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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 방한 Giorgetto Giugiaro
세차(洗車)만 8시간씩 하는 자동차 마니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주지아로를 만났다고 자랑을 했다. 그는 장난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들 주지아로가 아니냐고 했다. 1938년생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맞다고 하자 그런데 왜 9시 뉴스에 나오지 않았냐고 반문을 하는데 그만 할 말이 잃었다. 여자보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그의 물음은 악의의 가식이 아니라 선의의 무지였으리라. 왜냐하면 그에게 주지아로는 어느 나라 대통령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20명의 저명한 기자와 세계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세기의 자동차 선정 위원회’에서 ‘20세기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주지아로를 선정했다. 그 자동차 디자인의 신화가 한국에 왔다. 지금도 산악 오토바이를 즐 타고, 자신이 만든 이탈디자인의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이 되어 장거리 비행을 좀처럼 하지 않아서, 아시아에 오랜만에 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어록을 정리해보았다.

당신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나에게 디자인과 예술은 다르지 않다. 예술은 옛날 것만 아니라 하이 테크놀로지도 예술이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예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들은 정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서양 미술가가 아프리카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았는가. 예술은 죽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는 항상 예쁘고 좋은 것만 찾게 되어 있다. 자동차 보닛을 열어보면 엔진배열도 선도 모두 예술이다. 또한 경제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예술이다. 100명을 위한 아이디어보다 100만 명을 위한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다. 자동차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예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란 자연을 응용하는 것이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
였다. 예술은 창조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디자인은 무엇인가?
할아버지는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화가였으며, 아버지 역시 교회 미술을 복원하는 화가였다. 지금의 나와 이런 집안 환경은 무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멋진 분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공간에 무엇을 그리고 싶어 했다.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의 집에 공간이 보이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벽과 문과 창문에 그림을 그려주시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 앞만 보고 가는 분이시라 피카소의 그림을 평생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거지 같은 그림이 유명한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당시 2차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에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 점이 아버지와 다른 것 같다. 어머니에게 매년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선물로 드렸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예전에 쓰던 물건을 그냥 썼다. 부모님은 세대가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새로운 예술이 처음에 부담스럽다고 거부하지 말라. 포도주처럼 시간을 갖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와인을 처음 따면 산소가없기 때문에 살짝 구린내가 난다. 시간이 지나고 흔들면 산소와 결합하여 맛과 향이 좋아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음악이 좋아지기도 한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내가 무슨 핸드폰을 써? 난 핸드폰 쓸 일 없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쓰고 있다. 익숙한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자유로워야 한다. 또한 디자인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고 즐겨야 한다. 좋은 관계는 비즈니스에도 도움을 주지만 인간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 한국에온 이유도 그러한 이유 중 하나이다.

당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육상 경기를 보면 0.01초 차이로 순위가 결정된다. 바로 그거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그 결과가 매우 다른 것이다. 그 차이가 이탈리아의 것이 될 수 있고, 독일 것이 될 수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모차르트, 비발디, 베토벤이 다 같은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주지아로 디자인은 이거다’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 상당히 어렵다. 느껴야 한다. 많이 보면 안다. 많이 보면 느낄 수 있다.

아시아 클라이언트의 특징이 무엇인가?
1960년대 일본과 처음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매우 근면해서 모든 것을 다 적어서 기록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자신의 크레에이티브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과는 1970년대부터 일을 같이 하기 시작했는데, 군대 문화여서 그런지 일본 사람보다 더 빨리 배웠다. 도쿄모터쇼에 처음 갔을 때이다. 어떤 회사가 내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껴서 카탈로그에 넣은 것을 발견했다. 창피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당신의 아이디어를 넣었으니 좋지 않냐고 반문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의 것을 카피하면 야단을 친다. 카피하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양에서 카피한다는 것은 스승을 넘어가기 위한 발판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문화의 차이다. 이제는 중국의 시대다. 중국과는 1995년부터 일을 같이 시작하였다. 분명히 중국은 한국, 일본보다 더 빨리 성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이 하이테크놀로지를 바닥부터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럽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다. 한국에 처음 와서 현대의 포니와 일할 때 당시 일본, 독일 엔지니어가 있었다. 이제는 한국이 엔지니어링을 수출하고 있다. 나는 그때 상상도 못했다. 중국도 그러할 것이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글로벌 디자인이다. 아우디와도 비슷하고. 인피니티와도 비슷하다. 문제는 누가 먼저 시장에 내놓느냐, 누가 며칠 먼저 내놓느냐이다. 예를 들면 렉서스는 벤츠 스타일을 본떠서 시작을 했다. 렉서스는 더 저렴한 가격에 양질로 공급을 하였고 벤츠는 그렇지 못하여 최근 고전을 겪고 있다. 디자인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영리한 사람이 앞서 가는 것이고, 영리하지 못하면 뒤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누구인가?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는 1938년 8월 7일 이탈리아 가레시오(Garessio)에서 태어났다. 1952년 토리노(Torino)로 이주하여 낮에는 순수미술을 밤에는, 기술 디자인을 공부하였다. 17세에 피아트의 대표 디자이너 단테 자코사(Dante Giacosa,1905~1996)의 눈에 띄어 피아트사의 스타일링 센터에 근무하게 되었다. 1959년 12월 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에 의해 카로체리아(Carrozzeria: 자동차 디자인 전문업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로 위임받고 6년간 일했다. 그 후 1965년 11월 카로체리아 기아(Ghia)의 경영진이 된다. 1968년 2월 그의 기술적 파트너 알도 만토바니(Aldo Mantovani)와 또 하나의 카로체리아 이탈디자인(Italdesign)을 설립한다. 그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등극하는 계기는 1974년 폭스바겐의 골프가 대성공하면서부터다. 이후로 란치아의 델타, 피아트의 판다, 이스즈의 피아자 등 수많은 차를 디자인하였다. 영화에 소개된 차로는 <백투더퓨처>에 등장하는 들로리아 DMC12가 유명하다. 주지아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데, 포니를 시작으로 스텔라, 소나타, 라노스, 레간자, 라세티 해치백 등을 디자인하였다. 1997년 주지아로는 다리오 트루초(Dario Trucco)를 CEO 겸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회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들 파브리지오 주지아로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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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