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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세계를 사로잡은 노르딕 시크 이정현 볼보자동차 선임 디자이너

세계 1위의 음원 스트리밍 기업인 스포티파이, 강력한 모던 컨템퍼러리 패션 브랜드로 입지를 굳힌 아크네 스튜디오와 코스, 날렵한 디자인으로 거듭나 글로벌 시장을 휩쓰는 볼보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스웨덴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과거 가구와 인테리어 분야에서 각광받았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최근 IT와 패션, 자동차 분야로 옮겨가며 ‘노르딕 시크nordic chic’라는 새로운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들 브랜드 속에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가 담보되어 있고 이 시대의 젊은 감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볼보자동차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볼보자동차는 지난 7월까지 판매 대수가 6095대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래 올해 처음 수입차 시장에서 1만 대 클럽 진입이 유력시되고 있다. 새로 출시한 풀체인지 모델 S60에 대한 반응 또한 뜨겁다. 지난 8월 27일, S60의 출시를 기념해 디자인을 총괄한 T. 존 메이어 미국 디자인센터장과 볼보자동차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이정현이 내한해 디자인 토크를 진행했다. 2010년 4월 볼보자동차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로 입사한 이정현은 2017년 출시된 글로벌 베스트셀링 카, XC60의 메인 디자인을 진행한 바 있다. 그가 생각하는 스웨덴 디자인의 미학과 볼보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소개한다.



지난 8월 27일, 볼보 S60 출시 기념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정현 디자이너.
이정현 볼보자동차 선임 디자이너. 2010년 4월 볼보자동차에 입사했고, 2017년 출시된 글로벌 베스트셀링 카 XC60의 메인 디자이너를 맡았다. 볼보자동차의 ‘Made by People’ 광고 캠페인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2018년 LA 디자인센터에 합류해 T. 존 메이어와 함께 볼보자동차의 외관 디자인을 이끌고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후 2008년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에서 운송기기디자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멋진 영화를 볼 때 눈을 뗄 수 없는 것처럼, 웅장한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보는 즉시 감동을 주는 자동차 디자인을 할 수 있기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designer_junghyunlee

볼보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반영하여 2017년 출시된 글로벌 베스트셀링 카, XC60.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3세대 S60은 볼보의 새로운 디자인 DNA가 반영된 느낌이다.
신형 S60은 적극적으로 운전의 재미를 찾는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볼보의 핵심 차종이다. 한 체급 위인 S90보다 작은 차인 만큼 여러 부분을 덜어내고 비율을 조정했다. S60에도 볼보의 모듈형 SPA 플랫폼이 적용되었다. 3~4년 전부터 볼보 디자인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새로 개발된 SPA 플랫폼의 역할이 크다. 이는 천문학적인 R&D 투입으로 개발한 새로운 모듈형 플랫폼으로, 덕분에 디자인 자유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고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비율을 보다 안정적이고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폭스바겐 출신의 토마스 잉겐라트Thomas Ingenlath가 볼보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된 것이 2012년이다. 스웨덴 본사 디자인팀에서 일하던 중이었으니 내부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겠다.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그러하겠지만, 최근 몇 년은 볼보의 역사 중 가장 큰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변화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진 리더의 지휘가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고 비전을 공유하는 팀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으로 이룬 성과지만 앞에서 이끄는 리더의 단호함이중요하게 작용했다. 그가 독일 차의 꼼꼼함과 자신감을 스웨덴의 디자인, 헤리티지, 라이프스타일과 굉장히 잘 버무린 것 같다. 한마디로 잘 만든 반죽을 디자이너들에게 던져준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그 반죽을 가지고 맛있게 요리한 것이고. 같은 재료라도 셰프에 따라 다른 요리가 나오듯, 디자이너의 개성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디자인이 변화한 것이라 생각한다.

2017년에 출시된 XC60 2세대 모델의 외관 디자인을 이끌었다.
2008년에 첫 출시한 1세대 XC60은 볼보자동차의 베스트셀러이자, 같은 해에 유럽 중형 프리미엄 SUV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달성한 모델이었다. 그만큼 회사의 운명이 달린 모델로, 전 지역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2세대 XC60 프로젝트가 막을 올리고 3주가 지나 첫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내 스케치를 두고 토마스 잉겐라트가 “지금까지 내가 상상한 XC60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머리끝까지 전율이 일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원래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더 열심히 하지 않나. 그에게 디자인을 인정받게 되면서 당시 강렬했던 나의 에너지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콘셉트카가 아닌 양산차는 디자이너에게 의미가 각별하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 같다.
자유로운 상상을 그대로 반영한 콘셉트카 디자인이 오트 쿠튀르 패션쇼의 의상이라면, 양산차 디자인은 전혀 다르다. 나의 아버지가 XC60을 타시지만 실제로 작업할 때도 우리 아버지가, 친구들이 구입하고 탈 차를 생각하며 디자인했다. 사실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생 일하지만 자신이 디자인한 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을 못 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예전에는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디자인한 차가 XC60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또 그런 모델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을 원한다.

XC90, XC60, XC40 순으로 출시되며 XC의 새로운 패밀리 룩이 완성되었다.
디자이너마다 가지고 있는 선의 텐션, 볼륨의 느낌이 각각 다른데 나의 경우 날렵하고 수려한 라인을 선호하는 편으로, 그것이 XC60에 잘 반영되었다. 3대가 나란히 서 있으면 마치 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XC90이 듬직한 아빠라면, XC40은 장난기 있는 10대의 모습이고,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주는 XC60은 세련된 엄마를 연상시킨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쉽고 명쾌한 언어를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가령 자동차의 전면부 비율을 이야기할 때 화난 얼굴, 자신감 있으면서도 편안한 얼굴 등 표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동차 디자인은 엔지니어링 과정에서 수없이 조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결과물 또한 최대한 그에 가깝게 나온다.

그렇다면 당신이 디자인한 XC60을 사람과 비유하자면?
활짝 웃는 얼굴도, 화난 얼굴도 아닌 편안하고 차분한 얼굴. 편안하지만 오라가 있어 쉽게 범접할 수는 없는 느낌을 생각했다. 배우에 비유하자면, 영화 의 대니얼 크레이그처럼 가늘고 긴 눈에 자신감이 풍겨 나오는 사람이다. 단정한 슈트를 갖춰 입었지만, 그 안에 탄탄한 근육을 숨긴 느낌에 가깝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는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군대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동차와 비행기를 좋아해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공군에서 정비특기병으로 일했지만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을 생각했다. 당시에는 교과목을 나열할 때 ‘국산사자 음미체도실’이라 외우지 않았나. 나는 ‘음미체도실’에 가까운 아이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퇴근을 기다리는 내내 온갖 종류의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일생에서 어느 한순간은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결정을 하자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도전했다.




이정현 디자이너의 2세대 XC60 초기 디자인 스케치. 4분의 1 스케일의 여덟 가지 모형에서 시작해 마지막 한 개로 압축할 때까지 이정현은 살아남았고 XC60의 외관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선임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XC90 출시 후 XC60, XC40이 순차적으로 출시되며 XC의 새로운 패밀리 룩이 완성되었다.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여러 곳 중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Umea ˚ University를 선택했다.
볼보, 사브 등의 자동차뿐 아니라 스웨덴 문화와 디자인 전반에 걸쳐 관심이 많았고, 스웨덴에서 석사 과정으로 운송 기기 디자인 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은 우메오가 유일했다. 외국인에게도 학비가 전액 면제되는 석사 과정이라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릴 것이라 예상했고, 다소 큰 도전이었지만 유학비를 따로 마련하지 못했기에 내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2년 정도 독하게 준비해 포트폴리오를 보낸 후에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합격 후 교수님께 나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니, 카피본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손으로 그린 스케치 원본을 보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당시 컴퓨터 작업이 서툴러 내 강점인 손 스케치에 힘을 실었는데 거기서 진정성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학교 시절도 매우 고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돌이켜보면 다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라 하지만, 사실 내게 좋은 기억은 없다.(웃음) 학교가 스웨덴에서도 북쪽 지방에 위치해 있는데, 11시쯤 되면 서서히 동이 트다 2시쯤 되면 스르르 노을이 진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고시원에서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살았다. 이건 너무 구질구질한 얘기이긴 한데, 아침에 비빔면 3개를 끓여놓고 한 개 반 먹고 공부하고, 저녁때가 되면 남은 반을 먹고 또 공부했다. 학부에서 배우지 않았으니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습득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지금은 바닥에 있지만 1년 후에는 중간, 2년 후에는 그들을 모두 넘어보자는 생각으로 좀 독하게 살았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것이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나?
자동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어떤 형태가 공기 역학적으로 좋은지 등은 잘 안다. 디자인을 하거나 엔지니어와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이런 지식으로 아이디어를 스스로 제한할 수도 있다. 현실화되기 어려운 디자인이라도 협업이나 신기술을 통해 충분히 실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상대적인 두 조건을 얼마나 잘 조율하고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스웨덴 디자인 특유의 미학은 어디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웨덴에는 라곰lagom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지나쳐도 부족해도 안 된다는 말이다. 뭐든지 넘치지 않게 알맞은 정도를 유지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삼는데, 볼보의 차분하고 중후한 디자인 역시 이러한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떠들면 단단히 주의를 주는데, 근엄주의에 기반한 스웨덴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스웨덴 디자인의 패션 브랜드를 보면, 노골적인 상업성 대신 근엄한 우아함으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나. 스웨덴의 전설적인 영화감독인 잉마르 베릭만의 영화를 보면 스웨덴 미학이 담고 있는 비주얼이 어떤 것인지 조금 감이 올 것이다. 이런 가치가 현대의 정서와 맞물리며 스웨덴 디자인 다시 보기와 같은 바람이 분 것 같다.

현재는 LA 볼보자동차 콘셉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좀 더 앞서나간 볼보의 미래를 그리는 콘셉트카를 디자인한다. 전기차, 자율 주행 시스템 등이 자동차에 도입되면 여러 형태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 변화를 인간 중심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가슴 뛰게 디자인할 일이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가?
일상에서 듣기 좋은 음악이 있고, 소름 끼칠 정도로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 있지 않나. 내게는 한스 치머의 음악이 그러한데, 한스 치머의 음악에서 경험한 감동을 자동차에서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보는 즉시 ‘와, 너무 좋다!’ 혹은 가까이서 보지 않고 멀리서 스윽 스쳐 지나가면서 보았더라도, ‘어! 아까 그 차 뭐지?’라고 궁금증이 들 정도의 디자인이다.

하루 중 낙으로 삼는 순간은 언제이며, 올해 이루고 싶은 일은?
퇴근 후 차고에서 자동차를 내 손으로 만질 때가 가장 평온하다. 어렸을 때부터 선망했던 2007년식 애스턴마틴을 구입한 이후 경정비 정도는 인터넷을 찾아보며 스스로 하고 있다. 올해 계획 중 하나는 2년쯤 준비한 책 출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인생에서 어느 한 챕터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볼보자동차에 있으면서 내가 겪은 일을 비롯해 내가 생각하는 볼보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산업 디자인에 대해 쓰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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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김만나 기자 사진 김규한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