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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디자인으로 바라본 북한의 일상 <북한의 생활 그래픽> 전시 리뷰


<북한의 생활 그래픽> 전시. 화려하고 직설적인 컬러로 가득 찬 공간에 다양한 선동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의 토대가 된 책






선동적이며 직접적인 문구, 화려한 채색이 특징인 북한 그래픽.
어느 때보다 ‘북쪽’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 우리보다 한발 앞서 ‘금기의 나라’를 들여다본 도시가 런던이다. 지난 2월 23일부터 5월 13일까지 런던 킹스크로스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House of Illustration에서 열린 <북한의 생활 그래픽Made in North Korea: Everyday Graphics from the DPRK>전은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북한의 생활상을 바라본 유례없는 콘셉트로 화재를 모았다. 전시의 기조가 된 것은 작년 가을 파이돈Phaidon 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명의 책. 25년간 중국에서 북한 여행 전문사 고려투어를 운영해온 니컬러스 보너Nicholas Bonner가 평양을 방문하며 수집한 소품을 담은 아트북이다. 북한 체제 선전물인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비롯해 길거리에서 마주한 광고판, 엽서, 포장지, 맥주 상표, 만화, 통조림 패키지, 초대장과 우표 500여 점이 280쪽에 빼곡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이라는 제목으로 초판서점을 통해 국내에도 유통됐는데,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의가 빗발쳐 출판사에서 물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시 막바지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회담으로 더욱 이목을 끈 <북한의 생활 그래픽>전은 그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던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소개하는 매우 특별한 자리라 할 만했다. 책을 통해 1차적으로 접한 디자인 실체를 직접 감상하고 다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시도였다고 할까. 전시에는 1975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니컬러스 보너가 100여 차례 평양을 방문하며 수집한 생활품을 소개했다. 현재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베이징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작가의 ‘디자인 공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가 수집한 소품은 체제의 산물처럼 느껴지기보다는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 선동적이며 직접적인 문구,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밀도 있는 채색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세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나라 중 한 곳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창이 됐으면 한다”는 갤러리 디렉터 콜린 매켄지Colin McKenzie의 설명처럼 이념과 사상은 논외로 둔 채 철저히 그래픽 디자인으로 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 것이다. 전시명에 ‘Everyday Life’라는 문구를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영국의 프레이저 머거리지 스튜디오Fraser Muggeridge Studio는 전시 디자인도 맡았다. 세 곳으로 나뉜 전시 공간은 화려하고 직설적인 컬러로 가득했다. 눈이 피로할 만큼 짙은 주황색 벽면 가득 북한에서 구입한 포스터를 콜라주 방식으로 소개하는데, 마치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 패턴처럼 느껴질 정도다. 두 번째 방에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서 볼 수 있었던 프로파간다, 즉 다양한 선동 포스터를 한데 모았다. ‘수요에 맞게 공급하자’, ‘더 좋은 초물제품을!’, ‘인민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는 실속 있는 일군이 되자’와 같은 문구가 북한 주민의 얼굴을 담은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한다. 목련, 천리마 같은 오브제를 자주 사용한 것도 북한 그래픽의 주된 특징이다. 이 외에도 직접 그려 완성한 초대형 핸드메이드 포스터는 국가 제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산물. 농업 부문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평양의 과거는 물론 자본주의가 유입된 오늘날의 디자인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쳤던 북한 그래픽은 2002년을 중심으로 전환을 맞았다. 즉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적 그래픽이 주인 것에서 벗어나 2002년 이후에는 자본주의적 마케팅 요소가 도입된 디자인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이티 싱JT Singh과 롭 휘트워스Rob Whitworth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2014)을 관람하며 전시가 마무리된다.그곳의 디자인은 어떨까. 저자 니컬러스 보너는 여러 매체 인터뷰를 통해 말한다.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은 상당히 화려하다. 잠시라도 생각하고 고민할 틈을 주지 않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마주할 때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를 함께 떠올리지만 북한에서는 ‘누가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 김일성예술대학 학생들은 체제의 뒤편에 숨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양한 문화, 디자인 교류까지도 가능한 미래가 머지않았다.


© Paul Grover

Interview
올리비아 아흐마드Olivia Ahmad 프레이저 머거리지 스튜디오 큐레이터

“전시 자체를 하나의 매스 프로덕트로 느낄 수 있게 했다.”



북한 그래픽 디자인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간 전 세계의 대단한 그래픽 아트를 접하고 다양하게 소개해왔지만 북한 그래픽은 런던에서도 잘 알려진 영역이 아니었다. 니컬러스 보너가 북한 여행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해 런더너들은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신선한 전시를 소개할 수 있었다. 북한 그래픽의 특수성, 독특한 사회·정치 의식 등을 영국의 실정과 비교하는 색다를 기획일 거라 확신했다.

큐레이터로서 이번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했나?
손으로 직접 그린 포스터 시리즈를 한데 모으는 식으로 방대한 이미지를 엮는 데 집중했다. 이 포스터들은 북한 정부의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전달해 노동을 극대화하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독특한 포스터와 공간의 조화를 위해 벽면을 비슷한 컬러로 새롭게 칠하고 벽면 하단에는 빨간 라인을 더했다. 전시 공간 중 ‘그린 섹션’은 아주 짙은 녹색으로 시작해 단계별로 채도를 낮춰 맨 아래쪽은 흐릿하게 마무리하는 식으로 채색했다. 또 푸드 패키지, 감사 카드와 우표 등 북한의 일상을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소품을 활용해 직접 벽지도 제작했다. 이 프린트로 벽면 전체를 덮은 뒤 컬렉션을 배치해 방문객이 전시 전체를 하나의 매스 프로덕트로 느끼게 하는 데 집중했다.

북한 디자인을 마주한 관람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전시를 오픈한 2월경은 북한과 다른 나라들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영국 미디어의 부정적 후기를 우려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시가 끝날 때까지 그런 반응은 없었다. 관람객들은 그래픽적 관점에서 전시품을 탐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흥미로워했다. 영국 미디어가 미처 다루지 않았던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방문객을 위해 도슨트를 진행하며 한반도의 전통적인 아이콘과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천리마 등 여러 아이콘을 어색해하던 관람객들이 나중에는 이런 것을 북한 그래픽 언어, 하나의 툴로 이해하더라.

디자인 전문가로서 북한의 그래픽 디자인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의 일상적 그래픽은 표준화된 포맷보다 더 일상을 파고드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음식 통조림과 담배 케이스의 다양한 라벨이 좋은 예다.

전시가 끝나갈 즈음 전 세계가 놀랄 말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의 디자인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이번 전시에서는 북한의 최근 패키지 디자인까지 소개했다. 이를 통해 북한 디자이너들이 디지털 툴을 사용해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점차 담백한 컬러와 벡터 그래픽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픽 디자인은 사회, 경제,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 또한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기술과 소재의 실험은 물론 복잡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 그래픽 디자인의 미래를 짐작하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속성으로 볼 때 표현하는 방식과 방법 모두 훨씬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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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박나리(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프레이저 머거리지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