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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기호의 경쟁, 지금 이 순간 기호의 메시지를 읽어라 감정을 감추는 세련된 기호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은 꽤나 세련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안부를 묻는 것도, 새해 인사도,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합격이나 불합격, 해고 통지도 모두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행동이나 표정을 살필 일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 미묘한 마음의 디테일 역시 읽을 일이 없다. 그런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감정의 낭비가 없다. 이모티콘으로 최소한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그런 문자 감정 기호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축소돼 진실성이 결여돼 있다. 그런 모든 감정 기호는 사실은 위안과 안심의 기호다. 문자 기호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격앙된 감정을 자제한다.

화를 내거나 우울한 기분을 전하는 기호조차 귀엽게 포장된다. 정말 화를 내고 싶으면 이모티콘이 아니라 욕을 써버리면 되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세련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사실 진짜 욕, 진짜 화, 진짜 슬픔, 진짜 불안을 기호화한 이모티콘은 아직 보지 못했다. 따라서 조금씩 다른 그 모든 감정 기호는 사실 ‘좋아요’의 아류일 뿐이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두드러진 특징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다는 것이다. 문자 기호의 커뮤니케이션은 소리 기호의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르며, 따라서 절제와 세련됨을 요구한다.


나를 위로해줘요
디지털 사회 관계망은 만남을 더욱 빈번하게 만들지만 여전히 공허하다. 얼굴을 보면서 표정과 목소리의 반응을 느낄 수 없는 만남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런 결핍을 해소하려고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대표적일 게다. 혼자 살거나 또는 누구와 같이 살아도 여전히 혼자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들은 차라리 귀여운 동물과 정을 나누고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SNS를 통해 전시한다. 사랑스러운 대상은 대개 고양이나 개 같은 반려동물, 아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 심지어 애인이나 배우자보다 이들에게 더 큰 애착을 느낀다. 적어도 SNS상에서는 말이다.

그건 사회적 만남과 대화를 점점 어려워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진짜 만남과 사랑이 갖는 그 길고 힘들고 불편한 과정을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통령조차 혼밥을 즐기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 결과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보다 귀엽고 예쁜 것을 더 좋아한다. 아름다움이란 성숙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고통의 과정을 전제로 한다. 귀엽고 예쁜 것은 미성숙과 관련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것, 주어진 것이다. 아름다움은 슬픔이나 불안과 관련이 있지만 귀엽고 예쁜 것에는 밝음만이 있다. 자기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는 방식도 아름다움이 아닌 귀여움과 예쁨이 대세다. 고양이와 아이, 그리고 가분수의 캐릭터와 장난감이 세상을 평정했다. 그것들은 미성숙한 인간관계와 소외의 산물이다. 동시에 위안의 기호이기도 하다. 그 위안이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에게 주는 셀프 위안이다.




네이버 라인프렌즈와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와 이모티콘. 슬프고 화가 난 때조차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디지털은 비물질적인 정보의 세계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속의 이미지는 영상처럼 끊임없이 다른 이미지의 등장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물질적인 실체가 없다. 제품 디자인 역시 이런 비물질화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디지털 정보를 사람의 눈에 보여주는 TV나 모니터가 대표적이다. 이런 물건의 본질적 기능이란 2차원의 평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눈에 정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TV나 모니터는 물리적인 실체를 가질 필요조차 없다. 벽이나 유리가 모니터 역할을 해도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냉장고나 밥통, 책꽂이처럼 대부분의 기능적 사물은 밥이나 음식 재료, 책이라는 물질을 담아야 하므로 반드시 물리적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에어컨처럼 온도 조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을 하는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 따라서 에어컨은 벽 속으로 사라진다. 비물질화되는 것이다. 선풍기도 바람만 나오게 하면 된다. 이에 따라 최신 선풍기는 팬이 사라진다. TV 역시 궁극적으로 벽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런 사물은 작동하지 않는 동안에는 아예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중간 단계로 TV가 얇아지고 있다. 베젤도 사라진다. 오로지 하나의 화면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스마트폰도 그런 경향을 띤다. 마치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매장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처럼 기능을 수행하는 한 그 물질이 최소화할 수 있는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종이처럼 얇아진 LG전자의 올레드 TV를 보라. 이것은 오직 ‘보여주기’에만 충실한 완벽한 기능주의의 기호다.

삼성의 세리프 TV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세리프 TV 디자인의 핵심은 물질성의 회복이다. 두께를 살렸다. TV 위에 작은 장식품을 올려놓을 수 있다. TV 뒷면은 섬유 재질이다. 매끈함과는 거리가 있는 이 질감은 매우 촉감적이고 물질적이다. TV 화면은 꺼져 있을 때조차 장식적인 물질로 변화해 존재감을 자랑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런 디자인은 작동하지 않을 때는 장식품이 되어야 한다는 옛날 방식의 촌스러운 디자인 가치관을 회복한 것이기도 하다. 꺼져 있을 때가 더 많았던 옛날 TV는 가구처럼 디자인해 존재감을 알렸던 것이다. 집안의 자랑이니까. 마치 책꽂이에 꽂힌 수백 권의 책이 읽히지 않아도 집안의 지적인 면모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TV는 대개 흰색 레이스를 덮어 소중한 물건처럼 다루었으며, 집에서 중심부를 차지했다. 바로 이런 사물 숭배의 가치관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양가감정이다.

한쪽에서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라는 모더니즘의 가치관에 맞게 최소화하고 비물질화한다. 그것은 세련됨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 허전함과 공허함에 맞서 물질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공예품 또는 공예적 가치가 느껴지는 물건에 환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현상이다. 세련되지만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모던한 글꼴을 대신해 복고풍 글꼴이 대세인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모든 것이 메마르고 인색해진 세상에 대한 위로로,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LG전자 올레드 TV의 옆모습은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유령처럼 모니터가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다.


삼성전자 세리프 TV. 물질성과 공예적 가치로 회귀한 모습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작업실에서 태어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박윤정앤타이포랩의 더클래식 폰트. 복고풍의 폰트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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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사진: 김신(디자인 칼럼니스트) 편집: 오상희 기자, 디자인: 정명진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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