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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What Type Are You? 내일은글자왕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던 내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얻은 용기와 희망. 아마도 이 사이클은 반복될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10년 전 폴더명으로 다짐했던 ‘내일은글자왕’이 되어 있을까.

노민지는 타입 디자이너다. 1인 스튜디오 ‘노말타입파운드리’를 운영하며, 파티(PaTI,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한배곳과 더배곳에서 타입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글 문장부호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활자공간, 윤디자인,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일하며 다양한 글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달에 떠나는 호주 생활이 너무 기대됐다. 들뜬 마음으로 영어 학원을 다녔고, 후배들에게 인수인계를 했다. 모두들 아쉬운 표정을 하고선 그렇게 나를 떠나보내주었다. 참으로 즐겁고도 고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원하던 회사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런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이내 누구보다 잘 적응해서 많은 일을 해냈다. 안그라픽스는 규모가 컸지만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는 늘 3~4명을 유지했다. 일하는 방식은 간단했다. 각자 원하는 프로젝트를 통째로 맡아서 진행했다. 혼자일 때가 많았고 큰 프로젝트는 2~3명이 팀을 짜서 진행했다. 글꼴 프로젝트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부터 리서치, 기술, 유통, 판매까지 경험하고, 이 모든 과정을 소논문 형식으로 발표해야 마무리되는 시스템이었다. 클라이언트 업무일 때는 직접 미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수준 높은 회의 자료를 만드는 것도 큰 업무 중 하나였다.

‘신세계백화점 전용 서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2년 6개월 동안 스무 번이 넘는 회의를 했는데, 그야말로 회의를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회의장 가는 일을 즐겼다. 글자는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었고, 회의 내용은 늘 최상으로 유지했다. 노트북 대신 아이패드를 가져갔고 프린트물 하나도 포맷, 제본 방식, 종이 종류를 세심하게 선택하는 등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회의 내내 배경음악을 틀어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종합예술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일에 매진한 시간은 참혹한 영광으로 돌아왔다. 나는 번아웃에 시달렸고, 함께하던 선후배들은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후 나도 사직서를 냈다.

출국할 때는 일부러 맥북을 가져가지 않았다. 1년은 일을 하지 않고 지내볼 참이었다. 11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스스로 주는 안식년 같은 것이었다. 낮에는 랭귀지 스쿨에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울창한 숲이 보이는 나의 이층집에서 요리를 할 것이며, 주말이면 남편과 바닷가로 여행을 떠날 참이었다. 뭐 다들 짐작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일주일 내내 바빴고,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늘지 않는 요리 실력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고, 아래층 사는 집주인은 계단 내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핀잔을 주었다. 호주의 밤은 길었고, 나는 점점 작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나의 모든 부정적인 마음, 스트레스, 짜증을 남편에게 모두 쏟아낸 후에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많은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 마음이 조금씩 고요해질 때쯤 문득 나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즐거웠고, 무서웠고, 지겨웠던 나의 일. 그제야 노트북을 켜고 바탕화면의 ‘내일은 글자왕’ 폴더를 더블 클릭.

온갖 책으로 뒤덮여 있던 서재를 청소하고, 깨끗해진 책상 위에서 노트북을 켰다. ‘내일은글자왕’ 폴더에서 2011년 대학원 과제 하나를 발견했다. ‘박경서 활자체’를 복각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리서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탓에 딱 여섯글자만 디자인이 되어 있었다. 박경서는 1930~1940년대에 활동한 활자 조각가로, 이미 잘 알려진 최정호, 최정순, 장봉선 등의 스승 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글자는 주로 〈소년조선일보〉의 본문으로 쓰였는데 리서치 당시에 그 글자를 문학 서적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중 ‘박경서 4호(교과서) 활자체’로 알려진 자료는 꽤 많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이 자료를 참고해 지난 회사에서 체득한 나만의 미감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집 앞 문구점에 가서 가장 두꺼운 바인더와 속지 여러 개를 구입했다. 리서치 자료를 프린트해 맨 앞 장에 차례로 끼워 넣고, 이미 만들었던 여섯 글자를 뿌리 삼아 무작정 파생을 시작했다. 평소의 나라면 제작 계획을 꼼꼼하게 세웠을 것이다. 리서치 기간, 스케치 개수, 하루에 그려내야 할 글자 수, 인쇄 테스트 일정, 제너레이트 시기, 출시 일정, 그리고 소눈문까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그리고 싶을 때 그렸다. 오랜만의 작업이었지만 낯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철저한 계획이 없이도 작업은 순조로웠다. 하루에 3~4시간 정도를 글자 만드는 데 썼다. 그마저도 그리는 날보다 그리지 않은 날이 더 많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부담을 덜어내고 오랜 시간을 들여다보며 그린 글자여서 그런지 왠지 모를 여유마저 느껴졌고, 이 여유로운 제작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1년. 기한 없이 그려온 글자이다 보니 완성의 종지부를 찍기가 어려웠다. 소위 ‘마감’이라고 불리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월간 〈디자인〉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올 2월에 글자를 출시할 것이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마감 날짜는 결정이 나고 나의 ‘노말바탕’은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던 내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얻은 용기와 희망. 아마도 이 사이클은 반복될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10년 전 폴더명으로 다짐했던 ‘내일은글자왕’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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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노민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