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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크리에이터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젊은 레트로 7 저 문 너머의 힙한 과거

리테일은 레트로 트렌드가 잠식한 대표적 영역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레트로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첫째는 예전의 콘텐츠를 끌어와 새로운 브랜딩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롤러장, 오락실, 만화방 등 주로 놀이 공간의 리메이크 형태로 나타난다. 이 경우 단순히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디자인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타깃의 연령대나 범위를 재설정하는 점이 눈에 띈다. 둘째는 스타일로 레트로를 수용하는 공간이다. 콘텐츠 자체는 동시대적이지만 과거의 낡은 양식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카페나 외식 공간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재미있는 점은 공간 대부분이 특정 연대를 정확히 고증하고 모사하기보다는 여러 시대의 양식을 혼합한다는 것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교의 폴 그레인지Paul Grainge 교수는 현대 레트로의 특징을 ‘노스탤지어 모드nostalgia modes’ 1) 라고 규정했다. 내용보다는 형식과 표현, 감성이 중요한 것이 오늘날 레트로 트렌드의 특징이라는 그의 주장은 레트로 스타일 인테리어의 혼재된 양식으로 증명된다.


1) 그레인지 교수는 1970년대의 레트로 현상을 ‘노스탤지어 무드’로 규정하며 21세기의 레트로는 이와 성질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1970년대의 레트로가 시대정신에 입각한 사회적 감정의 산물인 것과 달리 오늘날의 레트로는 일종의 미적 양식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순수하게 형식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레트로는 의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응용 및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프렌차이즈 만화 카페, 섬. 푸른 바다와 백사장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 디자인은 기존의 만화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어낸다. 볼 풀, 해먹 등도 설치해놓았다.


빈지노의 <타임 트래블>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롤캣.




아크네 스튜디오가 출시한 롤러스케이트.

만화방과 롤러장의 귀환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시대.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최근 다시 ‘방’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순적이지만 단절되길 원하면서도 연결되길 원하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 아닐까? 물론 이런 공간이 예전과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만화 카페가 좋은 예다. 흔히 만화방으로 불리는 이 공간은 과거에는 주로 ‘아재’들이 짜장면을 먹으며 성인 만화나 들춰 보는 장소로 여겨졌다. 대한민국 학교보건법상 청소년 유해 업소로 지정되기도 했으니 영 틀린 말이라곤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만화 카페 붐이 일면서 이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홍대 앞에 문을 연 ‘즐거운 작당’이 깔끔한 인테리어와 브랜딩으로 화제를 모으더니 섬, 벌툰, 콩툰, 놀숲 등 프렌차이즈 만화 카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간들은 과거의 퀴퀴한 만화방이 아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차별화된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또 일부 만화방은 바, 고양이 카페 등과 이종 결합하는 형태로 차별화를 꾀하기도 한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2016년 신사동의 콘셉트 스토어 BAT에서 ‘만화는 제9의 예술이다’를 주제로 실험적인 만화방 ‘코믹북, 더 레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롤러장은 레트로 공간의 리메이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2016년 인천에 문을 연 롤캣은 롤러장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천장의 미러볼, 네온사인, 철제 셔터 등 빈티지한 소품이 노출 천장, 노출 콘트리트 같은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색다른 시너지를 발산한다. 뮤지션 빈지노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힙 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이후 분당 서현의 ‘롤러와’, 용인의 ‘레인보우’ 등 경기권을 중심으로 속속 후속 주자들이 생겨났다.레트로 공간에 대한 관심은 패션 브랜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경우, 2017 F/W 시즌에 미국의 전통적인 식당과 바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너 컬렉션Diner Collection을 선보였는데 당시 롤러스케이트도 함께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시간을 콜라주하는 카페들
레트로 콘셉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공간은 카페였다. 이는 수년간 득세했던 프랜차이즈 카페의 몰락과 관련이 있다. 어느 지역, 어느 도시, 심지어 때로는 어느 나라를 가도 동일한 스타일과 규격의 프랜차이즈에 식상해지자 사람들은 특정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희소가치 높은 공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레트로는 공간에 희소성을 부여하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실제로 수십 년 전 제작한 간판과 조명, 타일 등은 매끈하게 가공된 프랜차이즈 카페의 인위적 느낌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설령 당대에는 대량생산된 오브제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특유의 분위기가 생겨났다. 효창공원역의 다과상사는 레트로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위기를 극복한 케이스다. 이곳은 본래 ‘김약국커피컴퍼니’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법 개정에 따라 ‘약국’을 상호명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필요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슈가미트는 오래된 빵집 분위기를 원한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인더스트리얼과 빈티지 스타일을 함께 표현한 레트로풍 공간을 연출했다. 을지로의 커피한약방은 통상적인 레트로의 범주를 넘어 개화기, 아니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커피한약방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조선 시대에 의학과 서민들의 치료를 담당하던 관청 혜민서 터라는 데에서 착안한 것. 카운터와 지난해 3월 확장한 별관 2층에서 만나게 되는
자개농은 카페의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다.




다과상사. 브랜드와 공간 디자인은 슈가미트에서 맡았다. 카페의 오래된 소품은 을지로를 돌며 직접 구한 것이다.






커피한약방.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 모두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중후한 가구와 소품으로 꾸민 공간이 흡사 개화기 시절에 와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 이창화 기자
프릳츠 커피 컴퍼니(이하 프릳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도화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원서점과 양재점을 추가로 오픈했는데, 도화점과 원서점의 경우 한옥 건물에 들어섰다. 프릳츠의 가장 큰 공간적 특색은 시간의 중첩과 공존에 있다. 통상 ‘레트로’ 하면 떠오르는 1970~1980년대의 감성은 물론이고 이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소품도 눈에 띈다. 도화점 2층 벽면에 걸린 책가도 콘셉트의 그래픽 디자인에서 엿볼 수 있듯 이들에게 과거란 향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창작의 소스에 가깝다. 앞서 소개한 세 곳의 카페가 낡고 오래된 무드를 표방하고 연출한 것이라면, 장충동 태극당은 진짜 말 그대로 오래된 공간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이곳은, 지난해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던 2층 공간을 개방했다. 태극당 신혜명 실장은 이곳을 “1970~1980년대 태극당에서 사용했던 ‘리얼’ 빈티지 세 가지만으로 완성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1973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하던 제빵 작업대를 테이블로 활용하고, 오픈 당시 사용하던 조명을 다시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의자 또한 1982년부터 2003년까지 강남역 인근에 있던 태극당 예식장에서 사용하던 것을 수선한 것이라고. 지난해에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와의 협업을 통해 시간이 지나며 축적된 아이덴티티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프릳츠 도화점 외관과 원서점 내부.






 프릳츠의 각종 홍보 포스터.


프릳츠의 기프트 세트. 콜드 브루의 경우 자양강장제에나 어울릴 법한 병에 담아 레트로 느낌을 강조했다.

태극당 2층. 테이블에 놓인 제품들은 브라운브레스와 협업한 ‘프로젝트 B’다. 브라운브레스는 2013년부터 바리스타, 스케이트보드 크루, 부채 장인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지난해에는 태극당의 캐릭터 빵 아저씨를 모티브로 한 티셔츠와 파우치, 시그너처 메뉴인 시본케이크 패턴을 이용한 에코백, 모나카 아이스크림의 보관과 이동에 유용한 보냉백 등 총 여덟 가지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선보였다.

Interview
김병기 프릳츠 커피 컴퍼니 대표

“한국적 감성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춰 공간을 기획했다.”



‘프릳츠’라는 이름을 붙인 건 사람들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마치 ‘비틀스’처럼 ‘프릳츠’가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인식되길 바랐던 것이다. 사실 브랜딩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레트로한 감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고, 단지 한국 고유의 것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인테리어 역시 특정 시대를 재현하기보다는 ‘한국적이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Interview
조인혁 프릳츠 커피 컴퍼니 디자인 디렉터

“한국식 빈티지를 아우르는 브랜딩을 추구했다.”



프릳츠에 합류한 것은 2016년이지만 2014년에 프리랜서로 프릳츠 로고를 디자인했다. 왜 카페 로고가 물개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커피와 전혀 상관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대표님의 농담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웃음) 프릳츠의 레트로가 특정 시기의 스타일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에 나올 법한 소품, 서양의 판화 기법, 한국의 전통 문양, 1980~1990년대의 광고 디자인 등이 믹스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식 빈티지 혹은 레트로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브랜딩을 추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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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