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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Interview 카럴 마르턴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카럴 마르턴스. 그는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계속해서 확장해왔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를 그래픽 디자이너 신동혁이 만났다.


공중에 매단 100권의 <오아서>를 배경으로 한 카럴 마르턴스. 카럴 마르턴스 1939년생. 아른험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정부 및 여러 출판사와 협업했다. <오아서>의 디자인으로 베르크만 상H.N. Werkman Prize 등을 수상했고 PTT 텔레콤의 전화 카드 표준 디자인으로 1995년 로테르담 디자인 상The Design Prize Rotterdam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 1997년부터 예일 대학교에 출강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아른험 지역에 타이포그래피 워크숍 WT를 열었다. 로허르 빌럼스Roger Willems, 라딤 페슈코Radim Pe ko, 한스 흐레먼Hans Gremmen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슬기와 민, 김영나 등 국내 디자이너들도 그에게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프린티드 매터>(1996, 2006, 2010), <카럴 마르턴스: 인쇄물>(2004), <풀 컬러Full Colour>(2013), <모션Motion>(2017) 등이 있다.
신동혁 그래픽 디자이너. 단국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후 신해옥과 함께 ‘신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작동 라이브러리> <사물학 II: 제작자들의 도시> <백남준 ∞ 플럭서스> 등 전시 관련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문화·예술 기관 및 작가들과 협업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건국대에 출강 중이다. shin-shin.kr

196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카럴 마르턴스는 1960~1970년대 반 로휨 슬라터뤼스Van Loghum Slaterus, 더 선The Sun 등의 출판사와 일하는 한편 정부 프로젝트인 우표나 공중전화 카드 등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그가 디자인한 건축 잡지 <오아서Oase>와 저서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카럴 마르턴스: 인쇄물Karel Martens: Counterprint> 등은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강렬한 반향을 불러왔으며 문자와 기하학적 도형, 형형색색의 컬러로 구성한 실험적 결과물은 당시 네덜란드 디자인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활동 영역이 인쇄물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이 거장은 타이포그래피와 설치, 영상을 비롯한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등 매체를 편식하지 않고 폭넓고 유연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그는 교육자로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1997년 비허르 비르마Wigger Bierma와 함께 설립한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Werkplaats Typografie(이하 WT)는 피상적인 디자인 교육 제도에서 탈피해 도제식 교육법을 시대에 걸맞게 진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이너 신동혁이 지난 10월 11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플랫폼엘에서 열리는 <카럴 마르턴스: 스틸 무빙>전에서 그를 만나 지치지 않고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서체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프레드 스메이어스Fred Smeijers가 학생들에게 “누구나 카럴 마르턴스가 될 수는 없다”고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 말은 반세기가 넘도록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당신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웃음) 나는 그저 좀 더 나은 디자인을 하길 바라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굳이 비결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제를 분석하거나 스케치를 해보는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이때도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적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출강할 때를 빼면 줄곧 인쇄 실험 등 개인 작업을 즐긴다. 일반적인 디자인 회사 대표처럼 큰 공간에서 많은 직원을 거느리며 활동해온 게 아니다. 소규모 작업실에서 소소하지만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시도하며 살아왔다. 굳이 모두에게 나를 맞춰가며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프로젝트나 ‘비호감’인 사람들과 애써 협업하지 않는 것 또한 롱런의 비결이 아닐까 한다. 때로 클라이언트는 적과 진배없다.(웃음) 그래서 처음 의뢰받을 때는 거절하려 하거나 곤란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막상 일을 진행하면 그 안에서 영감을 얻고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네덜란드 디자인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디자이너로서 그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인쇄물의 형태와 배열에서 출발한 형식 실험 등은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당신만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하나의 아이디어가 여러 매체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경우에 따라 구체적인 방식은 매번 달라지겠지만, 작업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일을 의뢰받으면 최종 결과물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나는 결승점이 아닌 출발점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시 말해 과제나 일을 받았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이나 영감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이 다른 여건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다양하고 풍부하게 확장된다.

출발점을 자기 자신에게 둔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
그렇다. 내게는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성향이나 출발점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본능과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한다. 또 생각에만 머무르지 말고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생각만 하다가 미처 실천하지 못한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후회가 남는다. 물론 결과물이 매번 성공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오아서>. 네덜란드어로 ‘오아시스’를 뜻하는 건축 간행물. 1981년 델프트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진이 시작한 이 잡지는 원래 평범한 중철 제본의 디자인이었지만 출판사가 쉰SUN으로 바뀌고 카럴 마르턴스가 디자인을 시작한 28호 <속도와 무게>부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2018년에 발행한 100호 <카럴 마르턴스와 저널의 건축술>(왼쪽)까지, 오아서 시리즈는 마르턴스 디자인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잘 보여준다.


<카럴 마르턴스: 스틸 무빙>전 포스터. 디자인 슬기와 민 카럴 마르턴스의 작품 ‘아이콘 뷰어’를 모티프로 활용했다. 플랫폼엘 중정에서는 아이콘 뷰어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다.


‘해변 위의 색상들’. 2017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도시 르아브르에서 진행한 대형 설치 작품. 1517년 프랑수아 1세가 도시 건설 당시 제정한 법령에 현대 암호 해독법을 적용해 도출한 색채 알고리즘을 713개의 캐빈에 적용했다. 플랫폼엘은 전시 기간 동안 이 캐빈 중 한 채를 가져와 중정에서 선보인다.


시계를 모티프로 한 키네틱 아트 ‘세 개의 시간들Three Times’. 카를 마르턴스는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실험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프랑스 르아브르 해변에 있는 설치물 ‘해변 위의 색상들Colours on the Beach’ 같은 프로젝트 역시 당신의 직관에 기반한 것이었나?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그 프로젝트는 쇼몽 국제 포스터 디자인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워낙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행사라 주최 측은 각 행사장의 구획을 시각적으로 구분되게 하는 월페이퍼가 필요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월페이퍼에 적용할 픽셀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9개의 픽셀과 20개의 색상이 상호 연동하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그런데 그 시스템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 값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중간중간 헷갈리기도 하더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웃음) 아무튼 그렇게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월페이퍼가 나왔는데 이후 르아브르 해변의 캐빈들에도 이 시스템을 응용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르아브르 해변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터라 이를 기리는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안서까지 제출했다.

이처럼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소회를 들려준다면?
사실 프로젝트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르아브르 시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통보였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있던 그가 자칫 실패할 수 있는 이 이벤트가 재선에 영향을 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사장되는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몇 해 뒤 장 블레즈Jean Blais라는 큐레이터의 전화 한 통으로 가까스로 재개됐다. 그는 내가 제출했던 제안서를 눈여겨봤고 프로젝트 추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알다시피 프로젝트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평소 인상주의를 비롯한 추상회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은 점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해변 위의 색상들’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물론 모두가 이 프로젝트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캐빈에 월페이퍼를 붙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색상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도 ‘무작위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참, 사실 한국에 오기 얼마 전 이 프로젝트가 영구 설치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몇 년 전 당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추상적인 오브제, 각종 수집물, 그리고 여러 색상으로 병치된 모노 프린트와 레터프레스 같은 습작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신의 머릿속을 고스란히 전시해놓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작고 개인적인 즐거움에서 시작된 열정이 거대한 규모의 작업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당신의 말처럼 작업실 벽면은 내 사고의 확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시각적 인간이다. 이런 이유로 우편물이나 각종 작은 인쇄물 등에서 발견한 시각적 파편, 기억하고 싶은 것, 불현듯 떠오른 각종 아이디어 등 많은 것을 벽에 붙여놓곤 한다. 우편물을 받았을 때도 우표 같은 걸 오려서 벽에 붙여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의미 없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예전에 살던 넓은 아파트에서 쓸데없이 접이식 의자를 20개나 산 적이 있다.(웃음) 그 의자들은 딱히 집에서 쓸 일이 없었기에 별생각 없이 벽에 걸어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전시의 작가로 초대를 받았고 불현듯 접이식 의자들을 전시장 벽에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접이식 의자를 20개씩나 산 것, 벽에 건 것은 당장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시장 벽에 걸림으로써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찾았다. 즉 본능과 직관에 의한 실천이 그 의자의 존재 의미를 찾아준 것이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세대와 분야를 초월해 활발히 협업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것 또한 당신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영역을 확장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가?
물론이다. 혼자서는 이처럼 많은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요청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내 아들은 컴퓨터를 잘 다루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협업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딸과는 인쇄물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이 밖에도 여러 제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혼자 해낼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구할 때 스스럼이 없는 편이다.


‘A Still of Clocks’. 시계, 인쇄 망점, 옵티컬 아트 등 카럴 마르턴스의 관심사를 한 화면 안에 집약한 영상이다.


카럴 마르턴스의 스튜디오를 일대일로 재구성한 전시 공간. 오른쪽에 보이는 이미지는 그의 스튜디오 창밖으로 보이는 암스테르담강을 수천 종의 아이콘 뷰어로 표현한 것이다.




레터프레스 모노 프린트. 반복과 조화, 리듬과 대비 등 형태에 대한 조형 원리를 실험하며 색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버려진 종이 인쇄물과 잡다한 오브제 위에 잉크를 묻혀 하루에 한 가지 색만 인쇄하는 프로젝트로, 느리지만 섬세한 그만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당신은 교육자로도 유명하다. 나는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슬기와 민이나 김영나 같은 디자이너를 볼 때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세상과 자신을 잇는 매개로써 디자인을 다룬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자로서 당신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태도이기도 한가?
딱히 그런 것을 의식해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작품의 완성도나 태도 면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학생들이 서로서로 자극받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탐험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울 뿐이다. 설령 어떤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상관없다.(웃음) 결국 모든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개인적 성향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의 획일화된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다양성의 가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갈 때 아름다움이 창조되는 것 아닐까? 일례로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게릿 리트벨트Gerrit Riedvelt를 들 수 있다. 그의 가구나 건축은 매우 괴상하고 심지어 원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그런 특질이 그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장점과 흥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을 좇기보다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 한 분야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학생이었나?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웃음)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학교를 정말 싫어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이상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웃음) 하지만 한 수학 선생님의 수업만큼은 굉장히 좋아했는데 단지 공식을 외우도록 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 학생들이 생각해볼 여지를 주셨다. 매우 시적인 교육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누이의 권유로 예술학교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내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줬고 언제나 진지하고 사려 깊은 태도로 내 작품을 바라봐주었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열린 태도를 갖는 데 중요한 토양이 됐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당신이 설립한 WT는 그동안 여러 차례 대안적 디자인 교육에 대한 단서를 제시해왔다.
학교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이 한곳에 모여 무언가를 공유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WT를 통해 이런 가치가 실현되길 바랐다. 물론 이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알지만.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분위기를 추동하는 환경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제도권 학교에서 이런 현상을 종종 목격하는데 학교의 결정권자들이 예술이나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편의에만 기대기 때문이다. 디자인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꼬리표(패션, 그래픽 디자인, 건축 등)를 붙이지 않고, 열린 상태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열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가진 취향, 기술 등을 공유할 때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난다고 보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프린티드 매터>에서부터 <모션>까지 출판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런 출판물에는 당신이 디자인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어떤 중요한 소실점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출간할 책에 대해 귀띔해줄 수 있나?
2019년 봄 출간을 목표로 <프린티드 매터> 네 번째 에디션을 제작 중이다. 그런데 파트너인 야프 반 트리스트Jaap Van Trist가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 계획보다 미뤄질 수도 있다. 그는 언제나 굉장히 아름다운 콘셉트를 제안했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볼 작정이다. 참고로 그는 <프린티드 매터> 초판을 함께 만든 나의 첫 제자인데 정말 (긍정적으로) 이상한 학생이었다. 시트로엥 자동차의 부품을 해체해 방 안에 전시한 적도 있고, 휴대전화도 없고… 하여튼 좀 재미있는 친구다.(웃음)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그리드 시스템에서 탈피한 레이아웃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 <프린티드 매터>를 보면 왼쪽 페이지에는 일정한 비율로 축소된 도판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나머지는 내용에 따라 레이아웃이 유기적으로 바뀌는데 이런 디자인은 그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오아서>가 100호를 맞이했다. 이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정말 기쁜 일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의 문화·예술계 상황이 썩 좋지 않았고 출간 자체가 불투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100호까지 나왔고, 지금은 딸과 함께 101호를 준비 중이다. <오아서>는 내게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디자인해보고 싶다.

이번 전시 <카럴 마르턴스: 스틸 무빙>은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이어오고 있는 당신의 열정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서 특별히 눈여겨봤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아이콘 뷰어가 아닐까? 그 작품을 통해 나는 굉장히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하고 있다. 시계 작품 또한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나는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고 언젠가는 손목시계도 만들어보고 싶다. 또 얼마 전에는 한 섬유 전문가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그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실험 중이다. 물론 그 결과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도 중요한 과정이다.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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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인터뷰 신동혁(신신) / 편집 최명환 기자 / 디자인 정명진 / 인물 사진 한도희(얼리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