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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망국亡國에서 캐낸 건축의 가능성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해>전


유고슬라비아 전선에 떨어진 전사들을 위한 기념비. 건축가 지바 바라가 iva Baraga와 조각가 야네즈 레나시Janez Lenassi가 1965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장기 집권 당시 유고슬라비아 곳곳에 이 같은 기념비가 세워졌다. ©Valentin Jeck


코소보 국립대학교 도서관. 건축가 안드리야 무트냐코비치Andrija Mutnjakovi´c가 디자인해 1982년에 완공했다. 천장은 총 99개의 돔으로 이뤄져 있는데 크기가 모두 다르다. ©Valentin Jeck
전시명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해: 유고슬라비아의 건축, 1948–1980>
전시 기간 2018년 7월 15일~2019년 1월 13일
전시 장소 뉴욕 MoMA 3층 필립존슨 갤러리
큐레이터 마르티노 스티에를리, 블라디미르 쿨리치Vladimir Kuli´c, 안나 카츠Anna Kats
웹사이트 moma.org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왜 그토록 중립국으로 가길 바랐던 걸까? 양극화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제3의 길을 모색했던 이 소설이 새삼 떠오른 건 지난해 7월 15일부터 올 1월 13일까지 뉴욕 MoMA에서 열린 전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해Toward a Concrete Utopia> 때문이었다. 1945년부터 약 45년간 연방 국가 체제로 존재했던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을 조망한 이번 전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열린 대규모 유고슬라비아 건축 회고전이었다. 뉴욕 MoMA의 건축·디자인 부서 수석 큐레이터 마르티노 스티에를리Martino Stierli를 중심으로 한 전시 기획 팀은 현지 자문단의 도움을 받아 지자체 자료실,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품 목록 등에서 400점이 넘는 드로잉과 모형, 사진 등을 수집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쩌다 지난 세기에 실패로 끝난 나라의 건축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최소한 표면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가 완승을 거둔 21세기에 말이다. 마르티노 스티에를리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이 사회적 타당성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고급화되기만 하는 서구(특히 미국) 건축계에 경종을 울리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얼핏 냉전 시대의 한 축을 이루던 수많은 공산국가 중 하나로 비쳐질 수 있지만, 사실 유고슬라비아는 모든 공산국가를 통제하려는 소련의 정책에 반해 1948년 6월부터 독자적 노선을 구축한 비동맹 세력의 중심 국가였다. 유고슬라비아가 추구한 자주 관리 사회주의 시스템은 자본주의와 소련식 경제 체제의 절충안이었다. 즉 유고슬라비아는 그들만의 이상적 국가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건축은 국가의 이상과 유토피아적 목표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유고슬라비아 건축은 기능성을 넘어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이상까지 반영했던 것이다. 또한 6개 공화국과 자치주들이 연합해 세운 신생 국가였던 만큼 건축가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민족성을 지닌 국민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건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유고슬라비아의 건축가들은 적절한 형태의 대중 주거, 시민을 위한 사회 시설, 공공 공간, 체제 선전을 위한 기념비를 통해 다양한 건축 실험을 이어나갔다. 이런 유고슬라비아 건축을 돌아보는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가 처한 복잡한 상황의 층위에 건축이 어떻게 조응했는지 살펴본 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섹션 ‘현대화’에서는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나타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부상에 집중했다. 새로운 시공 기술과 맞물려 탄생한 철근 콘크리트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사회주의의 근대성을 정의했다. 두 번째 섹션 ‘글로벌 네트워크’와 이어진 ‘일상생활’에서는 각각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이 중동 및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과 도시의 집단 주거 프로젝트 속 현대성에 주목했다. 마지막 섹션 ‘정체성’은 다민족 지역의 통합을 위해 어떤 건축물이 등장했는지를 다뤘다. 물론 건축가들의 헌신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장기 집권이 막을 내린 1980년 이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이 잇따라 분리 독립을 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내전은 깊은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 건축의 의미와 지향점마저 퇴색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맹렬하게 전 세계를 집어삼킨 상황에서 유고슬라비아 건축의 이상적 태도는 인류에게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최인훈이 그토록 목 놓아 외쳤던 제3의 길. 유고슬라비아의 건축에서 어떠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르둔-바니야Kordun and Banija 인민 봉기 기념비. 조각가 보인 바키치 Vojin Baki´c와 건축가 베리슬라브 셰르베티치Berislav erbeti´c, 조란 바키치Zoran Baki´c가 나치에 대항한 지역 주민들을 기념하기 위해 1981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포스트모던 조각품 중 하나였다. 외관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이뤄져 있는데 상당수가 도난당했다. ©Valentin Jeck


구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의 거주 지역 브라체 보로잔Bra´ce Borozan 거리의 건물들. 건축가 딘코 코바치치Dinko Kova´ci´c와 미하일로 조리치Mihajlo Zori´c가 1970년대에 디자인했다. ©Valentin Jeck


‘일상생활’ 섹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제품 디자인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마르티노 스티에를리
뉴욕 MoMA 수석 큐레이터 ©Peter Ross


“지나치게 사치스러워진 서구 건축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지닌 의미가 궁금하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역사 기록학적 측면에서 그동안 냉전의 여파로 제대로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유고슬라비아 건축에 대해 짚어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늘날 사회적 영향력이나 타당성 없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워진 서구 건축에 대한 대안적 가치다. 유고슬라비아 건축의 재조명은 그동안 미국 사회가 잊고 있었던 사회적 책임을 지닌 건축의 가능성을 상기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유고슬라비아 건축은 다민족 사회를 봉합하고 공통의 역사를 설계하는 도구를 제공했는데 현재 도처에서 나타나는 현대 정치의 분열을 생각해볼 때 어떤 교훈을 줄 것이라고 보았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많은 협력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50곳이 넘는 기관 및 개인 컬렉터와 접촉했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이번 전시를 열 수 있었다. 또 쿠퍼 유니언, 프린스턴 대학교,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교 등과 협업했는데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한 학생 그룹은 뮤지엄과 아카데미 사이의 모범적인 협력 관계를 보여줬다.

유고슬라비아 건축의 특징을 꼽자면?
유고슬라비아의 자주 관리사회주의 시스템은 소련의 하향식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물론 이 시스템을 오늘날 그대로 답습할 순 없다. 모두 알다시피 유고슬라비아의 경제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시로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중된 현대건축의 흐름을 비평적으로 재검토해볼 수 있다.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건축이 변방의 후진적 모델이 아니며 모더니즘 역사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포괄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본다. 유고슬라비아 건축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공유하는 장소를 마련해줬고 다민족 사회를 하나로 잇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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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 사진 제공 뉴욕 MoMA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