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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로보틱 아트 퍼포먼스의 거장 루이 필립 데메르


‘인페르노’. 12대의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로봇들이 일사분란하게 군무를 춘다. 사전에 어떤 연습 없이도 완벽하게 춤을 소화한다는 점에서 기술의 민주화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기계가 인간을 제어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암울한 미래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로봇나무’. 지난해 3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선보인 로보틱 아트 퍼포먼스. 첨단 기술과 예술을 융합시킨 프로젝트로 주목을 받았다.


블라인드 로봇. 기계로 된 팔이 관객의 얼굴과 몸을 섬세하게 더듬어 인식하는 작품이다. 관객은 로봇의 손길에서 순간 일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마치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미래에 로봇에게 느끼게 될 인간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예술가, 디자이너, 교수, 리서처, 발명가, 기업가…. 싱가포르 난양 공대 교수로 재직 중인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 루이 필립 데메르Louis Philippe Demers에게는 이처럼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특히 테크놀로지를 융합한 무대 디자인으로 큰 명성을 얻었는데 대표적으로 태양의 서커스에 등장하는 첨단 직립 무대를 들 수 있다. 그는 로봇을 등장시키는 다양한 아트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지금까지 350대 이상의 로봇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부터 퀘벡·캐나다예술위원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로봇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그는 웨어러블 로봇 퍼포먼스 ‘인페르노Inferno’를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상연한 로보틱 아트 퍼포먼스 ‘로봇나무’의 로봇 디자이너로 참여하기도 했다.

로봇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캐나다 뮤지션 빌 본Bill Vorn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와 나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했고 동시에 실험적인 연출로 우리의 작업을 고양시키고 싶어 했다. 아쉽게 당시 극장이나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형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로봇을 공연자로, 조합된 오브제로, 표현의 한 방식으로, 빛과 소리의 담지체로 활용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수많은 로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인페르노’ 같은 퍼포먼스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관객 참여형 로봇 퍼포먼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과 싱가포르 테마파크 호 파 빌라Haw Par Villa에 있는 ‘지옥의 심판대’, 자신을 기계라고 여기는 소년이 등장하는 논문 ‘조이: 기계 소년Joey: The Mechanical Boy’ 등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다. 여기서 인간의 신체는 외부의 힘에 통제를 받아 무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데 이것은 지옥의 전형적인 묘사에 가깝다. 이 퍼포먼스의 핵심은 관객 겸 퍼포머의 신체에 기계를 장착함으로써 야기되는 상황에 있다. 관객 중 선택된 무리는 급진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퍼포먼스의 일부가 된다. ‘인페르노’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통제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로봇을 활용하는 당신의 퍼포먼스에서는 대체로 암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글쎄, 내 작업이 꼭 디스토피아를 그린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실험적 순간을 연출해 오랫동안 지속될 인상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만드는 로봇은 픽션이지만, 로봇을 통해 내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분명 당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이고 당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와 별개로 나는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편인데 이는 로봇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현재 이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성과 관련이 있다. 로봇과 기술에 대한 개념은 인류사 내내 존재했다. 인간은 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해왔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공상 과학을 끌어안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은 좋은 것을 디스토피아로 변질시키는, 탐욕스러운 이들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그들이 이러한 기계를 만드는 돈을 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로봇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부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유감스럽게도 디스토피아는 이미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무덤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상연한 로보틱 아트 퍼포먼스 ‘로봇나무’에 참여했다. 이때 디자인한 로봇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페르노’와 같은 웨어러블 로봇처럼 보였는데, 둘 사이에 차이가 있나?
두 퍼포먼스에서 사용한 로봇들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인페르노’는 외골격 로봇이고 ‘로봇나무’에 사용한 로봇은 슈퍼뉴머레리 로봇supernumerary robot이다. 의미상으로도 각본이 거의 없는 ‘인페르노’와 달리 ‘로봇나무’는 스토리텔링과 안무가 있는 무대였다. ‘로봇나무’는 시간이나 거리, 언어의 차이 등 여러모로 제약 조건이 많았지만, 다행히 유능한 공연 팀이 내 지시에 따라 서울에서 4대의 로봇을 제작했고 어렵사리 리허설도 마쳤다. ‘로봇나무’는 큰 프로젝트였고 이들의 팀워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몇 가지 프로젝트를 이미 준비하고 있다. 나는 평소 동물과 동물의 습성에 관심이 많은데 이와 관련된 실험적인 설치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다른 한 가지는 무대 프로젝트다. 댄스피스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로봇을 제작 중인데 관객들이 이것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금껏 진행한 것 중 기술적으로 가장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이고, 모든 엔지니어가 입을 모아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오히려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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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최명환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