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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구겐하임 미술관의 얼굴을 바꾼 디자이너 정재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높은 인지도와 명성에 비해 그동안 그래픽 아이덴티티 측면으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월 새롭게 리뉴얼한 멤버십 아이덴티티는 좀 달랐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건축 요소를 하나하나 재해석해 조합한 형태로, 한눈에 보아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명쾌한 디자인 요소로 눈길을 끌었다. 기존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언어와 차별화된 이 색다른 시도를 한 주인공은 구겐하임 미술관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 정재은이다. 굳이 국적을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뮤지엄의 디자인 디렉터로 한국인이 활약하는 건 아마 처음이지 싶다. 더구나 그녀는 외국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다. 특히 이번 멤버십 디자인 리뉴얼은 그가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로 부임해 발표한 첫 프로젝트로, 앞으로 그녀의 손에서 태어날 구겐하임 미술관의 디자인 방향성도 궁금해진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산돌과 인터그램에서 경험을 쌓았고, <보그 걸> 편집 디자이너를 거쳐 국제갤러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결혼 후 2009년 뉴욕으로 건너가 2011년 브루클린 미술관의 시니어 프린트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며 <우리는 혁명을 원했다 We Wanted A Revolution> <데이비드 보위 이즈David Bowie Is> 등의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맡았다. 2018년 6월부터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부임 후 새롭게 디자인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비지터 가이드 브로셔.


토트백. 구겐하임 건축과 관련된 요소들을 메인 아이디어로 해 표현했다. 토트백의 문구는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 의뢰 당시 초대 관장 힐라 본 르베이Hilla von Rebay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모두 ©Allison Chipak
지난해 새롭게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로 발탁됐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2009년 말에 미국에 왔으니 이제 10년이 된다. 한국에서는 두산 매거진 <보그 걸>, 크랜베리 디자인 스튜디오를 거쳐 국제갤러리에서 일했다. 국제갤러리에서 많은 전환점을 맞았다. 그곳에서 남편도 만났고, 생각지도 못했던 뉴욕에 오게 됐다. 뉴욕에 와서 1년 정도는 언어를 배우며 이전부터 기획했던 베이킹 서적 <나의 달콤한 상자>의 출간을 준비했고, 이후에 본격적으로 20~30개 회사에 지원했다. 그중 유일하게 연락 온 곳이 브루클린 미술관이었다. 그곳에서 7년간 일했다. 5년 째 일하던 해 브루클린 미술관 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팀이 재편되고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를 맡았다. 그러던 중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 자리가 공석이라는 소식을 접해 도전하게 되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할 때부터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잡지사에서 일하다 보니 사이클이 매우 빠른 잡지는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모교인 서울여대는 타이포그래피 분야가 강점이라 그쪽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서체를 이용한 디자인은 좋지만 서체를 디자인하는 것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예술을 좋아하고 갤러리를 자주 가는 개인적인 성향과 맞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예술 공간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었고, 이것이 결국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발판이 된 것 같다.

뉴욕의 가장 아이코닉한 미술관 중 하나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다. 디자이너로서 매우 큰 성취라고 생각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우선 브루클린 미술관에 있을 때와 비교해 플랫폼이 커진 점이 좋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인스타그램의 팔로워와 방문객 수를 항상 눈여겨봤는데, 그 수치만 봐도 구겐하임 미술관의 규모는 확실히 다르다. 또 브루클린 미술관의 경우 많은 관객들이 지역 주민인 데 비해 구겐하임 미술관은 약 50%가 관광객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 세계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부담도 크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

그래픽 디자인 디렉터로서의 업무는 무엇인가 ?
미술관의 소셜 미디어부터 지하철 광고, 티켓 구매, 전시장 경험에 이르기까지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비주얼 메시지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항상 구겐하임 미술관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안내판, 포스터, 광고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팀과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하나 ?
모든 팀이 우리의 클라이언트나 마찬가지다. 모든 디자인 요소가 우리를 통한다. 이전의 디자인 팀은 다른 팀과 협업하기보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개별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다른 팀도 외부 디자인 팀을 별도로 고용해 작업했다. 당연히 디자인 언어가 통일되기 힘들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 6개월간은 디자인 팀을 재정비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위해 충분히 설명하고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디자인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나?
나와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3명이 있고, 그 외에 인턴과 프리랜스 디자이너가 함께 일한다. 보통은 브레인스토밍을 함께 하고, 프로젝트별 리드 디자이너를 선정해 필요한 외부 디자인 팀을 합류시켜 일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었다. 반면 지금은 하나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게 만드는 하이브리드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를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프리미엄 멤버십 카드.


구겐하임 미술관 멤버십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토트백. 





2018년 10월 12일부터 2019년 4월 23일까지 진행된 스웨덴 출신의 아티스트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의 전시 포스터. 뉴욕 지하철 곳곳에 설치되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디자인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천정과 창문, 계단, 난간 등 곳곳의 건축 요소를 반영해 직관적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다. 모두 ©Allison Chipak
일하는 프로세스나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 같다.
일단 문화적으로 굉장히 다르다.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고 유연한 부분이 많다. 한국에서는 미팅을 하면 주로 윗사람의 지시를 따르게 되는데 여기서는 의사 교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각자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도 생각하는 방식이나 업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몇 달 전 론칭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새로운 멤버십 프로그램 디자인은 디자인 디렉터로서 첫 프로젝트였다. 반응은 어떤가?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9개 레벨로 구성된 일반 멤버십을 위해 리뉴얼한 것으로, 해당 디자인을 미술관 내부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MD 등에도 차츰 다양하게 적용할 예정이다. 사실 이번 디자인은 각 부서 담당자부터 관장에 이르기까지, 총 7번의 프레젠테이션을 거친 뒤 나온 결과물이다. 다소 새로운 시도였기에 처음에는 거부감도 좀 있었는데, 이후 반응이 좋아 다음에 좀 더 새로운 시도를 쉽게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 같다.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
몰스킨Moleskine과 파트너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몰스킨 노트북이 내년 1월에 발매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몰스킨의 팬이기도 해 많은 기대가 된다. 또 내년 2월 20일 공개될 전시 <컨트리사이드Countryside>의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진행 중이다. 렘 콜하스가 10여 년간 진행해온 리서치 프로젝트의 설치 전시다. 또 펜타그램이 맡았던 구겐하임 미술관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재구성하는 프로그램을 인하우스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다.

영감을 얻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면?
예전에는 디자인 트렌드나 다른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많이 봤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좀 달라졌다. 나만의 생각과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일상의 작업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여유가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업무와 관련한 것은 모두 잊고 다른 생각이나 활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주말이나 휴식 시간이 무척 중요하겠다.
원래 하이킹을 많이 다닌다. 지난해 11월에 업스테이트 덴버라는 동네에서 위크엔드 하우스를 구했는데, 금요일이면 항상 그곳으로 떠난다. 완전히 시골집이라 뭐든 몸으로 해야 한다. 이곳을 수리하거나 돌보면서 지낸다. 손으로 뭔가를 하면 오히려 머리가 충전된 느낌이 든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프레젠테이션이다. 한국 디자이너의 디자인 수준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에서 디자인 교육을 받은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아이디어보다 결과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런 차이를 더욱 느낀다. 그러기에 자신을 표현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분명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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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정재훈 통신원 담당 오상희 기자 인물사진 Jiwoong Jang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