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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와인소셜 데이비드 김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
이른바 와인 전성시대. ‘홈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주종 선택의 폭이 넓은 와인이 그 어느 때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 급부상한 와인 트렌드의 물결을 타고 독특한 콘셉트의 보틀 숍과 와인 바도 연이어 등장한다. 와인 음용 방식의 기존 공식과 편견을 허물고 색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신개념 공간으로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겠다는 차별화 전략이다. 지난해 12월 도산공원 인근에 문을 연 와인소셜은 이 흐름의 선두 주자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와인을 마시고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인데 여느 바와 달리 메뉴판의 리스트를 없애고 라벨을 가린 채 와인을 제공한다. 와이너리의 명성, 소믈리에의 평가, 와인 가격에 따라 맛이 좌우되기도 하는 이 세계의 고정관념과 업계 관행에서 벗어난 과감한 시도다. 와이너리처럼 섬세하고 포근하게 설계된 와인소셜에 앉아 오롯이 감각에 의존해 와인을 음미하다 보면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경험이고 내게 맛있는 와인이 곧 좋은 와인’이라는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데이비드 김 세계적 와인 생산지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소노마 지역에서 태어나 테이스팅 문화를 경험하며 자랐다. 와이너리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2018년부터 미국 와인 전문 수입사 ‘보틀샤크’를 운영한다. 차세대 와인메이커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와인 테이스팅 문화를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와인소셜을 오픈했다. @winesocial_dosan


동굴과 하늘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와인소셜의 블랙 룸.

와인소셜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새로운 와인을 발견하는 공간이다. 운영 방식을 소개해달라.

기본적으로 메뉴판에 와인 가격과 품종을 쓰지 않는다. ‘청량하고 산뜻한 코스 A’, ‘달콤하고 플로럴한 코스 B’, ‘여름 코스’ 정도의 설명만 적는다. 손님에게 제공하는 모든 와인은 라벨을 가린다. 각 코스에서 내는 와인은 모두 다섯 잔. 모든 술을 맛본 후 소믈리에가 와인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해준다. 테이스팅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전문 소믈리에들이 계절에 맞춰 주제를 선별하고 큐레이션한 다섯 가지 와인을 순서대로 즐기는 과정은 마치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즐기는 파인다이닝과 같다. 일명 ‘와인 오마카세’다.

소믈리에는 손님의 취향에 어디까지 개입하는가?
테이스팅 코스에 대해 최소한의 안내만 한다. 대신 손님들이 와인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무엇보다 손님이 와인의 맛과 향에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간단한 핑거 푸드 외에 안주를 팔지 않는 것도 와인에만 온전히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단,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후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경우에는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민조킹 작가와 협업해 만든 이미지 카드.

테이스팅 코스에서 와인과 어울리는 이미지 카드를 고르는 독특한 프로그램도 있다.

코스에 맞춰 손님에게 카드 5장을 준다. 꽃, 솜사탕, 번개, 폭죽, 샹들리에 같은 이미지가 있는 카드인데 와인별로 하나씩 매칭하며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맛에 대한 기억이 더욱 강렬해진다. 최근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민조킹과 협업해 연인들을 위한 이미지 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음식은 흔히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하는데 와인은 반대다. 마시고 나서 이미지를 상상하면 감각이 더 증폭된다. 테이스팅을 마친 후에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소믈리에의 의견을 맞춰보기도 하는데 사실 정답은 없다. 소믈리에들도 저마다 다른 카드를 고른다. 이미지 카드는 와인을 주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데 의미를 둔다. 간혹 소믈리에의 테이스팅 노트를 보면 와인을 설명하는 단어가 미국과 유럽에서 쓰는 언어에 치우쳐 있는데, 이미지 카드를 보며 우리말로도 충분히 맛에 대한 정확하고 풍성한 표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했다. 와인을 큐레이션하고 소개하는 데 디자인과 예술의 영향을 받기도 하나?
기술적 측면에서 상관관계가 있진 않다. 다만 예술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사회문화, 역사인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무언가를 큐레이션할 때 당시 학습했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화려한 장식은 덜어내고 어슴푸레한 빛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와인소셜 입구.

공간 디자인은 LAB404에서 맡았다.

테이스팅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와인에 집중할 땐 감각이 극대화된다. 빛, 향, 공기, 바람…. 오감이 예민해지는데 디자인으로 이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따라주기에 가장 안정적인 동선을 만들었고, 옆자리 손님들과 소셜라이징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신경 썼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와이너리의 동굴 같은 콘셉트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격식을 갖춰야 할 법한 딱딱한 분위기의 와인 바와 레스토랑이 많은데 와인소셜은 그냥 친구와 가볍게 커피 한잔하러 가듯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의도했다. LAB404에서 적절한 조도로 편안하면서도 미니멀하게 정제된 공간을 구현해줬다.

블랙과 화이트로 룸 콘셉트를 구분한 이유는?

낮과 밤이라고 보면 된다. 화이트가 밝고 세련된 곳에서 마시는 낮술을 표방한다면 블랙은 묵직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핵심이다. 바 좌석 같은 경우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와인은 언제 마시는지에 따라 그 뉘앙스가 천차만별이다. 와인소셜은 오후 2시부터 연다. 동굴 같은 공간에 창문 하나 없다. 시간을 가늠할 수조차 없기에 각각의 방을 차별화하고자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재방문할 때 이전과 다른 자리에 앉아본다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보틀샤크에서 출시한 캔 와인 ‘웨스트와일더’.


블랙 룸과 대조를 이루는 화이트 룸. 밝음과 어둠, 동굴과 하늘이 공존한다는 콘셉트다.

이곳에서 와인 오마카세를 즐기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와인 500여 종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큐레이션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나 계절에 따라 다섯 가지 와인을 큐레이션하는데 무조건 맛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내추럴 와인이 트렌드인 듯했지만 막상 블라인드 테이스트를 해보면 선호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이는 다른 보틀 숍과 가장 큰 차별점이기도 하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을 경험하기 때문에 맛이 좋으면 라벨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아도 잘 팔리는 편이다. 그리고 마시는 순서를 중요시한다. 기승전결을 짜임새 있게 구성해 와인의 맛과 향을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최근 주목하는 와인업계의 경향은?
트렌드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와인을 즐기는 연령대의 폭이 점점 넓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MZ세대는 원하는 것에 기꺼이 투자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심했을 땐 이곳에 온 가족이 모여 환갑잔치를 한 경우도 있었다. 3대가 다 와인을 좋아해 함께 즐기는 모습이 놀랍고 신선했다.

와인소셜의 궁극적 지향점은?
사람들은 음식 앞에서 은근히 소심한 경향이 있다. 자신이 모르는 술에는 선뜻 손대지도 않는다. 분명한 점은 와인은 사회적 음료이고 테이스팅의 가장 큰 묘미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친구에게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자고 말하듯 ‘테이스팅 가자’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물론 이것은 장기적 비전이고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와인메이커, 수입사, 소믈리에,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테이스팅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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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정인호 기자 사진 이명수(아프로_이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