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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미국을 집어삼킨 빨간 모자 디자인으로 바라본 미국의 45대 대선
지난해 11월 ‘지상 최대의 정치 쇼’라 일컫는 미 대선에 크나큰 이변이 일어났다. 강력한 후보로 주목받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들은 정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을 벌였는데, 각 캠프에서 내놓은 디자인 대결 또한 흥미로웠다.

힐러리 클린턴의 정공법
당시 힐러리 캠페인 본부에서 나온 디자인은 말 그대로 그래픽 디자인의 정수라 할 만했다. 대선 캠페인 로고를 만든 펜타그램의 마이클 비에루트(Michael Bierut)는 힐러리의 이니셜 ‘H’와 진보적 가치를 상징하는 ‘>’를 결합해 형태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로고를 제작했는데 이는 최고의 기업 로고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페덱스(FedEx)의 접근법과 닮았다. 힐러리 캠프의 로고는 요즘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확장성 부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여러 가치와 이념을 담아 브랜딩 언어로 쉽게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팀 디렉터였던 제니퍼 키논(Jennifer Kinon)이 선도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패러디도 눈여겨볼 만했는데, 그중 무슬림 금지법을 비롯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트럼프의 차별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트럼프의 증오조차 사랑하자(Love Trumps Hate)’ 캠페인이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기성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잘라내기 위해 젊고 참신한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사그마이스터(Sagmeister)와 월시(Walsh)처럼 트럼프에 반대하는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힐러리 캠페인에 늘 찬사만 따랐던 것은 아니다. 특히 로고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정말 괜찮은 로고이지만 대중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클린턴의 로고는 은유적 형태이다 보니 한 번 더 곱씹어봐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엔 2% 부족했다. 게다가 H의 양쪽 기둥이 2001년 무너진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빨간 화살표는 비행기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나비 효과도 힐러리 캠프를 흔들어놓았다. 트럼프를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해 태어난 많은 프로젝트가 역설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며 그의 인지도를 광역화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클린턴 캠프의 로고.


페덱스 로고. E와 X 사이에 놓인 화살표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표현했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했던 H 로고.


교체 전후의 트럼프 펜스 로고.


트럼프의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새겨진 빨간 모자.


사그마이스터와 월시가 진행한 ‘핀들은 세상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Pins Wont Save the World)’ 프로젝트.

도널드 트럼프의 강공법
힐러리가 교과서적인 접근법의 정점을 찍었다면, 트럼프의 캠페인은 판을 깨기 위한 충격 요법에 가까웠다. 사실 트럼프의 캠페인은 처음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예를 들어 초기의 트럼프/펜스 (Trump/Pence) 로고는 성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트럼프의 승리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물론 그의 당선을 디자인 전략의 승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캠페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그의 캠페인 전체를 이끌었던 모토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과 이 문구가 새겨진 빨간 모자이다. 미국의 언론사와 여론조사 기관들이 다양한 여론조사 차트로 클린턴의 압도적 우위를 찬양할 때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처럼 중서부의 공업 도시 출신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떠드는 여론조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모두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긴 하지.” 그가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저 사람도 감이 떨어졌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마이클 무어의 예견처럼 ‘Make America great again’이 박힌 빨간 모자는 곧 중서부를 필두로 미국 전역을 빨갛게 물들였다(클린턴 캠프의 로고를 만든 마이클 비에루트 역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고백하기도 했다). 레이스 내내 그 빨간 모자는 주목을 끌었으며, 그것의 전시 효과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착용한 이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정치적 입지’를 이룰 수 있게 해줬다. 사실 트럼프의 지지자 중 많은 이들이 중서부 공업 도시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출신 백인이었고 오랫동안 사회적, 정치적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계층이었다. 그들에게 이 해괴한 자간과 횡간의 슬로건과 빨간 모자가 강력하게 어필했고 그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것이었다. 결과론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 클린턴의 스마트한 접근은 실패했고 트럼프의 원색적인 접근은 성공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복잡하게 이야기한 것보다 쉬운 것을 확실하게 어필한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앞서 말했듯 단순하게 디자인적 접근법에서 그들의 희비가 결정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찰나의 결정을 두고 수십만 혹은 수백만 표의 향방이 뒤바뀌는 선거 판에서 디자인의 가치와 활용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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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마이클 무어의 ‘트럼프가 이길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 michaelmoore.com/trumpwillwin, 마이클 비에루트 블로그 designobserver.com/feature/im-with-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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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이상인 딜로이트 디지털 뉴욕지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