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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공예가와 디자이너가 함께 차려낸 만찬
귀한 손님을 초대해 일상과 문화를 향유하던 선조들의 풍류와 여유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만찬이 열렸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계승해온 지역의 명인과 이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이너가 만나 전통 공예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전시 〈만찬〉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를 주관한 한국전통문화전당 전통문화창조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전통문화과와 함께 전통문화의 소재, 기법, 디자인을 활용한 융합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3월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찾은 수많은 관객의 눈길과 발걸음이 이곳으로 모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박형원 어반웍스 대표, 최경란 국민대학교 교수, 강신재 보이드플래닝 대표, 박현주 포트콜린스 대표, 정소이 보머스 디자인 대표, 최웅철 웅갤러리 관장과 배금용 경기성남 나전장, 박강용 전북남원 옻칠장, 이건무 전북남원 목선반장, 진정욱 전북완주 도자장, 황미경·임어진 전남담양 죽제품장, 양현승 서울마포 두석장, 양석중 경기인천 소목장, 권원덕 전북익산 소목장 등 9명의 공예가가 의기투합했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모던, 장식과 쓰임이라는 주제로 탄생한 작품이 손님을 초대하는 만찬장을 가득 채웠다.


<만찬> 전시 전경. 강신재는 만찬의 필수 요소인 테이블과 의자에 초점을 맞춰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 한지 장판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의 실루엣만 보이도록 표현한 벽면, 천을 늘어뜨려 마치 샹들리에처럼 표현한 독특한 요소가 인상적이다. ©이창화 
우리식 만찬장을 그려내다
만찬이라는 주제로 공간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만찬 문화가 발달한 서구와 달리 한국의 전통적인 만찬은 정의 내리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과 관혼상제 정도가 만찬의 예라 할 수 있으나 서구와는 상차림에 대한 접근부터 달랐다. 한 끝에서 다른 한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직사각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유럽과 달리 한국의 식문화는 개인 반상을 중심으로 했다. 장유유서, 남녀칠세부동석 등 유교 문화의 관습은 밥상의 구분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조선 시대에는 가족 간에도 서열이 있어 겸상하지 않았다. 지체 높은 사대부가에서는 수백여 개의 소반을 구비해둘 정도였다. 그나마 안중식의 ‘조일통상장정 기념 연회도’에서 만찬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조일통상장정은 1883년 6월 22일 강화도조약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조선의 관세권을 수정하기 위해 열린 조인식이다. 조선과 일본의 전권대신을 필두로 각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이국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포크와 나이프 같은 커틀러리와 함께 테이블 중앙에는 조선의 화병과 서양의 촛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다소 이질적인 조합이 만들어낸 조화는 갓을 쓴 조선의 호스트만큼 어색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 공간을 구성한 강신재는 이 작품을 토대로 만찬의 필수 요소인 테이블과 의자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전통적인 한지 장판을 사용해 공간을 압도하는 만찬 테이블을 만들었다. 이와 대비되는 현대적인 재료인 바리솔 안에 의자를 감춰 오직 실루엣으로 의자의 볼륨감을 강조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처럼 천을 하나하나 늘어뜨려 풍만한 공간감을 연출했다. 테이블 끝자락에는 이번 전시 주제에 영감을 준 영상이 수채화처럼 스크린을 물들였다. 꽃봉우리를 틔운 매화 가지와 꽃잎이 내려앉은 만찬 테이블 위로 각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품은 공예품으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강신재는 전통 원형 소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분청 도자 위에 목기 쟁반을 얹거나 대나무 짜임 위에 백동 두석장식이 가미된 황동 쟁반을 올려 기능은 물론 보는 재미를 더했다.

지역색이 살아 있는 공예품을 상에 올리다
모든 문명은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발전한다. 강줄기와 산맥을 중심으로 나뉜 각 지역의 환경과 기후의 특성에 따라 독자적인 의식주 문화가 형성된다. 지역색 강한 방언처럼 대를 이어 전해진 역사의 일부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자연이 곧 삶의 터전이었고 그 속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삶의 기반이 되었다. 토양의 성질과 물 빠짐이 좋아 대나무가 잘 자라는 담양에서는 대나무를 활용해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고사리 같은 어린아이의 손도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황미경 명인은 대나무 쪼개지는 소리에 자신의 삶이 담겨 있고 유년기의 모습이 녹아 있다고 반추했다. 정소이는 컬러와 형태의 새로운 조합으로 대나무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동시에 전통 대나무 공예 기법인 겹친 돌려엮기 방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대나무 살의 그림자가 투영되는 형태로 달을 형상화한 행잉 조명, 그날의 기분이나 공간에 어울리는 컬러로 믹스매치할 수 있는 DIY 촛대 등 반제품 형태의 생활 공예품이 탄생했다. 남원은 지리산의 풍부한 산림자원 덕에 목공예가 발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목기 자체가 단단하고 독특한 향으로 유명하다. 이건무 공예가는 목기가 옻칠을 위한 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는 공예의 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협업한 박현주는 민속적인 동물 나무 꼭두 찬합에 해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기하학적 모양의 다양한 목기 유닛에 특수 개발한 양면 자석을 매립해 레고처럼 자유롭게 모양을 조합할 수 있게 만든 기하학 팩토리도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각 지역 장인 간의 협업 또한 활발하게 이뤄졌다. 최웅철은 백자 다기 받침을 대나무 짜임이나 호도나무로 배치해 등 서로 다른 물성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주목했다. 백자로 만든 컵에 대나무 홀더를 꽂아 테이크아웃 커피로 대변되는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통적인 요소로 풀어낸 것. 한편 박형원은 각 지역의 전통 공예가 결합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구리와 아연을 합금한 두석은 장식이나 경첩부터 옥새까지 다양한 분야에 쓰인다. 거친 질감을 살린 옹기에 정밀하게 세공한 백동을 얹은 합을 비롯해 옹기로 만든 촛대의 홀더 부분을 백동으로 배치했다. 진정욱 도예가의 옹기에 국새의장품을 제작한 양현승 두석장의 손길로 장식과 기능의 요소가 더해졌다.

조선 시대부터 완주에서 활발하게 제작한 분청사기의 명맥을 이어온 진정욱 도예가는 가장 많은 협업 작업에 참여했다. 도자가 들어가는 모든 공예품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빚는 대로 틀이 만들어지는 흙의 유연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스툴과 티슈 케이스를 다소 생경한 검은 옹기로 만들어 거친 물성을 강조한 것도 두드러진다. 최경란은 레드와 블랙 컬러의 대비로 포인트를 준 은행나무 목기에 옻칠을 더했다. 주로 목재에 옻나무 진액을 발라 광택을 내는 옻칠은 방수, 방충, 방부, 전자파 차단, 탈취 등의 기능이 뛰어나다. 나무로 만든 기물이 많은 동양에서 옻칠의 발달은 필수였다. 지금도 옻칠을 하는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뿐이다. 불교가 발전한 고려 시대에는 나전칠기가 꽃을 피웠다. 이번 작업을 진행한 경기도 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 배금용 장인은 금속 선으로 문양을 넣는 자신만의 기법을 창안해 나전칠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다른 나무의 생명을 연장하는 옻나무의 진가를 발견한 선조들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옻칠 제기, 할머니의 오래된 나전칠기 장롱. 현세대가 공유하는 일상 속 전통의 단상은 다음 세대의 기억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때는 부의 상징으로 안방을 차지했던 커다란 나전칠기 장은 이제 골동품상에 가야 찾아볼 수 있다.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가족이 모여 제사상에 올리던 옻칠 제기 역시 앞으로는 박물관이나 절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용기와 가성비 좋은 조립식 가구가 대신한 자리에 전통을 입히기 위해서는 전통이 옛것이 아니라 빈티지해서 더 멋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 전통에 대한 현세대의 관심은 무한대로 잠재되어 있다. 한복을 입고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젊은 세대의 눈에는 예쁘고 친숙한 연결 고리가 필요할 뿐이다. 티아라나 배씨 댕기처럼 베일과 함께 착용할 수 있는 웨딩 족두리, 전통 꽃 창살 문양을 스피커 전면 그릴에 적용한 휴대형 오디오 스피커 등 전시장 한쪽에 자리한 신진 작가들의 전통문화 융·복합 상용화 상품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박현주는 다양한 목기 유닛에 특수 개발한 양면자석을 매립해 레고처럼 자유롭게 모양을 조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최경란은 레드와 블랙 컬러의 대비로 포인트를 준 은행나무 목기에 옻칠을 더했다.


정소이는 전통 대나무 공예 기법인 겹친 돌려엮기 방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


박형원은 진정욱의 옹기에 양현승의 국새의장품을 더하여 디자인한 촛대 홀더.




최웅철은 백자 다기 받침을 대나무 짜임이나 호도나무로 배치해 서로 다른 물성이 만들어 내는 조화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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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정유미, 사진: 물나무사진관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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