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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는 슈퍼 디자이너 군단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2007년 뉴욕 맨해튼 첼시 파크 맞은편에 오픈한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내부. Courtesy of Friedman Benda, Photography by Timothy Doyon
대표 마르크 벤다, 제니퍼 올신
설립 연도 2007년
주소 515 West 26th Street, New York
웹사이트 friedmanbenda.com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 웬델 캐슬Wendell Castle, 최병훈, 넨도Nendo, 요리스 라르만Joris Laarman, 폴 콕세지Paul Cocksedge,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 파예 투굿Faye Toogood 등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가 거느리는 슈퍼 디자이너들의 명단을 보면, 현재 뉴욕 디자인계에서 차지하는 이 곳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창립자인 마르크 벤다Marc Benda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스위스 취리히에서 어머니와 함께 작은 미술 갤러리를 열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세계 미술계의 심장부인 뉴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뉴욕으로 이주해 전 세계 아트 페어를 경험하던 중 극적으로 배리 프리드먼Barry Friedman을 만나게 된다. 유대인 출신의 배리 프리드먼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고,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마르크 벤다를 자신의 갤러리로 영입한다. 이후 둘은 론 아라드와 에토레 소트사스 등의 전시를 기획하며 기존의 아트 갤러리를 새로운 디자인 플랫폼으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5년 후인 2007년에 배리 프리드먼이 은퇴하면서 마르크 벤다가 갤러리를 인수해 둘의 성을 조합한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를 시작하게 된다. 갤러리 설립과 함께 새로운 파트너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큐레이터 출신으로서 크리스티 옥션에서 출판을 맡았던 제니퍼 올신Jennifer Olshin이 합류했다. 여느 갤러리들이 사세 확장을 위해 여러 도시에 지점을 오픈하는 것과 달리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는 뉴욕 맨해튼 첼시 파크 맞은편에 단 하나의 갤러리만 두고 있다. 갤러리의 활동은 전시 기획, 아트 페어 참여, 출판 등 크게 세 가지로 특히 출판은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전시 도록 수준이 아니라, 큐레이터와 비평가의 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타셴, 애슐린 등 미술 서적 출판사의 수준을 능가하는 책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안드레아 브란치의 1979년부터 2019년까지의 작업을 정리한 작품집 나 1985년부터 1994년까지 론 아라드의 작업을 ‘물고기와 화살’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등이 그 예다. 시대별 작업을 정리하는 출판물이 작가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작가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현재는 최병훈의 작품집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고. 소속 작가가 참여하는 미술관 전시의 기획을 협력 진행하는 일 또한 이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현재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가 기획에 참여한 미술관 전시만 10개 정도다.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토레 소사스와 소셜 팩토리Ettore Sottsass and the Social Factory>전, 암스테르담 모코 뮤지엄Moco Museum의 <템프터Tempter>전에 참여한 마르셀 반더스의 설치 작품 등이 그 예다. 2017년에는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디자인 역사의 DNA를 보여주는 작품과 함께 현 소속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짚어내는 기획전 을 열어 갤러리 오픈 1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는 2015년 최병훈 개인전으로 디자인 마이아미/바젤에 참가했고, 지난 5월 테파프 뉴욕TEFAF New York 아트 페어에서 웬델 캐슬의 개인전, 6월에는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안드레아 브란치의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2013년에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진행한 웬델 캐슬의 전시. Photography by Christopher Burke Studios.
웬델 캐슬 Wendell Castle
1932년에 캔사스에서 태어난 웬델 캐슬은 2018년 1월 20일 작고하기 전까지 가구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예술로서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1960년대부터 조형성과 장식성을 추구하며 소량 생산 방식으로 작업했다. 오른쪽 페이지의 작품은 2013년 1월 10일부터 2월 9일까지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새로운 환경A New Environment>에서 선보인 컬렉션 중 하나. 나무 위의 둥지를 램프와 나선형의 계단으로 형상화한 가구는 실험성과 더불어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간 그의 감각을 짐작하게 한다.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가에타노 페셰의 1980~1990년대 작품들. 순서대로 ‘아르카 데스크 #1Arca Desk #1’(1990), ‘붉은 책장을 위한 모델Model for Bookshelf in Red’, ‘펠트 체어Felt Chair’(1985).
가에타노 페셰 Gaetano Pesce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와 오랜 인연을 맺으며 활동하고 있는 가에타노 페셰. 베니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조각, 회화, 영화, 디자인 등을 폭넓게 배웠고 1967년부터 뉴욕으로 옮겨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대표작인 ‘업Up’ 소파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1980년에 ‘달리알Dalial’ 체어, ‘뉴욕 선라이즈New York Sunrise’ 소파 등의 히트작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살롱 94 디자인에도 합류했다.


최병훈
돌, 나무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한 최병훈의 작품에서는 자연에 대한 겸양의 태도와 절제된 형태가 드러난다. 1996년 다운타운 갤러리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4년과 2016년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개인전 등 서울, 파리, 뉴욕을 오가며 총 21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파리 장식미술관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애프터이미지Afterimage 010-348’ Photography by Daniel Kukla.


‘비욘드 더 이미지Beyond the Image’(2013). 연꽃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화장대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시 후 컬렉션되었다. 최병훈은 1993년에 선화랑에서 <아트와 가구 사이Between Art and Furniture>전을 연 이래 아트 퍼니처 작업을 진행해왔다.


2014년 2월 27일부터 한 달간 뉴욕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진행된 최병훈 개인전 <일필휘지In One Stroke>. 전시 후 같은 이름의 책을 발간했다.

designer interview
최병훈이 말하는 컬렉터블 디자인 세계




파리 갤러리 다운타운Galerie Downtown, 뉴욕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등 세계 톱 클래스 수준의 디자인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 최초의 한국 디자이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목조형가구학과 교수를 지낸 최병훈은 퇴임 후 파주 작업실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석재 작업장을 오가며 전보다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파주 작업실에서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는 1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뉴욕 최고 디자인 갤러리의 입지를 다졌다.
21세기 세계 디자인사를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 작가들을 중심으로 쓰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대륙별로 실험 정신이 강한 대표 작가들을 선택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가고 있고, 이러한 노력을 높이 산 컬렉터들의 신뢰를 받으며 성장했다. 작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철저한 관리가 최고의 갤러리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2014년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진행한 <일필휘지In One Stroke>전으로 작품 세계의 전환을 맞았다. 돌을 주로 사용하고 작품 크기가 거대해졌다.
자연의 물성이 드러나는 돌의 매력을 알게 되던 차에 인도네시아산 용암석인 바잘트를 만났다. 수천 년간 산속에 숨겨져 있던 돌인데,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자연석이지만 그 안에 검은색 용암석이 들어 있다. 돌을 작업실에 갖다 두고 2년 정도 지켜보며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심하던 차에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의 마르크 벤다가 이렇게 조언했다. 형태와 규모를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 그 이후는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상상하던 것을 펼쳐놓으라고 말이다. 작업실에서 붓으로 수많은 획을 그리고, 하나의 획을 용암석으로 구현했다. 내 작업의 스케일이 커지고 작품 세계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 입구에 야외 조각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라 들었다.
<일필휘지>전에서 선보였던 작품의 새로운 변형이다. 유기적인 형태의 거대한 조각 3점으로 휴스턴 미술관 신관 입구에 설치될 예정이다. 미술관 현장 답사를 2017년 7월에 진행하고 이제 작품이 거의 완성되었으니 2년여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미술관을 대표하는 자리에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의뢰한 셈인데, 장르와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넓은 사고에 느낀 점이 많았다. 답사 일정 내내 동행하며 갤러리스트로서 역할을 다한 마르크 벤다의 태도 또한 우리 디자인계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

1996년부터 20여 년에 걸쳐 해외 전시를 10번 넘게 진행했다. 해외 디자인 시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지만 내가 경험한 뉴욕과 파리의 디자인 시장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파리가 아직 전통을 이어가며 프랑스 특유의 살롱 문화에 기반을 둔 디자인을 선호하는 반면, 뉴욕은 활기찬 아메리칸 드림이 저변을 형성하며 특정한 디자인 이념이나 가치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문화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어느 아티스트, 디자이너라도 꿈을 펼칠 수 있는 넓은 시장이 있다.

1993년에 인사동 선화랑에서 국내 최초로 아트 퍼니처 전시를 진행했다.
1990년 홍익대학교 전임 강사가 된 다음 아트 퍼니처 과정을 만들었다. 21세기에 목공예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지 않은가. 소파를 하나 만든다고 치자. 기능성에 예술성을 더한다면 값어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본래의 사용 목적을 만족시키면서 미적 이상의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트 퍼니처의 세계이다.

해외에서는 아트 퍼니처에 대한 컬렉터의 인식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몇 년 전 마이애미에 개인 저택을 소유한 컬렉터가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풀장 옆에 내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을 보내고 설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허리케인이 빈번한 곳이라 법적으로 모든 설치물을 땅에 고정시켜야 한다고. 작품에 구멍을 뚫어 땅에 고정해야 하는데, 그걸 허락해달라는 내용을 보내왔다. 본인이 구입한 작품이니 마음대로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한 것이다. 작품을 존중하는 마음을 경험하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힘이 된다. 갤러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운타운 갤러리의 대표가 작업실에 온 적이 있는데, 전시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 몇 점을 골랐다. 그중 캐비닛 하나가 제작한 지 몇 년이 지나 문짝과 문짝 사이에 틈이 좀 생겼다. 이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으니 이것은 작품에 세월의 가치가 더해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함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 가치가 더욱 커진 작품으로 바라본 것이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가 없는 것이 아쉽다.
2007년 즈음 서미 갤러리가 젊은 디자이너들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는데 문을 닫은 것이 많이 아쉽다. 현재 한국에 디자인 전문 갤러리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몇몇 갤러리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컬렉터블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시장의 확대를 기대해본다. 나는 종종 ‘작품이 좋으면 임자가 있다’는 말을 하는데, 해외 톱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미적 수준이 다르다. 그렇기에 세계 어느 산간 오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독창적인 작품이라 판단하면 작가들을 찾아낸다. 물건 하나를 대하더라도 끈질기게 생각하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을 생각해야 한다.

디자이너가 성장하려면 여러 분야와의 협력이 중요한데, 가장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아주 오래전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론 아라드 전시에서 카폰 파이버라는 소재를 알게 되었다. 탄소섬유의 일종으로 레이싱카나 비행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소재이다. 당시 나는 리서치해서 한국에서 이를 취급하는 곳을 찾아내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다. 외국에서는 신소재를 개발하면 자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재료를 제공하고, 디자이너들이 만든 제품으로 론칭 쇼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은 그런 좋은 협력 기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 갤러리들이 츨판을 하거나 디자인계 담론을 만드는 미술관 전시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1990년대에 이미 슈퍼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만든 가구를 갤러리에서 유통하기 시작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갤러리에서 판매하고, 이를 대량생산한 가구는 일반 매장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우리도 이와 같은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100년 전의 세계와 앞으로 열릴 100년의 세계는 같을 수가 없다. 산업혁명 이후에 등장한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렇다면 이 용어가 향후 100년을 더 지속할 수 있을까? 대량생산이 전제되는 디자인은 어쩌면 산업 시대의 가치다. 이제 디자인의 개념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용어가 파생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영역을 점차 확대시키고, 더 가치 있는 방법론을 찾아가야 한다.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들이 최근 진행하는 전시나 소속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디자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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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만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