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역사 속 컬렉티브 공간 - 1

뭐든지 모여서 머리를 맞댈 때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나오고 시너지도 일어나는 법이다. 비대면 시대에 줌이나 클럽하우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오프라인 미팅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만남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당대 잘나가는 문인이나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모이던 공간은 어디였을까? 17~18세기 프랑스에서는 상류 계층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책을 낭독하거나 토론하는 살롱 문화가 발달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카페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지금의 퇴폐적인 이미지와 달리 카바레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를 위한 실험 무대였다. 개화기 조선에서도 다방을 중심으로 문화인들이 뭉쳤다.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당대 문인과 예술가는 종로 등지에 직접 다방을 오픈하고 문인회를 조직하거나 전시회를 열었다. 요제프 호프만이 빈에 오픈한 카바레 플레더마우스부터 이상의 제비다방과 안상수와 금누리가 홍대 앞에 오픈한 일렉트로닉 카페에 이르기까지 컬렉티브가 모였던 역사적인 공간을 소개한다.



아이소콘 빌딩.


1층 갤러리에 전시한 아이소콘 롱 체어(1936).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했다.

아이소콘 빌딩(런던, 1934~현재)
발터 그로피우스가 “사회적,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주거 실험”이라고 평가했던 아이소콘 빌딩은 영국의 역사적인 모더니즘 건축물로 1940년대까지 당대 모더니스트들이 모이는 허브 역할을 했다. 건물 이름은 ‘아이소메트릭 유닛 컨스트럭션Isometric Unit Construction’에서 따온 것. 건축주인 잭 & 몰리 프리처드Jack & Molly Pritchard 부부는 원래 1층 하우스를 지을 생각이었지만, “집은 주거를 위한 기계”라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 웰스 코티스Wells Coates의 역제안으로 미니멀한 기능을 갖춘 아파트를 짓게 됐다. 프리처드 부부는 아이소콘 컴퍼니를 설립했고 막대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입주자를 모집했다. 타깃은 가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비즈니스맨과 우먼이었고, 구두 클리닝 서비스부터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렌트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평소 바우하우스를 흠모하던 잭 프리처드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이주한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아이소콘 가구 컴퍼니의 디자인 관리직을 맡겼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마르셀 브로이어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하고 테이블과 의자, 라운지 테이블, 책장 등을 함께 제작했다. 여기에 가세해 라슬로 모호이너지도 아이소콘 가구 컴퍼니의 로고와 홍보용 리플릿을 디자인했다. 그저 디자인이 잘된 아파트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위의 바우하우스 인물을 포함해 수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문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교류했기 때문이다. 마르셀 브로이어와 건축가 F.R.S. 요크Yorke는 1937년 건물 1층 일부를 개조해 입주민 컬렉티브들이 모이는 아이소바Isobar를 만들기도 했다. 모더니스트의 이상을 품었던 이 건물은 이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급격히 슬럼화됐지만, 1972년 정부가 건물을 매입하고 복구 작업을 해서 다시금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됐다. 현재 건물 1층에서 운영 중인 갤러리에는 아이소콘 빌딩의 역사와 함께 당시 컬렉티브들이 디자인한 모더니즘 가구와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참고 도서 〈Isokon and the Bauhaus in Britain〉 Leyla Daybelge & Magnus Englund, Batsford


샤 누아르 공연 투어 포스터(1896).


카바레 샤 누아르에서 그림자 연극을 상영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1889)로 화가 페르낭 뤼넬Fernand Lunel의 작품이다. 개인 소장.

카바레 샤 누아르Cabaret Chat Noir (파리, 1881~1897)
불어로 검은 고양이를 뜻하는 샤 누아르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보헤미안들의 성지였다. 로돌프 살리Rodolphe Salis라는 인물이 1881년에 설립한 이곳은 최초의 모던 카바레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급진적인 젊은 문인과 예술가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시인 에밀 구도Emile Goudeau의 주도로 결성된 ‘이드로파트Les Hydropathes’라는 문학 클럽이었다. ‘물을 혐오하는 자들’이라는 뜻의 클럽 명칭처럼 회원들은 물 대신 와인을 마셔댔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매주 샤 누아르에 모인 이들은 시와 소설 등 작품을 발표하거나 공연을 선보였다. 1882년부터 1895년까지는 카바레에서 주간지를 발행했다.

여기에는 이곳에서 컬렉티브들이 발표한 각종 문학 작품과 시, 정치 풍자 글이 실렸다. 잡지 창간 시점부터 에디터로 활동하던 아티스트 앙리 리비에르Henri Rivière는 1885년 그림자 연극을 고안해 카바레에서 상영했는데 워낙 인기가 높아 1892년부터 투어 공연을 떠날 정도였다. 한편 작곡가 에리크 사티Erik Saties는 샤 누아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곳에서 작곡가 드뷔시, 시인 말라르메, 모파상 등과 교류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아르누보 화가 테오필 스탱랑Théophile Steinlen이 1896년에 제작한 샤 누아르 공연 투어 포스터에는 샤 누아르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카바레 플레더마우스 내부.


카바레 플레더마우스를 재현한 전시 모습.

카바레 플레더마우스Cabaret Fledermaus (빈, 1907~1913)
1897년 오스트리아에서는 보수적인 예술계에 대한 반발로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지향하는 빈 분리파가 결성되었다. 여기에는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토 바그너 등이 있다. 건축가 오토 바그너 문하에서 수학한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과 그의 동료인 그래픽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는 사업가 프리츠 베른도르퍼Fritz Waerndorfer의 재정 후원에 힘입어 1903년 빈 공방을 설립했다. 1932년까지 지속된 빈 공방을 거쳐간 디자이너만 무려 200여 명. 이들은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했던 예술공예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수공예를 중심으로 한 총체예술을 위한 공간을 꿈꿨다. 이에 요제프 호프만은 1907년 10월, 어느 건물 지하에 극장 기능을 갖춘 카바레 플레더마우스를 오픈했다.

이곳의 커트러리, 재떨이, 스테이셔너리는 모두 빈 공방 회원들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특히 화려한 타일 장식은 요제프 호프만의 의뢰로 비너 케라미크Wiener Keramik 공방에서 제작한 것이다. 형형색색의 부조 장식과 그림이 그려진 타일은 카바레 플레더마우스만의 자랑이었다.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펼치는 즉석 공연으로 카바레는 한층 활기를 띠었다. 풍자극, 그림자 연극, 아방가르드 춤, 시 낭독, 뮤지컬 퍼포먼스가 이곳 무대에서 펼쳐졌고, 특히 이곳은 여성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는 플랫폼이 되기도 했다. 카바레 플레더마우스는 1913년 재정 악화로 문을 닫았지만 이곳을 기록한 흑백사진과 카바레의 수입원 중 하나였던 그림엽서, 르코르뷔지에가 1907년에 그린 도면과 스케치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참고로 르코르뷔지에는 빈에 머무는 동안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인투 더 나이트: 카바레 & 클럽 인 모던 아트Into the Night: Cabarets & Clubs in Modern Art〉전에서 실제 사이즈로 카바레 내부 공간과 벽면 타일을 재현하기도 했다. 모마MoMA에서는 이곳에서 열린 연극 홍보용으로 제작했던 일러스트 북(카를 오토 크체슈카Carl Otto Czeschka 디자인)을 소장하고 있다.


■ 관련 기사
- 역사 속 컬렉티브 공간 - 1
- 역사 속 컬렉티브 공간 - 2

Share +
바이라인 : 글 월간 〈디자인〉 편집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