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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창조 계급을 밝히다
지난 9월 15일 디자인하우스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야심 차게 기획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 오픈했다. 콘크리트나 철골 같은 건축의 기본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종이와 컨테이너만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 하나만으로도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여기에 창조 산업(디자인, 광고, 패션, 회화, 사진 등)에 종사하는 60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여자’와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를 볼 수 있다.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하우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30년 동안 한국의 총체적인 크리에이티브 파워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창조적인 인재가 절실한 기업과 그것을 향유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향해서 말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크리에이티브 클래스(창조 계급)가 사회를 이끄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는 30주년을 맞이해 이 전시로 그것을 선언한 것이다.


페이퍼테이너를 둘러보는 것은 독특한 경험 그 이상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낯설고 유쾌한 경험을 주고자 애쓰고 있다. 그들은 내용과 디자인 면에서 웬만큼 독특하지 않으면 지루해하는 현대의 대중에게 꽤 그럴듯한 공간을 제공해왔다. 페이퍼테이너는 이런 모든 현상의 종합적인 결정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울러 미래의 산업과 문화가 어떤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다양한 비전을 제시한다.우선 공간을 보자. 올림픽공원의 소마미술관을 지나 나타나는 웅장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최근의 미술관들은 소장품보다 더 관객을 유혹하는 요소로 지어진다. 그 자체가 거대한 조각품으로 기획되는 것이다. 페이퍼테이너 뮤지엄 역시 그런 시대적 흐름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다른 미술관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지어진다는 것이 다르다. 게다가 이 미술관은 움직이기까지 한다. 노매딕 시대를 정확히 읽은 통찰력 있는 건축물이라고나 할까.철골, 콘크리트, 강철, 유리 같은 기존의 건축 자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종이와 컨테이너만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의 독특한 스타일은 바로 이 자재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런 자재 선택은 건축에 대한 색다른 접근 방식, 건축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런 물음과 접근 방식이 새로운 재료를 선택케 하고 새 재료는 새로운 구조를 탄생시켰다. 이 건축의 경험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라는 디자인 방법론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페이터테이너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 보자. 출입구를 지나 만나게 되는 첫번째 전시는 ‘브랜드를 밝히다’라는 제목의 전시다. 여기에는 디자인적으로 앞선 브랜드 30개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의 컨테이너가 하나의 부스가 되는 것이다. 30명의 디자이너가 이 30개의 브랜드를 각자 해석하여 가장 그 브랜드답게 표현하는 과제였다. 그 브랜드다우면서도 관객을 즐겁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루하거나 평범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낯설면서도 유쾌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디자이너의 해석력과 통찰력, 스타일과 감각, 그리고 구체적인 제작 능력까지 크리에이티브를 구성하는 총체적인 재능이 시험받는다.

홈플러스 컨테이너를 보자. 천장과 바닥을 빼고 컨테이너의 모든 벽면이 수많은슬라이드로 꽉 메워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슬라이드에는 홈플러스 매장의 다양한 풍경이 실려 있다. 홈플러스라는 브랜드의 다양한 상품과 쇼핑하는 인간 군상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대형 할인 매장의 본질을 이렇게 정확히 읽으면서도 산뜻하고 유쾌하며 독특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한 재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이다. ‘브랜드를 밝히다’전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디자이너의 창조적인 재능이다.

‘여자를 밝히다’전은 파인 아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역사 속의 한국 여인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그림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회화와 사진으로 표현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캔버스가 쓰였다. 중요한 것은 역사 속의 여인들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데에서도 ‘브랜드를 밝히다’ 전시처럼 다양한 분야의 창조적 작업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이다. 포토그래퍼 김중만의 작품 ‘어우동’은 모델과 소품에 의상 디자인과 스타일링이 더해지고 최종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역사 인식부터 아이디어 도출, 상황 연출과 사진촬영, 그리고 출력과 최종 액자 제작에 이르기까지 창조 산업의 다양한 인프라가 없었다면 이 한 장의 사진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창조적 기반이 있었기에 대중은 비로소 현대적으로 해석된 어우동을 마주하고 낯선 방식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즐거움을 얻는다.

오늘날 대중은 그저 그런 시각적 충격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감각에 무뎌진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주목시키고,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온전히 알릴 수 있을까? 이것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그래서 대량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난감하면서도 간절한 과업이다. 기업은 물론 작은 구멍가게 주인 그리고 개인조차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려야 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그것도 그 이야기가 아주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넘쳐나는 시각적・청각적 충격에 닳아빠진 대중의 눈과 귀를 어떻게 일깨울 것인가?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그것을 크리에이티브 클래스(creative class), 즉 창조 계급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 미래의 산업과 문화도 이 창조계급이 만들어갈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것은 월간 <디자인>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인식한 세상의 법칙이기도 한다. 창조적인 사람들을 우대하라! 그들이 한국의 미래다.

1 중2정에서 본 페이퍼갤러리 외관
2 ‘여자를 밝히다’를 전시하고 있는 페이퍼갤러리 내부
3 ‘브랜드를 밝히다’를 전시하고 있는 컨테이너갤러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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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최태혁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