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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경계 횡단의 매개체

고생대 캄브리아기 초기인 5억 4000만 년 전 출현하여 캄브리아기 해역에서 2억 3000만 년 전쯤까지 번성했던 절지동물, 삼엽충이다. 이 동물을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의 쓰타야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화석을 본뜬 모형이며 구매할 수도 있다. ‘서점에서 고생대 생물 화석 모형이라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옆의 책과 잡지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연주의, 생태 환경 관련 서적이다. 정원 가꾸기 실용서, 조류 관찰 가이드북, 야생화 도감부터 자연주의 사상, 생태 사상, 환경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넓은 의미의 자연·생태 환경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이 코너에서 자신의 관심이 다른 분야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분야로 관심의 촉수를 넓혀나갈 수 있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온라인에 비유하면 하이퍼링크 연결망을 타고 처음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 정보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뜻밖의 새로운 제안을 받고 놀라면서 호기심에 휩싸이는 경험.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은 그런 경험의 기회를 곳곳에서 제공한다.


복합적인 유혹의 그물망
퓨전 재즈 음악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기면 범상치 않은 스피커와 만난다. 압도당할 만큼 높지는 않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높이의 볼륨, 소리가 몸을 가볍게 휘감는 느낌, 쉽게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게 만드는 선곡. 공간 자체가 고도로 튜닝된 느낌의 이곳은 음악 코너다. 충분히 더 듣고 싶다면 음반을 가지고 넓은 창가의 감상 테이블로 가면 된다. CD는 빈 케이스가 제법 많다. 구매하기보다 빌리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 CD를 산다는 것은 편집과 구성이 끝난 하나의 세트를 산다는 뜻, 빌린다는 건 스스로 편집하고 구성한다는 뜻이다.

LP 진열대에서는 상태가 매우 좋은 오리지널 LP들이 즐거운 물욕(物欲)을 자극한다. 그 욕망을 참아내고 몇 걸음 옮기면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책, 잡지와 만난다. 이 두 번의 치명적인 자극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이어폰, 스피커를 비롯한 다양한 기기와 액세서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가격은 대체로 만만치 않지만 ‘다이칸야마 쓰타야라는 경험 그 자체’를 구매하는 추가 비용으로 여기면 비싸다는 생각이 잦아든다. 음반과 서적과 기기, 3중 유혹 망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지친 고객을 위해 이렇게 넓고 푹신한 의자를 준비해놨다니 역시… 하며 털썩 몸을 맡기는 순간 종업원이 다가와 정중하게 말한다. “이곳은 카페입니다.” 다음 일정 탓에 서둘러야 한다면 종업원이 ‘카페라고 표현한 잡지 라이브러리’를 훌쩍 둘러보면 될 것이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으면 될 것이다. 카페 벽면은 잡지로 가득하다. 폐간된 지 오래되어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잡지도 다수. 통속적인 대중지부터 취미 잡지, 문예지, 학술지까지 다채롭다. 과월호를 축쇄 제본한 것도 적지 않다. 흔히 보는 ‘북카페 및 빈티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낡은 잡지’가 아니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에는 앉아서 책을 읽수 있는 자리가 제법 많지만, 완전히 마음 놓고 오랜 시간 편안하게 앉아 있을 정도는 아니다. 편안함과 불편함의 딱 중간 수준, 대체로 30분 정도 집중하기 알맞다. ‘마음 놓고 집중하려면 식음료를 구매해야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택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정중한 제안을 받는 셈, ‘이곳은 책과 물건을 돈을 주고 구매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공지받는 셈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포컬 사이트’를 지향한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의 원조라 할 오사카 히라카타의 쓰타야 서점 입구에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줄여서 CCC는 쓰타야 서점 창업주 마스다 무네아키가 1985년에 설립한 기업의 이름이자 쓰타야 서점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마스다는 2011년 쓰타야 서점을 포함한 다이칸야마 T-사이트 (T-SITE)를 개점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포컬(focal) 사이트’라는 뜻을 담아 ‘T-사이트’로 명명했다. 1983년 오사카 히라카타에 개점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향점은 한결같다. 책, 영화, 음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 그는 서적, CD, DVD 등은 CCC의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마스다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일본 사회는 1980년 전후부터 ‘생활의 패션화’가 급속히 진행되어왔다. 의복은 신체를 쾌적하게 보호하기 위한 기능성보다 입는 이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측면이 중시됐고, 레스토랑은 허기를 달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여유로운 공간에서 식사를 즐기는 데에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패션을 확립하기 위한 샘플이 필요했다. 나는 레코드나 비디오, 서적 같은 물건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쓰타야의 출발점이다.”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중에서, 베가북스)

최근 도쿄를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은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지만, 많은 방문객은 미리 입수한 정보를 재확인하면서 주변을 촬영하는(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 데 몰두한다. 이에 따라 경험과 느낌이 피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을 제대로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창업주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에 단서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소프트가 지금까지는 ‘편집된 정보’로 소비자에게 전달됐지만, 앞으로는 ‘편집되지 않은 정보’로 전달될 것이다. 즉 ‘패키지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의 변화’가 이루어질 거라는 뜻이다.” 마스다의 이 말은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을 이른바 편집매장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바로잡아준다. 서로 다른 분야와 주제를 융합시키는 고도로 기획된 편집 결과가 쓰타야 서점인 듯하지만, 사실은 방문객이 스스로 융합시키고 편집할 수 있는 플랫폼을 펼쳐놓은 것에 가깝다. 마스다의 다음 말이 그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과거에 추천은 ‘1→n’ 도식으로 이뤄졌지만 현재는 ‘n↔n’으로 바뀌고 있다. ‘1’이라는 특권적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앞으로는 매장 공간이라는 매체의 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고객 가치와 일치하는 형태의 이상적인 추천 방법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다이칸야먀 쓰타야 서점 이후: 기능적 경계 분할을 넘어서
“아마존에서 ‘냉장고’를 검색하면 몇 종류가 나올까요? 1300건 정도입니다. 그 1300건을 모두 스크롤할 수 있을까요?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을까요? 고르다 지치겠죠. 오프라인 매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제품 하나하나에 담긴 고유한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100%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죠. 단순히 줄 맞춰놓고 판다면 아마존과 다른 점이 뭐겠습니까?”

2015년 5월 3일, 도쿄 세타가야의 후타코타마가와 역 근처에 개점한 쓰타야 가전에 관한 마스다의 말이다. 책, 영상, 미용, 가구, 인테리어, 사진, 모바일, 가전제품 등에 걸쳐 쓰타야 특유의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만날 수 있다. 가전이라는 말이 붙긴 했지만 서점으로 바꿔 말해도 좋을 정도로 각 코너에 관련 서적이 자리 잡고 있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의 기획과 개념의 무한한 확장 적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3년부터 CCC는 규슈 북서부 사가현 다케오시 시립 도서관 운영을 맡았다. 상용 매장의 개념을 공공시설에 구현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지만, 그 모험은 개관 13개월 만에 방문객이 100만 명 돌파함으로써 성공했다. 2017년 5월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5만여 권의 책과 잡지 등을 갖춘 13m 높이 서가의 무료 도서관, 별마당 도서관이 개설됐다. 여기에 60억 원을 들인 신세계 프라퍼티 측은 ‘일본 다케오시 모델을 따랐다’는 점을 밝혔다. 인터파크가 시도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3층 북파크도 벽면이 서고다. 서울 교보문고 합정점은 아트 상품 전문 코너부터 반려견 상품까지 다양한 구색을 갖췄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의 사례에서 상용성과 공공성의 경계, 상품 분야의 경계, 서비스 성격의 경계, 이 세 가지 경계의 높이를 낮추는 매개체가 책이다. 공간의 기능적 경계 분할을 뛰어넘어 공간 이용자가 자유롭게 횡단하며 의미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책이다. 주의하자. 무조건 책을 놓아둔다고 해서 그러한 매개체가 될 수는 없다. 콘텐츠, 즉 책 내용까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바탕 위에서 공간을 기획해야 한다. 그 물성에만 주목하는 오브제로서의 책이 아니라, 콘텐츠의 의미를 충분히 활성화시키는 수준이 필요하다.


아마존북스의 새로운 도전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2015년 시애틀 본사에 처음 오프라인 매장을 연 이후 올해 5월 뉴욕 맨해튼 콜럼버스서클 근처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규모는 370㎡ 면적에 소장 책은 약 3000권으로 많지 않다. 이후 뉴욕에 한 곳 더 열고 뉴저지,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모두 6곳에 매장을 열 예정이다. 아마존북스에는 계산원과 가격표가 없으며 현금은 받지 않고 신용카드나 아마존 회원 앱으로 결제할 수 있다. 책 바코드를 고객이 아마존 앱이나 매장 비치 스캐너로 직접 스캔해야 가격을 알 수 있다. 아마존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방대한 판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도서를 추천한다. 매장에서 실물 책을 본 뒤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을 오히려 장려한다. 아마존북스는 오프라인 테스트 베드에 가깝다. 오프라인 서점 고객의 구매 행태와 성향 등을 온라인과 연계시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오프라인 도서 구매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아마존북스는 쓰타야 서점과 대척점에 있다. 오프라인 공간 경험 중심의 쓰타야 서점과 달리 아마존북스는 온라인, 디지털과 연계된 서비스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쓰타야 서점이 책을 매개로 한 아날로그 경험의 다양화와 확장을 지향한다면, 아마존북스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쌓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편의성을 추구한다. 쓰타야 서점이 책을 매개로 공간의 스토리를 연출한다면, 아마존북스는 빅데이터가 책과 고객을 매개한다. 이 둘은 미래 서점의 다른 두 방향일 수도 있다. 만일 그 두 방향이 융합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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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표정훈 출판평론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