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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일상 속 작은 건축이 현명하다 [주목받는 디자이너 11인] 와이즈 건축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급변하는 시대. 3D 프린팅, 사물 인터넷, 웨어러블 등 새로운 기술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개념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개념을 익혀야 하는 요즘 융합, 다학제, 디자인 혁신과 같은 단어는 시대를 규정짓는 중요한 키워드임에도 피곤하게까지 느껴진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에 수많은 생각의 결을 나름의 철학으로 정리해 묵묵히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들이 그래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청량하고 반갑다. 그렇다고 이들이 세상에 무관심한 채 은둔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새 기술에 민감한 뉴미디어와 제품,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부터 가구, 그래픽 디자인까지, 월간 <디자인>이 올해 주목하는 11명의 디자이너들은 오늘도 세상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귀 기울이며 그들만의 디자인 세계를 가다듬고 있다.

왼쪽부터 전숙희, 장영철

부부이자 공동 대표인 장영철(1970년생), 전숙희(1975년생) 두 사람은 승효상 건축가의 이로재 사무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장영철 소장은 홍익대를 나와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전숙희 소장은 이화여대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 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원 졸업 후 뉴욕의 건축 회사에서 실무를 쌓고 돌아와 2008년 6월 서울 금호동에 와이츠 건축을 열었다. www.wisearchitecture.com


언제부턴가 우리는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수익성 좋은 아파트’보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이와 맛있는 저녁 한 끼먹을 수 있는 공간’을 논하기 시작했다. 성장과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이 삶의 질이라는 가치에 눈을 돌릴 즈음, 건축도 작아지기 시작했다. 일상과 밀접한 건축을 추구하는 와이즈 건축은 이 지점에서 스몰니스(smallness)를 말한다. “사람들은 건축을 다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2011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장영철・전숙희 소장은 IMF 금융 위기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된 시절 커리어를 시작한 세대다. 냉혹한 현실에 맷집을 키워가며 얻은 교훈은 손으로 직접 구현할 수 있는 일상 속 건축의 중요성, 작은 것에 강해야 큰 것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전시 기획에서 설치 작업까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시대에의 요구에 반응해 단단하고 야무진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1 북촌 어둠 속의 대화, 2014
<어둠 속의 대화>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의존해 공간을 느끼는 체험형 전시다. 3층 건물 전면을 가득 메운 검은색 발로 전시 주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김용관
2 ABC 사옥, 2012
선정릉 근처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 사옥이다. 번쩍거리는 고층 빌딩은 난무하는데 막상 선정릉의 존재감을 알아봐주는 건축은 없었다. 대지를 16m 높이 위로 들어 올려 선정릉을 바라볼 옥상을 먼저 만들고 아랫부분을 만들어나갔다. ⓒ 진효숙
3 이상의 집 드로잉 전시회 @ 박스 모바일 갤러리, 2010 
‘이상의 집’ 프로젝트와 연계된 전시 작품 ‘박스 모바일 갤러리’는 이동과 보관이 편리해 전시물과 함께 접어서 새로운 장소에 또 다시 간단히 펼쳐 전시를 이어갈 수 있었다.
4 부산 ‘도시 공원 예술로’ 공공 예술 프로젝트 : 홍티둔벙, 2014
부산시 사하구 장림공단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7개의 야외 플랫폼(둔벙)에 작가들의 작품을 설치해 두렁길을 걸어 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노경 

시작점은 ‘이상의 집’ 공간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시인 이상이 살았던 통인동 154-10번지를 문화 공간으로 개조한 작업이었는데 서촌 주민들은 예상외로 냉담했다. 조용한 동네에 젊은 엘리트 건축가들의 벌려놓은 작업에 괴리감을 느낀 것일까. 이에 와이즈 건축은 하얀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박스 모바일 갤러리’로 다가갔다.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드로잉 70여점을 전시한 이 박스는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했고 어느새 주민들의 마음을 녹였다. 공공성이 가미된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맛본 후 이같이 일상을 뒤집는 비범함을 생활 속 건축에서 구현하고자 고민했다. 2014년 초 완공한 부산 사하구 공단 지역의 공원 조성 사업은 그간 참여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지역 아트센터 주변의 논두렁을 시민의 쉼터와 작가의 전시장이 공존하도록 기획했는데, 7개의 논밭으로 이루어진 공간 하나하나가 설치 작품의 프레임이 되는 식이었다. 벽 없는 미술관을 일상 속에 불러들이고자 한 것. 와이즈 건축은 이처럼 설치와 건축 간의 경계와 맥락을 즐긴다.

전숙희 소장은 작은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치 작업과 인테리어 작업 경험이 더 큰 건축에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왜 작은 것이 중요할까요. 작은 것에서 일상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일상성은 소규모에서 대규모 프로젝트까지 와이즈 건축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시각 장애 체험관 ‘북촌 어둠 속의 대화’를 비롯해 무거운 역사를 힘 있게 풀어낸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한국적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ABC사옥’ 등의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진 묵직함의 발원지를 알 것도 같다. 결국 일상의 가치란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주관이자 몸에 익숙한 양식이다. 와이즈건축은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고민하는 건축적 지혜가 쌓여야만 일상적인 것을 비범하게 만드는, ‘슈퍼노멀’한 건축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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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은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