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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Project 업의 변화를 함축하는 오피스 디자인 - 2
요즘만큼 일 자체가 화두로 떠오른 시대가 또 있었을까? 산업혁명 이후 줄곧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주었던 기술 혁신은 이제 힘을 다한 모습이다. 본격화된 경제 저성장은 고용 불안정을 낳았고 인구 감소와 고령 사회의 도래는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놓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의 확산은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위기 속에서 찾아오는 법. 현명한 자세와 태도로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살펴보면 지금의 격변기는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이에 그 출발선으로 우리 주변의 오피스 디자인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오피스 디자인은 구 본사의 미끄럼틀 같은 인테리어를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오피스 디자인은 그 자체로 업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으며 일의 미래를 제시하는 지향점이기도 하다. 스마트해진 기업의 오피스 디자인부터 창조적인 이합집산, 공유 사무실의 디자인까지. ‘어떻게 하면 더 스마트한 업무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만한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개방과 프라이버시의 시소 게임
플로렌스 슈스트 놀Florence Schust Knoll은 사무실 인테리어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다. 미스 반데어로에의 가르침을 받은 그녀는 바우하우스의 합리성을 건물 내부의 레이아웃에까지 적용시켰다. 그녀는 사무실을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봤으며 유럽식 모더니즘 디자인을 미국의 사무실에 안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녀가 디자인한 보험사 코네티컷 제너럴Connecticut General 건물은 모듈형 가구와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이 건물은 친하고 우연한 만남(1)이 가능하도록 복도 구조를 기획했는데 이는 현대 오피스와 매우 닮았다. 오피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완벽히 재편된 산업 체계와도 접한 관련이 있었다. 산업의 주도권이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넘어온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공표했다. 오피스 인테리어 초창기에 크게 각광 받은 것은 오픈 플랜, 즉 개방형 사무실이었다. 1958년 독일의 슈넬레 형제Wolfgang Schnelle & Eberhard Schnelle는 ‘뷔롤란트샤프트Bürolandschaft(사무실 조경이라는 뜻)’라는 시스템을 고안했는데 이동식 파티션과 몇 개의 화분을 제외하고 사무 공간 전체를 개방형으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책상 배열은 얼핏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사실 치하고 정교한 계획의 결과물이었다. 높은 칸막이와 벽에 막혀 답답함을 호소하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뷔롤란트샤프트는 신선한 실험이었고 이는 독일을 넘어 스웨덴, 국, 미국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개방형 사무실이라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소음 문제가 골칫거리다. 소통과 개방은 극대화되었지만 집중력을 위한 공간은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다. 뷔롤란트샤프트의 뒤를 이어 허먼 러Herman Miller사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세상에 내놓았다. 1964년 첫선을 보인 액션 오피스Action Office가 바로 그것. 로버트 프롭스트Robert Propst가 고안하고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디자인한 이 오피스 시스템은 사무 공간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프롭스트는 뷔롤란트샤프트의 유연함은 물론 사이버네틱스 이론,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의 근접 공간학 등 사회학과 행동과학을 섭렵해 액션 오피스 안에 녹여냈다. 액션 오피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을 움직이는 존재로 간주하고 이를 디자인에 적극 반한다는 것이다. 우연한 만남을 유도하는 이동식 테이블을 마련하되 칸막이로 프라이버시 또한 배려했다. 조지 넬슨은 캔틸레버 구조, 스탠딩 데스크, 다양한 색상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완성도를 높다. 미국의 저술가 니킬 서발Nikil Saval은 이를 두고 “디자인의 미학과 인간 욕구에 대한 진보적 개념이 하나로 융합된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높은 가격대 때문에 액션 오피스 I은 수익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개념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세간의 평가에 자신을 얻은 허먼 러와 프롭스트는 1968년 액션 오피스 II를 출시했다. 3개의 칸막이를 둔각으로 배열한 액션 오피스 II의 워크스테이션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모듈형 칸막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고 앉거나 서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작과 달리 액션 오피스 II의 큐브형 사무실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뒤를 이어 스틸케이스Steelcase의 9000 시리즈, 플로렌스 슈스트 놀의 차프Zapf 시스템 등 액션 오피스 II와 유사한 형태의 오피스 시스템이 속속 등장하며 그 실효성을 증명해나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피스 구루’ 프롭스트의 선견지명은 점차 악몽으로 변해갔다. 회사들이 액션 오피스 II의 정신은 간과한 채 외형만 복제하듯 도입하면서 큐브형 사무실이 파티션 감옥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른바 큐비클cubicle이 인간을 옥죄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벌이 되었다. 1980~1990년대 실리콘밸리로 대변되는 테크놀로지 기업의 성장은 사무 공간의 속성을 다시 한번 바꾸어놓았다. 닷컴 기업을 일군 프로그래머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직장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이 신봉한 반문화적 기질(스티브 잡스를 생각해보라)은 신경제와 만나 기묘한 시너지를 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성향은 사무 공간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당시 그들의 오피스는 느슨하고 체계가 없어 보는데 체계화라는 차원에서의 디자인이 그들에게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규격화, 통일성 같은 개념은 처분해야 할 낡은 관념이었다. 오늘날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당시의 IT 회사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과 확장이었다. 유연하고 느슨하며 조직의 빠른 성장에 대처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 필요했고 사무 공간은 자연스레 이에 맞춰 진화했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악해지고 정교해진 디자인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일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한 닷컴 회사 직원들을 고려해 회사는 점차 캠퍼스화되었다. 사내 편의 시설은 기존 제조사보다 대폭 확충되었다. 허먼 러사의 에어론 체어Aeron Chair가 본래 요양원 노인을 위한 욕창 방지용 의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기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엔지니어의 필요에 맞게 변형함으로써 이 디자인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오픈 플랜은 그렇게 다시 한번 시대의 정신이 되었고 닷컴 회사들의 오피스 실험은 2000년 나스닥 붕괴 직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개방과 프라이버시 사이에서 핑퐁 게임을 하던 사무실 디자인은 21세기에 들어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로렌스 슈스트 놀이 디자인한 코네티컷 제너럴 본사의 최상층 라운지. 놀은 관리와 감독만 있는 사무 공간에 좀 더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하길 바랐다.


사무실을 점령한 밀레니얼 세대
이전까지 사무실의 변화가 산업의 흐름과 결을 함께했다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무 공간의 변화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가깝다. 세대의 변화가 오피스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기에 접어들고 그 자리를 레니얼 세대가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 세대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퍼시스 사무 환경 세미나에서 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 개인주의, 효율 중시, 현재 지향, 경험 중독, 적정 행복을 꼽으며 수직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승진 지향적인 이전 세대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치관의 차이는 사무 공간의 변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업무 공간의 다양성이 눈에 띈다. 오피스 디자인 전문가인 스튜디오 105-10의 김란 대표는 “오피스 디자이너의 가장 막강한 라이벌은 스타벅스”라고 말했다. 이는 업무 반경을 물리적 공간으로 한정 짓지 않는 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방증한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일터란 사무실의 고정석이 아닌, 컴퓨터가 있는 곳인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현실적 범위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업무 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전까지 사무실이 개방형과 폐쇄형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오늘날의 사무실은 양쪽 모두를 포용하는, 아니 그것을 넘어 개방과 폐쇄 양 끝단 사이에 수많은 세그먼트를 나눠놓고 사용자의 성향과 기호,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반면 개인이 점유하던 공간은 날로 줄어드는데 미국의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 쿠시먼 & 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할당되던 개인 면적은 2009~2017년 사이 8.3%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이런 회사는 1인용 폰 부스를 두거나 공용 라운지 공간에 많은 신경을 으로써 어디에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더욱 극단으로 어붙인 회사도 적지 않다. 이들은 비지정 핫 데스크를 도입하거나 자율 좌석제를 시행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직원들의 업무 환경 개선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큰 부담이었던 사무 공간 유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피스 디자인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일과 레저, 삶의 블렌딩이다. 각종 오락 시설은 물론 파티 룸, 오디오 룸, 안마실 등을 겸비한 사무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회사 차원에서는 조직 구성원 간의 ‘우연한 만남’을 유도하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이는 직원들의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부서 간 사일로silo 현상(2)을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디자인은 캄브리아기를 맞이한 오피스 시장의 키 메이커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경인의 의사 결정을 그대로 반하는 톱다운 방식의 결과물이 아니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오피스 디자인이 새로운 기조로 떠오르고 있다.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종種은 결국 쇠퇴하기 마련이다. 이는 사무 공간에도 예외일 수 없다.

(1) 흔히 ‘세렌디피티적 만남’이라고 하는데, 20세기 중반 미국의 경진은 평소 마주칠 일 없는 부서 사람들이 우연한 기회에 마주함으로써 창의적 결과가 탄생하길 원했다. 트랜지스터와 비트 단위를 탄생시킨 AT&T의 벨Bell 연구소가 대표적인 공간이다.
(2) 부서 간 협력이나 소통 없이 고립된 조직이 되어 회사 전체의 비효율성과 고비용을 발생시키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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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