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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스타일리시하기보다는 캐릭터의 내면을 이미지화하는 데 힘썼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미술감독 류성희
1998년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의 프로덕션 디자인 과정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인디영화 쪽으로 경험을 쌓다가 귀국, <꽃섬>으로 데뷔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등에서 아트디렉팅을 담당했다.

<엘리펀트 맨>으로 구원받았다 생각한 한 미술학도는 대학 때 배운 도예를 그만두고 데이비드 린치의 모교인 AFI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영화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그녀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미술감독 중 한 명이 됐다. 지금껏 열 편 남짓한 한국 영화를 만나 감독의 의식과 캐릭터의 존재감을 펄펄 살아 뛰는 정서적 이미지로 구현한 미술감독 류성희. 메이저보다는 마이너에, 영웅보다는 패배자에 더 애정을 갖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만든 공간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시대, 꿈과 실패를 표현하고 있다. 12월 7일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이하 <싸이보그>)는 사랑 이야기에 앞서 소통에 관한 영화다. 그녀 역시 이 작품이 어떤 이들과 소통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기대하고 있다. 이 긴장감은 곧 류성희 감독의 미학 에너지이기도 하다.



<싸이보그>는 <올드보이>와는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작품을 어떻게 풀어갔나?

이제는 나도 밝은 곳에서 뭔가 해볼 수 있겠구나 했다(웃음).
<싸이보그>는 정신병원의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부분 정신병원이 소재인 이야기들이 교훈적이거나 우월적인 태도로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와 겸손함이 끌렸다.

어쩌면 정신병원은
편견으로 가득한 공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에도 스타일리시한 곳으로 만들려는 욕심은 버렸다. 스토리에 충실해서 하얀색을 기본으로하되 스위트해 보이는 페일 핑크, 그린, 블루 등 파스텔 계열을 활용했다. 사라질 것처럼 불안하면서도 순수한 색감. 그동안 내가 작업한 영화들이 스타일리시했다고들 하지만 화려해지고 싶어 의도한 건 아니다. 워낙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이 장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다 보니까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이제껏 작업한 영화의 공통점은 대부분 루저 혹은 반영웅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 사람들은 공격적 성향과 죄의식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산다. 이들이 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할까, 고민하고 이해하다 보면 다양한 영감이 떠오른다. 아픔, 상처 등 내면을 외면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사나 사회 문제 모두를 끌어올 수 있어 미술적으로도 더 재미있다. 현재 작업 중인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도 비슷하다. 동화에 바탕을 둔 공포영화이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신이 창조한 공간은 관객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하지만 <싸이보그>는 전작들보다 미술적인 개입이 덜한 작품 아닌가?
배우의 눈빛이나 대사처럼 공간이나 소품도 스토리의 전달자 노릇을 한다. 배경이라도 스쳐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정서에 반응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캐릭터의 내면을 이미지화하는 건 영화 속 미술의 역할이기도 하고. <싸이보그>에서도 순수한 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가면, 복도에 붙여놓은 그림 등의 소품과 현실적인 병실, 상대적으로 판타지의 느낌이 강한 휴게실 등의 공간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다.

데뷔작 <꽃섬> 이후 5년이 흘렀다.
아트디렉팅에 대한 철학 혹은 신념은 그대로인가?
난 가차 없이 일했고, 작품의 비전과 결과에 매달렸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완벽주의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작업이 열정의 전부가 아닌, 삶의 일부가 되었다. 결과만큼 상황도, 팀원도 소중하고 때론 실패할 수도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 의미나 재미를 추구하는 거다.
디자이너에게는 날 선 감수성이 필수이지만, 이래서 많은 디자이너나 예술가들이 나이가 들수록 두루뭉실해지는 구나 싶기도 하고(웃음). 관객이 내 진심을 오해하지 않고, 인생의 일부를 바쳐 만든 영화를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도 간절하다.

‘미술감독 류성희’는 한국 영화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 불완전함, 부적응 등은 덜 대중적일 수 있지만 이것이 바로 내 역할이라 믿는다. 블록버스터나 사극의 미술을 훌륭하게 해내시는 분들은 관객들의 기대치에 정확하게 부응해야 하지만 난 아직은 내가 발붙이고 사는 현재를 디자인하고 싶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과장되게. 철저히 리얼리즘 베이스인 한국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그 경계선을 변용하며 ‘타임리스’ 적인 색다른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대중 취향보다 한 발만 더 앞서 가자,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영화의 미술 작업을 하고 싶은가?
<화양연화>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특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중년 남녀들의 진솔한 이야기. 비슷한 나잇대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흥미가 많다. 가능할까? 나에겐 멜로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가 절대 들어오지 않던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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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윤혜정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