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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News
세트 디자인의 황금비율 김소연
최고 시청률 17.5%까지 오르며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독특한 설정과 배우들의 열연, 완성도 높은 고래 CG 등이 인기 비결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이 빛나기 위해서는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조연의 역할도 중요하다. 극의 배경이 되는 세트 디자인이 꼭 그렇다.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 세트 디자인을 시작한 김소연은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공간 안에 담백하게 그려낸다. 화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비율의 세트장을 척척 만들어내는 김소연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열정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애드가 라이트 감독을 좋아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무대미술과 영화미술을 공부하고 조화성 감독 밑에서 영화미술팀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2010년 개봉 영화 〈파괴된 사나이〉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고 KBS2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계기로 드라마 프로덕션 디자인의 길을 걷게 됐다. KBS 아트비전에서 경력을 쌓다가 2017년 독립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사랑의 불시착〉 〈미스터 선샤인〉 〈도깨비〉 〈구르미 그린 달빛〉 〈태양의 후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안나라수마나라〉 등이 있다.
영화에서 드라마 영역으로 넘어온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일반적으로 슈퍼맨처럼 세상을 구하거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초인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 비해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개봉 후에야 관객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매회 끝날 때마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의 감상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 흥미를 느꼈다. 내 의도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시작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세트 디자인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익숙한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학교 공간을 드라마 세트로 보여준다고 했을 때 흔히 예상하는 교실 이미지가 있지 않나. 여기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디자인해 보여주면 시청자는 어색함을 느끼면서 스토리에 집중하지 못한다. 반면 재현에만 집중하면 신선함이 떨어진다.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에서 적정 수준을 찾는 게 필요하다. 화면에 배우가 등장할 때 최적으로 카메라에 잡히는 세트 디자인의 황금 비율이 있다. 얼마 전에 지난 5년 동안 작업했던 작품 속 세트 디자인을 한자리에 쫙 펼쳐봤더니 전부 동일한 비율이더라. 이 감각은 머리로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안나라수마나라〉에서 마법사가 살고 있는 폐극장.




〈안나라수마나라〉의 폐유원지 세트장과 콘셉트 스케치. 입구에 아치 조형물을 설치해 판타지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세트 디자인에도 황금 비율이 있다니 놀랍다.
드라마 1, 2회는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하기 전까지 인물에 대한 설명과 배경이 나오게 된다. 이때 시청자들이 화면에 집중하도록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을 주로 클로즈업한다(이는 시청률과도 관계가 있다). 카메라가 배우의 상반신을 잡을 때 배경이 되는 공간은 아무리 넓더라도 화면 안에 들어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적의 비율에 맞게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권력자의 공간을 크고 넓게만 짓기보다 깊이감을 주는 게 나만의 노하우다. 어차피 카메라에 잡히는 면적은 동일하니까.

작품 하나를 끝내고 쉬다 보면 이 비율에 대한 감이 사라진다.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스피디하면서도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계속 새로운 작품을 맡으면서 전작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평소 세트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는편인가?
내 컴퓨터에는 ‘그냥’이라는 폴더가 있다. 여기에 연도별 하위 폴더를 만들고 평소 카메라로 찍은 사진, 흥미로운 이미지를 습관처럼 모아놓는다. 대본을 읽고 나서 레퍼런스를 찾는 것은 이미 한발 늦었다고 생각한다. 대본을 읽는 동시에 바로 머릿속에서 원하는 세트 이미지를 곧바로 떠올리는 프로 의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일하는 한바다 메인 홀(사진 위)과 우영우의 방. 사회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주인공을 공간의 레이어, 통로, 창문, 배치를 통해 표현했다.
“ 머리로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설정해 눈길을 끌었다. 세트 디자인을 통해 우영우(박은빈 분)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내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우영우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일하는 공간인 대형 로펌 한바다의 세트장을 디자인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대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회사 건물로 들어올 때 거쳐야 하는 회전문이었다. 여러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공간 레이어를 하나씩 통과하는 연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눈앞에 나타나는 한바다의 메인 홀은 조명이 어둡고 권위적이며 45도 사선으로 복도를 배열해 낯선 느낌마저 든다. 우영우가 처음 세상에 나아갔을 때 마주치는 어색한 풍경, 거기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되는 익숙한 자기만의 공간과 동료들, 이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동료 변호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드라마에서는 법률 천재라는 설정으로 되레 우월하다) 동일한 사각형 방 구조를 통해 말해주려는 것이었다.

드라마 중간중간 등장하는 고래 CG도 재미있었다.
고래를 좋아하는 우영우 캐릭터에 착안해 한바다의 세트장을 바다 한가운데 있는 어항이라고 상상했다. 메인 홀 창문에는 전부 창살이 있어 갑갑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두운 통로를 지나 개인 사무실로 들어오면 밝고 큰 통창이 눈에 확 들어온다. 메인 홀에서는 어딘가에 갇혀서 밖에서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면 사무실에서는 시선이 역전되어 내가 밖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마치 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우영우의 집도 좁고 긴 통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방 끝에는 통창이 있어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나아간다. 사무실 창밖 풍경은 도심인데 여기에는 무려 가로 60m, 세로 7m나 되는 대형 출력 사진을 걸었다. 정명석 변호사(강기영 분)의 사무실부터 우영우 변호사의 사무실을 지나 창밖 배경이 통창을 통해 쭉 연결될 수 있도록 해외에서 자문까지 받아가며 완성한 작업이었다. 조명기를 설치하고 사진이 커튼식으로 자동 펼쳐지도록 했는데 국내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이다 보니 모터가 자꾸 고장 나서 애를 먹었지만 한편으론 재미있었던 시도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에게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고래가 나타난다. 9회 법정 세트장에서 우영우에게 나타난 범고래 CG 이미지.
〈사랑의 불시착〉 〈구르미 그린 달빛〉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 로멘틱 멜로 장르의 대가다.
예전에 KBS 아트비전에 몸담고 있을 때 함께 일했던 감독들이 독립한 다음에도 계속 불러줘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5월 릴리즈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는 네이버 웹툰이 원작으로 한국에서는 웬만해서 성공하기 어려운 뮤지컬 드라마였다. 이런 장르는 연기에서 노래로, 혹은 노래에서 연기로 넘어갈 때 어색하지 않는 브리지를 찾는 게 난제다. 폐유원지 세트장에서 주인공이 마법사를 만나 성장하는 스토리로 원작에는 서커스용 천막이 등장하는데 이게 국내에서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서 드라마에서는 극장 건물로 연출하자고 제안했다. 유원지 입구에는 환상의 세계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아치형 구조물을 세우고 사람의 형상처럼 의인화한 시설물을 곳곳에 배치하는 등 적당히 이질적이면서 친근한 요소를 가미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을 컬러까지 조명팀과 세심하게 조율한 작품이기에 애착이 간다. 그렇지만 미술이 너무 튀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누르면서 스토리 전개에 집중하도록 공들였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미술에 힘을 빼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예전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잘 구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는데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이후로는 감독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감독에게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할 때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이 분석할수록 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진다. 앞으로는 촬영감독, 조명감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카메라에 대한 이해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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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 글 서민경 기자 인물 사진 윤선웅(S+tudio)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2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