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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Interview ― 한밭대장간 인증제와 브랜드 사이에서 전만배 대장장이
산업화되지 못한 기술은 전통의 영역으로 넘어가 추대되고 보존된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한밭대장간의 전만배 대장장이는 여전히 삶의 터전에서 실용적인 도구로 쓰임을 다하는 칼을 전통 아래 묶어두기가 안타까웠다. 14세 때 대장간 일을 시작한 노장이 아들과 함께 직접 공장을 차려 자체 브랜드 ‘한칼’을 생산하는 이유다. 대전의 한밭대장간을 찾아가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기술력을 가진 대장장이가 바라보는 브랜드에 대해 들었다.


©허준율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시작되었나?
충남 부여군 세도면의 지리, 역사, 행정, 정치, 산업 등을 총망라한 기록물 <세도면지>에 기술된 가문의 업력을 따지면 정확히 102년 됐다. 나의 할아버지가 부여에서 최초로 일을 시작했다. 대장간을 열려면 최소 15~20년은 배워야 하는데, 그 과정을 빼고도 100년의 업력을 가진 셈이다. 이후 이천,서울,성남 등지를 거쳐 1996년 1월 대전으로 내려왔고, 대전의 옛 지명에서 이름을 딴 한밭대장간으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자동화, 대량화 시스템이 들어선 현재에 이르기까지 업의 부침이 심했을 것 같다.
1980년대 말 중국이 개방하면서 국내 대장장이들이 대거 옮겨갔다. 중국 자본이 기계와 대우를 내세우며 기술자들을 데려간 거다. 결과는 참담했다. 국산 낫이 300~400원에 팔리던 때에 10~15원 하는 중국산 제품이 풀렸다. 당시 농업에도 트랙터, 콤바인이 대거 보급되며 기존 농기구가 팔리지 않았는데 그나마 쓰이던 주변 집기마저 한 번씩 쓰고 버려지는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대체된 것이다. 유신창칼이나 곰표칼 등 소수의 국산 브랜드도 1990년대 중반 IMF 금융 위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췄다. 한밭대장간은 특수 낫을 맞춤 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에 매달리다 결국 여전히 일상생활용품으로 필요한 칼로 전문 분야를 좁혔다.

한밭대장간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시장의 니즈는 어떤 것일까?
도루코라는 중견 기업에서 칼과 낫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량생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제에 밀려 그 사업을 접었다. 이유가 뭘까. 농기구와 칼이라는 건 각 지역과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 크기와 무게가 다 다르다. 일률적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손으로 직접 두들겨 만드는 칼 종류만 100가지가 훨씬 넘는다. 생선 머리 손질용, 닭 손질용, 미역 줄기 제거용, 일본식 사시미 칼, 한국식 물회 칼 등 끊임없는 맞춤식 연구를 해야 한다.

1996년 주력 사업군을 칼로 재정비하면서 직접 만든 칼을 가득 싣고 강화도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5년간 전국 도시를 돌며 시장조사를 했다. 전국 일주에서 얻은 답은 무엇이었나?
생산과 판매와 서비스를 일원화해야겠다는 것. 그러려면 비슷한 일을 하는 기술자들 간의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일본에는 칼만 전문적으로 하는 대장간이 3000여 개, 조합에 등록된 곳만 650개가 넘는다. 기술자 혼자서는 하나의 일밖에 못하지만 비슷한 기술을 가진 기술자 2명은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네 가지, 다섯 가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업력과 실력을 갖춘 이들과 함께 대장간 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현재 알음알음 사람을 모으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전국 대장간 부문 기능 전승자나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무형문화재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국가 인증 제도는 어떤 의미가 있나?
대장간에 주어지는 인증은 있지만 칼만을 취급하는 제도가 없어 아쉽다. 사실 욕심이 나는 것은 이름이다. 인증을 받으면 판매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실생활용 칼을 만드는 대장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내겐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 칼 역사에는 무기류에 대한 이야기뿐이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칼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값비싼 명품 칼도 좋지만 서민들 일터에 질 좋은 칼이 있어야 밥벌이를 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더욱 한칼이라는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내비칠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장인 인증제와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 확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디자이너와 협업해서 개발한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많은 디자이너가 찾아왔었다. 아무리 제품이 보기 좋아도 실용성을 겸해야 하는데 그 균형을 맞추는 디자이너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독일이나 스위스는 대장장이가 모든 일을 하지 않고 칼날, 칼자루 등으로 분업화돼 있다. 각 분야가 더욱 전문성을 띨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르면 1년 안에 다른 공산품은 팔지 않고 자체 브랜드 제품 생산을 대폭 늘리는 그림을 그리며 현재 개발에 매진 중이다.


©이기태
조선의 대표적인 전통 식칼 ‘코베기칼’. 울산대곡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전통 칼을 전만배 대장장이가 직접 재현한 것. (위)

연마(칼 갈이)는 보통 초벌, 중벌, 재벌, 막벌, 마무리 연마까지 5가지 단계를 거친다. 한밭대장간은 여기에 정밀 연마 5단계를 더 거쳐 칼을 완성한다. 기름기가 많은 흑단을 사용해 오래도록 썩지 않는 칼자루를 덧댄, 한밭대장간의 사시미칼.(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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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은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