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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패션과 아트 사이를 넘나드는 디자이너 한펑
패션 디자이너 한펑韓枫은 중국인 최초로 뉴욕 패션 컬렉션 무대에 선 인물이다. 1990년대 레이 가와쿠보, 이세이 미야키 등 일본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를 평정하던 때, 한펑은 고급 원단과 수공예의 교집합이 이끌어낸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을 선보이며 중국 스타일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과 예상을 날려버렸다. 한펑의 명성은 패션쇼 이후 더욱 높아졌다. 유행에 민감하게 날을 세우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패션의 확장과 포용을 보여주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시도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가인 앤서니 밍겔라의 작품 <나비부인>을 시작으로 오페라와 영화 의상 및 소품 제작을 맡았으며 2014년부터는 홈 컬렉션을 시작으로 공간 디자인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와 미국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건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를 열고 해외에 중국 컨템퍼러리 작가를 소개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우리가 한펑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최초’라는 수식어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중국계 패션 디자이너로서 상업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개척한 것, 중국의 전통과 철학을 포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탐구한 점, 그리고 패션과 디자인, 예술과 더불어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활동을 해온 기발한 이력 때문이다. 그녀의 발자국은 중국인 특유의 융통성과 포용성이 곧 글로벌로 이끄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962년생. 중국미술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1985년 미국으로 이민 간 후 백화점 바이어를 거쳐 패브릭 회사에서 근무했다. 1993년 첫 번째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연 이후 무대 의상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혀 오페라 <나비부인> <접골사의 딸> 등과 영화 <베스트 키드> <에픽> 등의 의상과 소품 제작을 맡았다. 2014년에는 타이핑 카펫 컬렉션을 론칭했으며 상그릴라 지앙, 안다즈 시톈디 등 중국 내 유명 호텔 유니폼을 제작했다. hanfeng.com


엔서니 밍겔라 연출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 의상(2005~2006).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패션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명품 패브릭 회사에서 일할 때 최고급 원단을 다루었다. 그러면서 몸에 맞춘 옷이 아닌 몸을 감싸는 옷, 옷감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일본식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아닌 재료 자체에 집중하는 옷에 관심이 생겼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고 패션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패션 디자이너가 시도할 수 없는 창의적인 옷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듯 몸을 바탕으로 옷을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992년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하게 된 것은 나에게도 사건이었다. 당시 패션계가 일본 디자이너에게 열광했던 터라 동양의 신진 디자이너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운 좋게 데뷔 다음 해에 뉴욕 패션 위크 레디투웨어 런웨이 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이 반한 당신의 스타일은 무엇이었을까?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 에이미 스핀들러Amy Spindler가 이런 글을 남겼다. “한펑의 옷은 로메오 길리Romeo Gigli가 보여주는 역사주의 로맨스와 이세이 미야케가 주는 하이쿠 시구 같은 여운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들에게 한펑 스타일은 매력적인 중국 스타일이 아니었다. 일본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서양이라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틈, 그 차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패션은 지극히 중국적인 철학, 습성, 기질에서 왔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옷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넉넉한 품의 옷은 곧 융통성과 포용성을 뜻한다. 풍성한 옷이 세련되게 보이려면 원단 자체뿐만 아니라 손맛이 중요하다. 좋은 원단은 향이 번지듯 몸의 움직임에 따라 고귀함을 뿜어내고, 손으로 수백 번 매만져 완성된 옷은 진실된 감정을 전한다.

컬렉션 진출 이후 이름이 알려져 상업 브랜드로 성공할 기회가 있었는데 왜 일반적인 길을 걷지 않고 부티크 숍을 택했나?
돈을 벌고 유명해지려면 백화점을 통해 판매해야 한다. 사실 그런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7년간 컬렉션 무대를 준비하면서 빠르게 변해가는 패션 시장의 흐름을 읽고 매번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기보다는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하는 데 흥미와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보다 시간, 성공보다 만족이 필요했다.

2005~2006년에는 앤서니 밍겔라의 작품 <나비부인>에서 무대 의상과 소품 제작을 맡아 영국 런던 국립극장으로부터 올리비어 어워드Olivier Awards 상을 받았다.
앤서니 밍겔라의 부인이 내 고정 고객이었는데 그녀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 클라이언트의 기호와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기존 작업과 달리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의상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가장 공이 들었다. 오페라 의상은 주인공의 감정까지 의상으로 표현하되 속삭이듯 전달해야 한다. 2020년쯤 앤서니 밍겔라의 <나비부인>을 다시 상영할 예정이라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페라 무대 협업 이후 디자인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하고 싶었다. 2016년 뉴욕 누에 갤러리Neue Galerie에서 열린 전시 <클림트와 빈 황금 시대의 여성들Klimt and the Women of Vienna’s Golden Age, 1900–1918>처럼 클림프 시대의 복식을 한펑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흥미로운 시도도 해봤다. 요즘은 패션과 디자인, 예술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당시만 해도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계에서 통찰력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트렌드에 명민해야 하지만 나에게는 트렌드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고민이 축적된 결과가 홈 컬렉션이다. 오랜 시간 걸려 완성한 타이핑 카펫Tai Ping Carpets 컬렉션은 바느질 장인과 컬래버레이션한 것이다. 울, 아마, 실크, 레이스 등 여러 소재를 이용하고 자연에 가까운 색과 질감을 추구했다. 다음에는 젊은 중국 패션 디자이너와 협업해보고 싶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아르데코 스타일로 완성한 레지던스 공간 디자인.


오페라 <세멜레Semele>의 의상 디자인(2009).


타이핑 카페트 컬렉션 이 깔린 공간(2016).


뉴욕 누에 갤러리에서 열린 <클림트와 빈 황금 시대의 여성들 1900–1918>전(2016).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중국 내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며 호텔 유니폼부터 공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2010년 이후 대형 호텔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여러 제안이 들어왔다. 2005년 상하이 진지앙 호텔Jinjiang Hotel에부티크를 내고 나서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한정적이라 매년 한 가지 정도만 선택해 작업했다. 프로젝트는 최대한 한펑 스타일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중국인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서양을 뛰어넘는 다른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본인의 스타일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중국의 철학, 사상, 기질이 반영되었지만 중국 스타일은 아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니다. 어느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신선한 스타일이고 싶다. 세계인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생경하고 낯선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나는 중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출신 디자이너에게는 중국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이방인이 봤을 때 새로워 보일 수 있지만 한 스타일로 굳히기에는 부족하다. 중국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화법이 필요하다.

중국과 미국 디자인 시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상업적인 프로세스로 일한 적이 없어 확실한 비교는 불가능할 것 같다. 중국 디자인 시스템은 아직 성장 중이기에 당연히 시스템이 미약하다. 이는 자생적으로 보완될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확실히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패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많은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중국 전통 요소를 세련된 방식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우리 세대는 유학을 통해 글로벌한 마인드를 배우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 성공 법칙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본토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젊은 친구들이 더욱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매년 중국 본토에서도 수천 명의 디자이너가 탄생한다. 이미 경쟁이다. 세계 시장은 중국 밖에 있지 않다. 중국 시장 안에 이미 많은 외국 브랜드가 들어왔고 수준 또한 높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려 하기보다 중국 시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도 방법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저렴하게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많고 자체 네트워킹이 강력하다. 중국이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중국 디자이너에게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고 본다.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한정된 범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순발력, 1가족 1자녀 정책으로 자라난 세대의 높은 자신감과 야망. 요즘 젊은 중국 디자이너의 최대 장점이다.

세계 시장에 진출한 1세대 중국 디자이너로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중국인 특유의 융통성과 포용성을 다방면으로 활용해보라. 다른 영역,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컬래버레이션하거나 자신의 작업을 마음껏 카테고리 밖으로 던지다 보면 중심점을 찾게 된다.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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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계안나 프리랜스 기자 사진 제공 한펑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