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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창업의 세계에서 나이는 의미 없다 김민준
‘연쇄 창업가’. 김민준 대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수식어가 아닐까? 이미 초등학생 때 창업한 경험이 있는 그는 고등학생 시절 메디칼 케어 O2O 플랫폼 바오바브코리아를 설립해 중국 의약품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2017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또한 김민준은 시각 장애 아이들을 위한 기술 기반의 비영리단체 준브레일을 세웠는데 이는 UN이 공식 인증한 최초의 청소년 NGO 단체였다. 이후 설립한 메디칼 케어 클리닉 멤버십 커뮤니티 겸 화장품 브랜드 ‘뷰티패스’를 다시금 대웅제약에 매각했다. 그는 현재 뷰티패스 대표이며 대웅제약 내 의료 시장의 게이트 역할을 겸하고 있다. 김민준은 ‘계급장(나이) 떼고 진검 승부를 펼칠 수 있는 것’이 창업 세계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한다. DNA에 엔터프리너십을 각인한 듯한 그를 만났다.


1999년생. 현 뷰티패스 대표. 9살에 마케팅 대행 프로그램을 개발해 첫 사업을 시작했다. 특목고 재학 시절 바오바브코리아와 준브레일을 설립했고 바오바브코리아를 중국 최초의 온라인 약국 징웨이에 매각해 큰 수익을 남겼다. 이때 수익금 일부를 기부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1900번째 회원이 됐다. 이후 대웅제약에 자신이 설립한 뷰티패스를 매각했으며 현재는 대웅제약 내에서 의료 시장에서 정보 기술을 연결하는 사업을 준비 중이다.


김민준은 양팔 가득 타투를 새겼다. 파도와 고래, 무교이지만 새겨 넣은 성경 구절은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한 것이다. 왼팔에 두 동생의 모습도 새겼다.


준브레일 대표로 활동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JA코리아, 설리번과 공동 회의를 하던 모습.

어떻게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네이버의 마케팅 대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당시에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그 대가로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사실 나는 한 번도 PC방에 가본 적이 없고 온라인 게임도 즐기지 않는다. 대신 경험을 쌓고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 마치 RPG 게임처럼 내 자신이 캐릭터가 되어 경험치를 쌓고 성장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창업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설립한 바오바브코리아로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에 뽑혔다. 그해 선정된 사람 중 최연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기사로 소식을 접했다. 6개월 전 〈포브스〉 기자와 심사를 위한 인터뷰를 했지만 그 뒤로 연락이 없어 떨어진 줄 알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같은 해에 축구 선수 손흥민이 선정됐다. 사실 실검 1위에 오른 그의 기사를 보다가 나도 같이 선정됐다는 것을 알았다.(웃음)

바오바브코리아는 어떤 회사였나?
메디칼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였다. 분명히 같은 기능과 성분으로 만든 약인데 가격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껴 여러 제약 회사를 묶어 가격을 낮추고 고객들이 그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사실 이 서비스는 한국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약사협회의 반발에 부딪혀 중국에서 진행하게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당시 기사




점자 책을 제작하는 준브레일의 3D 프린터.


뷰티패스 앱.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중학생 때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시장 상황을 터득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처방전에 나온 QR 코드로 어떤 약국에서 저렴하게 약을 파는지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중국의 QR 코드 문화가 한국보다 대중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떠올릴 수 있었던 아이디어였다. 사실 이 모델보다 더 잘된 것은 ‘마이 데일리’라는 빅데이터 기반의 헬스 바이오 앱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의약품을 촬영하면 해당 약의 효과와 용법 등을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이 기능을 보유하고 싶어 한 중국의 온라인 약국 징웨이가 매각을 제안했다.

바오바브코리아와 거의 동시에 준브레일도 운영했다.
바오바브코리아가 돈을 버는 회사라면 준브레일은 돈을 쓰는 회사였다. 시각 장애 아이들을 위한 기술 기반의 사회적 기업이었다. 3D 프린터로 점자 책을 제작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해 시각 장애 아이들이 코딩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봇 교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준브레일은 특이하게 직원 모두가 고등학생이었다. 또 우리는 자체 기술을 모두 오픈소스로 제공했는데 누군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UN이 이런 우리의 취지에 공감해 NGO 공식 인증을 해주었고 덕분에 UN 회의에 참석하는 특별한 경험도 해봤다.

최연소로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것으로 안다.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창업가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윤만 좇는다면 그것은 장사꾼에 불과하다. 창업가의 미션 중에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비스일 수도 있고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세상이 돌아갈 수 있게끔 돕는 것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않고 자퇴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대학을 갈 것인지, 창업할 것인지 두 갈래의 길에 섰다. 이미 청소년 창업가로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과연 ‘청소년’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창업가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밀림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동시에 어리다고 봐주지 않는다. 나이가 아닌 서비스와 조직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 말이다. 나는 망할 확률이 높더라도 더 높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길을 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밀림과 같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동시에 어리다고 봐주지 않는다.


그렇게 남과 다른 길을 선택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은 시간을 벌었다는 것. 남들과 비교했을 때 20년 정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통상 대기업 팀장에 오르기까지 20년은 근속해야 하지 않나? 그것을 앞당겼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일찍 삶의 안정을 찾고 남들을 도우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고. 반면 또래 친구들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대학교에 특강은 나가봤지만 수업을 들어보진 못했다. 학점이나 취업 고민이 결코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런 과정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자퇴 후 들어간 첫 직장이 콜버스랩이었다.
콜버스랩의 창업 멤버로 들어가 6~7개월 정도 몸으로 부딪치며 스타트업의 세계를 배웠다. 콜버스는 ‘타다’의 시초 같은 서비스다. 현재 타다가 그러하듯 이 회사도 규제와 싸웠다. 대통령상도 받고 2016년 서울 시민들로부터 ‘가장 공감받은 정책’으로 뽑히기도 했지만 결국 규제에 막혀 무너졌다. 당시 회사를 다니며 사용자의 리텐션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사용자가 앱에 자주 접속해야 하는데 콜버스는 막차가 끊기는 시간에만 들어가니까 사용 빈도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주 쓰는 앱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어린 나이에 창업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팀원들이 나보다 10살, 많게는 15살 이상 많다 보니 어떻게 이들을 이끌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결국 창업가는 성과로 말하는 것 같다. 성공으로 증명하고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미디어에 노출된 성공한 사업가들의 화려한 면만 좇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 창업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뷰티패스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다.
개인적인 약점이 뷰티패스 설립의 계기가 됐다. 중·고등학생 때 피부가 좋지 않았는데 시술을 받으려고 피부과를 찾으면 병원마다 각기 다른 레이저를 권장하더라. 가격도 제각각이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내가 처방받는 레이저가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거품인지 알 길이 없었다. 포털에 검색해봐도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광고성 글이었는데 이런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술 정보를 식당 메뉴판처럼 한 번에 볼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병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예약까지 할 수 있도록 해 편의를 도운 것이다.

위기의 순간은 없었나?
보건복지부가 뷰티패스가 의료인 알선 행위라며 규제를 가한 적이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포털처럼 리스트를 제공할 뿐 선택은 소비자가 직접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의사협회의 반발과 더불어 이런 규제가 있어 한때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고 다 포기할까 생각하던 찰나에 한 투자자로부터 ‘정신 차리세요’라는 카톡을 받았다. 그때 정신이 번뜩 들더라. 초심으로 돌아가 자체 화장품을 개발했고 이것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돌이켜보면 사업은 매 순간 파도를 타는 것 같더라.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스스로 초연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 몸에 타투가 많은데 일부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 새긴 것이다.

지금 10대인 포스트 김민준에게 조언을 하자면?
미디어에 노출된 성공한 사업가들의 화려한 면만 좇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 창업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경험한 수많은 난관과 막중한 책임감을 생각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하다 보면 청소년 창업가라는 타이틀에 취할 때가 있다. 실제로 돈을 벌지 못하는데 찬사에 도취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워낙 어릴 때부터 라디오나 뉴스,
잡지 등에 이름이 오르다 보니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순간 ‘현타’가 왔다.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왜 유명해지려고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미디어에 노출되기보다는 사업을 운영하는 데 더 집중했다. 사업을 할 때는 내가 지금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연장자로부터 들은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없다. 인생 선배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 있고 걸러도 되는 말이 있을 뿐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넌 어려서 안 돼’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와 비아냥을 들었다면, 다시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입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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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명환 객원 기자 사진 박순애(스튜디오 수달)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