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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진짜 공간 정통+유럽식+고품격+럭셔리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식 기둥을 중심에 두고 정 대칭으로 구성한 20세기 한국의 다세대 건축. 19세기 아르누보 양식의 변형인 발코니 난간,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 화분, 그리고 21세기 자동차와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만국의 콜라주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위엄 내지는 호화로움을 극대화할 때 많이 사용하는 이미지 기호다. 질감도 양식도 다른 거대한 돌덩이를 절묘하게 떠받들고 있다.

소나무는 유교문화의 중심에 있던 조선 선비들에게 고결함, 청정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서민들의 민화에서도 사랑받은 주제다.

소나무 화분+이오니아식 기둥=행복이 가득한 집



결혼에 대한 환상을 기반으로 마술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예식장의 모습이다. 간판을 읽지 않아도 예식장임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한 블로거의 여행 포스팅에는 유럽의 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익숙한 한국의 예식장 양식’이라 쓰여 있을 정도다.

결혼 행진, 전통 폐백, 꽃마차까지 모든 것을 충족시켜 짧은 시간에 결혼식을 해치워주는 예식장 산업은 신데렐라에 나오는 마법사 같다.



시흥대로 변을 지나다 평범한 건물 사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하늘로 달리는 야생마와 승천하는 용이다.

건물 벽에는 ‘전, 화, 방’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키치랄까, 저속함이랄까.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부적절한 자극도 좋다.


정통+유럽식+ 고품격+럭셔리 
처음 입사한 설계 사무실에서는 리조트를 설계했다. 실제로는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 리조트를 짓겠다며 유럽의 무늬를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TV 광고에서는 유럽의 귀족 옷을 입은 한국인 남녀가 유럽의 고성을 거닐고 금발 머리 아이들이 뛰어놀곤 했다. 하지만 광고 속 실체는 사각형을 쌓아 올린 아파트다. 어떻게 이렇게 연결될 수 있을까? 

‘정통 유럽식’을 끌어들인 각종 ‘캐슬’류의 건축은 아파트뿐 아니라 예식장, 모텔 등에서도 발견된다. 사랑과 행복, 부귀와 안락 따위를 내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정통 유럽식 고품격 럭셔리’라는 환상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또한 ‘정통 유럽’ 건축물 곁에는 상대적으로 소박한 프로방스풍 디자인이 창궐하기도 했다. 소위 ‘프로방시즘’이라 불릴 만한 이 형식은 프랑스 시골 마을의 정서를 모티브로 한 파스텔 색상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말한다. 나무 무늬나 파벽돌 타일 그리고 자연 친화적인 각종 그림이 그려진 비닐 시트지로 마감한 실내장식이 핵심이다(과감함이 필요할 때는 가짜 벽난로와 가짜 창문을 만들기도 한다). 페인트칠은 ‘워시’라는 빈티지풍으로 하고 그 위에 영어 또는 불어로 된 문장을 스텐실로 마무리하면 완성이다. “Sweet home, Paris fantastique” 같은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으니까 그런 상품이 판매되는 것이라고 납득하면 될까? 하지만 기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재능이 있다. 실체보다 기호와 이미지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상품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생활양식을 자유롭게 만들어나간다. 독특함을 제공하지 못하는 대량생산은 이런 환상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사실상 생산이 증가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기호다. 사물에 환상을 입히고 환상에 환상을 덧입히는 것이 핵심이 되었다. 

장식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의 프로방시즘 시대는 갔고 상대적으로 간결해진 북유럽풍 디자인이 생활 곳곳을 차지한 것 같다. 10년 전 구입한 빨래 건조대는 분명 같은 제품인데 ‘북유럽식 디자인’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다. 그놈의 유럽. 이 나라에는 정말 좋은 게 없어서 이러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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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기획·글 홍윤주 디자인 프론트도어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