머스 마켓(Gilmore Farmers Market)은 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싶으면 20장이 넘는 생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깐깐한 관리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8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케이드나 바닥 공사를 할 예산으로 시장 안에 품질 관리 연구소를 만들면 좋겠다.

1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샘터, 2014)은 1년간 세계 전통 시장을 탐방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미국, 유럽 등지의 유명 전통 시장이 살아남은 비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2 <마음을 팝니다>(MiD, 2013)는 성공한 상인들의 장사 철학과 자신의 대표 프로젝트를 소개한 책이다.

시장 품질 관리 연구소를 만들면 어떠한 효과가 있을까?

아마 처음엔 많은 시장 상인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국 시장을 돌아본 결과 재래시장에도 백화점 못지않게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다. 그런 상인들은 시장 품질 관리 연구소가 생기면 자신감이 더 생길 것이다. 이들에게 시장 품질 관리 연구소의 인증 마크를 달아주면 소비자는 믿고 구입할 수 있고 옆집도 덩달아 제품 품질 관리에 신경 쓸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시장 물건이 백화점 물건보다 더 좋다는 인식도 생겨날 것이다. 실제로 길모어 파머스 마켓은 이러한 품질 관리 덕분에 주변 마트 상품보다 20% 더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길모어 파머스 마켓 사례에서 사람들이 마트보다 재래시장의 제품을 믿고 선호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사람들이 도시 농부, 건강한 먹거리 등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뭘까? 바로 자신의 몸, 건강을 생각하면서부터다. 미국에는 크고 작은 재래시장이 매년 320개씩 증가한다. 하지만 국내 재래시장은 매년 15%씩 감소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재래시장은 농부가 재배한 농산품을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기 때문에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재래시장은 어떠한가? 신뢰를 잃었다. 그 신뢰를 회복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재래시장 활성화에 디자이너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올해 이일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이 취임하며 내건 모토가 ‘맞춤형 디자인 시장’이다. 디자인 경영을 시장에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다. 지금껏 재래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끓지도 않은 곰탕 위에 고명을 얹은 꼴이었다. 우선 재래시장의 제품 품질을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시장마다 디자인팀을 꾸려주면 좋겠다. 포장 전문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VMD, 의상 디자이너 등을 모아 TF팀을 만들면 어떨까? 시장에는 POP, 현수막, 광고물 등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한 제작물이 많다. 디자이너가 이를 해결해주면 시장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재래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나?

사람들이 믿고 먹고 즐겨 찾는 시장이 되길 바란다. 상투적인 얘기일 테지만 이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게 없다. 본질에 충실한 제품과 디자인이 결합된 시장을 상상해보라. 상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디자인은단순해질 것이다. 요란스러웠던 것이 가라앉고 중구난방식 간판과 색상도 정비될 것이다.

최근 진행한 시장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난 2월 한국VMD협동조합을 결성하고 ‘VMD 희망 트럭’과 ‘나누는 전통 시장 사람들(일명
나전사)’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 중이다. 현대카드와 강원도청이 함께한 봉평장 프로젝트에 VMD 디자이너로 참여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5개 회사를 하나로 뭉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VMD 희망트럭은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버린 진열대와 집기를 청년 창업가들과 함께 리디자인하는 프로젝트다. 단순히 유행이 지났다고 버린 것을 재활용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한다. 나전사 프로젝트는 예를 들어 콩나물 가게에서 콩나물 10봉지가 팔렸다면 한 봉지를 협동조합에 기증하는 형식이다. 콩나물 한 봉지라고 하면 별것 없어 보이지만 두부 가게, 생선 가게 등이 모여 이들의 제품을 하나로 모으면 맛있고 알찬 국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완성된다. 이것을 모아 요리사에게 보내고 도시락을 만들어 독거노인이나 보육원 아이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Profile
1972년생. 백화점 VMD로 경력을 쌓고 2005년부터 재래시장 상인을 위한 ‘소상공인 맞춤 VMD’로 활동했다. 2012년 1년간 전 세계 전통 시장과 소상공인 점포를 둘러보고 돌아와 오랫동안 사랑받는 시장의 비결과 장사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 한국VMD협동조합을 결성하고 ‘VMD 희망 트럭’과 ‘나누는 전통 시장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마음을 팝니다>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이 있다. www.vmd119.com


역사를 잇는 전통 시장에서 미래를 발견하다
흔히 전통 시장은 낙후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일본이나 유럽의 전통 시장을 살펴보면 그곳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40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전통 시장을 통해 우리 전통 시장의 현주소를 되짚어본다.

500년 역사의 전통 시장에는 도시형 장인이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시장

폴란드 크라쿠프 중앙광장에 위치한 중앙시장(Rynek Market)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 들어선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1500년대 고딕 양식으로 지은 벽돌 건물이 1555년 화재로 전소되고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마지막 재건은 1875~1879년에 이루어졌고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문을 열게 되면서 2층에는 조각과 회화작품을, 1층에는 폴란드 전통 제품과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잡화점이 들어섰다.

건축 양식을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지만 중앙시장이 500년 넘게 이어올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건물 옆 광장에 펼쳐진 50~60개 노점 형태의 매장이 모여 만든 광장형 시장은 서로 다른 형태의 점포와 간판, 집기, 제품이 어우러지며 진풍경을 이룬다. 또한 오직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도시형 장인이 만든 물건이 매력을 더한다. 50년 경력의 백발 할머니가 뜨개질해 만든 레이스, 현장에서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만드는 공예가, 직접 키운 돼지로 만든 바비큐와 집에서 만든 치즈를 비롯해 젊은 상인들의 재치 있는 장사 솜씨와 독특한 상품이 볼거리다. 건물 안에서는 기성 제품을 구할 수 있고 광장에서는 도시형 장인이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은 중앙시장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8년간의 단장을 마치고 다시 태어났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

1848년 바르셀로나에 문을 연 산타 카테리나 시장(Mercat de Santa Caterina). 재정 위기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지만 시의회에서 재개발을 결정하고 1997년 유명 스페인 건축가 엔리크 미라예스(Enric Miralles), 건축 사무실 EMBT에 리모델링을 의뢰한다. 공사 중 지하에서 로마 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갑자기 시장 한쪽에 뮤지엄을 설립하는 상황과 미라예스의 사망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8년이 지난 2005년에 완공되었다. 5500㎡의 물결치는 지붕,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에서 따온 67가지 컬러에 32만 5000개의 타일을 사용했다는 정보만으로도 시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시장 시스템에도 변화를 주었다. 시장 내에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해 100여 개의 상점 중 33곳에서는 이메일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신선한 식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래시장 방문의 묘미이지만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슈퍼마켓과 경쟁하고 온라인 쇼핑이 편리한 젊은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외관으로 재탄생한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전통과 현대 건축이 절충되어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예술 작품을 들여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랜드마크로도 손색없는 이곳은 장을 보기 위해 서뿐만 아니라 건축물을 살피거나 뮤지엄에 방문하러 오는 등 다양한 목적의 방문객들로 늘 붐빈다.


쿡북 & 정기 간행물로 런더너의 건강을 책임진다
버로 마켓

버로 마켓(Borough Market)은 1267년부터 시작된 영국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지하철 런던 브리 지역 고가 아래 펼쳐진 수백 개의 점포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식재료로 가득하다. 특히 마켓 중심부에서 파는 즉석 음식은 맛깔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행인의 발을 붙잡는다. 평일 점심시간에는 근처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정장 차림의 여러 무리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신선하다. 좋은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제이미 올리버, 마크 힉스 같은 영국 스타 셰프들이 종종 찾는다.

버로 마켓이 7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생할 수 있는 비결은 단순히 그 규모나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마켓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이들의 체계적 시스템은 혀를 내두를 정도. 버로 마켓 운영자들은 시장이 단순한 장터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국인들의 건강과 식습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한다. 각 상인들은 소비자에게 재료 보관법과 손질 및 조리법을 시연하며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재철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을 담은 <버로 마켓 쿡북 Borough Market Cookbook>, 버로 마켓 상인들의 인터뷰와 식품업계 최신 뉴스를 다룬 시장 신문 <마켓 라이프Market Life>를 발행해 런더너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삼색 지붕과 절임 통이 아이콘이다
니시키 시장

400년 역사를 이어오며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키시 시장(錦市場)은 지역민들의 자랑이자 지역 브랜드 그 자체다. 교토 시내 중심부인 시조 가와라마치에 폭 3.5m~5.5m 정도 되는 골목길을 따라 130여 개의 상점이 일직선으로 들어서 있다. 이 가게들은 대개 마치야(町家)라고 불리는 일본 전통건축 양식으로 지었데, 건물의 오랜 역사만큼 100년 또는 200년 이상 대를 이어온 가게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1993년 교토 시는 ‘재래시장의 현대적 재단장 계획’에 따라 니시키 시장의 간판을 정비하고 빨강, 노랑, 초록색을 교차시킨 지붕을 얹었다.

이는 식품점이 대부분인 시장의 특성을 살려 식품이 신선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계획한 것으로 지금은 지붕이 니시키 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 판매하는 코즈케모노(교토 야채 절임)는 삼색 아케이드와 함께 이곳의 대표 명물이다. 큼직한 나무통에 야채와 된장을 절여 파는데, 100년 이상된 가게들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무통을 물려받고 사용하며 만들어진 풍경이다. 이러한 전통적 풍경이 주는 매력 덕분에 백화점 못지않은 높은 가격을 자랑하며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쇠락했던 재래시장이 랜드마크로 자리 잡다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건축가의 주도로 재래시장 활성화에 성공한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장 보러 오는 지역민뿐만 아니라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시장은 언제나 활기차다. 지역의 특색과 개성을 반영한 건축물로 랜드마크가 된 재래시장을 소개한다.

지역 주변 건물과 다른 매력으로 호감을 얻은
베식타스 피시 마켓
시장 벽면을 모두 개방해 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어 유입 인구도 증가했다. 

이스탄불의 번화가 중 하나인 베식타스에는 10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문을 여는 수산 시장 ‘베식타스 피시 마켓(Besiktas balik pazar)’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특별한 관리 없이 운영되다 보니 위생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고 터키 보건 당국의 벌금도 받기 시작했다. 시장 외곽 지역에 들어선 쇼핑센터와 서비스 경쟁에도 밀려 결국 시장 상점의 매출이 점차 떨어졌다. 2006년 시장 상인들은 베식타스 지방자치단체에 시장 방문객을 늘릴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시장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베식타스 피시 마켓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한 GAD는 디자인 기획 이전에 상인과의 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인들의 요구를 디자인에 반영해 내부 구조는 최대한 유지한 채 외관만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의 부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해 외관을 디자인하니 조개 모양의 삼각형 지붕이 탄생했다. 벽면은 세우지 않고 3면의 모든 통로를 개방해 어느 방향에서든 빛이 들어오고 통풍이 잘되게 만들었다. 개방형 구조 덕분에 시장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면서 유입 인구도 증가했다. 내부 공간은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한 진열대로 구성했다. 이는 보건 당국의 위생 방침에 따라 결정한 것인데, 덕분에 현대적 미감으로 마감되었다.

콘크리트와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재료로 완성한 베식타스 피시 마켓은 주변 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논란을 몰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과 구조로 생긴 이질적 매력 때문에 이스탄불 전역에서 호기심을 갖고 찾는 사람들로 방문객 수가 더 증가했다. 천장에서 빨간 줄을 타고 내려오는 조명은 이스탄불 전역의 수산 시장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전구를 사용한 것으로 상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사물을 곳곳에 남겨 두는 등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썼다. 베식타스 피시 마켓 리뉴얼 프로젝트의 성공 뒤에는 이같이 상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건축가의 노력이 있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마감한 진열대. 높낮이를 조절하고 물결이 흐르는 듯한 효과를 준 진열대는 생선의 신선함을 강조해준다.

Interview
고칸 아브시오글루(Gokhan Avcioglu) GAD 대표
“디자이너는 지역민과의 소통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건축 프로젝트가 시장 발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영향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웃음) 디자인이 시장에 줄 수 있는 영향은 희박하다. 그보다 시장 상인과 지역민의 관계가 잘 연결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더 중요하다. 

베식타스 지방자치단체가 당신에게 주문한 건 무엇인가?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시장을 위생적인 환경으로 개선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쇼핑 장소로 변화시켜달라고 했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모든 벽면을 개방해 상인들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전통 시장에 자주 방문하는 편인가? 평소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면?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생선 가격은 주변 어느 가게를 가나 비슷하다. 그럼에도 한 상점만 가게 된다면 이는 물건을 보여주는 방식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순수하게 경쟁하는 시장 분위기가 좋다.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지역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공공시설 프로젝트의 경우 디자이너는 그 시설을 사용할 지역민과의 소통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디자인에 반영해야 한다. 베식타스 피시마켓은 비영리 프로젝트였고, 이를 통해 얻은 경험과 프로세스는 우리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무엇에 관심을 두면 좋을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시장 활성화를 실행하는 핵심적 존재다. 이스탄불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 진행하는데, 프로젝트와 관계된 여러 사람들과 워크숍을 자주 가지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8년 만에 스페인 세비야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태어난
엔카르나시온 시장
 ‘세비야의 버섯’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엔카르나시온 시장과 광장.

스페인 세비야의 구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엔카르나시온 시장(Mercado de la Encarnacion)은 19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역의 전통을 지키며 생활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1973년 낡은 건물이 철거되며 시장은 인근 가건물로 옮겨졌다. 이후 지역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고 차츰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장 주변 광장은 주차장으로만 이용될 뿐 버려진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에카르나시온 시장을 의지하며 살아온 상인들은 세비야 시에 새로운 시장을 건설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1990년 지하 주차장을 포함한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로마 시대 유적이 발견되며 공사가 중단됐다.

세비야 시는 유적 보존을 위해 박물관이 있는 시장 건축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2004년 공모전을 통해 독일 건축 사무소 J. 마이어 H.(J. MAYER H. und Partner, Architekten)의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이 우승작으로 선정됐다. 마치 거대한 와플을 얹어 놓은 듯한 천장의 목조 구조는 성당의 아치형 지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데, 폴리우레탄 코팅을 한 나무 판자를 격자로 엮어 만든 목조 구조물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라고 한다. 세비야의 여름은 무척 덥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그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큰 지붕을 만드는 것에 디자인 주안점을 두었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1층에 시장을 두었으며 지하에는 로마 유적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버섯 모양을 닮은 지붕 구조물 안에는 레스토랑, 바, 관람 데크가 있으며 지붕에는 스카이 워크를 설치해 시내 전망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다.

2011년 4월 메트로폴 파라솔이 완공되자 엔카르나시온 시장 상인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고 지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명소로 떠올라 오랜 시간 동안 잃어버렸던 과거의 분주함을 되찾았다. 시장 주변 지역이 활기를 되찾으며 비어 있던 인근 상점들도 새로운 주인을 맞았고 기존에 있던 매장들은 200% 이상의 매출성장을 기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근 ‘세비야의 버섯(Setas de Sevilla)’이라는 별칭을 얻은 엔카르나시온 시장은 건축가의 의도대로 스포츠 경기나 시민들의 대형 집회 등이 있을 때면 무언의 약속처럼 누구나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모임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1 세비야 시 전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 워크.
2 와플 모양의 목조 구조물과 버섯을 닮은 눈에 띄는 형태 덕분에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엔카르나시온 시장.

Interview
안드레 산터 (Andre Santer) J.마이어 H. 건축 사무소 파트너
“목조 구조물을 완성하는 게 가장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했기 때문에 우승작으로 선정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비야 시에서는 시장과 로마 유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세비야의 랜드마크가 되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광장과 그늘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시장 상인들이 지역민들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1층에 시장을 두었으며 그늘을 만드는 지붕 구조물 안에 레스토랑과 바, 전망 데크를, 지붕 위에는 세비야 지역을 전망할 수 있는 스카이 워크를 설치한 게 특징이다. 목조 구조물을 완성하는 것이 프로젝트 과정 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었는데 독일 협력 업체와 2년 동안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Interview
안토니오 카스타뇨 윤카(Antonio Castano Junca) 세비야 시 관광 위원회 위원장
“엔카르나시온 시장은 시장과 문화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엔카르나시온 시장은 19세기부터 세비야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지만 주변의 낡은 건물을 헐고 생긴 빈 공간을 주차장으로 이용하면서 지역이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2004년 세비야 시에서 대대적인 재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시장과 문화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탄생되어 만족스럽다. 이번 프로젝트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우승작으로 진행한 것인데 메트로폴 파라솔은 65개의 공모 참여작 중 가장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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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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