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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마시모 보투라가 쏘아올린 문화 프로젝트 푸드 포 소울 - 2




레페토리오 파리. 파리 심장부 라 메들레인 교회 지하에 위치한 레페토리오 파리. 아치형 출입구에는 초대형 크기의 사람 손 모양 포토그래피가 있다. 손을 테마로 한 사진은 테이블 위 접시에도 인쇄되어 있는데, 이는 유명한 프랑스 작가 JR의 작품이다. 천장에 매달린 갖가지 구름 모양의 설치미술은 조각가 프륀 누리Prune Nourry의 작품이다. ©JR / ©shehanhanwellage 
문화는 지식을 가져다주고, 지식은 자각을 가져온다. 자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책임에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된다. 문화가 핵심적인 열쇠다. - 마시모 보투라

예술적 셰프의 사회운동
널리 알려졌듯 마시모 보투라는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의 오너 셰프다. 1995년 모데나에 문을 연 이 식당은 2016년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후 여전히 특유의 과감하고도 시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고 있다. ‘어머나,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어요Oops! I dropped the lemon tart’와 누구나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식감의 부위만을 접시에 올린 ‘라사냐의 바삭한 부분The crunchy part of the lasagna’ 등 재치 있는 이름의 메뉴들은 그의 요리 실력과 미감과 유머가 집약된 상징적인 메뉴가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만해도 전통 음식에 대한 자유분방한 현대적 해석을 서슴지 않는 마시모 보투라의 시도는 대중에게 매우 낯설 뿐이었다. 그의 등장에 전통적 조리법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이탈리아 식객들은 ‘감히 우리 할머니 음식을 망쳤다’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나고 나란 지역의 특산품과 지역 재료에 대한 합당한 존경을 보여줬다. 그의 신념은 식당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2년 5월 모데나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 사태는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마시모 보투라가 출연한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는 모데나의 지진 여파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 대형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덩어리로 리소토를 만든 일화를 소개했다. 치즈 숙성 공장이 파괴되면서 1년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36만 개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부서졌다. 이곳 사람들에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그저 치즈가 아니라 지역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이자 지역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치즈를 사용한 레시피 ‘리소토 카피오 에 페페Risotto Cacio e Pepe’를 개발해 전 세계에 모데나의 피해 상황을 알리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제품 판매를 도왔다. 일본, 런던, 뉴욕 등지의 레스토랑과 미식가들은 이 레시피에 열광했고 36만 개의 상처 입은 치즈가 완판됐다. 아무도 직업을 잃지 않았고 치즈 공장이 문을 닫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사회적 행동으로서 조리법의 가능성을 엿본 계기가 됐다.


레페토리오 가스트로모티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다. 이 프로젝트에는 비크 무니스Vik Muniz, 캄파냐 형제, 마네쿠 킨데르Maneco Quindere를 비롯해 메트로 아키텍처의 건축가 구스타부 세드로니Gustavo Cedroni 등이 참여했다. ©Angelo Dal Bo 

미학의 힘, 좋은 아이디어, 환대의 가치
마시모 보투라는 자신의 활동이 자선 프로젝트가 아닌 문화 프로젝트라고 콕 집어 말한다. “문화는 지식을 가져다주고 지식은 자각을 가져온다. 자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책임에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된다. 문화가 핵심적인 열쇠다.” 한 가지 주지할 사실은, 지점별로 운영 방식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무료 급식소인 레페토리오는 하루 저녁에 80명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방문자에게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식사를 보장한다. 밀라노에서 운영한 첫 번째 공간 레페토리오 암브로시아나의 경우, 직업과 음식과 잘 곳이 필요한 80명의 손님들에게 3개월간 지속적인 식사를 대접했다. 도시의 빈곤 인구를 감안했을 때 매우 많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레페토리오의 궁극적인 비전에 부합하는 방식이었다. 레페토리오는 애초부터 그저 고급스러운 무료 급식소를 표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손님들은 초기에는 서로 서먹서먹했지만 3개월이 끝나갈 즈음에는 대가족처럼 매끼가 파티 분위기였다. 또한 하루 한 끼의 근사한 식사뿐 아니라 카운슬러를 동반한 일종의 재사회화 상담과 아트 워크숍, 영화 상영관 운영 등의 활동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3개월이 지난 뒤 5명이 직업을 찾아 노숙인 처지를 면하게 됐다. 운영진은 비록 적은 인원이라도 좋은 선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예술적으로 섬세하게 마련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편안한 음식과 타인과의 대화를 누렸고 이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사회적 안전망을 경험하게 했다. 마치 셰프를 만나지 않았으면 사용되지 못했을 수많은 식재료처럼 사람들과 커뮤니티에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모데나의 ‘소셜 테이블 기란디나. 지역 커뮤니티 공간에 찾아가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지역 아티스트 루카 자모크Luca Zamoc와 루카 라투가Luca Lattuga가 블랙 & 화이트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다. ©Rolando Paolo Guerzoni


레페토리오 펠릭스. 2017년 6월 런던 켄싱턴-첼시 지역에 문을 열었다. 미니 서재 코너와 영화 상영관, 카운슬링 룸을 갖췄으며 아티포트Artifort의 암체어 한 쌍을 비롯해 아르테미데, 비트라, 아르텍, 무티나, 마이랜드 등에서 기증한 제품이 어우러졌다. 공간 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일세(대표 일세 크로포드)는 “사회적 프로젝트에서 흔히 간과하는 보편적인 미학을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Simon Owen

푸드 포 소울은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뿐 아니라 공허한 영혼을 달래줄 배움과 영감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미학의 힘, 좋은 아이디어, 환대의 가치는 푸드 포 소울이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내세우는 세 가지 원칙이다. 특히나 예술 애호가로 유명한 마시모 보투라에게 미학이란 전 세계 공통의 언어이자 숨겨진 잠재력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막강한 힘이다. 그가 말하는 미학적 순간이란 아트, 디자인, 음악 혹은 어떤 친절한 행동일 수 있는데, 이는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을 부추긴다. 아름다운 공간과 경험을 제공해 미학에 대한 공평한 권리를 누리는 공감대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변화의 강력한 견인차를 마련하는 일. 막연하고 이상적인 비전은 이에 기꺼이 동참한 셰프, 디자이너, 건축가 등 예술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눈앞에 펼쳐질 수 있었다.

레페토리오 펠릭스의 공간 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일세StudioIlse를 비롯해 조명을 기증한 아르테미테, 의자를 기증한 비트라 같은 브랜드부터 건축가 니콜라 드롱Nicola Delon, 라미 피슐러Ramy Fischler, 캄파냐 Campana 형제까지 여러 디자이너가 기꺼이 그의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푸드 포 소울이 요리, 디자인, 공간, 커뮤니티 등 다양한 형태로 자처해온 교두보 역할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맨 처음에는 배가 고파서 왔던 손님들은 단골이 되면서 점차 워크숍에 참여했다. 지역 화가들은 안락하고 고풍스러운 공간에 머물며 냅킨을 캔버스 삼아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모두가 예술가’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미학의 힘을 알아채는 우리 안의 잠재력, 그 힘이 뒷받침할 선한 일을 하려는 의지를 그와 친구들은 잘 알고 또 믿고 있는 듯했다. 레페토리오 파리를 열던 날 마시모 보투라는 카뮈를 인용했다. “아름다움은 혁명을 만들지 못하지만 어느 날 혁명은 반드시 아름다움을 필요로 하는 날을 맞이할 거라고 말했다. 푸드 포 소울이 가장 혁명적인 프로젝트인 이유다.” 오늘도 푸드 포 소울은 굶주린 배를 넘어 굶주린 영혼을 채운다. 아름다운 혁명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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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은아 객원 기자 담당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