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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동서양 어느 것도 아닌 자신, 그래픽 디자이너 허젠핑
그래픽 디자이너 허젠핑何建平의 포스터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개최하는 어워드 수상을 포함해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로운 상은 다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수화에 알파벳을 절묘하게 집어넣거나 영문 폰트를 수묵화로 표현한 포스터를 본 이들은 중국 디자인을 가장 글로벌하게 표현했다며 칭찬했지만 실제 허젠핑의 생각과 의도는 이와 달랐다. 보통 오랜 해외 유학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깨닫게 되는 이들과 달리 허젠핑은 중국 스타일에 곁을 내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이 중국, 독일, 동양, 서양 등 어떤 카테고리로든 묶이길 원치 않으며, 독일 베를린과 중국 항저우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두고 전 세계의 학교, 미술관, 박물관과 함께 일한다. 중국과 늘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있기를 바라는 허젠핑. 그래서인지 중국 디자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비즈니스 구조에 잠식되어가는 회사, 돈과 트렌드를 따라 가볍게 움직이는 디자이너 등, 그는 들뜬 분위기에 가려진 중국 디자인의 가장 어두운 곳에 시선을 둔다. 화려한 이슈가 넘치는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 각자의 작업에 매달리는 수만 명의 중국 신진 디자이너에게 말이다. 중국 디자인에서 소외된 이들은 사실 중국 디자이너다.


1976년생. 중국미술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예술 대학교에서 컨템퍼러리 아트로 석사 학위를, 베를린 자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베를린, 2007년 중국 항저우에 스튜디오를 열었으며 포스터, 책, 패키지 디자인부터 공간 디자인, 브랜딩, 출판, 전시 기획 등을 하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공모전, 일본 토야마 트레엔날레 국제 포스터 공모전, ADC 뉴욕 어워드 , 핀란드 라흐티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중국 닝보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등에서 수상했다. hesign.com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의 포스터, (왼쪽부터) ‘Sprited’, ‘Peace’, ‘Leisure’. 선이 아닌 무수히 많은 점으로 글자 주변의 여백을 채웠다.

당신의 디자인 스튜디오 Hesign은 어떤 곳인가?
허젠핑 또는 그he가 부지런하게 디자인design 하는 곳이다. 2002년 독일 베를린, 2007년 중국 항저우에 스튜디오를 열고 유럽과 아시아 디자인을 거시적 관점으로 통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에 시작한 ‘디자인 서머’가 있다. 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일러스트레이션 등에서 초석을 다진 전 세계 디자이너를 독일과 중국으로 초청, 자국의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최근에는 중국 V&A 갤러리의 디자인 전시 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당신의 프로젝트는 교육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성향인가 클라이언트의 요청인가?
나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클라이언트(브랜드) 작업이다. 대표적인 북 디자인 <뉴 보이스 New Voice> 또한 국제 그래픽 연합회 AIG(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의 의뢰로 만든 것이고, 프로덕트 브랜드 호노스Hoknows, 차이나 디자인 뮤지엄, 민생 아트 뮤지엄의 브랜딩 로고·패키지·콘셉트 등 아트 디자인 전반을 맡았다. 나의 프로젝트가 예술 작업처럼 느껴지는 것은 클라이언트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독립 스튜디오는 어떤 클라이언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노선이 결정된다. 본인의 작업 성향과 맞는 클라이언트와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좋다. 상부상조할 수 없는 관계라면 의뢰를 거절해야 한다.

2016년 독일 에센에서 열린 중국 컨템퍼러리 디자인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유명 디자인 큐레이터 르네 그로네르트Rene Grohnert와 함께 준비한 전시로 70명의 중국, 홍콩, 타이완, 마카오 출신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전시는 책 <그림 그리기 중국어Schriftbilder Bilderschrift – Chinesisches>로도 출간됐다. 교류 목적으로 연 전시인데, 늘 이런 전시를 추진할 때마다 서양 디자인과의 차이를 발견하려 드는 우리의 이분법적 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는다. 20세기 이전부터 각 나라의 디자이너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그들의 디자인은 국가 정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혼재된 모습으로 성장했다.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은 알고 보면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일본 디자이너 가메쿠라 유사쿠가 디자인한 1964년 올림픽 로고에서는 어떤 동양적 단서도 찾을 수 없지만 호주 디자이너 헨리 스테이너Henry Steiner가 디자인한 HSBC 로고는 동양 철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스위스 그래픽 디자이너 요제프 뮐러브록크만Josef MüllerBrockmann의 디자인 작품에는 일본 젠 스타일이 아른거린다.

당신의 포스터 디자인 ‘East and West’, ‘In Between’은 글자를 먹으로 휘갈긴 것처럼 표현했고 ‘New Graphinc Design’, ‘Olympia’에는 산수화를 응용했다. 중국적인 뉘앙스로 볼 수 있을까?
나의 결과물에서 억지로 중국 키워드를 찾아내려고 하는데, 디자인에서 지형학적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문화와 예술은 국가나 지리적 경계의 틀로 정의할 수 없다. 난 한국 시인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중국 서예의 감성을 느끼기도 한다. 흑백의 대비를 살리고 붓글씨로 영문 폰트를 적었다고 해서 이것을 중국적 스타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서예를 좋아했다. 중국미술학원에서 배운 그래픽 디자인 또한 먹과 붓을 쓰는 일이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몸에 밴 총체적 경험이 디자인에 스며들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1978년 중국은 문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예술 분야를 지원했다. 당신이 대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중국에서 디자인 붐이 일었다고 들었다.
개혁과 동시에 급속히 성장한 경제는 광고 산업을 부채질했고, 인쇄물을 중심으로 한 그래픽 디자인 분야가 떠올랐다. 당시 그래픽 디자인 학과도 인기였다. 서양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이들이 지도 교수를 맡았는데 그 덕분에 내 세대에는 학교에서 서양 디자인(주로 유럽 디자인) 역사를 배웠다. 하지만 당시의 디자인 교육은 개인의 성향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저 시장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디자인했고 디자인 평가는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디자인 기술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허진핑의 개인 작업 ‘동양과 서양East and West’(2017).


중국 컨템퍼러리 디자인 전시 카탈로그 <그림 그리기-중국어>(2016).


2004~2005년간 AGI 회원들의 포트폴리오와 베이징 AGI위원회 보고서를 담은 책 <뉴 보이스>.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언폴딩 키스 고다드> 전시 포스터(2011).


2007~2017년까지 AGI 협회의 자료를 담은 연감(2017).

어떻게 독일 유학을 결심했나?
대학생 때부터 독일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독일 디자이너 군터 람보브Gunter Rambow, 홀거 마티잔트Holger Matthiesand가 롤모델이었고, 말보다 한 장의 이미지가 더욱 강렬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포스터 디자인을 좋아했다.

독일 디자인 교육은 중국과 어떤 차이가 있나?
독일은 개인이, 중국은 전체가 중심이다. 독일은 개인이 최대한 성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지만 실천보다 이론이 강하다. 중국은 기준을 정하고, 모든 학생이 기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동일한 과정으로 공부한다.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실천이 비즈니스 시장에 쏠려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홍콩 폴리텍 대학, 중국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는 가르치는 데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얼마 전 모두 사임했다.(웃음) 학교에서는 반복 교육을 강요했는데 매우 힘들었다. 요즘 학교에는 이름도 생소한 디자이너 학과가 급속히 생겨나는 중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 스타 디자이너를 초빙해 실무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는데, 결국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 교육이라 씁쓸할 때가 많다.

중국의 디자인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중국 디자인 카테고리 안에 묶이지 말라는 것. 중국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독창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는 직업이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실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고, 상대의 일 또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독일 베를린에 이어 중국 항저우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2000년 이후 중국 그래픽 디자인계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이어진 교류 전시가 큰 자극을 주었고 세계 시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그래픽 디자인을 주 무기로 내세워 손을 밖으로 뻗었는데 그중 하나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당시 독일과 중국 양국에 스튜디오를 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던 터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02년 베를린에 스튜디오를 처음 오픈한 이후 2005년 상하이로 진출해 중국 스튜디오를 오픈했다가 2007년 디자인 환경이 더 나은 항저우로 옮겼다. 중국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가장 먼저 힘쓴 일은 교류 전시와 디자인 포럼 추진이었다. 나의 디자인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 또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중국은 더 이상 카피캣의 나라가 아니다. 앞으로 5년 내 중국 디자이너는 최고의 연봉을 받는 직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중국 디자인 시장만 놓고 보았을 때는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없다. 특히 모바일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기술 등 기술·제조·디자인이 3박자를 이룬 영역에서는 대륙의 힘이 독보적이다. 하지만 돈이 아닌 디자이너에 무게 중심을 옮겨 중국 디자인을 살펴보라. 중국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는 중국 디자이너를 찾을 수 있나? 세계적인 건축 그룹 판타그램 아키텍츠Pentagram Architects가 만든 OPPO 건축물 랜드마크와 같이 중국에는 서양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작품 일색이다. 아직까지 중국 디자인계는 외국 디자인의 기준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큰 프로젝트일수록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에게 맡기려 한다. 아무리 중국 디자인이 급성장했다고 해도 순수하게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외국 디자이너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다. 외국 브랜드 또한 중국 디자이너와 관계를 맺는 이유가 중국 시장에 침투하기 위한 것일 뿐 장기적인 호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매년 새롭게 등장하는 수천 명의 중국 디자이너들은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 중국 디자인이 성숙하려면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활동이 늘어나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중국 디자인이 아니라 허젠핑 스타일, 하라 겐야 스타일 등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중국 기업과 브랜드들이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고 기회를 만들어 그들의 등을 두드리고 성장판을 열어주면 좋겠다. 브랜드도, 디자이너도 돈보다 아이디어가 고이는 장소에서 만나고 뭉치길 바란다.

중국 디자인의 큰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디자이너. 그들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당신과의 인터뷰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대륙 디자인에 대한 찬사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어떤 현상에 의문을 가지고 뒤집어 살펴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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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계안나 프리랜스 기자 사진 제공 허디자인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