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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시장 골목 100년을 부활시키다 광주 1913 송정역 시장

 

아날로그 전구를 밝힌 1913 송정역시장의 저녁 풍경.

전남 광주 KTX 역사 건너편에 위치한 1913 송정역시장 입구에는 커다란 글씨가 행인의 눈을 사로잡는다. 1959 호남상회, 1972 수미양장점, 1984 송정떡집, 1985 중앙통닭…. 이를 따라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름으로 봤던 가게들이 정말로 골목을 따라 정겹게 늘어서 있다. 딱 집어서 설명하긴 어렵지만 왠지 떡집은 떡집답고 통닭집은 통닭집다운, 알아보기 쉽고 심플한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잘 살펴보면 가게마다 자신의 역사도 소개하고 있다. “35년 미용 기술로 1913 송정역시장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개미미용실’. 스무살에 서울로 상경해 종로 ‘개미미용실’ 에서 최신 미용 기술을 배웠던 원장님의 머리 만지는 솜씨가 능수능란합니다.” “큰아들 상태의 이름을 내걸고 가족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 는 ‘상태야채’를 소개합니다.” 시장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는 경험이다.

하지만 1913 송정역시장의 진가는 해질녘이 되어야 드러난다.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전구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시장 골목은 정신없이 왁자지껄해진다. 지난 4월 18일 정식 개장한 1913 송정역시장에는 지금까지 약 16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사실 전통 시장의 현대화 사례는 전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유독 1913 송정역시장 이 블로그와 SNS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꼭 한 번 찾고 싶은 광주 명소로 자리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1913 송정역시장은 현대차그룹이 현대카드에 일임해 이루어진 프로젝트다. 2014년부터 정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각 대기업과 힘을 합해 전국에 18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는데,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는 광주의 경우 자연스럽게 현대차그룹과 손을 잡았다. 이들은 작년 3월 서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을 하나 선택해 리모델링하자는 계획을 세웠고, 강원도 ‘봉평장’ 프로젝트로 전통시장 마케팅에 노하우가 있던 현대카드와 브랜딩·마케팅 회사 필로비블론이 모든 콘셉트와 디자인 기획을 맡게 됐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팝업 스토어를 열 수있도록 마련한 공간 ‘누구나 가게’.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 가게 파사드 모습.


현대카드는 1913 송정역시장의 전신 ‘송정역전 매일시장’의 경쟁력을 두 가지로 봤다. 오랜 역사, 그리고 KTX 역사에서 불과 3분 거리라는 것이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제2의 대합실’이라는 콘셉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물건을 사고파는 마켓으로서의 기능은 대형마트와 비교해 큰 경쟁력이 못 된다고 판단, 먹거리가 중심인 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진정한 차별화는 다음 두 가지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우선 시장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했다. 복고풍으로 점포를 꾸미고 식당 몇 개를 새로 입점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죽어가던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데는 단순한 간판 교체와 도로 정비 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장 경쟁력의 핵심 콘텐츠가 될 55개의 점포 중 17개는 비어 있었고 나머지 36개 점포 운영자의 평균 연령이 63세였다. 현대카드는 팔을 걷어붙이고 이들의 마케팅 대행사를 자처했다. 우선 오랜 역사를 가진 36개 점포의 이야기를 발굴해 이를 각 가게의 ‘셀링 포인트’ 로 삼았다. 비어 있던 나머지 17개 점포는 중소 기업청의 청년 상인 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아 청년 창업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는데 수많은 지원자가 제출한 사업 계획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면접까지 진행하며 신중하게 선정했다. 입주 사업자가 결정된 후에도 마케팅 멘토링을 통해 가게 네이밍에서부터 메뉴 발굴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젊고 톡톡 튀는 아이템으로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또 청년 창업의 성공에는 아이템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건물주와의 임대료 협상도 진행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청사진에 대한 공유와 공감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두 번째 차별화는 디자인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어렵게 발굴한 옛 점포들의 이야기와 젊은 점포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간판부터 가게의 파사드, 인테리어의 콘셉트가 될 디자인 요소까지 55개 점포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디자인 기획을 적용했는데, 이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일이었다. 사업 초기, 상인들은 시장 리모 델링이 현대차그룹에서 ‘새 건물’을 지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이제까지의 전통 시장 리디자인은 많은 점에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장의 개성을 살리기보다 간판 바꾸기 등을 통해 깔끔한 모습으로 점포들을 획일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방문객들이 시장 고유의 분위기를 즐기러 올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디자인 방향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했다. 1913 송정역시장 디자인의 콘셉트가 ‘시간’이 된 것도 그래서다.

이러한 탄탄한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디자인 요소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13 송정역시장은 광주 제일의 관광지 가 되는 것, 혹은 전시 행정을 위해 보기에만 번듯한 결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시장 본연의 가치에 주목했으며 마케팅과 디자인 과정에서 이 목표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이것이 1913 송정역시장이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변화를 위한 변화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제2의 대합실이라는 콘셉트에 맞도록 디자인한 시장 내 KTX 열차 시각표.

시장 본연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주목한 1913 송정역시장 저녁 풍경.

Interview

김영관 현대카드 브랜드 본부 기획 총괄 팀장 

신태호 현대카드 UX & 디자인랩 디자인 총괄 선임
디자이너 김형석 필로비블론 어소시에이츠 대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장의 자립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죽어 있는 공간을 재생하는 사업에서 디자이너나 기획자가 무엇을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비슷한 프로젝트의 많은 경우가 리모델링 후 변화된 모습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상인들의 동의와 자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점포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수익의 간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는 없었나?
기존 상인회의 재정비와 더불어 청년상인회가 조직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외부에 상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내실을 다지고 적절한 운영을 하기 위한 것이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모든 점포가 이윤을 내야 한다. 방문객을 위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기존 상인들도 상품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들에게 업종 변경을 권하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방문객이 많은 저녁 시간대에 간이 매대를 통한 부업을 장려하는 등 추가 매출을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콘셉트를 ‘시간’으로 잡았다.
기존 점포는 예전부터 축적되어온 시간, 그리고 청년 점포는 지금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의 시간을 콘셉트로 삼았다. 단순히 각 가게를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옛 간판의 색깔과 글꼴을 보존해 거기에 담긴 시간을 형상화했다. 역사를 발굴해 스토리보드화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청년 점포는 재미있는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상징화해 파사드와 간판, 로고 디자인에 적용했다. 이렇게 55개 각 상점의 디자인 포인트를 설정하고 브랜딩과 점포 개선 작업을 했다.

점포를 하나하나 브랜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시장 활성화 사업이 점포를 획일화시키는데 이는 시장 본연의 모습을 지킨다는 우리 목적과는 부합하지 않았기에 개별 브랜딩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방앗간이면 방앗간, 과일집이면 과일집다운 그 점포만의 특색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스토리텔링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 브랜딩 과정이다. 각 점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일률적인 방식을 지양했다. 각 점포에서 어떤 디자인 포인트와 어떤 이야기 포인트를 끌어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시장 골목의 환경 개선에는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
쉼터 조성, 골목 넓히기 등 기능적인 부분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에디슨 전구를 선택한 것도 그래서다. 골목에 지붕을 만드는 아케이트도 같은 이유에서 포기하고 대신 차양막을 설치했다. 바닥에 까는 타일 색깔 하나까지도 전체적인 톤 & 매너에 맞는지 고민했다. 도시 계획을 하듯 거리 전체를 완전히 바꾸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고 각각의 점포만의 특색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한 1913 송정역시장의 다양한 간판.


Interview 

박종관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 부장 


“지역 경제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전통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국 각 창조경제혁신센터마다 공통 사업과 특화된 사업이 있다. 광주의 경우 ‘서민 경제 활성화’, ‘전통 상권의 강화’를 해결해야 할 사업으로 봤다. 전통 시장은 서민 경제의 상징인 만큼 이를 리모델링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1913 송정역시장의 전신인 송정역전 매일시장은 역사가 100년이 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도태된 곳이다. 이처럼 전통과 시간이 깃든 공간을 되살려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상인들의 삶의 질 또한 향상시키고자 했다.

기존의 기업 사회 공헌 프로그램과 이번 프로젝트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업 입장에서 기업이 원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프로젝트에 좀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접근했다는 것도 차별화된 점이다. 전통 시장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은 지자체별로 많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점포의 역사와 특징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내고, 이를 다시 디자인에 적용한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1913 송정역시장 리모델링 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 개장 후 2주간 5만 명이 다녀갔다. 평소의 유동 인구도 많이 늘었다. 단순 방문객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변화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 같다. 방문객 모두 상점과 시장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곤 한다. 틀에 박힌 획일화된 리모델링이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고민과 열정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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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최누리 객원기자,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6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