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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포스터 속 정치인의 이미지는 정직한가? 19대 대선 포스터 전쟁



이미지가 실제와 일치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미지를 실제처럼 여긴다. 기계적인 기록인 사진이 나타나기 이전에 그림으로 사람을 그리던 시절에도 이미지는 진실을 전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미지의 힘은 굉장하다. 정치인은 어쩌면 이미지로 정치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대다수 일반인은 그들을 미디어를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건 그들의 실제가 아닌 이미지다. 하지만 이미지에는 그들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는 실제와 아주 다른 허구만은 아니다. 특히 한 장 안에 많은 것을 압축시켜야 하는 대선 포스터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디자인을 통해 각 후보의 성격을 살펴보자.


웃음의 의미
포스터 속 주요 정당 후보 5명의 얼굴에 나타난 공통점 중 하나는 웃음이다. 3번 안철수 후보만이 결의에 찬 모습이다. 웃는 모습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표정보다도 친근하다는 점에서 무난하고 보편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에는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유신헌법으로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사라지는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포스터 속 후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와 박정희 후보의 모습을 보라. 시선이 살짝 위를 향하고 얼굴도 정면에서 살짝 틀어져 있는 전형적인 지도자의 초상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은 〈예술 철학〉에서 초상이란 그 사람의 개별적 순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형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서양 회화에서 왕이나 귀족처럼 권력을 가진 인물을 형상화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20세기에도 뛰어난 인물을 사진으로 묘사하는 방식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런 인물은 대개 세상의 변화나 어떠한 위협, 동경에도 초연한 채 감정의 동요 없이 냉정하고 침착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이런 형식은 한국의 선거 포스터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1960년대 대선의 이승만 후보와 윤보선 후보의 인물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 속 얼굴에 표정이 없다. 표정이 없다는 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딱하고 근엄한 이런 형식은 독재 시대의 권위주의에 부합하기도 한다. 표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호소력 있는 표정은 역시 웃음이다. 대부분의 후보가 웃고 있는 포스터의 시대는 1997년 대선 때 시작되었다. 그 뒤로 이번 대선까지 활짝 웃는 표정이 보편화되었다. 냉정하고 초연한 표정의 상실은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민주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군부독재 시절 대통령은 신에 가까울 정도의 권능을 지닌 존재였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포스터에도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실제로 그렇건 그렇지 않건 지도자는 국민에게 다가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념이 표정에 변화를 가져왔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밝게, 때로는 은근하게 웃는 것이 바로 포스터 속에서 살아난 표정이다. 이는 선거 때만 되면 모든 후보가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것만큼이나 판에 박은 스테레오타입이 돼버렸다. “자, 이렇게 웃고 있는, 권위를 버리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저를 뽑아주세요!”


1967년 6대 대선 박정희 후보 포스터. 허공을 응시한 이런 종류의 박정희 대통령 사진은 포스터에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관공서에 뿌려진 유명한 사진이다. 지도자는 어디에서든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초상 사진이다.


1971년 7대 대선 김대중 후보 포스터.


이승만 후보 포스터. 


2017년 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포스터.


2017년 19대 대선 홍준표 후보 포스터.


과장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할 것인가?
웃음이라는 코드는 같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문재인 후보의 포스터에는 포토샵을 많이 쓰지 않은 것 같다. 머리카락이 조금 삐져나와도 그것을 굳이 포토샵으로 다듬지 않았다. 과거 포스터에서 후보들의 머리에 이렇게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반드시 제거하거나 얌전하게 가다듬었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웃을 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눈가와 볼의 잔주름이나 작은 땀구멍도 그대로 두었다. 인위적인 인상을 최대한 감추고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고자 애썼다. 이는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가면을 쓰지 않은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반면에 홍준표 후보는 포토샵으로 얼굴을 매만진 흔적이 뚜렷하다. 피부를 전반적으로 지우개로 지우듯 문질러서 이마와 광대뼈 부위, 볼이 도자기처럼 매끈해졌다. 머리는 마치 이발사가 마지막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성스럽게 손질한 듯 가다듬었다. 이렇게 정돈된 머리와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메시지, 그 메시지의 세로쓰기 형식까지 완벽하게 보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세로쓰기 형식을 사용한 것은 홍준표 후보가 유일하다. 그래서 웃는 얼굴임에도 엄격하고 원칙적인 분위기다. 한마디로 흐트러짐 없는 질서의 구축이다.

같은 보수 후보지만 유승민 후보의 포스터는 홍준표 후보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다. 그건 아마도 유승민 후보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선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유승민 후보의 포스터에서 차별화된 점은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이라는 것이다. 흰 와이셔츠 차림은 두 가지 언어를 발산한다. 하나는 젊음과 활기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이다. 가는 금테 안경도 이런 인상을 부추긴다. 유승민 후보는 웃고 있는 다른 후보들과 견주어 웃음이 가장 인색한 편이다. 눈과 입술에서 작은 미소를 느껴질 뿐인데 그 때문에 더욱 전문적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심상정 후보의 포스터는 다섯 후보 중 가장 친근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누구보다 활짝 웃는 얼굴, 특히 다른 후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초승달 모양이 될 정도로 활짝 웃는 눈이 친근성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또 하나 친근함을 배가시키는 요소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실외의 태양광 아래서 인물 사진을 찍은 것이다. 주 광원이 태양이라 머리카락과 어깨 위의 하이라이트가 아주 자연스럽다. 망원 렌즈로 초점이 완전히 흐려진 배경, 그리고 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약간 기울어져 운동감이 느껴지는 인물의 각도는 이 후보가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성 대통령 후보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데, 이는 인물을 사무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근엄이나 권위, 엄격하고는 거리가 멀다. 만약 선입견 없이 친근함과 호감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포스터가 가장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과거에 심상정 후보만큼 활짝 웃는 얼굴을 포스터에 드러낸 사람은 2002년의 이명박 후보였다. 하지만 역시 정장과 넥타이, 태극기 배경으로 인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 19대 대선 유승민 후보 포스터.


2017년 19대 대선 심상정 후보 포스터.


2017년 19대 대선 안철수 후보 포스터.


2002년 17대 대선 이명박 후보 포스터.


2007년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포스터.

파격은 좋은 것인가?
이번 대선 포스터 중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인구에 회자된 것은 역시 안철수 후보의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는 두 가지 면에서 파격적이다. 첫 번째는 얼굴보다 몸을 더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상징이다. 증명사진이나 SNS 프로필 사진에 대부분 손이나 발이 아닌 얼굴을 커다랗게 넣는 이유는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도 얼굴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하다. 그래서 이렇게 몸을 상징으로 삼은 포스터를 보았을 때 우리는 갑자기 가치 체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면서 ‘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의 가장 확실한 상징’이라는 지극히 당연해서 잊기 쉬운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두 번째는 대선 기간은 후보들이 합법적으로 얼굴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인데 이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영향력이 있다’라는 뜻의 일본어 ‘카오가 키쿠(かおがきく)’는 ‘얼굴을 발휘한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권력이란 얼굴을 발휘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들에게 선거란 국민들에게 얼굴의 힘을 확실히 보여줄 흔치 않은 기회다. 물론 안철수를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더라도 대통령 후보로서 안철수는 다르지 않을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당선되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큰돈을 들여 대통령 후보가 되겠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얼굴을 한번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얼굴의 힘을 약화시킨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는 큰 희생을 치른 셈이다. 희생이란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선 절대로 치를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대가는 무엇일까? 하나는 말 그대로 ‘파격’, ‘새로움’일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볼 때 그것을 이해하려고 좀 더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안철수의 포스터는 그래서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다른 포스터보다 좀 더 길게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더 붙잡는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걸 더 오래 보지만 그렇다고 그 비정상을 긍정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대통령 포스터는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따라서 파격과 새로움만을 이 포스터의 대가라고 하기는 힘들다. 안철수 후보가 얻으려고 했던 건 안철수 후보의 변신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놀라운 목소리 변신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대중 연설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후보의 큰 장점이자 단점은 얼굴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순하다는 것이다. 유순해 보이는 목소리와 얼굴은 강인한 정치 지도자와 거리가 멀다. 모든 정치인이 강인해 보여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안철수 후보 캠프는 이를 극복해야 할 단점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목 놓아 부르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 거기에 두 팔을 크게 들어 극대화한 몸의 퍼포먼스. 이 두 가지 변화는 모두 유순함을 버리고 강인한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얼굴을 희생시켜 얻으려는 대가는 바로 그것이다. 주먹을 꼭 쥐고 두 팔 벌린 역동적인 몸, 굳게 다문 입술, 단호한 눈빛이 그걸 증명한다. 진짜 전략은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포스터가 주는 인상은 분명 그런 해석을 낳게 만든다.


이미지의 진실성
대통령 선거에서 포스터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공약이나 TV 토론, 대중 연설, 시장 상인들과 하는 악수,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 그 밖의 여러 활동과 견주면 미미할 것이다. 그런 것 중 결정적인 것은 없다. 대선 기간 동안 그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잘 물려 돌아가 조금씩 점수를 쌓고 득표수를 늘리는 것이리라. 그중 선거 포스터도 한몫하는 것이고. 포스터 디자인의 관건은 포스터에 표현된 얼굴과 구호가 실제 그 사람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동네를 걷는데 한 대선 후보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임시직 경비원 아들, 까막눈 엄마를 둔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꼭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 구호는 해당 후보가 속한 정당의 정체성은 물론 이 후보가 그동안 살아온 행보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포스터에 나온 구호와 얼굴 역시 그가 살아온 삶을 반추해서 판단할 것이다. 포스터 이미지는 그의 진실을 담고 있는가?

미소를 짓느냐, 근엄한 표정을 짓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의 대통령 포스터를 보면 결의에 찬 마크롱,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린 르펭 등 얼굴 표정이 다양하다. 그 얼굴이 얼마나 진실된지 프랑스 정치판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소탈해 보이는 인상, 엄격해 보이는 인상, 부드러운 인상, 지적인 인상, 날카로운 인상 등 각각의 인상은 외국인인 우리 눈에도 잘 보인다. 포스터 속 표정과 인상의 진실성은 그가 살아온 삶과 그동안 해온 행동, 내뱉은 말이 보증해준다. 그것은 선거 기간 동안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얼굴에 커다란 웃음을 지은 채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규범적이고 획일화된 행위보다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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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신(디자인 칼럼니스트)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