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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골든 타임을 디자인하다 라이프클락


라이프클락. 


라이프클락 내부. 이석우 대표는 시계 배터리 교체 중 내부에 빈 공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디자인을 착안해냈다. 


시계 내부에 함께 동봉한 ICE(In Case of Emergency) 카드. 비상 연락처, 복용 중인 약, 혈액형 등 재난 발발 시 필요한 인적 사항을 기입해놓을 수 있다. 


키트 구성 제품들. 


라이프클락은 인테리어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가구 협찬: 오블리크테이블. 

꼬박 1년 전인 지난해 9월, 경상북도 경주시에 진도 5.8의 지진이 일어났다. 1978년 관측 이래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로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 주요 문화재가 손상을 입었고 지역 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일어난 현상 중 하나가 이른바 ‘72시간 생존 가방’의 일시적 수요 급증이었다. 하지만 1년 365일 가방을 끼고 살 수는 없는 일. 당시 구매한 재난대비키트는 어느덧 기억의 뒤편(혹은 창고 한구석)으로 밀려나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재난이 일어났을 때 즉각 대비하기가 어려운 현실인데 경기도주식회사가 최근 선보인 라이프클락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 SWNA가 디자인한 이 제품은 평상시 스탠드 혹은 벽걸이용 시계로 기능하지만 비상사태에서는 재난대비키트로 변신한다. 시계는 평소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아이디어. 시계 안에는 구호 요청 깃발과 압박붕대, 호루라기, 조명 봉 등이 내장되어 있는데 6시간의 골든 타임에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만 선별해 넣은 것이다. 경기도주식회사 김은아 대표는 “경기도는 31개 시군이 포함되어 있다. 광범위한 지역인 만큼 바람 잘 날이 없고 그만큼 안전에 대한 고민 역시 많은 지역이다”라고 개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라이프클락은 단순한 재난대비키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제품 자체에 지자체와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추구하는 경기도주식회사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 전국 350만 중소기업 중 약 22%가 경기도에 밀집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대기업의 OEM 회사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들의 건강한 자립을 돕고자 했던 지자체가 꺼내 든 묘안이 바로 경기도주식회사였다. 94곳의 주주를 둔 명백한 주식회사 형태이지만 지자체가 발의한 만큼 공공적 색채 또한 강하다. 즉 민간 영역과 공공 영역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올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선보인 첫 기획 상품이 바로 라이프클락이다. 그 취지에 맞게 시계에 내장된 용품 하나, 부품 하나를 만드는 데 총 18개의 도내 중소 제조 기업이 참여했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앞으로 재난 관련 제품 라인을 상황별로 나눠 늘려가는 한편, 중소기업의 디자인 전략을 컨설팅해주고 브랜드와 제조사를 연결해주는 공유 플랫폼으로 자리 잡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00년대 후반 노키아가 무너졌을 때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핀란드 경제가 탄탄하게 유지되었던 배경에는 내실 있는 중소기업의 힘이 컸다. 경제 대국 독일과 영국의 바탕에도 언제나 중소기업이 함께했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빛 좋은 개살구로 남지 않도록 지자체가 고안한 현실적 대안이다. 이들의 실험이 미래에 공공의 기능과 역할을 정의하는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기도주식회사 
지난해 11월 경기도 주체로 발족한 주식회사. 경기도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과 활성화 기준을 제시하는 공유 시장 경제 플랫폼을 지향한다. 생산과 개발 역량이 있는 경기도 소재 중소기업이 직접 마케팅과 유통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현재 DDP 살림터 1층 안테나숍에서 이들의 제품을 만날 수 있다. www.kgcbrand.com


 
Interview
이석우 SWNA 대표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디자인을 했다.”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
경기도주식회사의 준비 및 발족 과정을 눈여겨보던 차에 재난대비키트 디자인에 대한 제안이 들어와 참여하게 됐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제품이란 생각이 들어 결심한 것이다.

재난대비키트라는 주제 자체가 무척 생소한데.
맞다. 그래서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접근할지 고민이 많았다. 재난도 단계별로 취해야 하는 행동과 필요한 물품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 방점을 둘지 먼저 결정해야 했다.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은 키트가 무척 기능적이고 다양한 용도의 제품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재난 대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나라의 경우 기능적으로 완벽하진 않더라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처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구조 요청까지의 골든 타임 동안 필요한 제품만 선별했고, 선물용이나 인테리어로도 활용할 수 있는 시계 형태를 선택하게 됐다.

시계와 재난대비키트의 결합이 흥미롭다.
재난대비키트를 구매하고도 방치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집 안에 따로 둘 곳이 없다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키트를 찾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 제품을 두도록 할 것이냐 역시 중요했다. 책 형태로 디자인해 서랍이나 책장에 꽂아두는 것도 제안했고, 우산 보관대에 꽂아두거나 옷걸이에 걸어두는 키트도 구상했다. 결과적으로 한번 비치해두면 이동이 적고 일정한 장소에 두는 시계를 선택하게 됐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솔직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이러다 연구 과제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웃음) 그만큼 어려운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어떤 재난용품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수많은 전문가를 인터뷰했지만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이는 선례가 없고 시장 역시 작았기 때문이다. 시계와 재난대비키트를 결합시킨 만큼 시계 제조사와 구조용품 제조사 중 어느 쪽에 제작을 의뢰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했고. 국내 제조사와 일하면 품질은 보장되지만, 저가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만큼 제작 단가를 낮추기는 어려웠다.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야 했고 디자인 역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경기도주식회사와 함께 일해본 소감을 듣고 싶다.
일반적으로 클라이언트 요청의 디자인을 할 때 제조사-디자이너-클라이언트가 묘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동등한 관계로 일하기 어렵다는 뜻인데, 경기도주식회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수평한 구조에서 일할 수 있었다. 특히 플라스틱 사출을 담당한 진성M&B와 구호용품 전문 제조사 넥스트세이프가 열정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상 깊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경기도 내 많은 중소기업을 알게 됐는데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좋은 회사가 정말 많더라. 디자인만 손을 잘 보면 상당히 가능성 있는 제품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경기도주식회사가 제조사와 디자이너를 잘 매칭시키면 무척 고무적일 것이다.


체온 유지를 위한 보온포.


압박 붕대.


구조 요청에 필요한 호루라기.

Interview
김은아 경기도주식회사 대표

“경기도주식회사는 공공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다.”



경기도주식회사는 ‘생산 역량이 있는 중소기업을 한데 모아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단순히 거둬들인 세금을 기업에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주체적으로 비즈니스의 방향성을 이끄는 것인데,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공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앞으로 경기도주식회사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대표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한편 이들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에도 초점을 맞출 것이다. 제조 단가 면에서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을 따라잡긴 힘들겠지만, 합리적인 마진으로 적정한 소비자가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와 제조사 간의 계약 방식, 중소기업다운 유통 방식 등을 다방면에서 실험해볼 계획이다. 또 여러 중소기업을 인터뷰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대외적으로는 회사를 알리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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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