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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Overseas Studio 스뇌헤타 Snøhetta
2021년 부산 북항 해양문화지구에 스뇌헤타가 디자인한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건물의 조감도가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스뇌헤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자가 복제가 아니냐며 부산만의 고유성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스뇌헤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형태’보다 ‘기능’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같은 가치를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 가치란 부산 오페라하우스뿐 아니라 뉴욕 타임스퀘어 레노베이션,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SFMoMA) 확장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전철역 등에도 일관되게 적용한 스뇌헤타의 디자인 철학이다. 스뇌헤타의 공동 창립자 셰틸 T. 토르센Kjetil Trædal Thorsen은 1시간가량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 바로 이 개념, ‘퍼블릭 오너십’을 강조했다.


2021년 완공 예정인 부산 오페라 하우스 ©Snøhetta and MIR

스뇌헤타 공동 창립자 셰틸 T. 토르센

스뇌헤타는 1989년 공동 창립자 크라이 E. 뒤커스Craig Edward Dykers(1961년생)와 셰틸 T. 토르센Kjetil Trædal Thorsen(1958년생)이 세운 건축·디자인 스튜디오다. 오슬로와 뉴욕을 주요 거점 삼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건축부터 디자인,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레노베이션, 9·11 메모리얼 뮤지엄 파빌리온, SF 모마 증축, 노르웨이의 새 지폐 디자인, 노르웨이 은행 DNB 브랜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건축에서 그래픽, 브랜드 디자인까지 아우른다. 이집트의 국립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노르웨이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로 세계 건축 어워드World Architecture Award를 수상했다. 2008년 완공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유럽연합이 최고의 현대건축 작품에 수여하는 미스 반데어로에 어워드Mies van der Rohe Award(2009)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snohetta.com


2명의 공동 창립자 중 부산 오페라하우스 프로젝트를 총괄한 당신과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부산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했고 공식 간담회에도 참석했는데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부산 오페라하우스는 국제적으로 많은 건축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우선 부산에 대해 정말 많은 책과 텍스트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배경 지식을 쌓았고, 한국에 머물면서 문화적 입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이 지역에 어떤 페스티벌이 있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지, 문화 관련 단체와 조직에는 어떤 니즈가 있는지를 살폈다. ‘부산’ 하면 떠오르는 선박업계와 관련된 조선업 현황을 파악하는 등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맥락을 살피고자 했다. 지역의 기본적인 관심사에서 시작해 가장 실용적인 디자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축 디자인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사실 태극기를 한참 들여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네 귀퉁이를 차지한 건(하늘), 곤(땅), 감(물), 리(불)의 동양 역학적 기호 체계가 매우 흥미로웠고, 이것이 실제 한국인들의 문화와 어떻게 맞물릴지 고민했다. 땅에서 출발해 내부의 예술을 물 흐르듯 연결한 뒤 하늘이 있는 옥상에서 사람들이 그 감동을 뜨겁게 향유하는 모습을 반영하고자 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는 접근성과 공간 확보를 위해 지면을 비스듬하게 융기시켜 지붕과 연결했다. 누구나 지붕에 올라 주변 경관을 조망하고 야외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점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와 매우 유사하다. 오슬로와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형태와 모양과 기능 면에서 사실 상당히 다른 건축이다. 물론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며 터득한 경험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부산은 부산만의 특정한 부지와 의의를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가 개개인의 행동 양식을 분석한 것에 가까웠다면 부산의 경우는 그룹을 지어 건물을 이용하는 그림을 상상했다. 함께 모이는 ‘코-개더링’ 측면을 중점적으로 고려한 시나리오다. 핵심은 친근한 접근성을 고려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다루는 모든 프로젝트에 적용된다. 어떤 사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당신이 그것을 소유하는 개념에 더 가까워진다. 당신이 빌딩의 표면 어딘가와 맞닿아 있다면 자연스레 빌딩에 대해 좀 더 ‘관여하게’ 된다. 나는 이를 ‘퍼블릭 오너십public ownership’이라고 부른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더 받아내려 하기보다 그저 더 내주면 늘 더 긍정적인 성과를 돌려받곤 했다.

스뇌헤타는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프로젝트마다 다양한 이슈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의 킹 압둘아지즈 지식문화센터나 리야드 중앙 지하철역도 그중 하나다. 비민주적인 국가에서 석유 재벌이나 부패한 정부의 커미션을 받은 프로젝트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자유가 제한적인 나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스뇌헤타의 윤리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오슬로의 국립 오페라하우스도 8년 걸렸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12년 걸렸다. 원래 건축이 이렇게나 느린 작업이다. 비민주적인 국가라도 우리의 건축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의 국가에서는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낼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일을 하는 우리도 겪어야 하는 까다로운 점이 많아서 힘이 몇 배로 들지만 대신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에 시도한다. 곧 문을 열 메카의 문화센터에는 이 나라의 첫 번째 공공 영화관이 들어선다. 시민들이 난생처음 공공장소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전에 모르던 새로운 감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하철역 또한 더 많은 이들에게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를 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것이 대중을 위한 것인지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고, 공공의 오너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건축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하겠다.

둘이 함께 회사를 차리면서 무엇을 목표로 하기로 했나?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하자.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일을 하되 상상으로만 남겨놓지 말고 반드시 현실로 옮기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지켜왔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매년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우리는 스스로를 ‘콘셉추얼 콘텍추얼리스트conceptual contextualist’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건축적, 디자인적 콘셉트는 모두 하나의 정확한 맥락을 간파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스뇌헤타의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의 첫 사무실은 오슬로 중심가인 도브레Dovre, 더 자세히는 그 지역명을 딴 술집 도브레할렌Dovrehallen 바로 위층이었다. 도브레 지역의 가장 높은 산 이름이 스뇌헤타였는데, 이들은 스뇌헤타를 고산으로 둔 도브레의 도브레할렌보다 물리적으로 ‘한 층 더’ 높은 곳에 있는 셈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진정한 스뇌헤타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정작 스뇌헤타가 정식 회사명으로 등록된 것은 1989년, 첫 공모전에 당선되면서였다. 토르센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건축가로 일하다 새로운 형태의 일하는 방식을 모색하며 고국 노르웨이로 돌아온 참이었고, 공동 창립자 뒤커스 역시 텍사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LA에 살면서 다른 건축가와의 협업 방식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한편 1980년대 말은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국제 공모전의 붐업이 일던 시기였고, 개별적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공모전 준비를 하던 중에 서로를 알게 된 이들은, 공모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하나의 출품작을 내기로 했다. 화려하고 장식적이던 당시의 유행에서 벗어나 개념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의 설계안은 바로 눈에 띄었다. 대규모 글로벌 프로젝트를 ‘스뇌헤타’라는 이름으로 덜컥 수주한 열정적인 젊은 건축가들은 당시 서른 살, 스물일곱 살이었다.


2008년 문을 연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 발레. 완만한 경사의 대리석 지붕과 화강암 외관으로 마치 거대한 빙하가 떠 있는 듯한 디자인이다. 개관 첫해 13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들이며 오슬로의 새로운 건축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Birdseyepix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 & 발레의 내부는 어두운 갈색 참나무를 사용했으며, 최고의 음향 수준을 자랑한다.©Gerald Zugmann


중앙 로비는 높이 15m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오슬로항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Trond Isaksen, Statsbygg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들어서는 최초의 지하철 중앙역. 여성도 혼자 여행할 수 있는 대중 교통 수단이라는 점에 의의를 뒀으며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모하고자 했다. ©Snøhetta and MIR


SF모마 증축 프로젝트. 기존의 SF모마 뒤편에 10층 규모의 별관을 증축해 2016년 5월 재개관했다. 안개를 모티프 삼아, 700개의 FRP 패널을 붙여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일렁이는 느낌을 줬다. ©Iwan Baan


스뇌헤타가 증축한 SF모마 신관은 기존 공간을 3배 확장해 미국 최대 규모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Iwan Baan


노르웨이 스바르티센Svartisen 빙하 지역 최초의 에너지 자체 생산 건물인 스바르트 호텔Svart Hotel. 물 위에 떠있는 구조로 일사량을 가장 많이 저장하는 형태를 고려했다. 2021년 완공 예정. ©Snøhetta/Plompmozes
건축 사무소로 시작해 2008년에 ‘스뇌헤타 디자인’으로 부문을 확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수록 짧은 시간 안에 크리에이티브를 발산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건축은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건축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축과 디자인의 수많은 연결 고리를 보게 됐다. 이를테면 지난해에 선보인 제품인 아텔리에 뤽탄Atelj´e Lyktan의 조명 플릭 플락Flik Flak의 경우 우리가 건축을 맡은 숲속의 트리 호텔에 설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호텔의 형태와 소재를 그대로 녹여낸 작은 호텔과도 같은 제품이었다. 건물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이 맞딱드리는 모든 물리적 지점에서 사람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현재 스뇌헤타의 인원 구성과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나?
메인 오피스인 오슬로와 뉴욕에 각각 120명, 60명 정도, 오스트리아, 샌프란시스코, 스톡홀름, 호주, 홍콩에 많게는 20여 명, 적게는 3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조만간 파리에도 오피스를 연다. 오슬로에만 대략 100개가 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규모에 따라 보통은 평균 3~5명, 많게는 40명이 동원되기도 한다. 각 직원의 전문 분야뿐 아니라 각자의 흥미도 최대한 반영해 프로젝트와 개인 모두에게 의미 있는 방향으로 팀을 매칭시키는 데 주력한다.

스뇌헤타에서 일하는 이들의 직군과 성별, 나이 등 기본적인 구성을 설명해준다면?
우리는 건축가, 조경 건축가, 인테리어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제품 디자이너 등의 직군을 보유하고 있고, 워크숍 때 함께하는 정신의학자나 공예가 등 외부 전문가를 두고 있다. 30개 국적의 200명이 좀 안 되는 인원으로 전직도 전공도 종교도 매우 다르다. 평균 나이는 38세, 공용 언어는 영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직원 비율을 50:50으로 유지한다.

20년 넘게 장기 근속하는 직원도 있다고 들었다. 잦은 야근과 추가 업무로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쉬운 직군인데, 스뇌헤타는 어떻게 균형을 잡나?
우리의 목표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기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디자이너나 건축가라는 직업 자체가 한평생을 쏟아부어야 하는 직업이기에 절대 그 에너지를 한 번에 모두 소진해버리면 안 된다. 각자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게 해야 할 일이 다르고 개인 사정도 모두 다르기에 최대한 개개인의 재량과 책임감에 많은 부분을 맡긴다.




노르웨에의 아웃도어 가구 전문 회사 베스트레Vestre 창립 70주년을 맞아 브랜드 북 <Folk+Form>부터 전시 디자인까지 맡았다. 컬러풀하고 견고한 고품질의 브랜드 가치를 지면과 공간에 일관성 있게 나타냈다. ©Calle Huth / Studio Illegal


스웨덴 조명 브랜드 아텔리에 뤽탄과 협업한 조명 플릭 플락. 자작나무로 지은 트리 호텔에 어울리는 조명을 찾다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호텔과 같은 소재와 형태의 검은 자작나무를 사용했다. ©atelj´e lyktan


노르웨이 신 화폐 디자인 응모작. 노르웨이 해안선을 사진과 그래픽으로 나타냈으며 화폐 단위마다 다른 픽셀 크기로 바람의 세기를 표현했다. 스뇌헤타는 또 다른 참가자 더 매트릭 시스템The Metric System스튜디오와 공동 당선돼, 화폐 뒷면의 픽셀화한 그래픽을 최종 디자인했다. ©Norges Bank

미국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의 한 기자가 스뇌헤타의 뉴욕 오피스를 방문하고 쓴 글을 봤다. 그에 따르면 스뇌헤타의 오피스에는 리셉션 데크스가 없다. 대신 메인 공간을 가로지는 대형 콘퍼런스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주변을 지나는 누구라도 어떤 대화나 회의에 끼어들 수 있다고 적었다. 여성과 남성 간의 평등한 기회뿐 아니라 시니어와 주니어 직원 간의 평등한 발언 주도권을 보장하고, 초과 수익 또한 이사회 구성원부터 노동조합 직원까지 함께 공유하며, 오너와 가장 임금이 낮은 직원의 임금 차가 3배 이상 나지 못하도록 한 원칙이 있다. 기자는 ‘투명성, 다양성, 교차성’으로 스뇌헤타를 표현했다. 7년 전 기사임에도 토르센은 원칙적으로 현재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확인해줬다. 이는 일하는 방식이 곧 디자인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스뇌헤타의 태도가 변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스뇌헤타 정도 규모의 회사면 (오슬로에만) 인턴을 10명가량은 둘 텐데 스뇌헤타는 최대 5명만 엄선해서 뽑고 임금도 업무 경험도 최고 대우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부분을 비롯해 성별, 임금, 직위 등에서도 평등주의적 접근 방식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수평적이지만 골격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프로젝트별 리더가 있고 확고한 디자인 프로세스가 있기에 그에 따른 각자의 역할이 있다. 톱-다운식이 아니라 보텀-업 프로세스를 따를 뿐이다.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할 사회의 복잡성을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레 추구하게 된 방식이다. 저마다 다양한 가치를 지닌 직업군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나설 수 있어야 이슈의 복잡성을 놓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직원들의 내적 성장을 위해서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토양에서 자립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자신만의 입장과 관점을 견지한 성장을 거듭해야 한다. 이런 성장을 인식하면 개개인이 느끼는 책임감 또한 달라진다.

2012년 노르웨이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이 펴낸 <아이디어 워크Idea Work>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기업을 4년간 밀착 취재, 연구한 일종의 학술 보고서였다. 건축 디자인 회사로는 스뇌헤타가 유일했다. 스뇌헤타가 일하는 방식의 첫 단계는 무엇인가?
초기 콘셉트를 잡는 단계에는 매우 광활한 범위의 방법론을 적용한다. 클라이언트, 최종 사용자, 내부 직원,외부 크리에이티브 등 이해관계자 20~30명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클라이언트는 물론이고 철학가, 작가, 정신과 의사, 아티스트 등을 초청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당장 우리 손에 만져질 물성도 작업실에서 만들어보고 미래에 적용할 디테일한 디자인 요소도 그려보면서 아주 이른 시기에 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본다. 이는 맥락적으로 이슈에 접근하는 것이다. 이 이슈를 둘러싼 역사가 무엇인지, 왜 이러한 수요가 등장했고, 이를 발전시키면 가능한 미래는 무엇인지를 분석한다.

가장 강조한 단계는‘트랜스포지셔닝transpositioning’이었다. 언뜻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라 들리는데 이 방법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각 팀의 멤버들이 자신의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직원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해봄으로써 그 부분을 연주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원래 담당한 악기로 돌아오면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겨서 전체 퍼포먼스의 퀄리티가 높아지기 마련이다.조경하는 사람이 외관을 디자인하고, 제품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를 하는 등 처음 해보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예전에 이렇게 해봤더니 안 되더라’ 하는 부분을 아예 시작점부터 타파해버리는 거다.

2012년 오슬로의 한 테드 X(TED X) 토크에서 “스뇌헤타는 스뇌헤타를 위해 일합니다.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이라는 말로 관객에게 웃음을 줬다. 건강하고 친근한 기업 문화를 위한 활동이 있나?
우리는 가능한한 많은 파티를 연다. 최근에는 ‘언더 워터under water’를 주제로 우스꽝스러운 커스튬 파티를 열기도 했다. 직원들은 수영복은 기본이고 물고기, 보트, 모래 등으로 분장했다. 웃음은 우리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전 세계에 흩어진 직원들이 모두 모여 3일 정도 마운틴 스뇌헤타를 등반하고 산에서 캠핑을 한다. 작년에는 170명 정도가 함께 했다.

마지막으로, 스뇌헤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한 단어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정적이 흐른 뒤) ‘민주적’이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다양한 원칙을 꿰뚫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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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은아 기자 / 디자인 김혜수 디자이너 / 자료 제공 스뇌헤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