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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0.0001%의 토종 크리에이티브 보안여관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는 여느 토종 쌀 전시가 아니었다. 농부가 지켜낸 볍씨, 예술가의 창의적 발상, 요리사가 지어낸 쌀밥이 어우러져 서사가 충만한 ‘쌀’을 우리 몸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문화적 순환의 첫술이었다.


지난 10월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가 열린 통의동 보안여관.


이소요 작가와 이근이 농부가 협업해 제작한 ‘토종 벼’ 표본.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에서 전시한 대나무 도시락, 주걱, 쟁반과 팝업 마켓에서 판매한 토종 쌀 비누. 07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빛과 냄새, 습도를 예민하게 조정한 이끼에서 토종벼가 싹을 틔우고 있다.

“우리의 내장과 치아, 우리의 문화, 식탁은 쌀과 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가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선보인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의 개요 중 강렬한 한 문장이다. 보안여관의 생활 밀착형 예술 시리즈 ‘000 예술이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쌀, 그것도 토종 쌀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에서 조사된 토종 벼 품종은 1451종에 달했다. 이후 토종 벼는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우리 땅에서 강압적으로 밀려났다. 1940년대 군량미 보급을 위해 전체 재배 면적의 90%에 일본 품종을 심었고, 1960년대 중앙정보부는 ‘식량 자급’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에 부합하도록 통일벼, 유신벼 등의 개량에 집중하며 다양성을 포기해버렸다. 보안여관은 이러한 식민지 정책이나 국지적인 벼 재배 환경 연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는 기업화된 농업과 음식이 단절시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할 실마리를 밥상에서 찾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새까만 까락이 흩날리는 토종 벼의 멋에 흠뻑 취했다. 오늘날 사회·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연구 대상, 타고난 조형미를 풍기는 탐미적 대상으로 토종 벼를 이야기하게 된 이유다. 2016년 늦봄부터 예술가, 토종 벼 재배 농부, 도시 농부, 요리사, 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10차례 스터디를 진행했다. 쌀에 대한 강연을 열고, 농장을 방문해 직접 모내기하고, 15개 품종의 토종 쌀 테이스팅 워크숍을 열고, 전국 토종 벼 생산지를 찾아가 다품종 소량 생산의 토종 벼를 놓지 않는 소농들의 태도를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풍토, 시간, 사람’이라는 열쇳말을 찾아냈다. 이를 주제 삼아 지난해 10월 16일에서 11월 4일까지 <흔들리며 서서; 교감식물> 전시를 열기도 했다. 전시 기간 동안 좌담, 테이스팅 워크숍, 팝업 스토어, 마켓 등 맛과 멋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어우러졌다. 전시에서는 토종 벼의 주변을 이루는 풍경을 채집한 김준의 사운드 아카이브 ‘층간소음’, 이소요의 60여 종 토종 벼 표본 ‘우보농장의 토종 벼 품종들’, 토종 벼의 성장기를 시각, 후각 등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김지수의 설치 작품 ‘공중정원’ 등 식물을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닌 하나의 생물체로 바라본 작가들이 벼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전체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은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는 ‘순환하는 삶, 노동이 소외받지 않는 삶’을 동경하고 실천하는 13년 차 도시 농부다. 화학비료가 없던 5000년 전 한국 전통 농법 그대로 토종 벼를 재배하는 그는 ’토종’을 ‘자기가 농사짓는 땅에 고정화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종종 크리에이티브의 진정성을 이야기할 때 ‘아이덴티티’, ‘정체성’, ‘우리다움’을 모색한다. 어디서부터를 진정한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반드시 고정시킬 것’부터 보살피는 것이 독창성의 타당한 뿌리가 아닐까. 디자이너들이 토종 벼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자문
이근이 우보농장 농부

 “이 땅에서 자랐던 어떤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



이근이 13년 차 도시 농부로 고양시 벽제동에서 토종 벼 농사를 짓고 있다. 내 밥상의 자급을 목표로 밭 작물로 시작한 것이 쌀로 확대됐고, 지난 2월에는 토종 쌀 64종을 수확했다. www.facebook.com/Ubonongjang
농부에게 토종 벼를 보전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5000년 역사 동안 인류가 농사를 이어온 것은 순환하는 삶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개량된 벼가 나온 것은 100년 남짓한 최근의 일이다. 농사의 핵심은 순환하는 씨앗인데, 그게 바로 토종만으로 가능한 거다. 쉽게 말해 개량종은 한 해가 지나 다시 씨앗을 수확해 심으면 전과는 다른 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근데 토종은 심으면 전에 심은 모습 그대로 나온다. 사실 국내 쌀 문제 중 토종 벼에 대한 것은 0.000005%밖에 안 되는 이야기일 거다. 그런데 이건 근본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이 땅에서 자랐던 어떤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최소한 1% 정도는 그런 것이 남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한 품종이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기까지 몇백 명의 농부가 시간을 들여 육종 방식을 찾아냈을 텐데, 별 볼일이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개성도 있고 맛도 훌륭하니 욕심이 났다.

보안여관 같은 문화·예술 기관과 협업하는 농부는 흔치 않다.
토종 벼에 빠진 게 단순히 종자 보존 때문만은 아니다. 나 혼자 할 수도 없는 거고 억지로 될 일도 아니다. 씨앗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커가면서 바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마냥 아름다웠다. 다양성의 아름다움에 반한 거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개량종 벼의 모습과 토종 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알던 한 가지 모양, 색깔, 키가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모든 식물은 자연과 어우러지며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과 같은 흥미가 있었다. 겉을 보건 그 속을 보건, 문화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표현될 여지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토종 벼가 쌀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맛과 멋의 다양성을 불어넣는 일이다. 지금까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15차례 이상 테이스팅 워크숍을 진행했다. 올봄에는 ‘내 논, 내 품종 갖기’라는 공유 농업 프로젝트도 추진할 예정이다. 쌀 맛이 다 비슷비슷했다면 난 진작에 안 했을 거다. ‘쌀이 이렇게 다를 수 있어?’ 했던 맛의 다양성이 가장 먼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토종 벼는 품종의 고유성 자체가 문화적 상품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함경도에서 키우던 북흑조라는 벼는 호방한 멋이 있다. 겉이 검고 까락이 없고, 대나무처럼 대가 굵고 마디가 있다. 서 있는 것만 봐도 멋있어서 소위 말하는 남성미가 느껴진다. 나는 그저 생산자이자 기획자이지만 창작자라면 사진이나 음악에도 영감받을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만한 역사성과 스토리가 있는 개량종이 있을까? 단순히 농민들이 힘들게 키운 농작물을 사준다는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 안에 진짜가 있다, 영감의 보고’가 있다고 본다면 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쌀과 관련된 상품으로 막걸리의 가능성을 종종 이야기해왔다.
1910년대에 일본은 조선의 주막에서 파는 술을 조사했다. 쌀 확보를 위해 막걸리를 못 빚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전국에 12만 개 주막이 있었다. 우리는 여관을 주막이라 할 정도로 술 먹는 문화가 남달랐다. 12만 개라고 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막걸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가정집까지 더하면 엄청났을 거다. 그 막걸리는 분명 그 동네의 쌀로 빚었을 것이다. 빚는 사람마다 다르고 빚을 때마다 맛이 다른 이 술 문화를 지금까지 잘 보존했다면 와인이나 사케는 게임이 안 될 정도의 맛의 다양성이 확보되었을 거다. 나는 오늘날 그 가능성을 토종 벼에서 본다. 북흑조로 술을 빚었을 때와 자색이 나는 자광도로 빚었을 때 전혀 다른, 색깔부터 맛, 스토리까지 특색이 확실한 술이 나온다.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디렉터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

“대중문화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는다.”


최성우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예술경영학을 공부한 뒤 1992년부터 프랑스 문화성 문화정책부문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이자 통의동 보안여관과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 대표를 맡고 있다. www.boan1942.com
‘000 예술이다’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로 음식을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프랑스 문화성에서 일하던 1990년 초, 당시 문화부장관 자크 랑Jack Lang이 식품과 관련된 부서를 프랑스 문화성 산하기관으로 신설한 데 대해 문화계 원로들이 크게 반발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정통성을 따지는 이들은 ‘먹는 행위’를 하위 문화로 본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문화가 모두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 자크 랑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예술 또한 순수 미술만 있는 게 아니라 생활문화, 디자인, 장인의 영역이 있듯 여기에 음식 문화의 영역도 맞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쌀 중에서도 토종 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식량으로나 종자로나 분명한 상징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봐도 조형적으로 너무 예쁘지 않나. 까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야생적인 이 모습 말이다. 대량생산용 기계로 탈곡을 하다 보면 질긴 까락이 엉켜 기계가 고장 나기 일쑤다. 이에 점차 개량을 해서 이젠 벼에 까락도 잘 없다. 내게는 첫눈에 식물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곤충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길 수 있나 들여다보다 만난 첫 번째 키워드가 ‘토종 종자’였다.토종 쌀 등 전통문화를 지키는 방법으로 비즈니스적 측면을 강조하는 편이다. 토종 쌀뿐 아니라 그 어떤 문화·예술도 지속적으로 소통되고자 한다면 소위 말하는 ‘사업성’을 고려해야 한다. 토종 쌀을 살리겠다고 정부 예산을 사용하거나 다른 일을 해서 마련한 비용으로 운영, 활동비를 갈음하는 일은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다. 그 자체로 소위 영업이 되고 상품이되어야 한다. 대중문화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쌀 문화를 라이프스타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순수 예술과 대안적인 액티비즘의 간극이 겹치는 지점에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본다. 혹자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을 유행이나 반짝 트렌드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나의 정체성이다. 내가 어떤 삶의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정체성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옷도 신발도 음식도 자신의 정체성대로 취하는 것이기에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진정한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보안여관은 음식 문화에 대한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아무거나 먹는다는 것은 곧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 산업과 문화는 전체 산업 구조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안에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적 곡물 재배 논리 등이 논의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어렵다. ‘테이스트’라는 게 굳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자신만의 취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혁명가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코메야처럼 쌀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숍은 시기상조일까?
한국은 무엇보다도 일단 밥에 대한 태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의 쌀을 이해하려면 밥과 곁들이는 각각의 음식 문화를 숙지해야 할 정도로 밥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쌀 가공품도 어마어마하다. 사케만 해도 수천 종이 있고, 축구 선수 나가타도 은퇴 후 사케를 빚을 정도다. 넷플릭스의 <사케의 탄생>이라는 다큐를 보면 그 바탕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도 최근 들어 막걸리에 대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지만 쌀 문화 자체가 하층 문화로 통용되는 한 한계가 있다. 서로 다른 쌀 품종이 인지되고 다양한 가공품과 주변의 그릇, 주방 도구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보안여관이 준비 중인 5월의 새로운 전시도 쌀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올해가 한영 교류의 해이고 보안여관도 문화 교류 기관 중 하나다. 한국과 영국에서 같은 주제로 전시를 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 쌀이라는 제목을 달지는 않더라도 결국에는 쌀 문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쌀 전시가 식물로 쌀을 본 거라면, 이번에는 ‘곡물의 이동’을 통해 이주 문제, 자립과 생존 문제, 식민주의와 비식민주의 같은 영역을 다룬다. 서남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쌀이 주식인 문화를 지닌 채 영국에서 살아가는 영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이 교류한다. 국내 토종의 문제만이 아니라 8300km 밖에서도 여전히 쌀 문화를 둘러싼 고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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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은아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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