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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월간 <디자인> 아카이브 속 개척자들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프론티어
2018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특별전은 ‘진성 레트로’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를 개척해 초석을 마련한 선배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는 기획전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프론티어>를 마련한 것.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 이들이 남긴 성과와 행보는 시장의 지평을 넓히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훗날 수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영감과 용기를 주었다. 3개의 멀티미디어 설치로 선보인 이번 전시는 흥미롭게도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관과 등을 맞대고 있었고 동시에 월간 <디자인>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여 있었다. 한국 디자인 계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일관된 동선으로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덴티티 디자이너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프론티어>의 첫 포문을 연 것은 아이덴티티 디자인 부문이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흐름을 응축해 보여주기 위해 선정한 인물은 조영제 전 서울대학교 교수와 김현 전 디자인파크 대표였다. 이는 교수 연구 팀을 중심으로 발아한 CI·BI 분야가 디자인 전문 회사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조영제
1970년대 중반 대기업들이 차츰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디자인 산업이라 할 만한 것이 부재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들의 연구 팀이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맡게 됐다. 이 시기를이끈 장본인이 조영제 전 서울대학교 교수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전략이 전무하던 이때 그는 DECOMA(Design Coordination as a Management Strategy), 즉 ‘경영 전략으로서 디자인 통합’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조영제가 디자인한 동양맥주 OB 레이블. 이 레이블 디자인은 회사 심벌마크로 확대 적용됐다.

김현
교수 연구 팀이 주도했던 디자인 프로젝트가 1980년대에 이르러 전문 회사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디자인 전문 회사 시대가 열린 것. 디자인파크, 디자인포커스, 심팩트, CDR, 올커뮤니케이션 등이 속속 등장했다. 이 중 디자인파크 설립자 김현은 1983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디자인 지명 공모에 당선되며 일찌감치 이름을 날렸다. 캐릭터 디자인과 CI 두 영역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그는 프로스포츠, 정보 통신, 대형 유통, 식품 등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80~1990년대 산업의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이 작품으로 김현에게 ‘호돌이 아빠’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1983 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

한국적 미감을 탐구한 그래픽 디자이너들
1970~1980년대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화두는 ‘내용 면에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과 ‘형식 면에서 서구의 모더니즘 언어를 체화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의 과업을 이끈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김교만, 권명광 그리고 이봉섭이었다.

김교만
1976년 한국디자인포장센터에서 <한국을 주제로 한 관광 포스터>라는 개인전을 개최한 고 김교만은 기하학적 형태와 선을 통해 한국적 소재를 표현했다. 모던한 형식미로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인 상모 쓴 캐릭터를 비롯해 농악대, 부채춤, 활쏘기, 석굴암, 첨성대, 돌미륵 등을 그린 것인데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유근준은 “서정적 포스터를 정착시킨 선구자적 디자이너이며 독창적인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생활화시킨 대표적 디자이너”라고 평했다.



김교만이 디자인한 서울올림픽 문화 포스터. 간결한 구성이 특징인 그의 디자인은 훗날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권명광
권명광은 기업 캘린더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수단으로서 그래픽 디자인의 역할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65년 제일제당 캘린더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수많은 기업의 캘린더를 제작했다. 정겨운 한국의 시골 풍경, 전래 동화를 소재로 한 의인화한 익살스러운 동물 캐릭터, 한국의 자연과 동물을 소재로 한 표현 등은 그 뒤 캘린더와 카드 등의 제작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권명광은 홍익대학교 15대 총장을 지내며 교육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권명광의 <한국 이미지>전 포스터.

이봉섭
이봉섭은 평생에 걸쳐 오로지 한국의 시각 이미지와 정체성을 찾는 데 몰두했다. 1985년 <그래픽 코리아>전을 통해 단순하고 절제된 기법으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포스터로 주목받았는데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형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유로운 한국적인 곡선과 여백의 미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1979년부터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이봉섭의 베르디 오페라 <춘희> 포스터.

편집 디자인의 새 장을 열다
1970년대 인쇄 미디어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수백 가지 잡지가 발행되었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이 일본의 아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타파한 주인공이 바로 이상철이다. 1980년대에는 단행본 출판 분야에서도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에서는 정병규와 서기흔 두 사람의 역할이 컸다.

이상철
이상철이 아트 디렉션을 맡은 <뿌리깊은나무>는 한국 편집 디자인 역사의 혁신으로 기록된다. 체계적인 그리드와 일관되면서도 가독성 높은 조판, 이전까지 한국 잡지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타이포그래피를 최초로 시도하며 ‘이상철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낳았다. 그리고 이것이 1980년대로 이어져 한국 잡지 편집 디자인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상철이 아트 디렉션을 맡은 <뿌리깊은나무> 1978년 9월호 표지.

정병규
그저 외국 명화를 차용하거나 화가에게 맡겨 회화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1980년대 북 디자인계에서 정병규는 역동적인 러시아 구성주의나 절제된 구성의 데스틸, 포토몽타주 같은 모더니즘의 실험적인 표현을 선보였다. 그는 회화적 이미지가 아닌, 사진이나 글자 및 색상 대비를 통한 개성 있는 표지를 디자인했다. 또 책 표지에 ‘북 디자이너 정병규’라는 바이라인을 넣어 오늘날에는 일반화된 북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정병규가 디자인한 김남조 시선집<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

서기흔
1982년 잡지 <한국인>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던 서기흔은 출판 분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활용을 보편화한 개척자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북 디자인 분야로 옮겨 1년에 평균 100권이 넘는 책을 디자인했다. 그는 책의 표정을 만드는 것을 넘어 내용 및 본문 디자인과 연계된 표지 연출을 시도했다. 또한 그가 설립한 디자인 전문 회사 아이앤드아이는 애뉴얼 리포트 디자인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1988년 가천대학교(당시 경원대학교)에 부임했으며 2018년 10월 두성종이 인더페이퍼갤러리에서는 그의 디자이너 인생 40년, 교육자 인생 30년을 회고하는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서기흔의 디자인 아포리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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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월간 <디자인> 편집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