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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1930년대 정미소의 음예예찬 유랩 Ulab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을 이끌어가는 김종유 소장과 김현진 실장. 유랩의 방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두 번째 사옥을 남영동에 마련했다.

유랩 김종유 소장은 디자이너 마영범의 소갤러리와 배대용의 B&A에서 실무를 쌓고,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을 설립했다. 유랩은 최근 제일모직 르베이지의 리뉴얼 작업을 진행 중으로, 하이패션 브랜드의 근본적인 지향점과 앞으로 전개될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한 이형준 셰프의 그로서리 마켓 ‘슈퍼 막쉐’를 디자인하고 있다. 지난해 제시했던 ‘도시 공유 냉장고urban sharing fridge’가 기업 버전이었다면, 이번에는 셰프 버전이다. designstudioulab.com

유랩 사옥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심재향, 박성호)
시공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
위치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 103-3
공간 사진 최용준

마을마다 공통의 기억이 어린 장소들이 있다. 유물이나 유적이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야 마땅한 곳이라면 교회, 양조장, 정미소, 이발관 등의 장소는 예전의 그들이 그랬듯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감에 의미가 있다. 유랩U.LAB의 김종유 소장은 남영동에서 만난 1930년대 정미소를 그들의 새로운 사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스튜디오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심도 깊은 공간에 대한 애착,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켜켜이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은 절대 인위적으로 흉내 낼 수 없기에 언젠가 그런 공간에 디자인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쌀米을 도정하던 공간을 아름다움美을 도정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옥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김종유 소장은 팀원들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을 다 같이 읽었다. 몇 해 전, 유럽에서 건축 전공을 하던 친구로부터 해외 유수의 건축 학교에서는 <음예예찬>을 필독서로 지정해놓고 그것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양력을 사용하는 서양은 태양을 기준으로 모든 문화가 형성되었고, 음력을 사용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달(음예)에 대한 개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농경 시기와 날씨, 심지어 정안수를 떠놓고 달을 향해 가족의 안녕까지도 빌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말하는 음예란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닌, 너무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그늘과도 같은 곳이다. 이런 공간에서 창작자는 무수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공간을 새로운 사옥에서 실험해보고 싶었다.” 이번 사옥에서는 모든 팀원들이 1인당 두 좌석을 사용할 수 있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인 고정 좌석과 노트북을 사용하며 자율 배석할 수 있는 8m 길이의 긴 테이블이다. 물리적으로 두 공간을 나누는 것은 두 겹의 삼베로 만든 12m의 벽이다. 그리고 삼베 천 사이에 조명을 설치해 전체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는 빛을 담고있는 벽을 만들었다.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소재를 적용했을 때,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소재를 생각하다 매년 여름이면 어머니가 지어 보내주시는 삼베가 떠올랐다.


유랩은 남영동에서 만난 1930년대 정미소를 새로운 사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최용준


김종유 소장의 사무실에는 그의 미감을 알 수 있는 수집품이 수납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할아버지 가게에서 발견했다는 놋그릇과 손바닥만 한 작은 사전, 한·중·일의 각기 다른 모양의 부채 등 이 모든 물건들은 다가오는 프로젝트의 밑바탕이 된다. ©최용준


사옥에서 주요 소재로 삼베를 택한 것은 오래된 공간에 스며드는 동시에, 두 공간의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용준


사옥의 평면을 보면 팀원이 일하는 공간은 두 곳으로 나뉜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인 데스크톱 좌석과 소통이 가능한 8m의 자율 배석 테이블이다. 유랩은 이번 사옥을 통해 집중과 소통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오피스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다. ©최용준

“매해 여름마다 어머니께 받았던 삼베 천을 모두 모아도 수량이 모자라 다시 몇 점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머니는 삼베 벽이 만들어진 후 사무실을 방문해 보시고는 부끄러워하시면서도 많이 뿌듯해했다.” 이 벽은 음예 공간의 실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 장치이며 이번 공간의 핵심 요소이다. 유랩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팀원들의 의견이 존중되는 수평적인 구조의 사무실이다. 가령 회의 테이블에서 “다들 얘기 좀 해보시죠?”라고 리더가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전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한다. 개인이 고민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자유롭게 토론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실험인 셈이다.” 유랩이라는 이름처럼, 프로젝트뿐 아니라 사옥의 업무 공간 역시 실험의 연장선에 있다. 2007년에 처음 만든 장충동 오피스 이후 두 번째인 남영동 사옥은 의미가 남다르다. 유랩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던 시절, 그저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족했다면 이번 사무실은 유랩이 앞으로 추구할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8m의 긴 테이블 끝에는 작은 바도 있다. 언제든 음료를 만들어 마시거나 원한다면 술을 꺼내 마실 수도 있다. 일반적인 오피스 환경을 생각하자면 어두운 공간도, 바도, 파격적이다. 김종유 소장이 “좋은 디자인을 사용해본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라고 말하듯이, 자신들이 사용해보지 않은 공간을 남에게 권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말한다. “산뜻한 음료나 소량의 술로 뜨거워진 토론의 열기가 완화되고 더 발전적인 생각이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더 획기적인 실험도 해보고 싶다. 오피스에 바가 있고 놀이터가 있다고 해서 업무에 지장을 줄 만한 행동을 하는 팀원은 여지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옥 정면에서 보면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듯한 박공 형태의 지붕 위로 작은 집 한 채가 더 올라가 있는 듯한 모습이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마감했지만, 내부를 보면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건축의 형태를 띤 것을 알 수 있다. 도정기나 석발기 등의 기계가 있던 정미소의 중심 공간은 직원들의 오피스로 두었고, 사무 공간으로 쓰였을 2층은 회의실과 김종유 대표의 사무실로 사용한다. 좁은 복도와 오르내리는 계단, 나무 질감까지 과거의 시간성을 되살리는 대신, 고치고 덧댄 재료는 현대의 재료를 사용해 시간이 중첩되지 않고 또렷하게 도드라지도록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작고도 큰 꿈은 자기만의 방이라는 온전한 ‘나의 세계’를 갖는 일이다. 팀원들과 함께 달려온 11년의 시간 끝에 마련한 그들만의 온전한 공간 속에서 그들이 맺을 열매는 더 풍성하고 단단해질 참이다.


공간 디자이너의 코멘트
김종유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 소장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철거 공정이었다. 올해로 지은 지 88년이나 된 건물이다 보니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철거 작업이 진행 되었을 때 천장 안쪽에서 1931년 3월 21일에 지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량식 목판이 나왔다. 한국은 상량식을 할 때 대들보에 직접 건물의 용도와 안녕을 비는 글을 쓰지만, 이 건물은 일본인이 주인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일본식 상량식 목판이 나왔다. 따라서 우리는 정미소였던 과거의 흔적과 그 공간에 적층된 시간성은 최대한 남기고 싶었다. 외벽은 그대로 살리되 내부 단열과 방습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해 기존 천장 위에 목제 루버 판재를 덧대어 붙이고 다시 한번 보와 기둥까지 자연스럽게 도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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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김만나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