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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김형진과 유윤석 x 신신 <디자인>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들
월간 〈디자인〉은 지난 10년간 얼굴을 두 번 바꾸었다. 통권 400호와 500호 발간에 맞춰 대대적인 리뉴얼을 시도한 것. 이때마다 재기 넘치고 영민한 디자이너의 힘을 빌렸다. 2011년 10월호인 400호를 바꾼 디자이너는 김형진과 유윤석. 이들이 불러온 커버부터 내지, 제호에 걸친 변화는 편집부와 1년간 부대낀 결과였다. 긴 호흡으로 이뤄진 이 작업은 이후 10년 가까이 잡지의 단단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디지털로 전환하려는 시대적 물살이 거세지자 잡지 시장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때 월간 〈디자인〉은 과감히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 형태를 구축하고 디자인 듀오 신신(신해옥 & 신동혁), 프론트도어(강민정 & 민경문)와 협업해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100호의 터울을 두고 월간 〈디자인〉을 리뉴얼한 워크룸 김형진 공동 대표, 유윤석 이화여대 교수, 그리고 신신이 디자인계 동료로서 한자리에 모였다.





신해옥 WOO(여성디자이너정책모임)에서 여성 디자이너들의 존재와 역사를 드러내는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월간 〈디자인〉을 찾아봤어요. 한국의 디자인사가 잘 기록되어 있었고, 이것을 옮겨놓은 디지털 라이브러리도 인상 깊었습니다. 잡지를 한장 한장 넘기며 역사 속 여성 디자이너를 찾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500호 기념 리뉴얼을 맡게 되었을 때 기쁘면서도 책임감과 무게감이 상당했어요.

유윤석 그런 점에서 오래된 잡지를 만드는 일은 숭고한 작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데이터는 저장이 편리하지만 유실되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여전히 사람들은 실체가 있는 물건에 더 가치를 둔다고 생각합니다.

신동혁 책뿐 아니라 종이 책이 있는 곳 자체가 저에게는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에요. 꽤 큰 이벤트가 생긴다는 의미에서요. 디지털은 키워드를 이용해 제가 원하는 정보를 가장 빨리 찾을 수 있게 해주지만, 알고리즘 바깥의 발견은 일어날 수 없어요. 반대로 서점을 배회하다 보면 읽을 생각이 없었던 책을 읽게 되기도 하잖아요. 학생 때 월간 〈디자인〉 400호에 실린 안상수 선생님과 슬기와 민 선생님들의 ‘선배 디자이너+후배 디자이너’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딱 10년 전이네요. 지금 보아도 잡지의 콘텐츠, 디자인 모두 균형이 잡혀 있어요. 심지어 광고 한 페이지조차도 감각적이고,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김형진 월간 〈디자인〉 400호는 리뉴얼의 시작을 알린 책이라 규칙을 철저히 지켰어요. 당시 전은경 편집장에게 요청받아 400호부터 412호까지 1년에 걸쳐 점진적인 리뉴얼을 진행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유윤석 씨와 함께 했는데 작업 과정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디자이너와 편집부가 모여 회의를 하는데 유윤석 씨가 구상한 잡지의 13단 그리드 시스템에 대해 다 같이 설명을 듣던 게 생각나요.

유윤석 13은 소수라 2의 배수나 3의 배수로 단을 채우더라도 언제나 1단이 남게 되지요. 지루함을 주면 안 되는 디자인 잡지다 보니 가변성과 활용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어요. 지나고 보니, 페이지에 여유가 있어 덜 경직되어 보이긴 하는데 내부 디자이너가 이 시스템에 익숙해질 때까지 숙련의 시간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형진 씨 말대로 저는 당시에 좀 엄격했어요. 우리는 잡지의 시스템을 만들러 왔고, 앞으로 이걸 사용할 사람에게 규칙을 잘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김형진 씨가 계속 개인기를 발휘하는 거예요.(웃음) 저로서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매번 잡지가 달라지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어요.

김형진 맞아요. 저는 당시 룰 브레이커였어요. 유윤석 씨가 차곡차곡 규칙을 쌓으면 ‘아, 이거 너무 재미없어’라며 흐트리는 역할. 좋게 말하면 생명력을 불어넣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유윤석 씨를 괴롭히는 역할이었죠.(웃음) 그즈음에는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학생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인스타그램은 없었지만 졸업 전시 포스터 등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관심도 많았고요. 두 분(신신)도 학교 졸업 전부터 TW(Typography Workshop)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죠.

신동혁 그때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에 가야만 만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사람과 정보가 있었고,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이면 일단 같이 모여서 무엇이든 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취향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가령 출판만 보더라도 메이저 외에는 모두 독립 출판, 이렇게 둔탁하게 나뉘었어요. 지금은 독립 출판 안에서도 리소그래피 좋아하는 사람, 그래픽 디자인 좋아하는 사람, 사진 좋아하는 사람 등 세세하게 분류되다 보니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나누어지고 더 분명해지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생기는 현상도 감지가 됩니다. 가치관이 달라도 크게 싸울 필요가 없지요. 오프라인의 말 안 통하는 친구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소통 방식은 예전보다 납작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당시 누구 작업이 블로그에 올라오면 이게 좋거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댓글로 구구절절하게 써야 했는데(웃음), 지금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이 ‘좋아요’ 하나로 다 표현하잖아요.




신신
‘신신’은 디자인 듀오 신해옥과 신동혁이 함께 작업할 때 사용하는 이름. 권오상 개인전 〈조각의 시퀀스〉 전시 포스터, 남서울미술관의 혐오, 차별 문제에 대한 변화를 이끄는 전시 〈사랑을 위한 준비 운동〉 포스터와 사이니지, 202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푀유〉도 이들의 작품이다.



“2020년 2월. 500호를 기점으로 잡지이면서 단행본인 월간 〈디자인〉이 탄생했다. 스튜디오 프론트도어와 함께 제호를 과감하게 한글로 바꿨다. 활자체는 담백하게 4종을 사용했다.”


신해옥 그래서 자기 작업을 거리낌 없이 선보일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희는 포스터 하나 만들어놓고 그에 대한 피드백에 상처를 크게 받았거든요. 지금은 대체로 쉽게 보여주고 피드백도 달갑게 받아들이는 현상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유윤석 또 사람들과 보는 눈,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당하지도 않는 세대니까요. 제가 요즘 학교에서 많이 목격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해서 학생들이 스스로의 발언을 굉장히 검열한다는 것이에요. 학교에서 제가 이것저것 질문하면 다들 하고 싶은 말은 있겠지만 조심하느라 삼키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이것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겠지요.

김형진 다른 변화도 있습니다. 저희 세대에서 스튜디오를 차린다는 것은 곧 부동산을 구한다는 것이었거든요. 스튜디오 공간을 임대한다는 것과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동일한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막 신에 등장한 디자이너들은 반드시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아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을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신해옥 물리적인 공간에 대해 느끼는 중요도는 확실히 세대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디바이스를 비롯해 공간, 작업물도 디지털 자체에 훨씬 익숙하고요. 아까 신동혁 씨가 책을 훑어보다가 사고가 난다고 했잖아요. 비슷한 맥락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완전히 뜬금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사고 같은 게 있어요. 저희는 그걸 몸소 체험했거든요. 예를 들면 북소사이어티에 갔다가 우연히 저희 작업을 보여드리게 되고, “이번에 리플릿을 만들 건데 한번 해볼래요?” 하면서 일이 시작되는 것처럼요. 디자이너는 언제나 누군가와 같이 일을 하는 입장인데, 지금은 온라인에서만 모이니까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매개자를 만날 일이 적은 것 같아요.

신동혁 그런 우연성이 떨어지는 것이 디지털의 장점이면서 곧 단점인 것 같습니다. 레코드 숍에 가서 커버가 마음에 들어 들어봤더니 음악도 마음에 드는 그런 우연성요.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소속감을 느끼는 커뮤니티식 문화가 창작 집단에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요. 유윤석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다들 검열하고 정제하고 공유해도 안전한 사람끼리만 공유하는 것이지요. 내가 가진 기준과 다른 새로움을 만나서 깨우치는 경험도 정말 중요하잖아요. 오늘만 해도 이렇게 두 분을 만나서 13단 그리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요.






김형진
워크룸 & 워크룸 프레스 공동 대표. 올해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두에게 열린 연구실 ‘세마 코랄’의 아이덴티티, 한국 근현대미술 120년사를 엮은 개론서〈한국미술 1900–2020〉 등을 작업했고, 총서 〈제안들〉과 스릴러 문학 잡지 〈미스테리아〉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유윤석
뉴욕 소재 브랜딩 에이전시 베이스Base에서 일한 후 서울로 돌아와 디자인 스튜디오 프랙티스를 설립해 문화, 예술, 출판 분야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8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2011년 10월호인 400호부터 2012년 10월호까지, 꼬박 1년에 걸쳐 월간 〈디자인〉을 리뉴얼했다. 제작자와 구독자 모두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며드는 변화를 구축했다.”


김형진 궁금한 게, 보통 이렇게 리뉴얼할 때는 전에 해놓은 작업의 문제점을 짚으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윤석 씨와 저 다음으로 월간 〈디자인〉을 리뉴얼할 때 어떤 점을 보완하고 싶었어요? 사실 500호가 나오자마자 바로 봤는데, 특집 부분을 시작하는 사전 코너부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 부분만 다른 종이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신해옥 사실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종이는 아니었습니다. 교과서 인쇄 시기랑 맞물리면서 진짜 원했던 종이 수급이 어려웠거든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 이것은 명백히 잡지인데 책처럼 느끼게 하려면 종이의 질감도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월간 〈디자인〉은 500호부터 완전히 다른 형태의 잡지로 바뀌길 원했습니다. 콘텐츠부터 아예 대대적인 리뉴얼이 이루어져서 매호 중요한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특집 부분의 비중이 확 늘어났고요. 특집에 7개의 코너가 있으면 7개의 각각 다른 책에서 찢어 온 것 같은 모듈식 구성을 만들었습니다. 스튜디오 프론트도어와 함께 내지 작업을 했는데, 4명이 각자 만들어 온 템플릿을 뒤섞어보고 어떤 구성이 제일 재밌는지 비교도 해가면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신동혁 400호 특징이 13단 그리드라면 저희는 레고 블록만큼 쪼개고 쪼갠 작은 그리드를 만들었어요. 최대한 자유롭게 변칙이 가능하도록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또 지면 자체가 섬네일화되어서 SNS에도 올릴 수 있도록, 지면과 종이 사이에도 느슨하지만 연결된 시스템이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월간 〈디자인〉이 종이 잡지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을 하던 때라 더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했어요.

유윤석 월간 〈디자인〉이 400호, 500호를 만드는 동안 다른 잡지들이 무수히 없어지고 또 생겨났잖아요. 분명 잡지 시대가 저무네, 뜨네 하는 시기도 있었는데 잘 있어주었고요. 이목이 쏠리는 곳뿐 아니라 기업 디자인 팀 같은, 사람들의 관심이 잘 닿지 않거나 친숙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다루어주었어요. 시간과 종이가 쌓은 디자인 아카이브로 앞으로도 계속 남아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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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박슬기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