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Design News
미드센추리 모던이 지겨워진 당신에게 건축가의 가구 vs. 디자이너의 집 짓기
건축가들은 건축 프로젝트에 가구까지 디자인해서 공간을 완성하고 싶어 하고,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건축의 영역으로 넓히고 싶어 한다.

건축 유산을 답사하러 가보면 가구가 공간에 방점을 찍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체어의 X자 철제 크롬 다리는 그 의자가 최초로 놓인 바르셀로나 파빌리언(1929)의 十자 철제 크롬 기둥과 맥락을 같이한다. SAS 호텔에 놓인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체와 접하는 면적을 달리하며 공간에서 공적이고(스완 체어) 사적인(에그 체어) 관계를 만들어낸다. 알바르 알토는 핀란드 지폐에 등장할 정도의 국가대표 건축가이지만, 모든 핀란드인이 그가 설계한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반면 알토의 ‘스툴 60’은 거의 모든 핀란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있다. 에로 사리넨의 가구를 보면 그의 건축과 이렇다 할 접점을 찾기 어려운데, 그의 건축과 가구가 개별적인 천재성을 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가구’에 대한 로망이 만들어진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미하엘 토네트, 핀 율, 한스 베그네르, 장 프루베 등 공예 혹은 제조업의 관점에서 가구를 만들었던 장인과 디자이너도 있다. 가구를 만들다 보면 가구나 건물이나 구조적 원리는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 프루베는 그의 가구처럼 금속 패브리케이션으로 집을 만들어볼 생각을 했는데, 그는 최소한의 조립식 구조물로 최소한의 인력과 시간을 들여 집을 짓고 싶어 했다. 디마운터블 하우스Demountable House를 통해 건축을 바라본 장 프루베의 산업 디자인적 관점은 흥미롭다. 건축을 스케일이 큰 가구라고 생각했을 때, 공장에서 가구 부품을 생산해 현장에서 짜 맞추는 것은 디자인을 실현시키면서 품질은 높이고 시공 단가를 낮출 수 있으니 이상적인 건축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 사무실도 운영했던 찰스 임스는 건축가로 커리어를 쌓는 대신 파이버글라스, 플라스틱, 성형합판 같은 새로운 재료에 미학을 부여하는 위대한 디자이너가 되었다. 1949년에 찰스 & 레이 임스 부부는 LA 외곽의 팰리세이드 지역에 어찌어찌 집을 짓게 되는데(여덟 번째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Case Study House), 이 집이 그 유명한 ‘임스 하우스’다. 이 집 역시 공장에서 철과 유리 패널을 생산해 현장에서 짜 맞추는 프리패브리케이션 방식으로 단 3일 만에 시공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산업 디자이너가 집을 지을 때 패널식 프리패브리케이션이 정답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임스 하우스의 아름다움은 몬드리안을 연상시키면서 비례가 좋은 유리 패널에 있지 않다. 실제로 임즈 하우스를 방문하는 경우, 집을 코앞에 두고도 찾기 어려운데, 울창한 나무들 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들은 유리 패널에 그늘을 제공하는 한편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도 한다. 임스 하우스의 초기 설계 스케치를 보면 찰스 임스가 건물 앞 나무들을 강조해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장소에 자리 잡는 집 짓기의 과정이 엿보인다. 건축가다운 사고방식이지만, ‘장소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 정하는 것’을 집 짓기의 출발이라고 한다면, 장 프루베의 디마운터블 하우스의 한계를 극복하는 임스 하우스는 현대건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렇게 건축가의 가구 이야기 그리고 (가구) 디자이너의 집 짓기 연대기를 보면, 건축과 가구의 해피 엔딩을 상상하기 쉽다. 건축가는 건축 프로젝트에 가구까지 디자인해서 공간을 완성하고 싶어 하고,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건축의 영역으로 넓히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건축가의 가구는 프로젝트마다 자체적으로 제작 공급해야 한다. 프로젝트로서 의미는 있겠지만 양산하지 않는다면 가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 건축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구 디자인을 상품화하려면 일단 명성을 얻어서 비트라, 프리츠 한센, 허먼 밀러, 아르텍 같은 유통 회사에 제품을 위탁 생산하든지, 아니면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양산 및 마케팅을 해야 한다. 건축 프로젝트 하나도 진행하기 쉽지 않은데 제품까지? 지속적으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디자이너들의 집 짓기는 어떨까? 크레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들은 브랜딩과 공간 디자인, 그리고 건축을 아우르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리고 직접 건축 설계와 시공에 참여할 때도 있다. 이 경우 가구 등의 제품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은 장소에 자리 잡는 법을 터득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건축가가 땅을 다루는 것만큼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라 겐야가 제안한 ‘무지 헛 Muji Hut’처럼 제품 형태로 디자인한 리빙 박스도 있다. ‘세상에 같은 장소(땅)는 없는 법이고, 그래서 최적의 해법(건축)은 다 다르다’는 것이 내 지론인데, 장소를 따지지 않고 제품화된 ‘무지 헛’ 같은 집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이런 시나리오는 어떨까? 건축가가 장소를 살펴 예민하게 터를 잡은 다음 프리패브리케이션 부재로 구조를 설계하고, 디자이너의 감각이 살아 있는 파츠를 공장에서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집이라면? 건축가의 가구 만들기와 디자이너의 집 짓기, 양쪽의 지혜를 합쳐서 바우하우스의 이상향이 그러했듯이 집 짓기의 과정이 공예와 디자인의 통합으로서의 ‘건축’으로.




홍익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스티븐홀 아키텍츠, 라파엘 비뇰리 아키텍츠 뉴욕에서 경험을 쌓고, 2008년 전숙희와 함께 와이즈건축을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2017년 빼빼한 막대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가라지가게를 시작했으며, 역시 막대나무로 간결한 삶의 방식을 선보이는 빼빼집을 계획 중이다.

Share +
바이라인 : 장영철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