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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디자이너 마르텐 밥티스트의 맛을 더하는 식도구


제이드 컵. 컵을 기울였을 때 커피의 다양한 풍미가 더욱 잘 전달되도록 의도했다. 손으로 컵을 잡았을 때 두껍고 묵직한 느낌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입구 부분만 얇게 디자인해 마실 때 한층 가벼운 느낌이 든다.


스택 커피 컵. 각각의 오브제를 통해 단계별로 커피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커피 드리퍼와 컵 세트. 바리스타와의 협업으로 만든 제품으로 집에서도 즐거운 커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트리포드 글라스. 대부분 와인이 담기는 볼 부분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과 달리 글라스를 받치는 스템과 베이스 부분을 공들여 디자인했다. 와인 잔뿐 아니라 마티니, 위스키 잔 시리즈도 있으며 차, 에스프레소와 라테 글라스도 구상 중이다.
셰프에게 칼은 예술가의 붓, 작가의 펜(지금은 키보드지만), 혹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의 총과 다를 바 없다. 장인은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셰프는 자신만의 칼 혹은 요리 도구를 찾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한다. 음식을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집에 가면 내가 자주 사용하는 숟가락이 있고, 식사를 하기 전에는 음식이 담긴 플레이트, 포크와 나이프에 먼저 눈이 간다. 손에 들고 먹는다는 기본 명제 하나로 수천만 가지의 행위가 가능하고,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아마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도구만큼이 더 많은 도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식도구에 대한 디자이너의 관심은 더욱 지대하다. 하지만 반대로 ‘더 이상 새로운 제품이 나올 수 있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줄리 디캔터. 글라스 위쪽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뒷부분에는 큼직한 구멍을 만들어 입구와 출구를 다르게 했다. 덕분에 디캔터 안에 넣은 얼음이나 오이 등 맛과 향을 더하기 위한 부산물이 잔에 딸려오는 것을 막아준다. 800mL 크기가 기본이며, 미슐랭 셰프인 한스 반 올데의 요청으로 15L 버전도 만들었다. 식초와 오일용도 있다.


아우트라인 커틀러리. 손이 닿는 부분을 가볍게 디자인해 먹는 경험을 한층 경쾌하게 해주는 커틀러리.



튜브 커틀러리. 레이저 프린터로 만든 금속 소재의 커틀러리. 기능적 측면보다는 굴곡 없는 납작한 형태로 미감을 더 강조했다.

먹기 위해 연장을 갖추라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르텐 밥티스트Maarten Baptist는 “무엇을 디자인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얼마나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느냐를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식도구로 특별한 경험을 제안한다. 마르텐 밥티스트는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오픈 에어 커틀러리Open Air Cutlery’가 〈뉴욕 타임스〉 〈포브스〉 〈월페이퍼〉 등에 소개되면서 주목받았다. 오픈 에어 커틀러리는 면이 아닌 선을 모티프로 해 한층 경쾌한 식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이후 디자인 회사 조인Joine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Anything Can Happen’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여러 작가와 협업해 다양한 식도구를 선보이는 중이다. 마르텐 밥티스트의 제품은 셰프 또는 먹는 사람의 행위와 경험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마르텐 밥티스트가 로컬 바리스타와 협업한 제이드Jade 커피 잔의 경우 잔에 여러 층의 커브를 두었는데, 이는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기울였을 때 커피의 다양한 풍미가 더욱 잘 전달된다. 또 소스 드리퍼인 ‘마법의 드립Magical Drip’은 음식 위에 탭이 달린 시험관을 함께 세팅해 먹는 사람이 탭을 여닫으며 소스를 뿌려 먹도록 유도한다. “식도구를 통해 그동안 음식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관여했던 디자인 영역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협업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이 마르텐 밥티스트의 얘기다.



마법의 드립. 지역 셰프의 요청으로 만든 소스 드리퍼. 글라스 안에 소스를 넣고,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 직접 작은 탭을 열어 조절한다.


슬로 쿠커. 유리관에 넣은 재료가 코르크로 마감된 쿠커로 들어가면 뜨거운 물로 8시간 이상 조리된다. 재료의 맛과 영양이 유지되는 동시에 ‘슬로 푸드’의 개념을 한층 확장시킨다.


웨이브 컵. 체코의 유리 장인과 협업한 컵. 밑면의 웨이브는 비정형 으로 보이지만 반복되는 형태로, 컵끼리 균형감 있게 쌓는 것이 가능하다.
식경험을 완성하는 식도구
사실 디자이너가 푸드 스타일링의 역할에만 제한되어 있던 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디자이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증명하듯 마르텐 밥티스트의 제품은 장식적인 요소보다 형태적 기능성을 우선시한다. 형태를 통해 흥미로운 사용법을 제안하거나 기존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이를 위한 실험에 가깝다. 그가 개발한 슬로 쿠커는 8시간 동안 조리해야 먹을 수 있는 장치로,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느리게 천천히 만든 음식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그에게 이팅 익스피어리언스는 ‘어떻게 먹느냐를 이야기하는 식경험의 완성’이며 생각과 행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소재인 것이다. 〈밀가루의 힘: 빵으로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웬델 스티븐슨Wendell Steavenson은 “포크를 잡는 법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본래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먹는 법이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르텐 밥티스트의 제품은 그 다양한 방법이 디자인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마르텐 밥티스트
제품 디자이너

디자이너의 제안은 식도구를 통해 일상적 행위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_마르텐 밥티스트


마르텐 밥티스트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디자인 회사 조인Joine을 설립했으며, 이후 여러 작가들과의 협업을 위한 디자인 스튜디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Anything Can Happen’을 열었다. 식도구는 물론 테이블과 시계 등 리빙 제품 디자인, 바와 레스토랑 디자인도 진행한다. 그의 작품은 MoMA와 쿠퍼 휴잇 뮤지엄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maartenbaptist.com
제품 디자이너로서 식도구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재학 시절, 아트 컬렉터나 뮤지엄이 좋아할 만한 작품보다는 집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일상적인 오브젝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오브제인 동시에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식도구를 만들 때 여느 제품과 접근 방식이 다를까?
식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 식기가 테이블 위에 놓였을 때의 분위기, 음식을 집거나 담기기 전의 상황이 모두 디자인의 시작이다. 물잔의 두께, 마시는 음료의 컬러와 유리컵의 컬러부터, 사람들이 대화 없이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을 때 식기를 잡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살핀다. 때로는 목적을 생각지 않고 만들기도 한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 결정하지 않는 대신 셰프와 바리스타, 음식 관련 전문가와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그들 스스로 쓰임새를 찾아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우리가 쓰던 제품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식도구와 관련해 얘기하자면 소비자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써봤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맞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제안은 ‘바꾸라’는 게 아니라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트리포드 글라스를 처음 본 사람들은 무척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먹고 마시면서 식기를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한다. 이런 일상적 행위를 통해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이팅 익스피어리언스Eating Experience’ 측면에서 최근 인상적인 프로젝트가 있었나?
최근의 기억으로 얘기하자면 레스토랑을 방문한 손님이 코트를 옷걸이에 걸고 나서 레스토랑에 들어서기 전에 식욕을 돋우도록 특별한 향을 만든 한 학생의 작품이 흥미로웠다. 정원에 들어가야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한 테이블 디너도 기억에 남는다.

제품 디자이너, 공간 디자이너처럼 이팅 익스피어리언스와 관련된 특정 디자인 영역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여전히 우리가 할 일이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세상은 여전히 디자이너에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으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팅 익스피어리언스는 아직 무한한 영역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음식을 만드는 것 외에는 관심 없던 셰프나 레스토랑 오너들이 이제는 식기뿐 아니라 가구와 향, 공간과 서비스 영역까지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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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