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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요리 실험실 SOE 키친
스케줄이 남다른 세계적인 아티스트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을 정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인, 예술, 과학에 이르는 영역에서 전혀 새로운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환경과 사회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는 주제를 과감하게 던져놓는다. 2018년 엘리아손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팝업 레스토랑을 열었다. 빛과 안개, 얼음을 이야기하는 대신 냅킨과 샐러드 볼을 집어 든 엘리아손의 모습은 생경하고도 흥미로웠다. 이 팝업 레스토랑은 2005년부터 베를린에 마련한 그의 스튜디오에 만든 구내식당, 스튜디오 올라푸르 엘리아손 키친Studio Olafur Eliasson Kitchen(이하 SOE 키친)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부엌은 예술을 위한 또 하나의 실험실’이라고 한 그의 말처럼 SOE 키친은 음식을 통한 크리에이티브가 발현되는 또 하나의 실험장이다. 자연에 대한 예술적 접근 방식이 작품뿐 아니라 음식과 키친에도 어떻게 적용되는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식탁 위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일랜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SOE 팝업 레스토랑.








레이캬비크 팝업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송어와 구운 대구, 검은 베니어 밥과 흰 커런츠, 토마토 샐러드 등 유기농 식단으로 준비됐다. ©Maria del Pilar Garcia Ayensa/Studio Olafur Eliasson


SOE 키친 팝업 레스토랑이 열렸던 레이캬비크의 마샬 하우스.
SOE 키친의 시작
2005년 10~15명뿐인 스튜디오 직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자는 데에서 SOE 키친은 시작됐다. 직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했고, 어떤 날은 냉동 피자를 먹기도 했다. 그러다 점차 함께 하는 식사의 의미, 음식에 대한 존중, 식재료의 출처에 대한 이해까지, 식습관과 식문화의 중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이 늘어남에 따라 보다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키친 운영을 위해 전문 셰프를 고용하기에 이른다. 베를린에 위치한 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는 양조장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SOE 키친은 이 5000㎡ 규모의 스튜디오 건물 안에 위치한다. SOE 키친에서 식사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방문한다는 유명인들의 농담 반 진담 반 발언처럼 SOE 키친의 음식은 특별하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는 건축가, 엔지니어, 미술사학자, 공예가, 디자이너, 과학자처럼 셰프 역시 매일 새로운 디자인과 작품을 만들어낸다. SOE 키친의 셰프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역할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스튜디오 웹사이트에 명시된 그들의 업무명은 ‘요리와 음식 연구cooking & food research’로 표기되어 있으니 말이다. 메뉴 개발을 위한 셰프의 스케치만 보더라도 영양소 분석과 함께 알록달록한 색으로 가득하다. 정확하게 계산된 한 끼의 영양과 접시 위의 미적 표현 또한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다로운 예술적 결과물을 내기 위해 셰프들은 늘 식재료를 실험하고 새로운 맛을 개발한다. 물론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식물성이다(아주 가끔 생선을 사용할 때도 있다). 채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친환경적인 이유와 함께 인근 베를린 농장의 농부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식재료 구입에서 수확 단계를 거쳐 운송과 요리에 드는 탄소 배출과 영양소까지 고려한 후 나온 결단이다.

‘부엌은 예술을 위한 또 하나의 실험실’ 이라고 말한 엘리아손의 말처럼 SOE 키친에서는 음식을 통한 크리에이티브가 펼쳐지고 있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1995년 베를린에 스튜디오 올라푸르 엘리아손을 설립했다. 기후, 난민, 환경 등 사회적 문제를 설치 작품, 퍼포먼스 등으로 선보이는 그는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뉴욕 현대미술관, 한국의 리움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로 ‘크리스탈 어워드’를 받았다. olafureliasson.net


〈스튜디오 올라푸르 엘리아손: 더 키친〉(파이돈 펴냄) 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 옥상에서 직접 기르는 식재료와 요리의 의미, SOE 키친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가운데는 베를린 작업실에 서 있는 올라푸르 엘리아손.
먹는 것과 크리에이티브의 관계성
엘리아손은 SOE 키친의 활동에 대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파리 광장에 빙산을 떨어뜨리거나 태양열 램프 라인을 개발하는 일종의 실천과도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속된 SOE 키친의 저탄소 유기농 채식 메뉴 개발 방침은 100명의 직원이 한 공간에서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과 더불어 SOE 키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스튜디오 내에서는 “하루에 한 끼 이곳에서 식사하면 병원과 멀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정도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제공받는 음식을 ‘회사 측의 건강한 환대’라 여기고, 남은 음식은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쓰레기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SOE 키친의 건강한 한 끼를 각자 집에서도 나눌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아이웨이웨이부터 노마의 셰프 레네 레드제피, 미국 요리계의 유명 인사 앨리스 워터스, 배우 메릴 스트립까지 이곳을 방문한 예술과 문화계 인사들 또한 미팅이나 비즈니스뿐 아니라 SOE 키친의 운영 방식과 이곳에서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에 동참한다. 그러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엘리아손의 부엌에 대해 더욱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2013년 파이돈에서 출간한 〈스튜디오 올라푸르 엘리아손: 더 키친〉은 SOE 키친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가이드북이다.






테이트 모던 전시 기간에 오픈한 SOE 키친. 공간의 조명과 아트워크도 올라푸르 엘리아슨 스튜디오에서 맡았다. 테이트 모던 테라스 바에서 SOE 키친의 런치 메뉴가 제공됐다. ©Anders Sune Berg
SOE 키친에서 벌어지는 예술 활동
2018년 8월부터 11월까지 문을 연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SOE 키친의 활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구내식당과 동일한 긴 테이블을 놓아둔 공간에서 함께 식사하며 음식과 예술을 통해 SOE 키친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엘리아손의 여동생이자 셰프인 빅토리아 엘리아스도티Victoria Eliasdóttir와 함께 기획한 이 레스토랑은 단순한 팝업 식당의 의미를 넘어 유년기의 기억 속 아이슬란드 문화를 덴마크, 독일과 연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팝업 레스토랑의 메뉴를 담당한 셰프는 베를린 직원들이 선호한 인기 메뉴의 레시피에 아이슬란드 해산물을 추가해 특별한 메뉴를 선보였고, 엘리아손이 제작한 조명은 공간 분위기와 한데 어우러져 식사가 하나의 극적인 예술 체험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엘리아손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음식, 사회적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자 한다. SOE 키친을 통해 실험적인 과학자, 예술가, 셰프가 식재료부터 요리, 먹는 방법과 환경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보다 적극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2019년 7월 11일부터 2020년 1월 5일까지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 〈올라푸르 엘리아손: 인 리얼 라이프Olafur Eliasson: In Real Life〉에서 SOE 키친을 운영한 것이다. 긴 테이블 위에 놓인, 어찌 보면 그저 소박하고 담백한 채식 요리지만 여기에는 ‘테이트 모던까지 배송 거리를 최소화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요리’라는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 음식은 전시를 마친 관람객에게 특별한 미식 경험을 선물했음이 틀림없다. “세상을 경험하는 주요 열쇠는 미식이다”라는 엘리아손의 모토처럼 현대인의 식탁과 환경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음식을 둘러싼 환경·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실천하는 엘리아손의 노력이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쉽게 설명해버리고, 또 쉽게 인정받는 시대에 SOE 키친은 그렇게 천천히, 음식을 통해 하나의 예술 형태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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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양윤정 통신원 담당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