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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그래픽 디자이너 한호림의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
캐나다에 거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한호림, 디자이너만의 감각으로 집필한 영어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일약 밀리언셀러 신화를 만들고 꼭 20년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생생한 사진으로 디자이너를 위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Sign> 등을 출판한 그가 이번에는 6년의 작업 끝에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 디자인을 공개했다. 그는 지금 왜 거북선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가 디자인한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셀프 인터뷰를 통해 직접 전해 왔다.


궁륭 골조와 십자로.

1 닻 방호 장치
2 깃발 꽂는 구멍
3 돛줄 매는 장치
4 보아지
5 격자창
6 십자로
7 부장령 간이 침실 공간
8 장대
9 돛대 축
10 깃발 꽂는 구멍
11 변소
12 쌍엽미
13 방현량
14 보아지
15 선창
16 십자로
17 장령 간이 침실 공간
18 격군갑판
19 노 구멍
20 포혈
21 포갑판
22 화포 병사가 밖을 내다보는 창
23 방현량(防舷梁)노보호
24 닻 고정 장치
25 닻 고정시키는 홈




개판을 씌운 궁륭. 용두를 설치하고 닻을 장착했다. 앞 돛대를 누일 때 좌우로 나뉜 장대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때 중앙 공간 구조물과 덮개가 착탈된다. 개판에는 쇠못을 꽂고 십자로 외에 22개의 창구가 있어 돛의 조작, 채광, 통풍 기능을 하며 전투 시 필요한 경우 사수가 활을 쏘고 불화살이 꽂혔을 경우 진화 작업 등을 한다.

한호림(韓虎林)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인덕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 1987년 캐나다로 이주,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거북선 디자인에 관심을 쏟게 되었나?
호기심이다. 관광 문화가 거의 없던 시절, 군 복무 기회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려고 복무 기간이 길어도 기를 쓰고 해군에 갔고 희망대로 한국 해군 대표 함인 호위구축함 경기함(DE-71)에 위생수병으로 승조한 것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현대 과학의 총체, 군함은 정말이지 호기심 덩어리였다. 1968년 상병 시절, 한 달 봉급(520원)을 몽땅 털어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쓴 <충무공 이순신>을 구입해 읽고, 기록에 나오는 치수에 맞추어 1/100 크기로 모형 거북선을 제작해보았다. 그해가 나로서는 거북선에 호기심을 가진 원년이 되었고, 49년 후 캐나다로 이주한 이래 오늘까지도 세계 범노선(帆櫓船)은 물론 그저 뭐든지 우리의 거북선 구조와 연결될 듯한 구조물이면 찾아가 관찰, 촬영,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그분의 작품인 거북선에 대해서 무슨 찬사를 더 보태겠나. 거북선, 세계에 내보일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서울 용산전쟁기념관, 세종문화회관, 아산현충사(2014년 모종의 문제로 전시 중지), 진주국립박물관, 여수, 사천, 거제 등지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작한 대형 모형이 있고, 진해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해 여수, 노량, 통영(3척), 거제(2016년 뭍으로 옮김) 등 남해안에 실물대 복원 거북선이란 것이 바다에 떠 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뭔가? 우리나라는 첨단 이지스(aesis) 시스템 군함을 보유한 세계 6대국에 우뚝 선 첨단 과학의 나라다. 그런 우리 해군의 원조 군함 거북선을 복원했다는 것들이 하나같이 해상 전투 능력은 언감생심, 아예 제 몸조차도 못 가린다는 것. 마치 공갈빵같이 휑한 구조로 된, 즉 완전 엉터리들이라는 것. 생각해보자. 복원의 의미가 뭔가. 임진왜란 때 돌격선으로 활약한 거북선을 복원했다면 조선소에서 진수하여 남해안 전시 장소로 옮겨 올 때 당연히 자체의 돛과 노를 사용해서 힘차게 항해해 왔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애초 조선소에서부터 예인선에 이끌려서 현지에 오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다른 나라의 범선 복원 사례와 비교하면 어떤가?
거북선과 비교적 조건이 비슷한 고대 그리스의 범노전선(帆櫓戰船: 돛과 노로 운행하는 싸움배)인 삼단노선(三段櫓船, trireme)이 있다. 되도록 많은 노를 설치하기 위해 노수가 3단계로 앉아서 젓는 전투선으로 고전 영화 <벤허>에 나오는 것이 그것이다. 1987년 그리스 해군이 영국·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복원한 삼단노선 올림피아스(Olympias)호는 2012년, 돛과 자원봉사자들이 젓는 노로 지중해를 횡단, 지브롤터 해협을 빠져나와 총 6200km를 항해하여 런던올림픽 성화 봉송을 했는가 하면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도 왔다. 그런데 우리 복원 거북선들은 하나같이 전신불수라 항해는 엄두조차 못 내고 그냥 부두에 묶여 있다. 이거, 정말이지 ‘거룩한 분노’를 일으켜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럼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정말 싸울 수 있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헬리콥터 스케치를 보았을 것이다. 그냥 그것으로 헬리콥터를 제작하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겠는가? 디자이너만의 번쩍이는 창조력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디자인한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꼭 이렇게 생겼다고, 이렇게 생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이후 고종 4년까지도 건재했던 기록이 있듯이 그간 그 형태도 계속 진화해왔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디자이너만의 감성과 고증, 과학을 바탕으로 한 창의력,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엉터리 복원 거북선의 모순점을 분석, 해결하고 과학과 상식, 그리고 나의 함정 생활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실제 건조 과정이나 건조 후 계속 시행착오를 거쳐야 완성하게 된다.

거북선 설계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한정된 자료를 창의력으로 뛰어넘어 설계하려니 시작부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애써 완성한 도면을 버리고 새 아이디어로 그리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도면을 보고 입체를 구체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투시도로도 표현했는데 그 속에 연출된 인물들도 거북선 구조 속에서 정확하게 비례를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을 모델로 한 사진을 넣어 합성했다. 마침 내 키가 조선 중기의 남자 평균 키 161.1cm와 거의 같은 163cm이다. 그리고 동세(動勢)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아예 복식을 생략하고 검정 팬티만 입고 출연했다. 이렇듯 처음에서 끝까지 인간공학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이 아이디어가 초석이 되어 이후 우리나라 거북선 복원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 그리고 어렵게 건조한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을 그냥 부두에 매둘 게 아니라 실제로 전국의 학생, 자원봉사자와 관광객, 즉 온 국민이 돛을 사용하고 노를 저어 남해안 임진왜란 전적지를 구간별로 나누어 구석구석 순례하는 것.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면서 남해안을 항해하는 거북선의 당당한 모습을 내외국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 즉 우리 거북선이 명실공히 16세기의 세계적인 전선(戰船)임을 실물로 만방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도장한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 외관.


전투 시 거북선의 선내 모습. 1층 선저, 좁은 공간, 포탄 보관 등의 각종 창고와 2층 격군 갑판. 중앙 오른편이 격군장. 장대로부터 지휘를 받아 북과 징으로 박자를 맞춘다. 3층 화포 갑판. 포가에 바퀴는 필요 없으며 발사 시 포가의 반작용을 제어하는 밧줄, 기타 부속물은 묘사하지 않은 상태다.


포와 차대전(次大箭) 발사. 폭발 기능이 없는 단순한 쇠, 돌로 된 포탄(cannonball)보다 화약, 인화 물질을 매단 차대전이 더 경제적이고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포는 수평으로 발사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구조

확실한 3층 구조로 설계했다
기존의 모형·복원 거북선들은 하나같이 2층 갑판의 같은 자리에서 노도 젓고 포도 쏜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위 2층 구조설로 제작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 간단한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 중력 실험 정도도 해보지 않은 문약(文弱)한 거북선 전문가라는 사람들 탓이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2층에서는 격군들이 앉아서 노를 젓고 3층에서는 화포수들이 포를 쏘게, 아주 외관에서부터 확실하게 3층 구조로 설계됐다(이 점이 논란을 낳을 것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장대(將臺, 지휘탑)를 설치했다
어선에서 첨단 이지스 시스템 군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박에는 가장 높은 곳에 지휘탑이 설치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건 과학이랄 것도 없는 상식. 그런데 기존의 모형·복원 거북선에는 장대가 없다. 사방이 꽉 막혀 컴컴한 선실 내에서 선장이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지휘를 한다? 필수인 장대 설치, 사실 이것은 나만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옛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거북선에는 장대를 설치해야 한다.

좌우 두 쪽으로 나뉘게 디자인한 장대
거북선에는 돛이 2개가 있었는데 전투 시 등 필요한 경우엔 십자로를 따라 돛대를 뒤로 누였다. 그런데 앞 돛대를 뒤로 누일 때 중앙에 솟아 있는 장대에 걸리는 문제에 봉착된다. 그래서 고심 끝에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장대는 좌우 둘로 분리시키고 그 사이로 돛대가 지나가게 디자인했다. 그리고 이것이 뒷받침되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받아들일 거 아닌가. 본 적이 없는 장대도 생경스러운데 그것이 둘로 나뉘어 있기까지 하다니. 그런데 1950~1960년대에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삽화가·전쟁화가인 코주부 김용환 화백의 거북선 그림에 장대가 둘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일제강점기에 도쿄 유학을 거쳐 일본에서 인기 화가로 활동했고 이후 1970년대에는 도쿄의 유엔군극동사령부 심리전과 전속 작가로 근무했다. 그런 기간에 아래에 나오는 17세기 중엽에 그린 ‘장대 있는 거북선도’를 아마 일본 어디선가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867년 일본 교토에서 발견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2004년에 미국의 실업인 윤원영 씨가 구입, 공개한 17세기 중엽 거북선도에도 그렇게 장대가 좌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학자들이 못 갖는 디자이너의 상상력! 그때 그 희열!

앉아서 발을 쭉 뻗고 노를 젓게 디자인했다
모터보트 시대지만 나룻배 노를 젓는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고물(선미)에 설치된 노를 대체로 혼자, 드문 경우 둘이 마주 보고 서서 젓는다. 기존의 모든 모형·복원 거북선들은 나룻배 젓는 방식으로 젓되 대형 전선(戰船)이니까 양 현(舷)에 일렬로 서서 노를 젓게 되어 있다. 말이 되나? 잔잔한 강도 아니고 파도로 좌우상하로 흔들리는 갑판에서, 그것도 일렬로 서서 노를 젓는다니…. 서서 노를 젓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좌·우현 선체 밖으로 1m 이상 튀어나오는 ‘내민 갑판’을 만들고 거기에 패판(벽)을 세우고 그 위에 궁륭(穹窿: 둥근 지붕)까지 씌웠다. 그렇게 되니 선체 단면이 선박 설계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가분수가 되어 무게중심이 올라가 전복 위험이 아주 커졌다. 그래서 소위 거북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난처하니까 이 가분수 비율을 줄이느라고 선폭을 10m가 넘게 비상식적으로 넓게 늘렸고 그 결과 거북선은 초비만형이 되어버렸다. 이래서 더 전신불수가 됐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일렬로 앉아서 발을 쭉 뻗고’ 노를 젓게 디자인했다. 조정(漕艇)의 노 젓기를 연상하면 된다. 앉아서 저으면 선고(船高)도 낮아져 더 안정된다. 이것은 세계 모든 범노전선의 공통점으로 당연한 구조다. 이 방식으로 된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진분수꼴이고 치밀하게 계산, 공간을 아껴 선폭이 5.5m로 충분하다. 즉 전투선으로서 기존 엉터리 복원 거북선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선체 비율이 좋다.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측면도. 디프 킬의 기능은 배가 바람에 떠밀려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요트의 경우는 무게 추의 기능으로 전복을 막는 기능도 있다). 거북선 시대, 유럽의 첨저선에는 기본이었던 디프 킬은 발달한 선체 구조인데 평저선이 주종인 아시아에는 없었다(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14세기 원나라 무역선에도 없었음). 그러나 정말 싸우기 좋게 하려는 의미로 넣어보았다. 이 시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다면 하시라도 디프 킬은 없앨 용의가 있다.

1 화포수 현창
2 뚜껑
3 장령 간이 침실
4 장대
5 부장령 명령 전달
6 부장령 견시 위치
7 돛 보관 공간
8 십자로 발판
9 디프 킬(deep keel)
10 창고
11 제1 돛 권양기
12 격군
13 격군장
14 보수공간
15 간이 환자실
16 조타 공간
17 변소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단면도. 선저는 40개 칸(조타수 공간 2칸, 돛으로 쓰이는 권양기 8칸, 무기 창고 10칸, 보수실 4칸, 식량·식수 창고 8칸, 유사시 환자실 4칸, 창고 4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수병 침실, 휴게실은 없다.

1 함교(장대,將臺)
2 개판(蓋板) 궁륭
3 십자로 및 선반(상갑판에 포함)
4 현창(舷窓)
5 상갑판(포갑판)
6 주갑판(격군,格軍)
7 선저


잊힌 십자로의 기능을 되살렸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狀啓: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서)에 기록되었듯이 거북선에는 분명하게 십자로가 있었다. 즉 궁륭에 십자형으로 좁은 통로를 냈던 것이다(토막으로 된 덮개가 있었음). 그 십자로가 왜 잊힌 채 오늘에 이르렀을까? 탁상공론에 빠진 문약한 거북선 전문가라는 사람들로서는 그 용도조차도 제대로 몰랐고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십자로는 우선 돛을 누이거나 세울 때 필요하다. 아울러 돛을 다루는 사람들의 작업 공간이다. 그리고 접전 시 활을 쏘거나 거북선에 적의 불화살이 꽂혔을 때 진화하는 공간이다. 또 중요한 채광과 환기 기능이 있다. 이걸 모르고 현행 복원 거북선들은 그냥 궁륭으로 덮어놓았기에 선실 안이 캄캄해질 수밖에. 그래서 어떻게 했나? 난데없는 유리창을 달고 대낮에도 전등을 켜놓았다. 한호림의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십자로가 있고 그 아래 단면은 凹자형으로 되어 있다. 즉 1층에서 3층까지, 선수에서 선미까지, 아래위로 중앙 부분은 트여 있다(요즘 재래시장의 투명한 둥근 천장을 연상하자). 그래야 위의 십자로로부터 빛이 아래층까지 비치게 된다. 그리고 특히 둥근 천장(궁륭)을 이용해 3층 포갑판에서 발생하는 포연과 선내의 각종 악취를 대류 작용을 이용해 원활히 배출시키는 기능이 있다. 또한 전투에 필요한 화물을 취급하는 데 절대 필요한 구조가 십자로다. ‘이걸 빼놓고 복원 거북선이라고 만들다니….’

노 하나라도 더 설치하게 디자인했다
기존 모형·복원 거북선의 경우, 그 큰 덩치에 노의 숫자가 한 현에 8개, 총 16개밖에 안 된다. 그러니 무슨 힘으로 물살을 헤치고 가겠는가? 제 몸도 못 가누지. 임진왜란 200년 후인 1795년(정조 19)에 발간된 <충무공전서> 속의 엉성한 목판화 ‘전라좌수영귀선도’에 그렇게 그려져 있는데 그걸 맹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해보자. 길이는 5m 정도 더 길지만 폭은 좁아 거북선과 비슷한 부피의 고대 그리스-로마의 함선은 노를 3단으로 설치해 무려 170개다. 그러니 충파(衝破: 들이받기) 속도까지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앉아서 젓는 한호림의 ‘정말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은 공간을 최대로 아껴 한쪽에 20개, 도합 40개의 노를 설치했다. 노가 16개뿐인 기존 복원 거북선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쌍엽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변소’
기존 해상의 복원 거북선 안에 들어가보면 선미 좌현에 큼직한 화장실을 두 칸이나 설치해놓았다. 원래 목조 범선에서는 구조적으로 선체 안에 화장실을 설치할 수 없다. 그래서 첨저선(尖底船)이라 단면이 V자형인 선수를 더 앞으로 늘리고 거기에 좌변기를 설치, 변이 바로 바다로 떨어지게 했다. 그런 전통으로 지금도 미국 해군에서는 화장실을 헤드(head)라고 한다. 판옥선과 거북선은 궤짝 형태로 된 평저선(平底船)이라 V자형 선수가 없다. 따라서 헤드를 만들 자리가 없어 선미에 날개처럼 솟아오른 쌍엽미(雙葉尾)를 달았다. 쌍엽미의 바닥 판자 한 장만 떼면 뒷간이 되고 거기서 용변을 보면 바로 바다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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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그림: 한호림, 담당: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