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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책과 콜라주를 주무르는 양손잡이 디자이너 존 골 John Gall
뉴욕에서 활동 중인 북 디자이너 존 골은 미국 출판 디자인의 산증인이다. 20년이 넘도록 활동하며 전 세계 저명한 작가들의 책 커버를 디자인했고 2012년부터는 미국 최초의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 에이브럼스 북스Abrams Books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해마다 120여 권의 책을 발행하는 이 출판사에서 그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고 편집자 및 저자와 긴밀히 협업하는 등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주목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취미 생활로 시작한 콜라주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무가지, 신문, 잡지, 엽서, 사진 등을 모아 작업한 콜라주가 어느새 10년 가까운 전문적인 활동으로 발전하며 북 디자인과는 또 다른 가치와 의미를 형성하는 노선이 되었다. 올 7월 사월의눈을 통해 존 골의 콜라주 작품을 집대성한 작품집이 선보인다. 특별한 작품집 발행을 앞둔 존 골에게 북 디자인과 콜라주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Ryan Essmaker 
존 골 1963년생. 미국 에이브럼스 북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 그루브 프레스, 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 출판사 빈티지 북스Vintage Books 등을 거쳤다. 무라카미 하루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세계적인 저술가들의 책 커버를 디자인했다. 그의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은 미국 그래픽 아트 협회(AIGA), 아트 디렉터스 클럽 및 여러 디자인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다. 또 <표지로 보다: 미국 현대 북 커버 디자인By Its Cover: Modern American Book Cover Design> <그래픽: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스케치북 들여다보기Graphic: Inside the Sketchbooks of the World’s Great Graphic Designers> <콜라주의 시대: 현대 미술에서의 컨템퍼러리 콜라주The Age of Collage: Contemporary Collage in Modern Art> 등의 단행본에 소개되기도 했다. www.johngalldesign.com


북 디자이너가 된 배경과 이후 커리어에 대해 설명해달라.
본래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한 학기쯤 지났을 때 내가 입체보단 평면을 다루는 데 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 직장은 뉴욕의 출판사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New American Library였는데 이곳에서 처음 표지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솔직히 이곳에서 1년쯤 일했을 때 다신 책 표지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후에 랜도 어소시에츠Landor Associates에서 근무하며 북 디자인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때마침 그루브 프레스Grove Press로부터 아트 디렉터직을 제안받아 이 분야로 돌아오게 됐다.

빈티지 북스에서 무려 15년간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한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었나?
빈티지 북스는 앨프리드 A. 크노프Alfred A. Knopf의 페이퍼백 임프린트 출판사다. 크노프는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출판사이기 때문에 글뿐만 아니라 디자인 수준 또한 높아야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30~40년 혹은 50년까지도 일한다. 그래서 회사를 떠날 때 난 여전히 신입 사원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무라카미 하루키, 코맥 매카시, 윌리엄 포크너 등 위대한 작가들의 책 표지를 디자인했는데 정말 멋진 일이었다.

2012년에는 에이브럼스 북스로 자리를 옮겼는데.
빈티지 북스에서의 경험은 정말 값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창의적인 면에서 약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 제작에 좀 더 깊이 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빈티지 북스에서 내 업무는 표지 디자인에 국한되었고 똑같은 판형을 수없이 디자인했다. 반면 에이브럼스 북스에서는 내지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책은 주로 미술이나 디자인 서적 혹은 레시피 북 같은 이미지 중심의 책인데 그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출판 초기부터 관여할 수 있고 책의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에이브럼스 북스의 큰 장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컬렉션 디자인 (빈티지 북스, 2009) 존 골이 직접 기획하고 아트 디렉팅한 시리즈. 마이클 베이루트Michael Beirut, 칩 키드Chip Kidd, 마리안 반체스Marian Bantjes 등 20여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컬렉션 커버 디자인을 의뢰했다. 나보코프가 열정적인 나비 수집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촬영은 사진가 앨리슨 구티Alison Gootee가 맡았다.


‘Romola Martin’(2017) 독일 작가 로코 샤모니Rocko Shamoni가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차이퉁 마가진 SueddeutscheZeitung>에 기고한 단편 ‘로몰라 마르틴Romola Martin’을 출판한다는 상상을 하며 가상으로 제작한 책 커버 디자인. 콜라주를 활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전집 리디자인(빈티지 북스, 2015) 소설 표지를 한곳에 모으면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초현실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존 골은 각 소설의 내용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관망할 수 있는 디자인 콘셉트를 제안했다. 페이퍼백 버전이다.

북 디자인과 북 커버 디자인은 다른 영역이라고 해야 할까?
둘은 엄연히 다른 기술이며 모든 디자이너들이 이 둘을 겸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은 포스터나 앨범 커버처럼 표현주의적 그래픽 디자인의 한 방법이다. 경우에 따라 표지 디자인은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다. 반면 책 내부는 좀 더 구조화된 디자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또 강한 디테일과 내용을 조직할 줄 아는 스킬, 장시간에 걸쳐 작업할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책을 읽지 않고 좋은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다. 실제로 책을 읽지 않고 시놉시스만으로 책을 디자인하려고 시도해본 적은 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책을 읽는 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소설의 경우 저자의 목소리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놉시스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다. 나는 창의의 과정이 ① 문제를 파악하고 ② 연구한 뒤 ③ 개념화해 ④ 실행하는 순으로 이뤄진다고 보는데, 책 표지 디자인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연구’에 해당한다.

2009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 전체를 리디자인하는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아이디어를 실행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약 20권의 나보코프 책 표지를 디자인했는데 한 작가의 책 표지를 여러 권 디자인할 경우 여러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표지 하나하나를 독특하고도 흥미롭게 만들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살아생전 나보코프는 열정적인 나비 수집가이기도 했고 이 주제가 종종 그의 예전 책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착안해 나는 곤충 표본 상자를 이용한 디자인을 생각했다. 표지를 맡을 여러 디자이너들을 초대한 뒤 각 디자이너에게 책 한 권, 표본 상자, 곤충 고정 핀을 나눠주었다. 디자이너들은 이것을 토대로 자유롭게 디자인했다. 하나의 일관된 틀 안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생산해내게 한 것인데 아트 디렉터로서 매우 보람 있는 프로젝트였다.


NYTBR 일러스트레이션 콜라주(2013~)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아트 디렉터였던 니컬러스 블레크먼의 의뢰로 시작한 콜라주 일러스트레이션 연작. 지금까지 250여 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했다.




콜라주 연작(2008~2018) 존 골이 개인 시간에 작업한 콜라주 연작. 학창 시절에 수업의 일환으로 작업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8년이다. 기존의 이성 중심의 디자인 사고 과정에 대한 의문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넘어 순수하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직관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초기의 작업에서 점차 추상적인 조형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결국 전자책 혁명은 물리적으로 흥미로운 오브제를 만드는 욕망만 자극한 듯하다.”

북 디자인과 콜라주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08년 즈음 슬럼프가 찾아왔다. 표지는 어떻게든 시각적으로 흥미로워야 하는데 방법론에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것이다. 창의적인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책 표지를 오려 조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정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 벗어난 콜라주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픽 디자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콜라주를 이용한다. 대부분 내 업무는 콘텐츠에서 시각적 연결 고리를 찾아내 이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콜라주는 이와 정반대다. 일반적인 디자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콜라주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나는 요소들을 단절시키거나 단절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나? 작업 과정도 궁금하다.
저렴하고 특별히 아름답지 않은 재료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빈티지 느낌이 날 수밖에 없다. 작업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재료를 찾고 잘라내고 레이아웃을 구상한 뒤 접착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일련의 과정을 분쇄하고 이면에 드러나는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다. 가령 콜라주에서 내 주제 가운데 하나가 ‘그림 만들기’라는 개념이다. 나는 어떤 문학적 혹은 서사적 구조를 바탕으로 콜라주하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콜라주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 콜라주는 대부분 인식이 불가능하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의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해온 콜라주 작업을 익명으로 텀블러 등에 올렸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당시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아트 디렉터였던 니컬러스 블레크먼Nicholas Blechman이 이걸 보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새롭게 시작하는 책 리뷰 코너가 있는데 여기에 콜라주 작업을 기고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콜라주는 개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한참 고민했지만 자유롭게 작업해도 좋다는 말에 수락하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 북 리뷰 콜라주를 진행하나?
매주 하나의 주제가 제시되고, 이에 맞는 서평을 읽는다. 관련 디테일을 추출하고, 그 밖에 연상되는 것을 기초로 재료를 찾아 자르고 스캐닝한다. 개인 콜라주 작업을 손으로 하는 것과 달리 이 과정은 디지털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250개 정도 만들었다.

북 디자이너로서 커리어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 같은 게 있나?
생각만큼 큰 변화가 있다고 보진 않지만 컴퓨터로 인해 디자인에 대한 대화의 영역이 넓어지긴 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누구나 활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아마존의 출현이 일정 부분 북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긴 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수많은 책이 아마존을 통해 유통되면서 책 표지는 우표 크기의 JPG 이미지로도 기능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부분까지 감안해 디자인해야 된다. 하지만 꾸준히 문을 여는 서점들이 있고, 디지털 세계를 등지고 종이에 인쇄된 글에 관심을 갖는 젊은 디자이너 세대가 있다. 결국 전자책 혁명은 물리적으로 흥미로운 오브제를 만드는 욕망만 자극한 듯하다.

* <뉴욕 타임스> 부록으로 매주 발간하는 잡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 잡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A Month in the Country + The Inspector’(시어터 커뮤니케이션스 북스 Theatre Communications Books, 2015) 러시아 희곡 번역 시리즈를 위한 책 커버 디자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활용이 돋보인다. 총 두 권의 커버를 디자인했는데 이 작품이 그중 하나다.


‘조크 북Joke Book’(빈티지 북스, 2008) 유희적인 사진 연출을 통해 책 제목과의 연동성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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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인터뷰: 전가경 디자인 저술가 담당: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