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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뉴 럭셔리, 제네시스를 선언하다 자동차 디자이너 이상엽
그가 현대자동차에 출근한 지 막 1년이 지났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한 2007년형 카마로 ‘범블비’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이상엽은 연간 900만 대를 생산하는 GM과 연간 9000대를 맞춤 제작하는 벤틀리를 두루 경험한 디자이너다. 직전 100년 역사의 럭셔리 카 벤틀리에 공격적인 스포티함을 불어넣고, 시대성에 부합하는 완전히 새로운 SUV 차량을 제시하고는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4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미국 아트센터에 진학해 8개국을 떠돌며 일한 지 23년 만이다. 수년 뒤에 양산될 차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자동차 디자이너의 일이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향할지를 설득력 있게 예측하는 작업이다. 이상엽은 자동차 디자인의 영역은 더 이상 아름다운 하드웨어를 찍어내는 제조업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고객이 즐길 만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GV80 콘셉트카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 스타필드 하남 제네시스관에서 포즈를 취한 이상엽.
이상엽 1969년생. 홍익대에서 조소를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Art Center College of Design) 자동차디자인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페라리를 디자인한 회사로 유명한 피닌파리나와 포르쉐 디자인 센터를 거쳐 1999년 GM에 선임 디자이너로 입사해 쉐보레 카마로와 콜벳 스팅레이 등의 콘셉트카 디자인을 맡았다. 2010년 폭스바겐 미국 디자인 센터 수석 디자이너로 옮겨 그룹 내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스코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선행 디자인을 이끌었으며 2012년 말부터는 벤틀리에서 외장 및 선행 디자인 총괄을 맡아 벤틀리 플라잉스퍼, 컨티넨탈 GT, 벤테이가 및 콘셉트카 EXP 10 스피드 6 등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2016년 5월 16일 현대차디자인센터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합류해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 브랜드 전 차종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EK 지난 5월로 현대자동차로 옮긴 지 딱 1년이 됐습니다. 돌아보기에 너무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1년간 어땠나요?
SY 몸이 두 개였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한 1년이었습니다.(웃음) 남양에 있는 R&D 센터, 서울 양재 본사 내 선행디자인팀, 미국, 유럽, 중국, 인도, 일본의 디자인 센터를 오가며 바쁘게 지냈어요. 제가 거쳐온 회사들인 미국 GM, 독일 폭스바겐에서 규모별 대량생산 체제를 익혔고, 벤틀리 같은 곳에서는 소위 ‘익스클루시브 비즈니스’라고 하는 초럭셔리까지 두루 경험했는데요, 현재 현대자동차에서는 대중형 양산 차량에서부터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아우르게 됐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여러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겁게 맞닥뜨리고 있어요.

EK 자동차 산업은 이제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에 따라 자동차 디자이너의 영역은 어떻게 변할까요?
SY 사실 오늘날 자동차 디자인은 라이스프타일 디자인 영역에 속한다고 봐요. 차량 인테리어는 자연히 공간 디자인이 되고요.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분야가 등장했는데,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다시 그 구분이 흐려지고 있어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아요. 차량을 멋지게 디자인해 매장에서 판매하고 고장 나면 수리해주는 게 그간 자동차 산업의 주요 비즈니스 형태였다면, 이제는 판매한 이후의 서비스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제품을 산 고객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는 네트워킹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죠. 자동차 산업이 하드웨어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업으로 바뀌고 있어요. 차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시대는 가고 있고요. 서비스 공급자로서 살아남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K 지난 6월에는 글로벌 디스트리뷰터스 컨벤션 행사에 직접 나섰는데요, 전 세계 대리점 점주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였죠. 이런 자리에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게 흔한 일인가요?
SY 브랜드마다 진행 방식이 다르지만 꼭 필요한 중요한 자리예요.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만큼 그 열정을 담은 디자인을 소비자에게 설득하고 스토리를 전달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스토리텔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딜러는 우리 브랜드의 가족이자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최전선에 있는 분들이기에 디자인에 관해서 무장이 잘돼 있어야 해요. 누구를 만나도 우리 디자인의 차별화, 특별함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하죠. 미국 애플 스토어에서 만나는 파란 티셔츠 입은, ‘지니어스’라고 불리는 점원들은 누가 봐도 최고의 애플 마니아잖아요. 거기 가서 “내 갤럭시가 애플보다 더 좋아” 했다가는 곱게 나오기 힘들겠죠.(웃음) 어떤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와 열정을 말할 때 디자인의 역할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자동차 디자이너와 딜러와 직접 만나는 행사는 매우 중요해요. 그 브랜드만의 특별함, 특유의 냄새,
가치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니까요.

현대자동차는 2006년 폭스바겐의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기아차 디자인 총괄 겸 부사장으로 영입하며 ‘디자인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한 이래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인재들을 영입하기 시작했고 1월 벤틀리 디자인을 총괄하던 루크 동커볼케(Luc Donkerwolke) 전무를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으로, 이어 5월에는 그와 함께 벤틀리의 외장 디자인을 담당했던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을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임명했다. 이들의 영입은 글로벌 고급 브랜드를 표방한 제네시스의 론칭과 맞물려 있다. 2015년 11월 세계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제네시스는 2019년까지 세단 3차종, SUV 2 차종, 전기차 1 차종, 총 6개 포트폴리오를 선보인다고 선언했다. 2015년 12월 현대자동차의 기존 에쿠스를 대체하는 모델이자 제네시스의 첫 플래그십 세단G90을 발표했고 이어 2016년 6월 G80과 G80 스포츠 모델을 공개했으며 2017년 3월 서울모터쇼에서는 장인 정신을 담은 특별 제작 모델 G90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오는 9월 15일 세단 라인업의 마지막 모델인 G70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실질적으로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의 ‘케미’와 역량, 비전을 망라한 디자인은 2년 후 양산될 SUV 차량인 GV80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상엽은 현재 ‘역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제시하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재해석과 과감한 자신감, 진보적 마인드를 탑재한 뉴 럭셔리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중이다.

EK 그럼 본인이 매장에서 차를 판매한다면 어떤 점을 들어 제네시스를 피력하겠어요?(웃음)
SY 제네시스는요, 아주 특별한 브랜드예요. 버버리는 영국, 샤넬은 프랑스, 페라가모 하면 이탈리아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있죠. 제네시스는 자동차 이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한민국이 가진 독특한 캐릭터를 디자인 동력으로 삼은 브랜드이기 때문이죠. 한국은 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굉장히 역동적인 두 얼굴을 가진 캐릭터예요. K팝과 단아한 여백의 미,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과 전통 공예 장인이 공존하는 나라지요. 이 양극단의 균형과 조화는 럭셔리 제품을 말할 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역동적인 럭셔리 브랜드’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BMW 정도요? ‘우아한 럭셔리 브랜드’라고 하면 재규어겠죠. 제네시스는 역동적인 캐릭터에 우아한 조합이라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노는 브랜드입니다. 차종에 따라 애슬래틱과 엘레강스의 비율을 달리해서 특징을 뽑아냅니다. 모든 럭셔리는 근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가 몇 년이 됐건, 그 역사가 좋았건 싫었건 부정하지 않은 채 고유의 뿌리를 잘 발전시키고 알려야 제대로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봅니다. 그나마 패션업계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럭셔리를 제시하는 브랜드가 꾸준히 탄생하고 있지만, 더욱 복잡한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자동차 브랜드에서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워요. 그나마 1989년에 론칭한 일본의 렉서스 정도가 최근의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것도 이미 30여 년 전이죠. 이런 시점에서 제네시스의 도전은 굉장히 과감하고 야망이 넘치죠.

EK 100년 가까이 된 벤틀리와 신생 브랜드 제네시스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SY 이전 벤틀리에서 차를 디자인할 때는 1919년 초창기 모델부터 매해 나온 차,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차 등 벤틀리의 히스토리와 모든 차종 이력을 달달 외운 후에 시작했어요. 스케치를 한 다음 반드시, 이게 벤틀리의 철학과 역사에 맞는지를 스스로에게 꼭 물어봤고요.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경험이긴 했지만, 역사와 전통의 무게가 어깨를 꽉 누르고 있어서 그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달까요? 틀에서 벗어나면 고객이 그 브랜드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어요. 이에 반해 제네시스는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똑같은 책이 있다고 봤을 때 페이지가 비어 있는 거죠. 디자이너로서 멋진 차를 디자인하는 것 이상으로,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매우 신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G90 스페셜 에디션(2017) 지난 3월 서울모토쇼에서 제네시스는 기존 G90에 네이비 & 화이트 등의 핀스트라이프 슈트를 연상시키는 상·하단 투톤 컬러 조합을 외관부터 시트까지 적용한 특별 에디션을 선보였다. 고객의 체형과 취향에 따라 제작하는 비스포크 슈트에서 착안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차량을 강조했다.

EK 지난 4월 뉴욕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한 제네시스의 차세대 스포츠 유틸리티(SUV)인 GV80 콘셉트카는 주간 주행등이라고 부르는 4줄의 DRL(Daytime Running Light)이 두드러지는 아이덴티티인 것 같아요.
SY 먼저 그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지금까지 그릴의 셰이프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낸 건 사실이에요. 그릴은 차량이 내연기관이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공기를 빨아들이는 구멍이니 그릴이 클수록 그 안에 있는 엔진의 힘이 좋다는 뜻이죠. 그러다 안전을 문제로 주간 주행등에 관한 법규가 새로이 대두되면서 램프 시그너처가 대두되기 시작했어요. 국내에도 뒤늦게 2015년 즈음부터 주간 주행등 장착과 점등을 의무화한 법규가 신설됐는데, 아우디의 경우 최초로 LED 주간 주행등을 선보여 화제가 됐죠. 이제는 차가 멀리서 올 때 그릴이나 차 형태보다 램프 시그너처가 먼저 보여요. 그런데 전기차 시대가 되면 석유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엔진 때문에 생긴 그릴이 반드시 이런 형상일 필요가 없어지죠. 자율 주행 시대가 되면 차가 알아서 다니는데 굳이 앞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요? 마주 보는 차량에 흔히 맹수의 눈에 비유되는 ‘공격적인 눈매’를 보일 필요가 있을까요? 기존 개념을 깨나가고 싶어요. GV80은 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헤드램프 4줄이 늘 동시에 켜집니다. 좁은 면적에 광원을 집어넣어 강한 빛을 내려면 차별화된 기술력이 필수죠. 사실 헤드램프가 반드시 앞에만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요. 차량 앞 모서리에서 시작해서 옆면 전체로 연결되면, 양옆의 방향 지시등도 아예 한 줄로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 전혀 다른 자동차 모습이겠죠? 주어진 상황을 역발상으로 다르게 풀어나가는 실험이 저희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상엽은 한국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 모형에 죽고 사는 사내 아이는 아니었으며 대학생 시절 몰았던 차의 기억이 기아 세피아, 현대 엘란트라에 머물렀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을 통해 자동차 디자인 분야가 있다는 것을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이후 군 제대 후 늦깎이로 아트센터에 진학해 자동차디자인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상엽은 인터뷰 중 피닌파리나 인턴을 시작으로 GM, 폭스바겐, 벤틀리 곳곳에서 만난 소중한 멘토를 거듭 언급했다. “아무래도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았기에 ‘여기서 잘못되면 끝이다’라는 절박함이 있었고,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니 바닥부터 몽땅 배우자는 각오로 임했어요. 기로마다 좋은 선배 디자이너를 정말 많이 만났는데 한결같이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펜을 가지고 다녀라’, ‘디자이너가 펜이 없으면 세일즈맨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하셨죠. 실제로 저는 펜에 대해서라면 매우 까다로워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펜을 늘 갖고 다녀요.” 이상엽은 종종 답변을 하며 슈트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자신이 언급하는 차량이나 부품을 종이에 쓱쓱 그렸다. 디자이너에게는 머리와 가슴과 손의 조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이며.






제네시스 GV80 콘셉트 디자인(2017) 지난 4월, 2017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선보인 제네시스 브랜드 최초의 고급 SUV. 실용성과 우아함을 모두 갖춘 모델로, 수소 연료와 전기 충전이 다 가능한 친환경 플러그인 수소 연료 전지 기술을 동력으로 사용한다.

EK 미국 아트센터 유학 시절, 디자인이 별로인 차의 대명사 격으로 한국 차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상해하셨다고요.
SY 기분 나빴죠. 이탈리아에서 일하던 초창기에도 이상한 디자인 요소만 있으면 한국 차 같다고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모멘텀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특히 2005년경 YF소나타 이후로 더욱 급격히. 당시 GM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벤치마킹 자동차가 다 현대자동차로 바뀌었어요. 성능과 가격과 디자인을 두루 갖춘 한국 차가 가성비 측면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거죠. 이후 GM에서 폭스바겐으로 옮겼을 때도 항상 현대차를 벤치마킹 차로 봤고 더 이상 한국 차 같다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더군요. 개인적 커리어로는 늘 현대차의 경쟁사 디자인을 해왔지만 현대차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에 내심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동안 일궈온 스토리가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선배 디자이너들이 훌륭한 기반을 닦아놓았기에 제네시스 론칭까지 이르렀고, 이제 저희 팀이 다음 단계로 내딛는 작업을 잘 해야겠죠.

EK 첫 인턴 생활을 ‘이탈리아 카로체리아(Carrozzeria)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피닌파리나에서 했어요. 커리어에서 중요한 기로가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SY 자동차 디자인도 영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아트센터에 진학했어요. 당시 피닌파리나에서는 한 번도 인턴을 뽑은 적이 없는데 제가 재학 중이던 그때, 처음 인턴을 뽑으려고 겐 오쿠야마라는 디자이너가 학교에 오셨어요. 저보다 열 살가량 많은 바로 위 세대의 일본 디자이너로 일본에서 태어나서 저처럼 미국으로 진출해 GM, 이탈리아 포르쉐에서 활약하는 분이었는데, 이전부터 존경하고 있었지요. ‘(동양인인) 나도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차를 저렇게도 디자인할 수 있구나’ 하는 꿈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신 분이에요. 피닌파리나에서 겐 오쿠야마의 페라리 디자인을 감히 도와드리면서, 그분 스케치에 페라리 고유의 빨간색 칠을 할 때마다 매번 가슴이 쿵쾅댔어요. 브랜드의 철학과 유산, 역사를 배운 게 피닌파리나에서부터였어요. 대한민국에서 옹알이하던 어린이가 처음으로 디자이너로서 큰 영감을 느껴본 경험으로 기억합니다.

EK 2006년 GM 재직 당시 디자인한 셰보레의 카마로가 영화 <트랜스포머>에 ‘범블비’로 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는 게 됐어요. 1960년대 후반의 1세대 카마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들었죠. 초기 콘셉트부터 2008년 양산형 모델에 이르기까지 외장 디자인을 직접 디자인했는데요.
SY 〈트랜스포머〉에서 마케팅으로 잘 풀어서 ‘21세기 범블비는 한국인이 했다, 인터내셔널한 차다’ 하고 홍보를 했죠. 그런데 저는 어디 가서 제가 범블비를 디자인했다고 하지 않아요. 역시 훌륭한 멘토였던 디자이너 톰 피터스(Tom Peters)와 한 팀에서 호흡하면서 카마로도 했고, 콜벳도 했던 거죠. 물론 역할상 제가 주로 리드를 하긴 했지만 가장 미국적인 차를 가장 잘 아는 팀원들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패밀리’로 적응할 수 있었던 기회 자체가 결과물보다도 더 소중한 것 같아요.

EK 그렇게 입지를 굳혀가다가 돌연 독일로 떠났어요.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SY 미국 차 특유의 모양과 냄새에 심취해 머슬카를 디자인하다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러다 2007년 후반쯤이었을 거예요. 제가 있던 디트로이트에서는 폭스바겐 골프를 거의 볼 수가 없어요. 파워 넘치고, 날렵하고 울룩불룩한 미국 차들이 주로 도로를 달리죠. 그렇게 낮은 천장, 큰 바퀴만 보다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새하얀 골프를 봤어요. 순간적으로 골프가 친숙한 미국 도로 풍경에서 남달라 보였어요. 차는 작은데 실내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정제돼 있으면서도 단단해 보이고. 이런 차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디자인하는지 궁금했고, 스스로에게 ‘지금 저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이렇게 라인 하나 없이 디자인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2~3초도 안 돼서 ‘할 수 없다’고 답을 했죠. 바우하우스 철학을 모르니까요. 당시 제게 골프는 작은 거인처럼 보였어요. 도대체 이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지독하게 궁금해서 독일로 가게 됐죠.






셰보레 카마로 트랜스포머 (Camaro Transformers, 2010) 영화 <트랜스포머>의 흥행과 함께 ‘범블비’라는 애칭으로 큰 인기를 끌며 디자이너 이상엽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뷰익 베리떼 콘셉트 디자인 (Velite, 2004) 뷰익 브랜드 최초로 이탈리아의 유명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에서 제작을 맡은 콘셉트 로드스터.


셰보레 스팅레이 콘셉트 디자인 (Stingray, 2009) 1959년 처음 발표한 스팅레이 5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로, 2009년 시카고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문이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와 날렵한 외관으로 미래적인 슈퍼카를 표현했다.


셰보레 콜벳 C6(Corvette C6, 2005) GM 셰보레의 대표적인 스포츠카이자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콜벳의 6세대 모델. 1세대 모델 이후 처음으로 헤드램프를 팝업식이 아닌 고정형 투명 커버로 덮었다.

EK 폭스바겐에 다닐 때는 질 샌더를 입고, 벤틀리에 다닐 때는 영국 전통 고택에 살며 폴 스미스 옷을 입으면서 그 나라의 문화적 경험치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 나라의 상징 격인 브랜드에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다가가려 했나요?
SY 제 이름은 해외 어디에서도 항상 ‘이상엽’이었어요. 그게 단 하나 저의 한국적 정체성이었고, 영국에서는 영국 사람처럼, 독일에서는 독일 사람처럼 살고자 했어요. 제가 자라던 1970~1980년대 한국에서 자동차 문화라는 게 어디 있었겠어요. 유학 시절 그림은 남들보다 잘 그렸을지 몰라도 자동차 문화에 관해서는 한마디로 무식했죠. 잃을 것이 없다는 자세로 모든 일을 바닥부터 배우듯 임하는 저를 예쁘게 봐준 멘토가 고맙게도 늘 있었어요. 다국적 멘토들의 악센트나 농담마저도 따라 하고 옷차림도 흉내 내며 모든 걸 흡수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특이한 캐릭터가 돼 있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존경하는 선배 디자이너들에게는 없는 또 하나의 역량을 제가 지니고 있을 수도 있겠죠. 해외에서는 종종 제가 동양인임을 잊고 일했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영국 사람, 미국에서는 미국 사람,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했어요. 한참 일하다 화장실 가서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 ‘어머나, 왜 이렇게 얼굴이 커?’ 하면서 놀라곤 했죠.(웃음)

EK 디자이너 이상엽 하면 루크 동커볼케 전무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어요. 벤틀리에서 최강 호흡을 맞춘 뒤 현대자동차에서도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고, 아예 사무실도 함께 쓴다고 들었어요.
SY 제가 미국 GM에서 근무할 때, 한 TV 프로그램에서 셰보레 카마로에 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나온 회차가 방영되는 줄 알고 TV를 켰는데, GM 방영분은 그 주가 아니라 다음 주라 하더라고요. 그 주에는 마침 람보르기니 공장 편이 나왔는데, 당시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수장이었던 루크 동커볼케가 강한 프랑스 악센트의 영어로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고 시선이 멈췄어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면 사실 디자인센터에서 잘 밀어주지도 않는 사내 분위기를 제가 아는데, 인터뷰도 웬만하면 이탈리아어로 해야 할 텐데, ‘저 사람은 누구지?’ 하고 보게 됐죠. 보다 보니 디자인 철학이 확고해서 더욱 관심이 갔고, 함께 일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나갔죠. 그리고 몇 년 뒤, 저는 폭스바겐 미국, 루크 동커볼케는 폭스바겐 독일에서 일하게 되어 함께 프로젝트를 했어요. 손발이 신기하리만큼 잘 맞았죠. 일 년 남짓 프로젝트를 같이 하다가 루크 동커볼케가 벤틀리로 발령이 났는데 공식 발표도 하기 전에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상엽, 빨리 짐 싸. 영국 가자. 벤틀리 디자인해야 해” 하더군요.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EK 선배이자 동료 디자이너로서 루크 동커볼케 전무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요?
SY 지금 오피스도 한 공간에서 책상만 따로 두고 중간 테이블에서 함께 일해요. 디자인 이야기할 때는 누가 보스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격렬하게 논쟁하다가 정 끝이 안 보이면 전무님이 결정을 하긴 하지만, 그렇게 치고받는 순간이 제가 디자이너로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해지는 때 입니다. 저나 전무님이나 지루한 걸 원체 싫어해요. 제가 ‘이런 디자인 한번 해보고 싶은데, 회사나 고객이나 반발이 심할 거 같다’고 말하면, ‘계란 프라이를 먹으려면 계란을 먼저 깨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세요. 디자인에 열정을 가진 최고의 파트너이자 존경하는 분과 함께 일하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이제껏 디자인한 것 중 제일 인상에 남는 프로젝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러면 저희는 옛날에 했던 거 절대 이야기 안 해요. 지금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게 가장 최고의 프로젝트라고 말해요.

EK ‘벤틀리 이상엽’의 역작이라면 2015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벤틀리 EXP 10 Speed 6 콘셉트카가 아닐까 싶은데요. 벤틀리에 부임한 후 처음 맡은 프로젝트로, <오토블로그> 선정 ‘2015 제네바 모터쇼 신차 1위’와 세계적인 클래식카 경연대회 이탈리아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에서 ‘콘셉카 및 프로토타입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죠.
SY 벤틀리 사내에서 아무도 저더러 그 차를 하라고 한 사람이 없었어요. 동커볼케 전무와 저랑 벤틀리에서 그 차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거의 숨어서 하다시피 한 차였어요. 과정 중에 세 번이나 경고를 먹고 제지를 당했는데도 끝까지 밀고 갔죠. 왜냐, 어린이들이 벽에 붙여놓는 자동차 포스터를 보면 포르쉐도 있고 람보르기니, 페라리도 있는데 벤틀리가 없더라고요. 벤틀리도 있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값도 비싸고 클래식한 디자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보니까 미국이나 유럽에서 벤틀리 고객의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이더라고요. 고객 연령이 60세 이상인 브랜드는 미래가 없다고 봤어요. ‘벤틀리가 성공한 40대의 로망이 되려면?’ 하는 고민에 스포츠카를 디자인해보자 한 거죠. 목표 설정은 명확했어요. ‘우리는 제네바에 출품할 거고, 누구나 가장 먼저 와서 봐야 하는 부스가 될 거고, 모터쇼가 끝나면 우리는 넘버원상을 받는다’라고 아침마다 함께 되뇌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죠. 그 차를 모티브로 올해 하반기에 차세대 컨티넨탈GT가 나오는 것으로 알아요. EXP10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K 자동차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균형은 어떤 것인가요?
SY 최고의 디자인은 최고의 엔지니어링이 없으면 구현할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는 반은 디자이너, 반은 엔지니어여야 한다고 봅니다. MIT 기업가정신센터의 매니징 디렉터인 케네스 모스(Kenneth Morse)는 ‘이노베이션은 인벤션 (Invention)+커머셜라이제이션(Commercialization)’이라고 말했잖아요. 무엇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발견한 것을 완벽하게 상품화하는 거예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보다 LG 프라다폰이 전면 터치스크린을 먼저 상용화했어요. 하지만 상품화는 애플이 완벽히했죠. 자동차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로 변모해가면서 디자이너로서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어요. 100년 역사를 지닌 브랜드도 다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발상을 만나 출발선상에서 모두 똑같이 새로 달리는 거예요. 이 순간에 새로운 럭셔리를 제시하겠다는 제네시스는 일단은 무조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EK 최대 화두인 자율 주행차 시대, 자동차의 럭셔리란 어떤 형태로 흘러갈까요?
SY 사실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제가 영국에서 리버풀 근처에 살았는데 동네에 카날(canal)이라고 하는 조그만 물길이 여기저기 있더라고요. 알아보니 기차가 만들어지기 전 산업 혁명 초기에 배로 화물을 나르던 수로였어요. 기차가 발명되면서 카날 비즈니스는 없어졌죠. 기차가 있기 전에는 말을 탔잖아요. 18세기에 말은 운송 수단이었지만 오늘날은 승마라는 스포츠로 남았죠. 저는 운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무인 자동차 시대에 이동할 때는 굳이 운전을 안 해도 되는데,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포츠로 시간을 내서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레이스 트랙에서나 하지 쟤는 왜 길거리에서 운전을 하고 다니고 그래?’ 할 수도 있는 거죠. ‘말타기 경주처럼 자동차 주행이 바뀌는 흐름을 과연 거스를 수 있을까? 그 거스름의 과정을 어떤 스토리로 풀어갈까?’ 하는 게 저에게는 디자인이에요.






벤틀리 플라잉스퍼 GQ코리아 by 뮬리너(Flying Spur GQ Korea by Mulliner, 2016)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플라잉스퍼 모델에 벤틀리의 비스포크 옵션 ‘뮬리너’ 서비스를 강조한 에디션. 국내 남성 매거진 와 협업해 신사를 상징하는 슈트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차량 곳곳에 디자이너 이상엽의 이름과 시그너처를 새겨 넣었다.








벤틀리 EXP10 스피드 6 콘셉트(EXP 10 Speed 6 Concept, 2016) 2015년에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벤틀리가 공개한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출시될 경우, 벤틀리의 엔트리급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차량으로 더욱 스포티하고 젊은 벤틀리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EK 오늘날 이상엽의 영감을 자극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나요?
SY 스물세 살에 한국을 떠나 8개국에서 살았는데, 유학 전에는 외국에 나가본 게 딱 한 번밖에 없었어요.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열등감 자체가 좋은 디자인을 하는 동기가 됐어요. 지금도 유럽에서 디자이너들 만나면 어렸을 적 아빠의 페라리를 보며 디자이너 꿈을 키웠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요. 우리 아버지는 포니도 없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현대차에 합류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도 저는 운명적이라고 봐요. 한국의 럭셔리 브랜드를 자처하는 제네시스라는 브랜드가 론칭할 때 저는 해외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고, 그 경험치를 한국에서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죠. 상황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운명의 시간이란 걸 믿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사실 오피스에서 사진 촬영을 하자는 말에 이상엽은 자신의 오랜 단골인 맞춤 정장 테일러 숍에서 할 것을 제안했다. 여건상 진행하지 못했지만, 그는 과연 자신의 슈트 핏과 박음질, 안감, 커프스 버튼, 그날의 볼펜, 하다못해 블루 슈트를 입을 때 금속을 파랗게 달군 바늘이 달린 손목시계를 선택하는 센스까지 꼼꼼히 신경 쓰는 타입이다. ‘부자로 태어나지 않아 럭셔리를 모르고 자랐다’는 그는 ‘럭셔리는 경험의 영역이라 누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결국 진정한 럭셔리는 ‘자기만의 아주 특별한 경험 그 자체’라고 정의한다. 그가 건네는 ‘아주 특별한 한국적 경험’에 과연 세계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가 그리는 아주 가까운 미래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벤틀리 벤테이가(Bentayga, 2016)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SUV를 자처하는 벤틀리 최초의 양산 SUV 모델. 벤테이가를 끝으로 이상엽은 현대자동차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엽의 멘토 6인

1 겐 오쿠야마(Ken Okuyama)
나의 커리어가 시작된 이탈리아의 명문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에서 당시 페라리 디자인의 수장이던 일본인 디자이너. 나는 항상 그분처럼 되고 싶어 했으며 아직도 그가 준 스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2 톰 피터스(Tom Peters)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자동차 디자인의 살아 있는 영웅이다. 한국에서 자동차 문화를 모르고 자란 나는 11년을 그와 같이 호흡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그분의 열정과 사랑을 배웠다.
3 스테판 스타크(Stefan Stark)
1990년대 독일 포르쉐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수장. 그에겐 단지 최고의 디자인만 존재할 뿐이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디자인은 내게 항상 새로운 영감을 준다.
4 월터 드 실바(Walter de Silva)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만 ‘세계 3대 디자이너’라는 말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에겐 오직 한 명의 마에스트로가 있기 때문이다.
5 루크 동커볼게(Luc Donckerwolke)
내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이자 나의 리더, 보스, 동료 그리고 친구. 그가 내 옆에 있어 즐겁다.
6 스티브 잡스(Steve Jobs)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한 말을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가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디자이너 이상엽의 심장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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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글: 김은아 기자, 인물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