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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우리는 춤을 추며 살아남는다 키라라KIRARA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공연은 한번 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댄서블 비트와 뮤지션 위로 오버랩되는 오색찬란한 영상이 무대를 꽉 채운다. 그의 시그너처 무대인, 쏟아지는 원색 도형 사이로 집요하게 ‘부수는’ 음악을 뿜어내는 키라라는 그 자체가 공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일렉트로닉, 하우스, 빅 비트 등 장르로 구분하기보다는 ‘이쁘고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음악을 더 잘 설명한다. 키라라의 음악에는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권과 소수자와 연대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키라라는 젠더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억압받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스youth의 표상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92년생 전자음악가. 2014년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6장의 EP와 3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직접 기획한 ‘그냥 하는 단독공연’(이하 ‘그단공’)을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으며 ‘cts’라는 이름의 소품집 앨범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2017년에는 두 번째 정규 앨범 〈moves〉로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 & 일렉트로니카 음반 부문에서 수상했다. 프랑스의 트랑스 뮤지칼Trans Musicales 2017, 미국의 SXSW 2019에 초청되어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안무사회〉,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 바벨〉, 일민미술관의 퍼폼2019: 린킨아웃, 2019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하는 등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kirararararararara.com
처음에 어떻게 전자음악을 접하게 되었나?
13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업을 올려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는데 이런 관심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IT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008년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올 즈음에는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앱을 만들었는데 그 친구들은 소위 너드nerd였다. 다들 자기만의 분야가 확실했기에 나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20살 무렵 상상마당에서 전자음악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내가 혼자 해오던 것들에 대해 이론적인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개념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일반적인 루트를 따르지 않은 듯하다.
맞다. 나는 그와 반대로 혼자만의 방식으로 곡을 만들다가 수업을 듣고 난 뒤에 개념을 터득했다. 시퀀싱, 믹싱 등 이미 내가 해오던 것들의 개념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순차적으로 음악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달려든 것이다.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입시 준비를 하는 19살 때쯤 ‘내가 왜 음악을 하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더라. 나는 그런 고민을 28살이 되어서야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이었나?
전자음악은 소리의 성질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분야라 사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전자음악가에 비해 아카데믹하지 않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음악은 예술이니까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음역대와 음향에 따라 내가 만들어낸 소리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과 좌절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틀린 것을 만들려고 한다.









키라라의 앨범 재킷 이미지. (순서대로) 첫 정규 앨범 〈Rcts〉, 한국대중음악상 댄스 & 일렉트로니카 부문을 수상한 〈moves〉, 키라라를 대표하는 키워드인 리믹스를 담아낸 〈KM〉, 죽음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했지만 살아남자고 외치는 〈Sarah〉. 그의 앨범 재킷에는 절망까지 아름답게 덮는 눈송이가 그려져 있다.
2018년부터 ‘그단공’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이 공연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1~2년 전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렸는데 그때 스스로에게 ‘내가 음악가로서 무엇을 할 때 보람을 얻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첫째가 레슨을 해줄 때고 둘째가 공연이더라. 공연만큼은 정말 자신 있고 즐거우니까 ‘공연이나 실컷 하자!’는 마음으로 기획했다. 90분 동안 공연만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기획이지만 이 프로젝트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음악에 다시 집중하게 되는 원동력도 됐고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웃음)

무료 입장, 자율 기부 형식이란 점도 흥미로운데.
단순히 더 많은 관객과 놀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신이 서로 영향을 받고 함께 돌아가고 있기에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게 맞다고 본다. 인디 공연 입장료가 이렇게 오르지 않는 실정에 무료 입장을 내걸면 분명히 안 좋은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사심 때문에 당분간 이렇게 진행하고 있지만 계속 고민 중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아니 어떻게 이렇게’라는 채널을 기획했다.
스튜디오 ‘밤과 낮’ 친구들과 술 마시다 나온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것이다. 홍대의 인디 뮤지션들을 만나는 채널인데 정말 다른 뮤지션들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 묻고 싶었다. 음악가가 어떻게 협업자를 섭외하고 소통하며 음악을 만드는지 프로세스 전반을 캐묻는 콘텐츠가 없는 것 같더라.

유튜브 채널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는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상화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트랜스젠더를 처음 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남성, 여성 등 특정 카테고리로 나를 넣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표면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력이 오래된 남성 뮤지션들도 평범한 20대 여성을 대하듯 나와 대화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들과의 대화를 주체적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지난해 일민미술관의 퍼폼2019: 린킨아웃 쇼케이스 공연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동시대 퍼포먼스 플랫폼인 퍼폼Perform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영상과 함께 공연하는 ‘오디오 비주얼 셋’ 공연을 준비하면서 장소와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터라 퍼폼의 제안을 바로 수락했다. 사실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는 나에게 공연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정은영 작가의 다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에 현대 퀴어 미학의 계보를 잇는 퍼포머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덕분에 유럽 미술계가 종종 나를 안다는 반응을 내비친다. 전에도 정은영 작가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인연으로 즐겁게 음악을 만들어 보냈을 뿐이다. 작품에는 연극배우, 드래그 킹 등 4명의 퍼포머가 등장하는데 레즈비언, 지체 장애인 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전면에 깔려 있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 안에 어떤 정치적 함의를 담았다.


‘그냥 하는 단독공연’ 포스터 이미지. 키라라가 직접 기획해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단독 공연이다. 영상, 음악, 무대의 합을 ‘오디오 비주얼 셋’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선보인다. 게스트와 공연장은 모두 키라라가 직접 선정한다.


키라라의 공연 무대. ©미향
키라라의 공연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음악과 호흡하는 영상이다. 영상 제작에도 직접 참여하나?
그렇다. 영상 아트 디렉터로서 ‘텍스처는 재미없다’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다. 월간 〈디자인〉에서 해도 될 말인지 모르겠지만.(웃음) 개인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텍스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영상은 재미가 없다. 치고 빠지는 합이 중요하다. 음악이 쿵짝쿵짝이면 영상도 쿵짝쿵짝 나와야 한다. 사실 음악과 싱크만 맞으면 어떤 장면이 나오든 관객은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도 좋고 동그라미, 네모가 나와도 좋다. 뭐든 상관없다.

‘트랜스젠더 뮤지션’이라는 키워드로 미디어에 자주 등장했다. 젠더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나?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밝힌 적이 없다. 단지 트랜스젠더임을 숨기지 않았을 뿐이다. 어차피 앞으로도 ‘남자예요, 여자예요?’라는 질문은 계속 듣게 될 테니 그저 편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 사실 나는 ‘트랜스젠더 음악가’가 아닌, ‘어쩌다 보니 트랜스젠더인 음악가’ 정도가 되고 싶다.

그래도 트랜스젠더로서 최근 있었던 일련의 이슈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많은 좌절을 느끼고 있다.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입학 문제에 대해 유심히 보고 있는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방법도 모르겠고 길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 인권부터 나아지면 트랜스젠더 인권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게 내가 찾은 유일한 방법이다. 홍대 신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평가절하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는 뮤지션들의 문제도 주시하고 있다. 이 신 안에서 감시자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동시대 밀레니얼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이슈로 떠오른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트랜스젠더는 말할 것도 없다. 옛날이었으면 나는 아마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있는 사람’이 되어 젠더에 대한 논의에 동참하고 한심한 수준이라도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지금이 조금은 낫다. 지금껏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본다. 그것이 사회 대통합을 이루는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스스로는 어떤 뮤지션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나?
정말 모르겠다. 내게 선배는 이디오테잎뿐이고 앞으로 이 장르의 후배도 없을 것 같다. 환호하며 춤추는 댄스음악 장르보다 느린 비트의 음악이 대세가 됐다. 같이 일할 동료도 별로 없고 그나마 친구가 된 사람들은 포크 음악가들이다. 트랜스젠더 어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관심을 받고 살 수는 있으니 계속 내 일을 해나갈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5월에 두 번째 리믹스 컴필레이션 앨범 〈KM2〉가 나올 예정이다. 그 후에는 정규 앨범을 재발매하고 싶다. 키라라는 언제나 협업자를 찾고 있다. 키라라에게는 늘 아이디어만 많고 돈과 사람은 없다. 같이 재미있는 것 만들어볼 사람은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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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백가경 객원 기자 인물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