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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안녕!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 메기 춤슈타인Megi Zumstein
가독성, 단순함, 객관성으로 대변되는 스위스 국제주의 양식은 20세기 중반에 형성된 이래 큰 인기를 끌며 시대를 풍미했다. ‘스위스 그래픽=국제주의 양식’이라는 공식이 생겨났을 정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위스 디자이너들에게 이러한 대표성은 오히려 올무가 되기도 했다. 스위스 디자인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이들은 급진적인 실험을 이어갔다. 2017년 처음 선보인 이래 전 세계를 순회 중인 <포스터타운>전은 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지난 8월 7일부터 9월 18일까지 KF갤러리에서 열린 <뷀트포메트 코리아 3>(이하 <뷀코 3>)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시의 스위스 대표이자 워크숍 진행을 위해 방문한 메기 춤슈타인은 스위스 그래픽의 한 축을 이끄는 중견 디자이너다.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기 전 간판 기술을 터득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루체른 예술·디자인 대학교Lucerne University of Art & Design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으며 동업자 클라우디오 바란둔Claudio Barandun과 스튜디오 ‘하이Hi!’를 운영 중이다.


©Taiyo Onorato
메기 춤슈타인 스위스 루체른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하이!’의 공동 설립자. 스위스 취리히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의 그래픽 디자인 전문 회사 GTF(Graphic Thought Facility)를 거쳐 다시 스위스로 돌아온 후 클라우디오 바라둔과 함께 2007년부터 스튜디오를 이끌며 북 디자인, 포스터, 사인 시스템 등 다양한 그래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i-web.ch

박경식 디자인 애호가로, 간혹 강사로, 어떤 때는 글쟁이로, 그리고 가끔은 디자이너로 겨우 밥벌이를 해나가고 있다. 타이포그래피 잡지 <ㅎ>의 공동 편집장을 지냈고 개인 스튜디오 N&Co.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7년부터 뷀트포메트 코리아를 기획·운영 중이며 현재는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며 시각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취미는 장난감과 미국 만화책 수집 그리고 책상 정리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기 전 간판 기술 제작을 익힌 것으로 안다. 무척 흥미로운 이력이다.
4년간 간판 제작 기술을 배웠다. 당시의 경험이 나의 그래픽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간판을 대개 수작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트지 대신 금박 레터링이나 붓을 사용한 레터링 같은 전통적인 제작 기술을 배웠다. 그때가 일종의 과도기라 컴퓨터 작업이 막 일반화되고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수작업과 디지털 테크닉을 함께 습득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더 중요한 디자인 자산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수료한 이후 취리히 예술대학교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을 공부했다. 비로소 디자인다운 디자인을 배웠다고 할까?

‘하이!’ 스튜디오의 초기작 ‘가스베르크Gaswerk’ 포스터 연작이 인상적이다. 디자인으로 ‘끝장을 보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가스베르크는 스위스 빈터투어Winterthur 지역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의 이름이다. 매달 다양한 음악 공연이 열리는데 우리는 한동안 이 행사를 위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무척 값진 경험이었다. 사실 무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라 ‘값지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지만.(웃음)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우리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활용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고자 했다. 우리는 매달 프로젝트에 임할 때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스튜디오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디자인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최대한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우리의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작업이 ‘하이!’의 방향성을 결정지었던 것인가?
글쎄, 그것보다는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우리는 하나의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물론 수년간 디자인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스타일이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지루한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 내부적으로 같은 서체를 두 번 사용하지 말자는 원칙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제법 잘 지켜지고 있다.


전 포스터(2015).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린 콜렉션 전시였다.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을 위해 만든 <형태 없는 가구Formlose Mo ¨bel>전 포스터(2009).


<향수: 병에 든 유혹Parfum Verpackte Verfu ¨hrung>전 포스터(2011), 벨레리베 박물관Museum Bellerive.




가스베르크를 위한 포스터 연작.
이번 <뷀코3>전의 연계 행사인 포스터 메이크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무척 흥미로웠다. 한 공간 안에서 <포스터타운> <단도전> 두 전시를 함께 연다는 발상 자체가 독특했다. 그만큼 볼거리도 넘쳐났고 말이다. 다른 언어권의 작품이다 보니 문자를 의미 체계가 아닌 이미지로 보게 되더라. 오프닝 때 한국 디자이너들과 작품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생각과 접근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계 행사인 강연도 인상적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과 프로세스를 보며 언어는 달라도 생각하는 방향과 과정은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나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뷀트포메트 디자인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한국과 스위스의 행사 모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을 알리고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유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루체른 예술·디자인대학교에서 15년째 수업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이전에는 한국에서,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1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디자인 교육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지역 간의 문화 차가 아닌 시대에 따른 디자인 교육의 변화라고 할까? 당신도 가르치는 방식이나 철학의 변화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수업 방식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스위스 디자인 교육은 꽤 오랫동안 수료제를 고수했는데 최근 들어 학·석사 과정으로 바뀌었다. 지난 수년간을 통틀어 스위스 디자인 교육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이론이 강화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실습과 실기는 약화됐다. 디자인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고 본다. 디테일, 정확성, 참신함, 그리고 의미와 시각적 표현의 조화. 이 같은 요소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통해 자극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지만, 잘 만들어진 포스터와 북 디자인은 그런 잡음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글쎄… 솔직히 디테일, 정확성, 참신함 같은 가치를 강의실에서 전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정도면 됐지’라고 넘어가는 아마추어 같은 발상이 용인되는 분위기라고 할까? 서투른 포토샵 효과와 기본 서체로 적당히 만들어낸 시각물이 늘어났다.
확실히 요즘 학생들의 관점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탄탄한 리서치에 힘을 싣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깊이가 얕아졌으니까. 그것 때문에 때로는 그래픽 디자인의 앞날이 고민될 때도 있다. 하지만 레퍼런스 리서치 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방향이나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다시 말해 학생들이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재미난 일들이 발생한다. 지난 8월 <뷀코 3>에서 ‘포스터 메이크’ 워크숍을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현장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임의로 자르고 붙여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포스터를 만든 뒤 무작위로 만든 결과물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여러 생각이 오가고 여과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표현 방식을 터득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에는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를 원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손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할까? 우리 세대가 디지털에 관심을 가졌듯 지금 학생들은 공예, 수작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에이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총괄 디렉터가 깔끔하고 미니멀한 신입 디자이너의 시안을 보고 “너무 스위스스럽다”라고 하더라. 스위스의 국제주의 양식이 그만큼 강한 인상을 준다는 뜻이겠지만 그러한 ‘스위스스러움’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의문이다.
대답하기 쉽지 않다. 국제주의 양식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스타일이 스위스의 중요한 디자인 자산이요, 국제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스위스 안에서는 그러한 스타일에 질려 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디자이너들이 생겨났다. 내가 디자인을 공부하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도 이런 스타일을 값진 전통보다는 부담으로 느꼈다. ‘이미 해볼 것은 다 해봤다’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1980년대 스위스에서 유행한 펑크punk 문화나 DIY와 같은 대안적 움직임, 그리고 디지털 혁명 등은 전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2018년 뷀트포메트 전시 <스위스 스타일 나우>에서 확인된 것처럼 오늘날 스위스 디자이너들은 역사나 전통에 대해 딱히 거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추종하지도 않는다. 불투명하지만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스위스 디자인계에서 이어지고 있어 미래가 기대된다. 특히 이곳 루체른에서 다양한 시각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이전의 국제주의 양식과는 또 다른 지표가 형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루체른이라는 작은 도시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조명을 받는 것 역시 흥미롭다.
루체른의 공공장소 곳곳에는 커다란 원통 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소위 ‘포스터 기둥’이라고 부르는 이 시설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알림판인데 작은 도시 루체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크고 작은 포스터’로 알린다. 이 도시에서 포스터는 무척 중요한 매체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매년 루체른에서 만들어지는 포스터가 전방위로 각광받게 되는 것 같다. 뷀트포메트 디자인 페스티벌이 생겨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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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터뷰 박경식 담당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