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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꽃술 이혜미 멋과 맛의 한국적 교집합
술과 디자인의 매칭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탁월한 해법을 찾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단연 꽃술이다. 효창공원 인근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이곳은 한국 디자이너의 작업과 우리 술이 어우러져 고아하고 세련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각기 다른 물성을 조합해 재료를 변주하는 서정화의 스툴, 엄윤나가 섬유로프로 구축한 경쾌한 오브제, 붓글씨를 입방체로 조형하는 곽철안의 의자가 놓인 공간에서 조선 시대 명주, 한국산 브랜디, 우리 술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과 한국의 사계를 담은 세시주를 마시는 기묘한 조화. 꽃술의 풍류에 몰입하는 시간은 우리 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술을 빚는 과정처럼 섬세하고 입체적이다.



이미혜 
에디터이자 큐레이터, 기획자, 그리고 꽃술 대표. 2008년부터 패션지 〈보그〉에서 디자인과 예술을 담당하는 피처 에디터 및 디렉터로 일하며 〈패션 인투 아트Fashin into Art〉전, 데무 30년 아카이브 전시 〈무無로부터〉 등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을 넘나드는 전시, 출판 콘텐츠에 참여했다. 2015년 독립한 뒤 이듬해 〈한국 패션 100년〉 전시를 기획해 문화역 284에서 선보였다. 2019년 10월 꽃술을 오픈해 한국 디자인과 우리 술을 전방위적으로 기록한다. @kkotssul

잡지사 피처 에디터로 10년 가까이 일했다. 꽃술을 연 배경이 궁금하다.
상업과 예술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그 경계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패션과 사진 그리고 디자인은 그 범주의 교차점에 있는 창작 분야다. 이 중간 예술을 제대로 큐레이션해 전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에디터로 일하며 그 역할을 할 기회가 생겼다. 꽃술은 이런 행보가 이어져 자연스럽게 탄생한 공간이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콘텐츠를 기획한 건 아니다. 한국 디자이너의 가구와 기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공간이기를 바랐는데 사람들이 그 안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방법을 구상하다 바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국 생활 문화사를 소개하고 싶어 시작한 공간이었고 술에 빠삭하진 못했다. 잡지사 후배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다양한 직업군을 초대해 시음회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맛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기도 했다. 세상에 나쁜 술은 없고 다만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으니까.(웃음) 덕분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술을 접했다. 그때부터 취재 본능이 발동해 양조장을 투어하며 공부했다.

양조장에서 발견한 우리 술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엔 세시주라는 게 있다. 사시사철 세시풍속에 따라 술을 빚는다. 밥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들 하는데 술은 계절에 맞춰 얼마나 다양하게 마시는지. 위스키나 브랜디의 제조법이 숙성이라면 한국 술은 발효에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다. 우리 술의 이런 이야기가 재밌어서 명인과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일러스트레이션 북도 만들고 있다. 작년엔 디자인 스튜디오 티엘과 협업해 선조들의 휴대용 술잔인 표주박에서 모티브를 얻은 실리콘 술잔을 만들었다. 박물관을 다니면서 우리 술 못지않게 도구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잔뿐 아니라 주안상, 술통, 안주 함까지. 지금은 잊힌 디자인 용품도 정말 많은데 꽃술은 이런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소개한다. 한편 소규모 양조장의 생산과 운영 방식을 보면 우리 주변의 디자인 공방과 닮아 있다. 전통과 현대와 로컬리티가 혼합된 실험실이랄까?


제로랩의 스툴을 전시한 꽃술 1층. 수납 기능을 갖춘 조립식 계단도 제로랩이 디자인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티엘이 만든 칵테일 키트.
꽃술은 국내 디자이너와 한국 술을 큐레이션해 ‘우리 것’을 알린다. 테이블이나 의자는 물론 트롤리, 문손잡이까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가구와 소품을 판매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운영자가 에디터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알아챌 수 있을 텐데, 꽃술이 관심을 두는 한국 문화는 산업화 시대로 구분되는1970년대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몸소 경험해서 기억하거나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것들. 패션 잡지도 결국 컬러 TV가 생긴 1980년대 이후에 발전한 문화의 부산물을 다루지 않나. 너무 가까운 과거이기에, 또 공산품은 장인 정신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기에 1970~1980년대에 쏟아져 나온 것들을 지키고 발견하는 일에 소홀했다. 하지만 50년 전 양산한 기성 도자기가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코리아 빈티지’가 되기도 한다. 그 원본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시기이며, 독특하게도 오늘날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은 골동품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꽃술은 박물관에 사료로 남아 있는 전통문화가 아닌, 젊은 작가들의 감각을 접목한 디자인을 발굴하고 기록한다.

그래서인지 꽃술은 ‘디자인 바’라고 불린다.
내가 만든 명칭이다.(웃음) 외국에 ‘아트 바’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예술의 범주는 너무 넓으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디자인 바’라고 명명했다. 꽃술은 디자이너들의 느슨한 연대로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로고, 명함, 가구, 계단, 선반 모두 디자인이나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꾸렸다. 그래픽은 손혜인 디자이너가, 시공은 맙소사 김병국 디자이너가 맡았다. 제로랩은 수납장을 갖춘 조립식 계단을 만들었고 알루미늄 소재를 잘 다루는 원투차차차에서 선반을 제작했다. 화단의 물조리개와 옥상의 파티션, 시음 잔 트레이에도 전부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았다. 단순히 디자인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창작자들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서로 돕는 아지트라고 볼 수 있다.


새콤한 맛의 황금빛 대추 칵테일, 쥬쥬볼.

곽철안, 서정화, 엄윤나, 디자인 스튜디오 티엘 등 한국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을 모두 만져보고 사용할 수 있다.
꽃술이라는 이름에 이러한 방향성이 담겨 있다고.

맞다. 꽃술은 꽃의 수술과 암술을 아우르는 말이다. 작지만 꽃의 중심을 이룬다. 로고에 사용한 한자 ‘蘂’는 음도 뜻도 두 가지다. ‘꽃술 예’와 ‘모일 전’. 나무 위에 마음이 있고 그 위에 풀이 돋아는 형상이다. 씨를 퍼뜨리고, 풀이 돋아날 수 있는 든든한 뿌리가 되고자 하는 꽃술의 지향점을 다층적으로 함의한 단어다.

낡은 주택을 ‘디자인 바’로 탈바꿈한 레노베이션 과정도 궁금하다.
한계가 많은 건물이지만 최대한 옛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려고 했다. 무엇보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완성하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여러 이미지가 뒤엉켜 자칫 난잡한 디자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천천히 시간을 갖고 충분히 의견을 조율해 디자이너들에게 골고루 역할이 배분되도록 했다. 오픈하기까지 열 달 정도 걸렸으니 정말 오래 고민한 셈이다.




호랑이배꼽 양조장과 함께 출시한 새참 막걸리, 호신술 패키지. 디자인 모조산업 일러스트레이션 손정민

우리 술 그림책 프로젝트의 세시주 엽서. 디자인 손혜인 일러스트레이션 안홍근
최근 호랑이배꼽 양조장과 함께 출시한 ‘호신술’은 어떤 술인가?

낮에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새참 막걸리다. 일반 막걸리가 기름진 음식과 어울린다면 호신술은 담백하고 청량하다. 평택의 비옥한 땅에서 생산한 햅쌀로 빚은 술인데 사과, 유자, 벌꿀, 로즈메리가 더해져 그야말로 신선하다. 막걸리 특유의 시큼털털한 맛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추천한다. 호신술은 ‘호랑이는 신나게 술을 마신다’를 줄인 말이다. 꽃밭에 누워 한가로이 낮술을 즐기는 호랑이를 손정민 작가가 일러스트로 그려 라벨 디자인에 담았고 모조산업이 패키지 디자인을 맡았다. 병목에 달린 띠지가 포인트인데 힘들게 일한 뒤 땀 닦은 수건을 어깨에 삐딱하게 걸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한갓지게 낮술을 즐긴다는 콘셉트로 아이스 버킷과 수건, 술잔으로 세트를 구성했다.

디자인 신과 주류업계에서 꽃술의 향후 계획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큐레이터나 기획자보다는 에디터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기자이자 편집자로 일하며 갖춰온 에디터십이 강점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꽃술이 소규모임에도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협업 기반의 일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 제안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인데 이 또한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자산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술이 부쩍 인기를 얻어 흥미로운 한편, 이렇게 바람 한번 불고 지나가는 유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술은 한국 디자인의 생활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 같은 공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젊은 창작자들이 활발하게 술을 빚고 대를 이어 가양주를 리브랜딩하는 오늘날, 우리 술의 역사와 흐름을 정리해 아카이빙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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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정인호 기자 사진 이명수(아프로_이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